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 주세요” 라는 벽보가 나붙은
이랜드 월드컵점 앞에서, 몇 번이나
파도처럼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치솟았지만
나는 그 눈물바다 속에 서서도
바위처럼 울지 않았다
그들 앞에선 우는 것조차
사치였다
그들의 울음은 지금 이 한순간의 노여움
이 한순간의 모욕
이 한순간의 두려움이 아니었다
하나같이 터진 수도꼭지마냥
눈물만 주룩주룩 흘려대는
그들의 슬픔
그들의 한은
사는 동안 내내 없는 이로 겪어야 했던
고난과 차별의 깊은 골짝에서 발원해서
견딜 수 없이, 참을 수 없이 솟구쳐 나오는
지독한 서러움이었다
그들은 한 번의 쇼핑카트에도
수십만 원 어치를 싣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맞아
생리현상마저 멈추고 서서 일하는
방광염 걸린 기계들이었다
3개월마다 한번씩 실직의 거리를 떠올리고
6개월마다 한번씩 나락으로 떨어지는 꿈을 꾸며
9개월마다 한번씩 생존을 구걸해야 하는
시한부 인생들이었다
지금 그들이
동물원에 갇힌 착한 짐승들처럼
슬픈 눈망울로 2층 창문가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
제발 우리를 구해달라고
우리는 아무 죄가 없다고 소리친다
나는 차라리 귀를 막아버리고 싶다
나는 차라리 눈을 막아버리고 싶다
그것은 1970년 전태일의 목소리다
그것은 1978년 동일방직의 서러움이고
그것은 1979년 YH 김경숙의 눈물이다
그것은 1985년 구로동맹파업의 억울함이다
거기에 1987년은 없다
거기에 1996년은 없다
거기에 민주주의는 없다 100% 없다
가슴 뜨거웠던 나도 없고 너도 없다
경찰은 버스 50여대로
모든 출입구를 봉쇄해 버렸다
다섯 살짜리 아이도 엄마를 만나러 들어갈 수 없고
칠순 노모도 딸을 만나러 들어갈 수 없고
기자도 의사도 인권단체도 들어갈 수 없는 그곳에
수백의 용역깡패들만이 어슬렁인다고 한다
그들의 눈이 너무 무서워 밤새 또 울었다 한다
아, 순한 양들이여!
79만원이라도 좋으니 계속 일할 수 있게만 해달라고
자르지 않겠다던 약속만 지켜달라고
노동청에서 권고한 복직만 받아달라고 애원하는
여성노동자 100여명을 폭도로 만들고
수천 명의 공권력을 동원해 용역깡패나 지켜주는
위대한 대한민국이여!
가장 선량하고 가난한 노동자들을
조기에 때려잡자는 노동부여!
하지만,
이제 그만 눈물을 거두어요!
지금 울어야 할 사람은
당신들이 아니라
당신들의 가난한 노동을
평생 갉아먹고 살아 온
이 쥐새끼 같은 사회예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지금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사람은
월급 79만원에 노예처럼 살며
가사와 육아마저 떠안고 사랑과 희생으로
이 사회를 지탱해 온 당신들의 숭고함이 아니라
당신들의 숭고함을 화폐의 가치로 바꿔
개인의 금고에 수백억씩 수천억씩 감금시켜 온
이랜드 사주의 언어도단이고
그와 같은 이 사회의 부패
이 사회의 타락이에요
일어서세요!
지금 일어서야 하는 사람은
살아 내내 무슨 갑각류마냥 짓눌려만 살다가 처음으로
일만 하게 해주세요라고 고개 한번 쳐든
눈물투성이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이 아니라
더불어 이 사회의 양심을 지켜야 하는
너와 나 우리예요
우리의 시대
끝끝내 물러 설 수 없는
위대한 연대의 메아리며
거대한 진동이에요
- 덧붙이는 말
-
송경동 시인은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