20일, 포스코 노동자들의 투쟁은 8일째를 맞고있다. 2000여 명의 고령의 노동자들이 폐쇄된 건물에 갇혀 무려 8일째를 보냈고, 생라면을 뜯어 먹으며 포로수용소를 방불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더구나 한 명의 노동자는 뇌사 상태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
상황이 이 처럼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데도 주무부처 장관은 국회의원과의 면담에서 그럴싸한 말만 내뱉은 채 여전히 뒷짐 지고 있는 형편이다.
정치권 또한 사회문제로 커져가는 사안에 대해 별다른 언급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다, 이제야 몇 마디씩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이를 두고 한마디로 ‘가관’이라고 혀를 찼다.
김한길, “기간산업 마비, 국가신인도, 경쟁력 저하, 공권력의 무력화”우려
20일 오전, 국회에서 가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단 회의에서 사안과 관련 몇 마디가 오갔다.
김한길 원내대표는 "노사문제에서 비롯된 불법점거, 노동쟁의가 심화되고 있다"고 밝히고, "기간산업 마비, 국가신인도와 경쟁력의 저하, 공권력의 무력화 등 많은 문제점들이 노정되고 있다"며 사태의 본질은 간과한 채 현상적인 문제들만 나열함으로써 우려를 밝혔다. 게다가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지적, 현재까지도 정부와 사측의 일방주의로 물들고 있는 상황을 부채질했다.
조일현 수석부대표는 "나라가 물난리에 휩싸이고,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경제가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정상적인 쟁의가 아니라 불법저인 쟁의행위가 계속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우리의 아픈 역사가 올바른 판단을 못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공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놨다. 그의 말에 의하면, 과거 독재 시대에 공권력에 항거하는 것은 '하나의 표상이자 자랑스런 표현'이었다면, 민주화 이후 21세기인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국가로 세계적으로 민주정치질서에 표본'이 되었다. 이런데도 공권력에 항거할 수 있는 것은 "과거에 항거하는 것이 미덕이던 것이 오늘의 이 시점에도 국민 일부에는 정당한 것처럼 비춰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다시 풀자면, 공권력의 성격이 달라졌는데도, 현실인식이 부족한 '국민 일부'가 과거의 경험에 기대어 '올바른 판단을 못하고' 공권력에 항거한다는 것이다.
조일현, 노사관계 균형 이루어졌다(?) 문희상, ‘노사문제가 아니라 치안문제‘
이어진 발언에서도 그는 자신의 현실인식을 반영하는 이야기를 여지없이 쏟아냈다. 조일현 수석부대표는 "노사문제에 있어서도 한때 대한민국의 개발시대에 사측에 유리한 기업문화가 노측에 불리한 입장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균형에 가까운 입장과 위치를 가졌다고 생각하는데도 불구하고 오늘 이 순간 어느 한 측의 요구에 의해 국민 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염려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과 사측의 일방주의적 행태가 자행되고 있는 마당에도 ‘어느 한 측의 요구’ 운운하는 그의 인식에서는 이미 노사관계의 균형이 이루어진 것이다.
아울러, 그는 "노사가 함께 대한민국 경제의 열매가 커지고 많아지는 것을 위해 노력하는 역지사지 입장"을 가질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앞선 그의 발언들 중에 노동자의 입장을 고려한 '역지사지'는 어디에 있었는지 찾기 힘들다.
한편, 이에 앞서 열린우리당 문희상 상임위원도 현 사태는 '노사문제가 아니라 치안문제'라며 정부에 엄정대처를 주문하는 발언을 했다. 그의 말은 여태까지의 정부 여당의 인식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포스코가 직접사용자가 아닌데도 점거한 것은 불법이고, 따라서 치안문제다'라는 간단한 도식에서 비롯됐다.
민노당, "정부여당 철학부재, 제 역할을 자각해라"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논평을 내고 "보수정치권에서 한두 마디 나오는 소리가 가관“이라며 이는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현 사태에 대한 정부 여당의 철학부재를 남김없이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은 이는 "건설노동자들이 하고 많은 건물 중에 '왜' 포스코 건물에 들어가서 농성을 벌이는지 전혀 귀담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증거"라며 "노동자들의 정당한 교섭과 투쟁을 방해하기위해 대체인력을 투입한 애초의 불법을 보지는 않고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오직 수수방관 아니면 진압 대상으로만 여기는 고압적인 태도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노사문제를 격화시키는 가장 큰 이유"라고 정부와 여당의 태도를 지적했다.
박용진 대변인은 "다시 말하지만 이번 사태는 치안문제가 아니라 이미 대규모 사태로 발전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문제이며 정부당국의 해결능력부족과 철학부재의 문제"라고 못 박고, "아예 손을 놓거나 안 하느니만 못하는 소리나 해 댈 것이 아니라 정치권이 나서서 이번 사태에 대해 평화적인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아울러 "보수 정치권과 정부당국이야말로 제 역할을 자각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때 운동께나 했다는 대통령의 “이제는 누구든 노동운동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철지난 선언을 굳이 들추지 않더라도, 역시 운동께나 했다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여당에 대해 ‘제 역할에 대한 자각‘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