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노인요양시설인 ㅅ요양원에서 일하던 김 모 씨는 담당 병실을 옮긴 지 20일 만에 대상자가 앓고 있던 병에 옮았다. 처음 병실을 바꾼 날 환자는 온 몸을 긁어 상처투성이였지만 간호사는 문제될 것 없다며 잘 씻기고 연고를 발라주면 된다고만 했다. 한 달에 이틀을 빼고는 24시간 동안 대상자를 돌봤다.
한 달이 지나고 병실을 옮기게 됐지만 요양원 원장의 지시라며 “어차피 감염이 되었으니 그 방 가서 일하면서 치료하라”는 강요를 받았다. 김 모 씨가 차라리 그만두겠다고 하자 요양원 측은 “다른 요양보호사한테도 옮길 수 있으니 그만두라”고 했다.
사각지대 속 요양보호사
▲ 노인장기요양보험 홍보 포스터 |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시작되면서 도입된 요양보호사는 “노인복지법상 인력인 가정봉사원과 생활지도원보다 기능, 지식수준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자격증을 따야 할 수 있는 직업이다. ‘요양전문인력 양성’ 목표를 내세웠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은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김 모 씨의 사례처럼 각종 질병에 노출되어 있다.
정금자 전국요양보호사협회 회장은 “돌보는 대상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은 채 부적절한 업무지시 속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는 언제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장시간 저임금에 비정규직으로 산다
요양보호사의 고강도 장시간 저임금 노동의 문제는 요양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직접적인 요인이다. 전국요양보호사협회에 따르면 요양보호사는 12시간 맞교대를 하거나 24시간 내내 대상자와 함께 지내는 형태로 근무를 하고 있다. 시설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는 월 100만 원 안팎, 집으로 찾아가는 요양보호사는 월 6-70만 원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
현정희 공공노조 의료연대분과장은 “요양보호사 노동실태와 요양서비스 수준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국가 공인 파출부’, ‘현대판 고려장’이다”라고 말했다.
▲ 요양보호사 정규직 및 직접고용 비정규직 근무형태별 임금 [출처: 전국요양보호사협회] |
▲ 재가 요양기관(방문요양) 요양보호사 급여형태 [출처: 전국요양보호사협회] |
이들은 대부분 파견업체를 통한 간접고용 비정규직 형태로 일하고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시행규칙 중 장기요양기관 및 재가장기요양기관의 시설·인력기준에서는 시설의 경우 “모든 종사자는 기관의 장과 근로계약이 체결된 자여야 한다”며 직접고용을 명시하고 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참세상>의 확인 결과 서울에 위치한 시립ㅅ노인전문요양센터는 요양보호사를 직접고용하지 않고 파견 전문인 ㅇ사와 ㅁ사를 통해 고용하고 있었다.
최경숙 보건복지자원연구원 상임이사는 “요양보호사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비정규직을 대량 양산했다”며 “재가요양기관의 경우, 시급제로 8시간 노동을 하고 싶어도 시간제로 할 수밖에 없으며 그나마 극심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요양보호사 1인 당 돌봐야 하는 대상자도 2.5명에 달한다. 4조 3교대로 가정할 때 요양보호사 1명은 10명의 대상자를 돌봐야 한다. 임준 가천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는 “이런 인력 기준으로 돌봄을 수행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한 수준”이라며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었던 기관조차 장기요양보험으로 바뀌면서 배치인력수를 줄여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교육기관의 난립으로 취업도 어려운 요양보호사
악조건이지만 요양보호사들의 취직은 어렵다. 교육기관의 난립으로 수요에 비해 많은 수의 요양보호사들이 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요양보호사들이 악조건을 참고 일하는 원인의 하나가 된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장기요양기관은 올 해 3월 기준으로 1천 881개소의 시설과 1만 2천 개소의 재가시설이 있다. 요양보호사 교육기관은 1천 106개로 배출된 요양보호사만 42만 6천 495명이다. 이 중 취업한 요양보호사는 5만 여 명에 불과하다.
요양보호사 노동조건 개선=서비스질 개선
전문가들은 요양보호사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정부가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가져온 폐해를 인정하고 공공 요양기관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경숙 상임이사는 “정부가 (노인요양시설의) 민간시장화를 추진한 결과 시설과 인력수급 및 요양인력 양성 등 정책의 실패를 가져 왔다”며 “요양노동자의 안정적인 노동조건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정희 분과장은 “전체 시설의 절반 정도는 중앙 또는 지방정부가 설립한 후 지자체에서 직접 운영하도록 하면 요양서비스의 상업화와 부적절한 서비스 등이 예상되는 민간 시설에 대한 견제도 수월해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