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노동자 보호법안’이라는 허울로 노동자를 기만하던 노무현정부는 단박에 드러난 진실 앞에서 대책 없이 허둥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장관은 이랜드 자본이 ‘성급했다’며 생색을 내더니 어느새 ‘법과 원칙’, ‘공권력 투입’이라는 낡은 레퍼토리를 되풀이하고 있다. ‘성급했다’는 것은 좀 더 여유를 갖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정리해고 하고 외주로 돌렸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또 공권력 투입, 구속과 수배로 비정규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는 웃을 수도 없는 발상도 여전하다.
현재 이랜드 노동자들의 농성투쟁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는 알 수 없다. 또 그 투쟁의 의미와 역사적 의의가 드러나는 데에는 아마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구조적 위기 앞에서 위축된 민주노조운동의 입장에서 보면 이랜드 투쟁은 이미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그 속에 민주노조의 미래가 담겨있을 지도 모른다는 예감은 지나친 것일까? 향후 보다 본격적인 분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전제로 몇 가지 단상을 정리해본다.
먼저 금번 이랜드 투쟁은 그동안 가장 조직되기 힘든 부문이라고 평가되었던 서비스유통산업부문에서 폭발한 투쟁이다. 거기다 대다수의 조합원이 육아나 가사노동의 이중 부담을 진 주부 여성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조직되기 힘든 사업장에서 거대한 조직화가 일어났고 전 사회적으로 커다란 충격을 준 파업이 일어난 것이다. 시민과 항상 접촉하는 판매서비스직 직종의 성격 때문에 시민들의 호응성이 높은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고립되어 탄압받았던 제조업노조 파업의 한계를 보완할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취업노동자 중 과반이 훨씬 넘는 노동자가 서비스산업에 고용된 현실을 한탄하고 조직률 5%의 민주노조의 미래가 어둡다고 단지 자탄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둘째, 주지하듯이 금번 파업의 가장 중요한 성격은 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한 비정규노동자 파업이었다는 점에 있다. 파업을 주도한 이랜드일반노조와 뉴코아노조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의 노동조합에 조직되어 있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회사가 추진하는 구조조정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였고 비정규직 조직화에 함께 나섰다. 자본의 분할지배를 넘어 정규 비정규의 연대를 투쟁을 통해서 실현해내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기업별 노조의 울타리를 막 넘어서기 시작한 산별노조의 질적 발전은 그것이 정규 비정규노동자를 묶는 연대의 대량생산공장이 될 때 이루어 질 것이다.
셋째, 소위 ‘비정규노동자 보호법안’으로 정규 비정규노동자의 분할지배구도를 제도적으로 완성하고 차별을 고착화하려는 국가 자본의 전략에 커다란 파열구를 낸 투쟁이었다. 비정규 관련법 시행 하루 전에 시작된 이랜드 파업은 비정규법안의 기만성과 반 노동자성을 가장 쉽게 그리고 광범하게 선전, 교육하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타 직종 비정규노동자들에게도 그것은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비정규 법안의 전면 재개정을 위한 향후 노동법 개정투쟁의 필요성과 근거를 대중적으로 마련한 것은 이랜드 파업의 중요한 성과가 될 것이다.
넷째, 민주노동당 지역 조직과 시민사회의 진보적 사회운동단체들이 조직적으로 연대한 파업투쟁이란 점도 중요하다. 농성투쟁의 중심인 홈에버 상암점의 조직화는 민주노동당 서대문 마포 은평 용산 4개 지역위원회의 사업에 힘입은 바 컸다고 한다. 또 북부지역의 노원점과 중계점에도 노조와 함께 정당 조직과 사회운동 단체의 지원이 있었다. 인천 홈에버의 경우에는 인천 지역 사회운동단체들의 기여가 중요하였다고 한다. 이 밖에도 7월 8일의 전국적 점거투쟁과정에는 지역의 사회운동 조직이 다수 참여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같은 조직화와 투쟁 양상은 좁게는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사업의 방향을, 그리고 넓게는 새로운 민주노조운동의 전략적 방안을 예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연대의 확장은 노동계급 내부의 비정규노동자들을 넘어 시민사회로 나아가야 하여 양자는 하나로 결합되어야 함을 이랜드투쟁은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은 난제 중의 난제에 속한다. 그러나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구도에서 한국의 자본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초과착취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또 국가가 비정규노동자의 분노를 차별 법제화로 왜곡하고 기만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지속적으로 드러낼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그 결과는 다양한 방식으로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추세가 확대되는 것,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착취 강화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향후 상당기간 동안 비정규 노동자들의 자연발생적 투쟁이 폭발하는 것은 필연의 일에 속한다.
또 위기에 처한 민주노조운동, 조직 노동에게 비정규노동자와 함께 하는 산별노조 건설 외에 달리 답이 있을 수 없다. 나아가 대체노동 투입, 필수공익사업장 확대로 파업권을 완전히 봉쇄하려는 것이 국가와 자본의 전략적 목표라는 사실이 이제 분명해졌다. 이는 차기 정부에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비정규 관련 노동법을 포함한 전면적인 노동법 개정이라는 전 계급적 전선으로 대응하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다. 결국 정규와 비정규노동자들이 함께 하는 수많은 이랜드 투쟁이 들불처럼 번질 수 있을 것인가는 온전히 민주노조운동의 올바른 대응 여부에 달려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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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중기 님은 한신대 교수로, 본 지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