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유대주의’ 아이스크림이 알려준 본질의 맛

[INTERNATIONAL1] 벤앤제리스 캠페인에 관한 메모


지난해 가장 ‘뜨거웠던’ 아이스크림 브랜드를 꼽는다면 주저 없이 벤앤제리스(Ben&Jerry’s)다. 아이스크림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미션을 품고, 사회정의에 목소리를 내는 걸 기업의 생명으로 여기는 이들이 지난 1년간 입장이 다른 모회사와 지난한 법적 공방을 치렀다. 이스라엘이 불법 점령하고 있는 서안지구 내 정착촌에서 제품을 파느냐, 마느냐가 공방의 핵심이었다.

벤앤제리스의 모회사인 다국적 거대기업 유니레버는 벤앤제리스 독립 이사회와의 첨예한 대립각에도 불구하고, 벤앤제리스의 이스라엘 사업권을 기존 현지 라이센스 사용자에게 매각해 유통과 판매에 대한 완전한 독립성을 넘겼다. 히브리어와 아랍어로만 브랜드 로고를 사용한다는 조건에 따라 패키지만 살짝 바뀐 채, 벤앤제리스 아이스크림은 이스라엘 도시와 불법정착촌에서 여전히 판매되고 있다.

지난 36년간 벤앤제리스 이스라엘을 운영해오다 지난해 6월부터 아예 독립적 사업권을 얻은 라이센스 사업가 아비 징거Avi Zinger는 다음과 같이 소감을 전했다. “아이스크림의 상업적 판매에는 차별이 끼어 들 자리가 없습니다. 저에게는 정체성과 관계없이 모든 고객이 벤앤제리스 아이스크림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이것은 협력과 상생을 추구하는 이들의 승리이고, 차별의 처절한 패배입니다. BDS¹ 는 졌습니다.” 그가 앗아간 모든 언어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단 이 케이스는 엄밀히 말해 팔레스타인 민중이 요청한 BDS운동이 아니기도 했거니와, 맨 처음 이스라엘 점령지 내 벤앤제리스의 사업 행태에 문제를 제기한 버몬트 주의 시민단체가 지적했듯이, 법원의 결과와 관계없이, 그리고 벤앤제리스 아이스크림의 히브리어/아랍어 스핀오프 버전이 불법정착촌에서 판매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벤앤제리스가 유니레버에 프랜차이즈를 매각하도록 강요했다는 사실은 반드시 승리로 여겨져야 하기 때문이다. 잊혀서는 안 될 벤앤제리스의 승리의 순간들은 긴 호흡의 연대활동에서 복기할 필요가 있다.

버몬트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은 연대체

혹시 벤앤제리스를 모르는 이가 있다면 이들의 아이스크림보다 공식 홈페이지의 회사 성명문 코너를 먼저 맛보라 하고 싶다. 기후정의, 흑인인권, 난민수용, 트랜스젠더 인권, 백인우월주의 타파에 대해 입장과 추가 설명을 해둔 포스팅이 빼곡하다. 오늘 공식 트위터에 올라온 글은 1월 16일 마틴 루터 킹 데이를 기념해 조 바이든에게 전하는 탄원서인데, “400년의 인종 차별로 영향을 받는 유색인종을 위해 연방 배상 위원회를 설립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가치 기반 비즈니스를 표방하는 이들에게 사회 정의는 곧 이들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다.

  벤엔제리스는 진보적 사회운동과 단체를 지원하기 위한 재단을 만들었다. 흑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 문제를 제기하고, 모든 정체성의 노동자와 단결과 연대를 꾀하는 ‘블랙 워커 매터(Black Workers Matter)’ 역시 재단의 지원을 받는 조직 중 하나다.

1978년 창립 이래 개인과 지역의 연결과 연대를 강조해온 이들은 사업의 방식도 남다르다. 이를 테면 반드시 지역 우유 공급 업체에 주재료를 의존하고, 상품 패키지 디자인 하나도 지역의 예술가를 고용하며, 경영 자본이 필요할 때도 회사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해야 하는 벤처 자금 조달 대신 버몬트 주민들에게 주식을 팔아 지역 내 뿌리를 강화하는 식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러다 2000년 글로벌 다국적기업 유니레버에 인수돼 자회사가 됐으나 합병 당시 독립적인 이사회 구성을 계약 조건으로 내걸어 독특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모기업은 재무 및 운영 측면까지만 통제하고, 자회사인 벤앤제리스는 창립 초기부터 이어온 사회적 미션을 독립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특별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지역사회에 강한 존재감을 갖고 있는 기업인만큼, 이스라엘 점령지 내 벤앤제리스의 사업에 문제를 처음 제기한 곳도 결국 회사 본사가 있는 버몬트의 주민 연대체였다. VTJP (Vermonters for Justice in Palestine, 팔레스타인 정의를 위한 버몬트 주민들)² 는 2010년, 자기 고장의 대표적 사회적 기업 벤앤제리스가 한 이스라엘 남부 도시에 새로운 공장을 짓고 16개 매장 문을 연다는 보도를 보고 문제 의식을 갖게 됐다. 이를 계기로 이듬해 서안지구 내 유대계 활동가와 연계해 정착촌에 대한 면밀한 조사활동을 펼친 결과, 이들은 벤앤제리스 아이스크림이 팔레스타인 점령 지역 내 불법 유대정착촌 마트 냉동고를 가득 채우고 있으며 공장은 팔레스타인인들은 접근권이 제한된 물 자원을 끌어다 가동하고 있는 정황을 확인했다.

군사점령지에 자국민을 이주시키는 것은 제4차 제네바협약에 위배되는 전쟁범죄다. 유대정착민의 점령지로의 이주 역시 1998년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 규정이 규정하는 전쟁 범죄다. UN의 <다국적 기업 및 기타 기업의 책임에 관한 규범>도 기업은 전쟁범죄 또는 인도에 반하는 범죄에 가담하거나 그로부터 이익을 얻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다. VTJP는 2012년 4월, 이러한 내용과 요구사항을 담은 보고서³ 를 들고 벤앤제리스 경영진과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대면 미팅을 하게 된다. 미팅엔 벤앤제리스의 CEO, 글로벌 소셜&미션 디렉터, 이사회 의장이 참석했다. 당시 VTJP의 요구는 간단했다. ‘경영진이 사절단을 꾸려 부디 현지 방문을 해보시라.’

현지 활동에 초대된 결정권자

대화가 정체된 시기, 경영진 중 한 명인 벤앤제리스의 이사회 의장 제프 퍼먼Jeff Furman의 행보를 주목할 만하다. 회사의 초기 사업 계획 초안을 작성했던 그는 이스라엘 사업 확장을 맡아 이스라엘 라이센스 사업가 아비 징거를 연계한 이었다. 다른 경영진이 현지 방문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유니레버 측 경영진은 장갑차를 마련해주지 않으면 치안상의 문제로 서안지구에 갈 수 없다고 했다- 추가 미팅에도 소극적이자, 제프 퍼먼은 2012년 10월, 개인자격으로 점령지 팔레스타인을 처음 방문했다. 마틴 루터 킹 박사와 직접 일했던 다른 시민권 운동 단체 활동가들과 함께였다. 그는 후에, 자신은 그동안 ‘그린라인’이 뭔지, 이스라엘이 서안지구에서 확장하고 있다는 개념이 아예 없었다고 고백했고, 그 곳에서 본 인권 유린을 ‘아파르트헤이트’라 규정했다. 이후 몇 년 동안 퍼먼은 벤앤제리스의 직원과 이사들을 이 지역으로 데려와 인권 상황을 교육하는 일을 자처했다. 이후 또 다른 이사 아누라드하 미탈Anuradha Mittal과의 여행에서 헤브론과 제닌을 방문해 현지 농민 비영리 단체를 지원했다. 물론 팔레스타인 농민들을 지원하는 것은 캠페인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으나, 지난 2021년 7월 ‘문제의’ 정착촌 사업 철수 성명서⁴ 를 실제로 이끈 멤버로 알려진 미탈의 현지 방문을 부추긴 것도 그였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기업 책임이 강화되는 국제인권 모멘텀

모기업 유니레버의 경우, 이스라엘 정착촌 내 영업 중이던 또 다른 베이글 공장을 정착촌에서 이스라엘 내 도시로 옮긴 전력이 있었다. 사실 VTJP는 2006년부터 유니레버에 공장 철수를 압박해오다 결국 2011년 이전 발표를 받아낸 네덜란드 기반의 캠페인 단체의 행보에 영감5 을 받은 차였다. 마침 2011년 유엔 인권이사회는 기업과 인권에 관한 유엔 이행 원칙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모든 기업은 그들의 운영과 공급망 전체를 포함해 그들이 운영하는 모든 곳에서 모든 인권을 존중할 책임이 있다. 또한 기업이 직접 영향을 끼치지 않더라도, 기업의 영업 활동이나 제품 혹은 서비스 등과 연결된 관계에서 인권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 이를 방지하고 완화해야 할 책임이 있다. 또한 2013년 팔레스타인에 파견된 유엔 진상조사단의 보고서를 통해, 한 번 더 이스라엘 정착촌은 국제법 위반이며 이스라엘의 정부와 기업은 정착지에 대한 비즈니스 이익 활동을 즉각 철수해야 한다는 점이 다시 한 번 확인되기도 했다. (물론 기업들은 언제나 영업적 이익을 따져서 이전했다고 공표하지만 말이다.)

익숙한 파워 불균형과 ‘반유대주의’ 백래시

[출처: 벤앤제리스의 정착촌 사업 철수 성명서]

2021년 7월 19일, 미국의 아이스크림 제조업체 벤앤제리스는 이스라엘이 불법 점령하고 있는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 등지에서 자사 아이스크림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성명으로 벤앤제리스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단숨에 정의 구현의 아이콘이 된 동시에 시오니스트들에게는 ‘반유대주의’ 아이스크림으로 찍히며 숱한 백래시를 받았다. 당장 모회사 유니레버는 벤앤제리스 이사회의 독단적인 발표에 항의하며 독립 이사들의 급여 지급을 중단했고, 미국 12개 주의 법무장관은 유니레버에 보이콧 철회를 촉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또한 미국 35개 주에는 이른바 ‘반BDS법’이라고 불리는, 이스라엘 또는 이스라엘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영토에 대해 보이콧하는 회사를 처벌하는 법률 또는 행정 명령이 있는데, 성명 발표 직후 길라드 에르단 주미 이스라엘 대사는 35개 주지사들에게 이 법안 시행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뉴욕, 뉴저지, 일리노이, 애리조나, 텍사스 및 플로리다는 유니레버 연기금에서 주정부 투자를 철회했다.

이스라엘 대통령 아이작 헤르조그는 아이스크림 기업의 철수를 두고 ‘새로운 형태의 테러리즘’이라고 불렀다. 나프탈리 베넷 당시 이스라엘 총리는 유니레버 CEO인 앨런 조프에게 이번 조치를 “노골적인 반이스라엘 조치”로 간주할 것이며 정부가 “어떤 조치에도 공격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직접적인 경고를 날렸다.

2021년 12월 기준 유니레버는 아이스크림 판매 중지를 선언한 지 채 네 달도 안 돼 300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 이렇게 마구 짓밟아진 형국에 지난해 봄부터는 복잡한 법적 소송도 시작됐다. 이스라엘 라이센스 사업가 아비 징거가 라이센스 계약 위반을 문제 삼아 벤앤제리스의 모회사 유니레버를 상대로 소송에 나선 것이다. 유니레버는 결국 소송 종료 합의의 일환으로 벤앤제리스 이스라엘 사업부의 지분을 징거에게 미공개 금액에 매각했다. 이 계약에 따라 벤앤제리스는 이스라엘 프랜차이즈에 대한 아무런 권한이 없어졌다.

유니레버 CEO 알렌 조프는 6월에 위 계약을 성사시키자마자 미국 내 51개 유대인 조직 연합 회의(Conference of Presidents of Major American Jewish Organizations)에 반성문에 가까운 조정 상황 공유 편지를 보냈다. 그는 “우리는 이스라엘 정부와의 면밀한 상담을 거쳤고 이제 이스라엘 전역에서 아이스크림을 만나볼 수 있으며, 우리는 이스라엘에서의 비즈니스가 자랑스럽다고”라고 적었다. 유니레버는 BDS를 지지한 적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충성 서약도 빼놓지 않았다.

다시,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은 국제법 위반”

벤앤제리스는 공식 트위터로 유니레버의 결정에 반대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달, 이스라엘 라이센스를 분사하기로 한 결정은 유니레버 측의 계약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유니레버가 벤앤제리스를 인수할 당시 브랜드의 사명과 직결된 부분은 독립 이사회의 소관으로 남겨두겠다는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벤앤제리스는 모회사 유니레버의 이스라엘 사업권 매각을 막아달라고 법원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최종 기각된 상태다. 지난 12월 유니레버는 사업 매각에 대한 벤앤제리스의 독립 이사회와의 소송이 어떻게 해결됐는지에 대한 세부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채 그저 “조정”됐다고 전했고, 징거의 이스라엘 사업권은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벤앤제리스 이사회는 이스라엘 내 유통되고 있는 제품은 진정한 벤앤제리스가 아니라고 밝혔으며,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사업을 운영하는 국가 목록에서 이스라엘을 삭제했다.

한바탕 법적 소송과 백래시 소동이 지나간 자리,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일단락된 걸까. 벤앤제리스가 2021년 사업 철수 성명을 낸 지 몇 달 후, 창업자가 출연한 한 언론 인터뷰에서 새삼 힌트를 얻어 본다. 기자가 묻는다. “벤앤제리스는 투표권 운동에도 열심인데 그럼, (최근 까다로운 절차의 투표권 제한법을 입법해 논란인) 조지아에서도 아이스크림을 팔지 않을 건가요? 임신중지권을 제한한 텍사스에서는요?”

벤이 여유있게 웃으며 답한다. “그런 식으로라면 전세계 어디에서도 아이스크림은 팔지 못할 겁니다. 저는 거의 모든 주(state)와 국가에 대해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거든요. 이스라엘이 다른 지점이 있다면, 그들은 국제법상 불법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는 것, 그걸 고려해야겠지요.” 이스라엘 국가를 ‘정상화’하고 다른 인권침해국들을 지적하며 ‘왜 이스라엘만?’을 묻는 레토릭은 새해에도 이어질 테다. 그럴수록 우리는 계속해서 그저 본질의 맛으로 쭉 가야할 것이다.

<각주>
(1) BDS는 ‘보이콧(boycott)’,‘투자철회(divestment)’, ‘제재(sanctions)’의 약자로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 및 인종차별을 끝내기 위해 팔레스타인 시민사회에서 2005년부터 이어 온 비폭력 저항 운동이다.
(2) https://icecream.vtjp.org/
(3) https://vtjp.org/icecream/VTJP_Report_Peace_Love_and_Occupation.pdf
(4) https://www.benjerry.com/about-us/media-center/opt-statement
(5) https://mondoweiss.net/2013/02/unilever-settlement-p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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