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영화 '화려한휴가' 공식싸이트] |
1980년 4월 군부의 권력 장악 의도가 노출되기 시작하면서 학생운동은 반독재운동의 불을 지폈고, 학생은 5.18까지 항쟁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19일 이후 계엄군의 진압이 시작되면서 항쟁의 중심세력은 민중으로 옮겨졌다. 계엄군의 폭압적 진압에 민중 스스로 무장투쟁으로 대항하기 시작했다. 도청 진압으로 '화려한휴가'는 막을 내리고, 80년대를 살아온 민중의 가슴에 광주는 '미완의혁명도시'로 살아있었다. 6.10항쟁에 나선 민중들은 광주민중항쟁을 연호로 사용했고, 광주는 6.10항쟁으로 다시 살아나 민주주의혁명의 큰 역사로 기록된다.
27년이 지난 지금 광주를 다시 돌아본다는 것은 한가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광주는 멀리 있고, 잊혀진 역사가 되었다. 영화 '화려한휴가'의 등장과 흥행돌풍은 뜻밖이지만 응당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대선을 앞두고 영화가 주는 정치적 성과를 누구누구가 챙기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엉뚱하지만은 않다.
영화 '화려한휴가'는 작품성과 관계없이 27년 전 폭력의 상흔과 외상, 그 기억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영화 '화려한휴가'는 광주의 10일을 뜨문뜨문 보여준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광주에 없었던 나로서는 뜨문뜨문 보여주는지, 조목조목 보여주는지 일갈할 처지가 못 된다. 다만 광주민중항쟁을 연호로 쓰며 6월항쟁의 한가운데 휩쓸렸던 경험으로 미루어, '화려한휴가'가 보여준 군사독재정권의 폭력의 역사와 그 지배이데올로기만큼은 기억에 선연하다.
[출처: 5.18기념재단] |
80년 5월 23일 화려한 휴가 6일차, 이희성 계엄사령관 육군대장은 "이제까지는 여러분의 이성과 애국심에 호소하여 자진해산과 질서회복을 기대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총기와 탄약과 폭발물을 탈취한 폭도들의 행패는 계속 가열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는 부득이 소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시민 여러분! 소요는 고정간첩, 불순분자, 깡패에 의해 조종되고 있습니다. 지금 즉시 대열을 이찰, 직장으로 돌아가십시오."라는 경고문을 발표한다.
광주시민은 '폭도'였다. 그리고 전두환은 폭도가 아니라며 총을 놓지 않는 '강민우'를 사살하며 등장했고, 7년 후 박종철과 이한열의 목숨을 앗아가며 광주를 재연한다. 6월항쟁은 제2의 광주민중항쟁이었고, 6.29항복 선언은 제2의 계엄과 종이 한 장 차이를 두고 이루어진 역사적 산물이었다. 6.29항복 선언으로 '폭력의 역사'는 그렇게 일단락을 했다. 분명 그랬다.
그런데 영화 '화려한휴가'는 문득 오늘날의 '폭력'과 얼마나, 무엇이 다른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27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구성원 일부가 멀리 아프간 탈레반으로부터 '폭력'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는 순간 '폭력'의 기억, 그 외상이 주는 충격에 오금이 저린다. 우발적인 상황도 아니고 한두 명도 아닌, 총부리에 의해 묵숨을 잃는 사건이 눈 앞에서 반복되고 있다. 사태 해결이 무망한 상황이 지속되자 '군사작전' 목소리가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필시 누군가가 '화려한휴가' 그 폭력의 지배이데올로기를 다시 작동시키려는 속셈이 아닌가.
31일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내 추가희생자 발생에 대한 성명'을 내고 사태 해결 의지를 피력했다. 31일 성명은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해결책도 할 말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그런 가운데 성명서 마지막 문장은 유난히 시선을 끈다. "정부는 또다시 우리 국민의 인명을 해치는 행위가 일어난다면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우리 국민들의 희생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 둡니다."
두 명이 피살되고, 또 다른 비극이 예고될 수 있는 상황에서 '좌시하지 않을 것'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문구가 주는 암시는 자극적일 수밖에 없다.
▲ 조선일보 8월 1일 사설 |
오늘 조선일보는 '또다시 인질 살해하면 비상한 각오를'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내보냈다. "지금 상황으로는 아무런 돌파구가 보이지 않고" "이러다 또 비보를 듣게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며, 좌시하지 않겠다는 정부 성명을 들어 또 다시 인명을 해치는 행위가 일어난다면 "정부와 국민 모두가 비상한 각오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쓰고 있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각각 '군사작전 나설까' '아프간 최후선택 군사작전 고개 든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중앙일보 기사는 "전문가들은 특전사 2개 여단(2000명)과 해병 1개 연대, 보병 및 지원 병력 등으로 구성된 작은 사단급(1만명 이하)이면 충분할 것"으로 규모까지 거론한다.
좌시하지 않고 책임을 묻고, 비상한 각오를 하고, 특전사를 포함한 사단급 병력을 투입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청와대는 분명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어디선가 누군가에 의해 또다른 '화려한휴가'가 준비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필시 부추기는 세력과 지배이데올로기가 있다는 이야기다. 이게 분명 현실이 맞는가. 27년 전 이희성 육군대장의 경고문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광주가, '화려한휴가'가 계속되고 있는 건 아닐까.
"이제까지는 여러분의 이성과 애국심에 호소하여 자진해산과 질서회복을 기대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총기와 탄약과 폭발물을 탈취한 폭도들의 행패는 계속 가열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는 부득이 소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