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햇빛, 산과 바다, 들과 물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기획연재] 당사자의 목소리, 나는 4월 14일 세종으로 간다

[편집자 주] 기후위기 최전선에 있는 당사자들이 일상을 멈추고 오는 4월 14일 세종정부청사로 모입니다. 414기후정의파업조직위원회는 기획연재로 기후위기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이들의 414기후정의파업 참여 이유를 생생한 삶의 이야기로 전합니다. 이들이 외치는 ‘함께 살기 위해 멈춰’에 공감한다면 414기후정의파업, 세종정부청사 앞으로 달려와 주십시오. 414기후정의파업 조직위원회 https://april4climate.tistory.com/


황금 들판 뒤덮은 태양광

화력 발전소를 폐쇄하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자는 건 좋은 얘기다. 그러나 그 재생에너지가 어떻게 결정되고, 추진되고 있는지 안다면 무조건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15년 전에 사망한 사람이 부활해 태양광발전 사업에 찬성하는 서명을 하고, 집에서 300m도 떨어지지 않는 곳에 풍력발전 시설 공사가 벌어진다.

농어촌에 들어서는 풍력, 태양광 발전시설은 기업의 탐욕만 채우면서 주민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개발이라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지만 자본과 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 변질되어 있는 것이다.

간척지의 경우 태양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식량안보를 이유로 자연의 보고인 갯벌을 개간하여 간척지를 만들었다. 갯벌은 생태계를 보전하고 자연의 콩팥이라고 불릴 정도의 정화기능을 하는 등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를 가지고 있었고, 어민들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수십 년 동안 아무 문제 없이 벼농사를 잘 지어온 간척지가 염해농지가 되어 태양광이 설치되고 있는 것이다. 태양광이 설치된 간척지를 20년 후에 논으로 되돌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농어민의 삶이 파괴되고 있는데 정부와 개발업자들은 주민들과 협의도 없이 재생에너지 개발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발전 시설 건설을 일방 추진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도 모르는 사이에 공사를 진행하게 하고, 이에 지역 주민들은 고향을 지키고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의지도 없고, 방안도 없다 보니, 업자의 횡포(매수, 회유, 협박, 소송 등)는 심각해지고, 법과 제도는 주민의 권리를 무시하고, 분쟁지역 피해 주민들은 정부의 정책을 불신하게 됐다. 갈등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만이 커지다 보니 주민들에게는 풍력과 태양광은 무조건 반대한다는 인식이 확대되며, 풍력과 태양광은 꼴도 보기 싫은 혐오물이 되어가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곧 식량위기

2020년, 54일간 장마와 폭우가 지속됐다. 구례를 비롯한 많은 지역을 수마가 할퀴고 지나갔고, 쌀 생산량은 5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매년 반복되는 농작물에 대한 자연재해는 농민들을 시름에 잠기게 하고, 소비자들은 가벼워진 주머니에 한숨을 쉴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는 곧 식량위기이다.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해 식량자급률이 21%(2019년 기준)인 나라에서 농민들의 삶터인 농지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까? 간척지에 농사를 짓던 농민들의 60% 이상이 임차농이다. 간척지 태양광으로 인해 농민들은 생존권을 위협받고 삶터에서 쫓겨나는 것이고, 국민들은 식량안보를 위협받는 것이다.

  신재생에너지법이 농어촌 공동체를 파괴한다며 주민들을 중심으로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생태계와 마을공동체를 파괴하고 식량 안보를 위협하는 신재생에너지가 과연 정의롭고 지속가능 할 수 있을까? 바다에서 산 정상까지, 뒷동산에서 절대농지까지, 지금 풍력과 태양광으로 농어촌의 생태계와 아름다운 풍경은 갈기갈기 찢기고 있다. 바람과 햇빛, 산과 바다, 들과 물 등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더구나 기업들의 돈벌이 수단은 절대 아니다. 자본가 몇 사람이 자신의 돈벌이를 위해 자연을 독점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은 자연 이치를 배반하는 것이다.

전국의 고운 살결이 찢기고 벗겨지고 있는 상황인데,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속가능하고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그거 하자!

현대제철은 전기를 이용해 용광로에서 철을 녹여 제품을 생산한다. 그런데 지붕 위에 태양광 패널이 한 장도 보이지 않는다. 왜? 산업용 전기요금이 너무 싸기 때문에 굳이 재생에너지 생산에 투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바꿔보자. 전체 전력소비량의 87%를 차지하는 기업들에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의무화하고, 재생에너지 자립률에 따라 전기요금 단가를 차등 적용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전국의 공장과 건물 위에 태양광 패널이 세워질 것이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전기는 일하고 생활하는 장소에서 사용한다. 에너지는 이동거리가 짧을수록 환경파괴와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가 근접해야 효율성이 좋고, 전환 과정을 축소할 수 있으며 유휴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방식인 대형 발전소에서 생산해 지역으로 분배하는 정책을 바꿔야 한다. 에너지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과정에서 원료 수입, 환경오염, 환경파괴 등이 발생하는 중앙집중식 에너지 생산 체계에서 분산 에너지 생산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마을, 우리 아파트부터 에너지 자립을 실현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자. 그리고 시·군·구와 광역시·도별 에너지 자립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논의기구를 만들자. 지역사회에서 에너지 자립을 실현하는 비율에 따라 정부에서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적극 독려하자.

기업과 수도권이 무조건 에너지를 자립하라는 것이 아니다. 기업과 수도권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농어촌지역을 파괴하는 방식과 돈벌이 수단이 된 에너지 정책을 바꾸자는 것이다. 기업과 수도권에서도 에너지 자립을 위해 노력하고, 부족한 전기는 어떻게 할 것인지 국가 차원에서 논의하자는 것이다.

에너지는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국민생활의 필수요소이므로 에너지 정책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지역사회와 정부 차원의 에너지 발전 종합계획을 수립하여, 난개발과 환경파괴가 아니라, 생태 보전형, 경관 보전형,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이 에너지 주권을 확립하는 것이다. 에너지를 개발하고 운영, 분배하는 전 과정은 정부와 국민에 의해 통제되는 에너지 주권을 실현해야 한다. 전국의 고속도로를 비롯한 도로 방음벽, 지붕에 철로 방음벽과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주변 주민들은 소음으로부터 해방되고, 추가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도 없고, 토지를 매입하기 위한 비용도 발생하지 않는다.

  농어촌파괴형 풍력·태양광반대 전남연대회의가 신재생에너지 관련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신영대 민주당 의원을 상대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에너지 전환까지 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 순 없다

지난 250여 년 동안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63%가 90개의 ‘탄소메이저’로부터 나왔다. 더군다나 1988년부터 201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의 71%를 25개 공공 및 민간 기업, 그리고 이들의 자회사가 차지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기후위기를 심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에 대응할 기회를 잃게끔 했다. 그런데 에너지 전환까지도 기업의 돈벌이로 넘겨줘야 하는가!

미래 에너지인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발전권을 대기업 등 자본이 독점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사업 초기부터 공영화의 길로 가면서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동시에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일차적 향유권은 국민에게 있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가 자연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마을공동체를 파괴하지 않는 정의로운 에너지가 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방향이 중요하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한 이유다. 방향을 제대로 잡는다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에너지 전환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얘기를 하러 4월 14일 세종으로 간다. 생태계와 주민의 삶을 파괴하지 않는 공공주도의 재생에너지 전환! 함께 외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