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UAW 협상, '타협'인가 '패배'인가

노동조합이 구조조정 비용 떠안아

전미자동차노조(UAW)는 9월 26일 GM사측과 노사협상의 결과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고 발표했다.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GM 전국 73개 공장을 세우고 7만 3천 명이 이틀간 파업에 들어간 결과였다.

[출처: Labor Notes]

합의안에 따르면, GM사측은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한 해외진출 및 감원조치를 중단하거나 줄이게 된다. 대신 사측에게 부담이 되고 있는 퇴직자의료보험펀드(VEBA)를 조성, 그 운영의 책임을 노동조합이 지게 되며, 새로 고용되는 노동자들에게는 이중임금체계를 적용하게 된다. 복지와 임금전략대신 고용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GM노동자들은 10월 초부터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진행해왔으며, 10일(현지시간) 투표를 마감했다.

일부 GM현장 활동가들은 이번 합의안에 우려를 표하고, '부결 캠페인(Vote No)'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잠정합의안이 부결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블룸버그 통신은 현재 60여개 지부 가운데 적어도 29개 지부가 협약안을 승인했으며, 5개 지부가 거부결정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전미자동차노조와 GM의 협상결과는 미국 자동차산업 노동자뿐만 아니라, 2008년 협상을 앞두고 있는 캐나다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자동차 관련 기업들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00년대 초부터 앞 다투어 감원계획은 비롯한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해왔다.

이런 배경에서 전미자동차의 고용과 임금, 복지를 맞바꾸기 한 전략은 '타협'이 아니라 또 한 번의'패배'라는 평가들이 제기되고 있다.

샘 긴딘 캐나다 요크대학 교수는 이번 합의안에 대해 "한 쪽만의 계급 전쟁"이라는 표현으로 사측의 일방적인 공세에 대응을 조직하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고용, 유지될 수 있나?

샘 긴딘 교수는 매번 "고용 안정"이라는 단어가 협상결과 나오기는 했으나 1970년대 이후 계속 고용이 감소해 왔다는 점을 들어 사측의 약속에 신빙성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1970년대 미국 전체에서 고용된 GM 노동자 수는 약 45만 이었다. 그러나 이 수는 80년대 35만 수준으로 줄었다가, 1994년 24만 6천으로 하락했다. 현재는 전국적으로 7만 3천명이 고용되어 있다.

그러나 더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이번에 합의된 이중임금체계이다.

전미자동차 노조는 신규로 채용되는 '비 핵심'일자리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차등적인 임금시스템을 적용하는 데 대해 합의했다.

현재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의 평균임금 수준인 시급 27달러 수준이지만, 신규로 채용되는 '비 핵심' 일자리 노동자들은 절반 수준인 14달러에서 14.6달러의 임금을 적용받는다. 또, 기존 노동자들에 대해 보장되었던 의료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

이등 노동자

'비 핵심' 일자리에는 기계하위부품 조립, 기계가공, 재료취급, 시설관리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직종의 노동자들은 전미자동차노동조합의 조합원에 속해잇다. 10월 4일자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는 비 핵심 직종으로 분류되는 일자리는 현재의 1/4에서 1/3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전미자동차노동조합은 이번 합의를 통해 현재 고용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키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들어오는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크게 악화시켰다는 비난은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샘 긴딘 교수는 이번 합의로 노동조합이 더욱 약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이번 협상결과가 조립 공장 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부품산업 노동자들에게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예전에는 GM이 저임금 부품 공장을 외주화하고, 이것을 조립 노동자들에 대한 위협으로 사용했다. 이제는 더 나아가 부품 산업에서 임금을 낮추지 않는다면 외주화를 철회할 것이라고 위협할 수 있게 되었다"고 이중임금체계에 대한 합의를 비판했다.

또, 기존 정규직의 GM노동자들은 이중임금체계 하에 고용된 저임금 노동자로 급격히 대체될 것으로 보인다. GM노동자의 63.5%가 5년 안에 퇴직하기 때문이다.

의료보험, 힘들면 노조에 넘겨라?

이번 합의안에서 또 하나 주목받고 있는 것이 퇴직자의료보험펀드(VEBA)이다.

전미자동차노조와 GM은 독립적인 퇴직자의료보험펀드(VEBA)를 조성하고, 노조측에서 2010년부터 이 펀드를 운영하는 데 합의했다. 이를 위해 GM은 350억 달러의 주식 및 기타 자산을 노조가 관리하는 퇴직자의료보험펀드에 투입할 예정이다.

국가의료보험 시스템이 없는 미국에서 노동조합은 '민간 복지 시스템'을 만들어왔다. 한 때 이런 사적 복지 시스템은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에게 힘의 상징이 되기도 했지만, 이것이 위기에 처했다고 샘 긴딘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의료보험 비용의 상승이 자동차 업계의 경쟁에서 부담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GM은 현재 직원 수 8만 명의 5배가 넘는 퇴직자 가족의 의료보험을 부담하고 있으며, 이것을 해결하지 않는 한 정상화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포드도 건강보험 부담을 덜기 위해 내년 1월부터 5만 7천명에 달하는 퇴직자들에 대한 보험 혜택을 중단할 계획이며, 크라이슬러도 1만 4천명에 대한 유사한 조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퇴직자의료보험펀드를 만들어 노조가 운영하게 될 때 나올 문제점에 대해서도 제기되고 있다. 펀드가 기대수익에 미치지 못하거나, 의료비가 급격히 상승할 경우 모든 부담이 고스란히 전, 현직 노동자들에게로 전가된다는 것이다.

전미자동차 노조는 이미 엔진 제조사인 디트로이트 엔진과 중장비 업체인 카터필러 등과의 합의를 통해 퇴직자가족의료비펀드를 운영하고 있으나, 현재 자금이 고갈된 상태라고 부결 운동을 펼친 현장 노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GM의 퇴직자의료보험펀드도 이들의 전철을 따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부결운동을 펼치고 있는 GM의 현장 노동자 그렉 쇼트웰은 "위험 부담을 은퇴한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로 전가하는 것"이며 "GM은 노동자들에 대한 의료보험 책임에서 해방되었다"고 이번 합의를 비판했다.

미국 내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제공하는 기업의 비율은 2000년 69%에서 현재 60%로 하락했다. 미국의 기업들이 점점 더 노동자들에 대한 의료보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점에서 기업들은 이번 노사합의안으로 기업들의 부담으로 작용해오던 미국 건강보험 체계의 근간을 뒤흔들 일대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합의 직후 9월 29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번 합의로 대통령 선거에서도 건강보험체계 개혁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하며 합의의 의미를 주목하기도 했다.

아울러 월 스트리트 저널은 만약 포드와 크라이슬러가 유사한 합의에 도달한다면 "하나의 펀드로 운영될 경우, 미국에서 40위권의 연금펀드가 될 것"이라며 펀든 관련 업계에서 흥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퇴직자의료비펀드를 보전하기 위해 현직 노동자들은 향후 4년간 생계비조정(COLA)에 따른 임금인상분도 포기했다.

대신 이들에게는 3천 달러의 '합의 보너스'가 주어진다.

이번 GM-전미자동차노조의 협상 과정에서 GM의 노동자들은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전국규모의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이번 파업이 협상을 위한 들러리에 불과했다는 볼멘 목소리는 이번 합의가 과연 '고용'이나마 지켜낼 수 있는 방어막이 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협상에서도 자동차 산업 현장 노동자들의 불만은 조직적 대응과 반발로 이어지지 못했다. 심지어 한 노동운동가는 전미자동차노조 22지부의 한 조합원이 자신에게 이번 파업이 무엇을 위한 파업이냐고 묻기까지 했다며, 미국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의 현실을 말하기도 했다.

전미자동차노조가 주장하듯 '고용안정'이 이번 합의로 지켜질 수 있을지, 아니면 저항할 힘을 잃은 미국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이 구조조정 공세에 다시 한 번 패배한 것일 뿐인지는 앞으로 서서히 드러날 것이다.

전미자동차노조는 GM에 이어 미국 내 업계 3위인 크라이슬러와의 노사협상에서 10일(현지시각) 잠정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는 전미자동차노조가 포괄하고 있는 캐나다의 자동차 업계와의 노사협의가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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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하

    단순히 구조조정 비용을 떠맡은 것이 아니라 UAW는 GM 지분의 17%를 장악하는 GM 최대의 주주가 된다. UAW의 관료들은 억만장자가 된 것이다. 노동조합이 자본이 된 것이다. 대신 GM 노동자들은 그들을 억만장자로 만든 대가를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 GM 뿐만 아니라 크라이슬러에서도 6시간만의 파업끝에 거의 똑같은 협약을 맺었으며 포드는 자신들이 부담해야 하는 펀드의 조성기금을 낮춰달라고 할 뿐이다. 노동조합이 자본이 되는 현실, 먼나라의 얘기가 아닌 것 같다. 최근 현대자동차노조에서는 옥수수 공장을 북한에 만든다고 하는데, 아무리 배고픔에 고생하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서라지만 노동조합이 공장을 설립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지 궁금하다. 공장은 당연히 수익을 내야 유지가 될 것이고, 그렇다면 그것은 북한 노동자들을 남한의 노동조합이 착취하는 것이 아닌가? 설령 그냥 북한에 지원하고 끝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남한에 지금도 투쟁하느라 고생하는 동지들이 넘쳐나는데, 그러한 동지들의 투쟁기금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더 먼저이지 않을까? 어쨌든 노동조합이 자본의 기구가 되어버린 미국 자동차노조의 현실이 남의 나라 일만 같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