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전기민영화’의 유혹, 그 끝은 ‘단전’

사당동 단전 사태, 9월에는 ‘가스 공급 위기’...해결책은 부재

서울시 사당동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때 아닌 ‘단전’ 불안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시범적 전기 민영화 사업의 일환으로 구역전기사업(CES)이 도입됐지만, 업체가 파산직전에 이르면서 전기 공급이 중단될 위기에 놓인 것.

전국 11개 지역에서 실시되고 있는 구역전기사업은, 한전이 아닌 사기업이 지경부의 허가를 받아 전기를 공급하는 형태로, 지난 2004년부터 실시해 왔다. 하지만 낮은 수위의 시범적 전기 민영화는 주민과 업체의 갈등, 그리고 극단적인 단전 사태를 야기하게 됐다.

민영화의 달콤한 유혹, 그 끝은 ‘단전’

25일 오전. 사당동 신동아, 극동, 우성아파트 단지에는 한전의 긴급 전기 복구 차량이 줄을 이었다. 해당 지역의 전기 공급업체인 케너텍이 한전에 전기료를 체불하면서, 한전이 ‘25일 정오까지 전력 구매비용 1억 7천만 원을 납부하지 않을 경우 전기 공급을 중단 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다행히 주민들의 반발을 염려해 한전은 ‘꼭 12시까지 단전하겠다는 방침은 아니다’라고 한 발 물러난 입장을 보였다. 구역전기사업의 주관인 지식경제부 장관의 공급 명령이 떨어지면서, 한전이 직접 주민들에게 전기 공급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해, 안정적인 전기 공급을 받아야 하는 주민들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급하게 전기가 공급되기는 했지만 업체와 지경부, 한전, 그리고 주민을 둘러싼 갈등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해당 지역 주민들은 전기료를 지불하면서도 업체의 경영난에 의해 전기공급이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케너텍에 경영난이 닥치면서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 아닌, 지난 6년간 업체와 주민들의 갈등 속에서 어느 정도 예견 된 일이었다.

2004년, 정부는 구역전기사업을 실시하면서 “그 동안 한전이 전기 공급을 독점하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민간사업자도 자기가 생산한 전기를 소비자에게 직접 공급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공공서비스재인 전기 공급을, 국가 직영의 한전이 아닌 민간업체에게 이양시킴으로 한전의 부담을 줄인다는 방침이었다. 이 사업을 실시할 당시, 정부와 업체는 ‘전기를 더욱 싸게 공급받을 수 있다’는 감언이설로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냈다. 신당동 신동아 아파트를 비롯한 4단지 주민들이 구역전기사업을 90%이상 찬성한 것 역시 이것이 배경이 됐다.

김명국 신동아4단지대표회의 회장은 “2004년 구역전기사업을 실시할 무렵, 당시 주관이었던 산업자원부는 정부 정책의 일환이라며 이런 사업을 많이 권장했다”고 밝혔다. 정부의 사업 독려와 맞물려, 싼 전기 공급에 대한 약속 역시 주민들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김 회장은 “당시 싸게 전기를 공급하겠다는 약속이 있었고, 당시 가스비가 저렴했기 때문에 업체는 가스터빈실 2개를 가동해서 자체적으로 전기를 공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체적 생산에 의한 저렴한 전기 공급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 6년간 연료비가 50%이상 증가하면서, 업체는 가스터빈실 작동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연료가 쌀 때는 발전으로 전기를 공급하면서 업체가 이익을 많이 냈는데, 연료가 올라가면서 적자 상태가 계속돼 발전기 가동을 멈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결국 업체는 한전의 전기를 구입해, 주민들에게 이를 재판매 해 왔던 것이다.

또한 사업 초기, 케너텍이 주민들을 상대로 유혹적인 계약 내용을 제시한 것 역시 구역전기사업 실시의 발판이 됐다. 김 회장은 “처음 케너텍과의 계약서에는 한 달에 14억 5천만 원의 수익 중 업체의 시설 투자금과 직원봉급, 이익 공제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의 85%를 4개 단지에 나눠주고, 15%를 자신들이 갖겠다고 제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까지 주민들은 이익 배당금을 받지 못했다. 김 회장은 “이익 배당금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면서 “그것은 지켜지지 않은 약속이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계약서의 내용은 이행되지 않은 채, 업체는 경영난을 맞게 돼 전기조차 공급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지난 9월에도 가스 중단 위기...해결책은 없어

한편 이 지역은 지난 9월에도 가스 공급 중단위기에 놓여있었다. 당시에도 케너텍은 서울도시가스에 가스비를 체납한 상태였다. 김 회장은 “지난달 회의를 통해 합의 과정을 거쳐 가스가 들어오게됐다”고 밝혔지만, 가스와 전기에 대한 불안정한 공급으로 주민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벌어지는 단전 사태에 지경부와 한전, 그리고 업체는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김 회장은 “오늘 10시에 동작구청에서 업체와 주민, 그리고 부구청장 등이 참석해 긴급회의를 했지만, 부구청장은 주민과 업체의 입장을 번갈아 들어보고는 좋게 해결 하라고 종용할 뿐, 특별한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업체 회장 역시 ‘한전에서 설마 단전 하겠나’라는 입장만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전기가 들어온다고 해도 주민들은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같다”며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구역전기사업을 주관해온 지경부 조차 뚜렷한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경부의 대책이 전무한 상황에서, 지경부의 지시를 받는 한전 역시 대책 마련에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한전은 공기업으로서의 정신을 망각하고 두달치 전기료를 못냈다며 전기를 끊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면서 “한전의 모든 경영 권한을 갖고 있는 지경부 조차 특별한 대책을 못 내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법원은 작년 8월, 케너텍에 대해 사업을 청산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사업자에 대한 허가를 쥐고 있는 지경부는 사업자 취소, 대체 사업자 선정, 한전의 직접 공급 전환 등의 대처를 하지 못했다.

때문에 3달 전, 주민들은 업체 측에 대처 방안을 내 놓기도 했다. 김 회장은 “업체 수입은 한전에 납부하는 전기료와 영업 수입으로 이뤄져 있는데 주민들이 전기료와 영업수익을 각각 한전과 업체에 직접 전달하겠다고 요구한 바 있다”면서 “하지만 업체 측에서는 그런 방식으로는 케너텍의 존립 의미가 없어진다고 거부했다”고 밝혔다.

사실 2004년 구역전기사업이 시행되면서 주민 사이에서는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다. 특히 신동아 4단지 같은 경우, 자체적으로 난방을 공급해 왔으나 케너텍이 들어오고 나서 이 시설을 철거한 경우다. 때문에 산자부의 허가를 받으면서 들어왔지만 일부 주민들은 ‘사기업에서 전기를 공급받을 수는 없다’며 이 사업의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김 회장은 “2004년 당시, 케너텍이 들어와 포크레인으로 공사를 할 때, 일부 주민이 포크레인으로 올라가 이를 막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아마 그들은 이런 사태를 예견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사업체 선정 과정에서 로비가 있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신당동 구역전기사업은 초기부터 삐걱거려왔다. 2004년 케너텍과 입주자 대표가 담합을 통해 구역전기사업의 수의계약을 맺었다는 소문이었다. 이와 맞물려 우성3단지 입주자 대표회의는 2005년 집건법에 의거해 계약 자체가 무효라며, 케너텍에 공급 중단을 요청했지만 캐너텍은 주민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업체와 주민과의 법정 공방은 2009년 8월, ‘케너텍과의 계약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로 막을 내리게 됐다.

공공서비스재인 전기를 누리기 위한 주민들의 독자적인 싸움이 이어진 지 6년. 결국 구역전기사업의 부작용은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갔다. 때문에 구역전기사업을 비롯한 전기 민영화 정책에 대한 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구역전기사업을 철회할 지는 미지수다. 이미 올해 7월 전기 판매에 경쟁체제를 도입한다는 ‘전력산업 구조 개편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수위 높은 전기 민영화 방안은 많은 반대에 부딪혀 장기 과제로 남아 있지만, 전기 공급에 대한 불안감은 구역전기사업지역 주민들 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까지도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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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전 , 전기 민영화 , 신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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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구형

    이런 거에 관심들이나 있는지 모르겠네... 나쁜 사마리아인들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한 문제는 阿q들 아닌가 싶다. 아큐들이 한 둘이 아니라서…일제와 상인지주 등 부패지주들이 깔아 놓은 멍석에 그들이 들려주는 장단에 춤추며 강자에 납작 업드리고 약자에 당당한 阿q들 부지기수인게 맘에 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