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성소수자'가 처한 현실.. '억압과 폭력'

[대선후보들, 성소수자 인권과제 좀 들어보슈](3) - 청소년 성소수자

'우리들' 열 명 가운데 일곱 명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자살을 생각해보았다. 우리들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단지 다르다는 그 이유만으로 폭력에 시달린다. 우리들은 항상 여기에 있어왔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들은 없는 존재였다. 우리는, 청소년 성소수자다.

청소년 성소수자 전체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가능한지, 가능하더라도 할 수 있을지 나는 자신이 없다. 그러나 청소년 성소수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대선 후보들이 반드시 정책공약으로 채택해야 할 두 가지를 밝히고자 한다. 다음 요구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위해 마련되어야만 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성소수자 청소년을 폭력으로부터 구제하고 지원할 장치 마련

학교 교실의 특성에서 비롯되는 학급의 폐쇄성, 의무적 출석이라는 학교의 강제성, 그리고 교사와 학생 간의 수직적인 관계로부터 학생은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상황 아래, 성소수자 학생이 또래 동료들이나 교사들에게 성적지향을 이유로 폭력을 당하면 도리어 피해 학생이 학교를 나가게 되는 불합리한 사태가 발생한다. 따라서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학교 내에는 성소수자 학생들에게 권리를 보장해줄 상설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 장치는 일차적인 폭력으로부터의 보호와 시정과 같은 소극적 역할만을 담당하지는 않아야한다. 아웃팅 (본인이 원치 않음에도 성 정체성이 다른 이들에게 노출되는 것)과 그에 따른 이차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당사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가해자들에게 인권감수성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며, 자신의 성 정체성과 관련 정보를 탐색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등의 지원과 같은 적극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대다수의 청소년이 학교 내 학생으로서 생활하지만, 탈학교 청소년 또한 분명 존재한다. 탈학교 성소수자 청소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차별로부터의 안전 보장과 자신의 긍정적 정체성 형성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이는 국가청소년위원회와 같은 국가기구나 지역사회와의 연계가 필요한 바이다.

학교 교육 과정 전반에서 성소수자 배제적인 내용 수정

비단 성교육뿐만 아니라 모든 교육 과정 내용에서 성소수자는 배제되어왔다. 성소수자 학생은 이러한 교육을 통해 스스로를 혐오하고 소외시키도록 하는 '고문'을 받고 있다. "청소년기에 겪는 다양한 고민에는 이성 교제 문제 등이 있다"거나 "결혼은 남녀 간의 결합"과 같은 문장은 사회의 이성애규범성(heteronormativity)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문구이다. 사람들을 단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에 걸 맞는 '자연스러운 성 역할'을 짊어지우며, 오직 이성애만을 '정상'으로 명명하는 이성애규범성과 이성애주의는 끊임없이 성소수자를 테두리의 바깥으로 몰아냈다. 교육은 성소수자가 아니라, 다양성을 짓밟는 이성애주의를 몰아내야한다.

흑백안경을 벗어던져라!

이 사회에서 청소년은 '미성숙하며 자신에 대한 자기결정 능력이 없는 불완전한 존재'이며 성소수자는 '비정상적이고 변태성욕적인 치료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편견의 이중주 속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자신들을 방황하는 일탈자로만 그리는 거대 매체 속에서, 자신들을 인정도 하지 않는 엄숙한 법전 앞에서, 자신들을 때리고 욕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러한 주장을 어떤 후보는 '급진적'이라며 고개를 내저을지도 모른다. '실현하기에는 힘들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위와 같은 최소한의 주장이, 셀 수 없이 반복되어 이야기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급진적이라고 불리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급진(急進)이란, '무리한 것에 대한 몽상' 따위가 아니라 '지금 당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을 향한 몸부림'이다. "이 나라에 동성애자(성소수자)는 없다"고 말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과 같은 후보가 아니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는 억압과 폭력에 눈 감을 수 있을까.
덧붙이는 말

해밀이다 님은 청소년 성소수자 커뮤니티 'Rateen'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