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한국경제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는 이윤에 눈먼 자본운동의 귀결인 불황, 그것의 고통을 왜 노동자들만 감당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수영(노동자의 힘 경제분석팀)

올해 초반부터 상승한 주식시장은 호황을 예고하는 듯하였고, 뒤이어 경기상승을 암시하는 갖가지 통계자료들이 신문지상을 수놓았다. 그러나 4월을 정점으로 한 주식시장 붐은 두 달이 지난 현재 다시 하락국면으로 치닫고 있으며, 6월5일 한국은행 총재의 올해 성장예상치 상향조정 발표도 뒤이어 나온 불안요소에 의해서 빛이 바래고 있다. 이렇듯 신문에는 낙관과 비관이 교차하고 있다. 현란한 수식과 어려운 모델로 경제상황을 진단하는 경제학자들의 예언은 원숭이들의 '무작위 찍기'와 다름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이제 우리 나름대로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한국경제는 어디까지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최근 경기상승의 원인

자본이 존재하고 운동하는 이유는 이윤추구이다. 따라서 이윤율이 올라가는 상황에서는 더 많은 자본을 투하하여 생산규모와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것이 자본의 본성인 것이다. 경기상승국면에 도달하게 되면 자본은 내부자금을 초과하는 투자가 가능한데, 그 원천은 금융시장을 통해 빌려오는 타인자본이다. 금융제도 그 자체는 자본가에게 구매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경제전반에 걸쳐 수요(구매력)를 팽창시킬 수 있으며 이를 신호로 하여 다시 경기상승국면은 강화되게 된다. 다시 말해 경기가 과도하게 팽창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에서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한 것은 93년부터 외환위기 직전까지였다. 93년 -0.1%, 94년 23.6%, 95년 15.8%, 96년 8.3%로 증가한 설비투자의 증가율에서 '투자 붐'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이 당시의 설비투자는 대부분 외국의 단기차입금으로 채워졌기 때문에 자본의 과잉팽창으로 인한 이윤율하락은 외환위기로 연결되게 된다.

공황이 발생할 경우, 자본은 그 수익성이 떨어지는 자본을 잘라내기 시작하며, 그나마 생존 가능한 기업조차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을 해고하기에 이른다. 또한 경기 호황기에 자본 팽창의 물질적 근거가 된 채무관계를 국민에게 전가시키기도 한다. 이른바 공적자금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자본가의 잘못된 경영의 결과가 만들어 낸 부채를 정부가 갚아주겠다는 것인데, 이것의 대부분은 장래에 노동자들이 세금으로 갚아야 할 돈(주1)이다. 요약하면, 채무의 변제와 한계기업의 도산으로 인한 공급량조정과 가격회복, 그리고 노동강도의 강화와 해고를 통한 비용의 절감으로 자본은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경기회복으로의 재진입은 바로 얼마 전, 심지어는 현재까지도 진행되는 자본의 구조조정 과정이 얼마나 혹독하게 이루어졌는가 그리고 그 결과 자본의 이윤율이 얼마나 회복되었는가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경제는 어디까지 왔으며,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구조조정의 이름으로 노동자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였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귀결된다.
이제 한국경제를 제조업 상황을 보면서 살펴보자.

주요 제조업 현황 분석

철강, 석유화확,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 이른바 주요 5대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45%에 이르고, 이들 중 약 35%가 수출된다. 따라서 이들 5대 제조업에서의 성공과 실패가 곧 한국경제의 성공과 실패를 규정하게 된다. 세계경제상황은 이러한 산업의 성공여부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요소이다. 여기서는 철강, 반도체, 조선업종을 중심으로 보고자 한다.

[철강업]
먼저 철강업종의 현황을 보자. 철강은 석유화학과 함께 타 산업을 위한 원자재를 생산하는 분야이다. 때문에 철강업에서 과잉여부는 향후 경제전체의 흐름이 어떻게 될 지를 예측하게 해준다. 철강의 경우 세계적으로 생산능력은 84600만 톤인데 수요는 73800만 톤으로 추정(2000년 기준. 삼성경제연구소. 2002. 2.)되어 생산능력이 과잉상태이다. 한국철강협회 자료에 따르면 1999년에는 71380만 톤의 수요에 비해서 조강능력이 750만 톤 초과되었고, 2000년에도 비슷한 추세로 초과되었으며, 2001년에는 과잉공급을 해소하기 위해서 생산량을 줄이는 조치를 취했다. 이러한 과잉생산은 국가별 경쟁과 무역전쟁을 야기시켰는데, 중국과 미국에서 세이프가드조치들을 취하는 등 철강분쟁이 그 예이다. OECD에서는 지속된 과잉설비와 과잉생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2010년까지 1300만톤 생산량의 감량을 목표로 정했다. 이러한 감량은 몇 개의 대규모철강기업으로 산업을 재편하고 일부 자본을 청산하는 한편, 대규모 정리해고를 수반하면서 진행되고 있다.(주2) 철강업계의 이윤율을 간접적으로나마 짐작케 해주는 수익률을 보더라도, 냉연도금, 합금 철, 선재가공업종이 겨우 금융비용을 감당할 정도이고, 전기로 제강, 특수강, 강관 업종에서는 금융비용도 갚지 못할 정도의 수익률을 보였다(2000년 기준. 2001년 사정은 더 좋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판단해보면, 전 세계적인 철강생산은 여전히 과잉생산상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된다. 최근의 상승세를 보이는 철강 경기는 전체적인 추세에서는 오히려 예외적인 상황으로 간주될 수 있는다. 그 이유는 국내 건축경기와 동남아, 중국에서의 철강수요 증가가 철강경기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설비투자가 증가되고 미국의 경기가 강하게 상승하는 상황이 동반되지 않는 현재의 상황은 단기적인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

[반도체업]
반도체업계는 90년대의 경우 한국 미국 일본 독일 등 4개국의 6개 업체가 세계시장의 80%를 차지하는 시장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업체의 급속한 사업축소 등으로 2000년대에는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한국의 타 산업에 대한 기여도를 평가한 자료를 보면, 반도체산업은 90년 0.2%에서 2000년에는 8.2%로 상승했다. 또한 수출비중도 컴퓨터산업과 합쳐 약 25%를 차지하여 반도체와 한국경제의 경기순환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99~2000년까지 반도체 경기는 상승세였다. 이 때 반도체산업은 미국의 IT(정보통신)산업과 한국의 벤처붐을 타고 급속하게 생산규모를 증가시키게 된다. 특히 2000년에는 전년대비 86% 증가된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하였다. 그 결과 2001년에는 전 세계의 수요를 6% 초과하는 과잉공급상태에 빠졌고, 그 이전의 1/10가격에 D램이 판매되었으며, 2001년에는 주요반도체업체들이 예외없이 적자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침체는 이전시기의 과도한 팽창의 결과인 동시에, 미국의 IT산업 중심의 신경제가 그 한계를 드러내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최근 다시 반도체 가격이 상승하면서 반도체 경기가 좋아지고 있는데, 미국의 경기침체 하에서는 98~2000년과 같은 고성장은 힘들 것으로 판단되며, 궁극적으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IT산업의 경기에 전망이 달려있다고 생각된다. 한국경제 순환과 관계가 깊은 반도체업이 미국의 경기순환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조선업종]
조선업종의 경우는 2000년 기준으로 볼 때, 2200만 톤의 생산능력보다 적은 2004만 톤의 수요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2001년에는 다시 경기하강추세가 시작되면서 그 전해보다 수주실적이 38.4% 감소하였고, 조선가격이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올해 초까지 이런 추세는 지속되었는데, 경제학자들은 2002하반기부터는 다시 수요가 반등하면서 경기상승추세가 올 것이기 때문에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과잉공급이 청산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중요한 지표인 조선가격의 추세를 장기적으로 보면, 세계경제의 침체 상황은 아직 지속되는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상황이 침체 속의 일시적 상승이라고 보는 근거는, 90년대 초반부터 99년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선박에서 가격하락을 경험하게 되고, 경제학자들이 경기상승기조라고 말했던 2000년에조차도 90년대 초반수준에는 크게 부족하다는 사실로부터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주3) 그리고 2002년 들어 수주가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10년 정도의 주기로 찾아오는 선박교체시기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며, 운송장비가 아닌 해양플랜트의 확장과 새로운 모델의 LNG선으로의 교체 등으로 인한 것이다.

한국경제 현실, 그리고 우리가 물어봐야 할 것

주력업종이 대부분 수출중심으로 재편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경제의 전망은 세계경제상황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70년대 이후 세계는 장기불황의 상황이다. 80년대에는 일본의 팽창이 세계경제를 근근히 이끌어 갔다면, 90년대에는 미국경제가 세계경제를 지탱시켜 주었다. 그러나 2000대 들어서 미국의 IT산업 상승세가 주춤하게 되었고, 신경제라고 환호하던 미국의 경제학자들 사이에도 공황의 위험이 도사린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미국의 경제호황은 90년대 초반 GDP의 9%에 달하던 투자가 계속 상승세를 지속시켜 2000년대에는 15%에 도달한 투자붐을 중심으로 발생하였다. 이러한 투자는 이른바 IT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투자에 필요한 자금은 미국의 주식시장으로 몰려들어온 외국인자본에 의해서 가능했다. 이에 미국은 주식시장의 강세를 배경으로 다시 투자와 소비가 활력을 받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외국에서 유입되는 자본으로 한바탕 흥청 기분을 낸 것과 같다.
그러나 2000년 4/4분기부터 미국의 거시경제지표는 악화되기 시작했다. 기업의 부도율이 증가한 것도 이때부터였고, 올 3월에는 5만3000개, 그리고 4월에는 22만3000개의 일자리가 날아갔다. 이러한 갑작스런 불황으로의 진입은 IT산업에 대한 투자가 적당한 이윤율을 얻지 못하면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로 미래에 실현될 것이라고 믿었던 IT산업에서의 이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무리하게 팽창하던 IT산업과 이를 뒷받침해주던 주식시장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불과 얼마 전에는 조금씩 좋아진다는 통계지수들이 다시 악화되면서 2차 침체(더블딮) 우려가 제기되는 실정이다.
따라서 현재 한국 제조업의 약진은 일시적인 것이라고 판단된다. 말하자면, 장기불황의 국면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작은 경기상승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근거를 미국 중심의 세계적인 과잉공급상황과 경기침체에서 찾을 수 있다. 과잉생산은 상품가치의 실현을 방해하므로, 적정수준의 이윤이 보장되지 않는 자본의 과잉축적와 연결된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필요하나 이윤율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생산이 정체되는 자본의 특성에서 나오는 현상이다.
불황에 대한 자본주의적 해법은, 끊임없는 구조조정과 경쟁력주의였다. 생산량은 줄지 않음에도 노동자가 줄어들어 노동자 1인이 감당해야 하는 노동의 강도가 강화되는 현상이 전 산업에 걸쳐서 나타나고, 노동자들의 과중한 업무는 과로사로 귀결되고 있다. 실업자가 준다고 말하지만, 그 통계의 이면에는 취업을 포기한 노숙자가 있으며 그나마 취업을 해도 일용직이라는 불안정한 취업상태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윤에 눈 먼 자본운동의 귀결인 불황, 그것의 고통을 왜 노동자들만 감당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제분석팀

(주1) 공적자금은 약 150조원이 투입되었는데, 이 중 67조원은 회수불가능이고 이를 국민들로 나누어 보면, 약 150만원 정도를 갚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곧 자본가의 부채를 노동자들이 갚아야 하는 꼴이다.
(주2) 물론 미국의 '신경제' 현상은 일시적인 미국내의 경기상승을 가져오면서 외환위기 직후 한국의 철강수출전망을 밝게 만들었고, 신흥공업국인 중국의 대규모 성장과 2002년 상반기의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의 건설경기 호조가 하락하던 철강가격을 다시 상승시켰지만, 이것은 명백히 단기적인 요인으로 판단된다. 한국의 철강업종 생산량 그 자체를 놓고 보더라도 1999년 상승, 2000년 미미한 정도의 상승, 2001년 하락세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나마 건설과 자동차를 중심으로 내수시장은 활력을 받고 있으나, 정작 중요한 설비재인 일반기계에서는 수요가 거의 형성되지 않고 있는 추세이다.
(주3) world shipyard monitor를 조선공업협회에서 인용한 것을 재인용. 단 여기에는 기술적 요인으로 선박의 생산단가가 하락한 경우도 있을 것이며, 반대로 선박의 장비 고급화로 인한 가격상승 요인이 또한 작용한 것으로 보여서 단순비교는 경계해야 할 것임. 그럼에도 TC의 VLCC종의 가격을 흐름을 93년에서 2001년까지 나열해보면, 95, 82, 85, 82, 83, 72, 69, 76, 77로 낮아졌다가 2000년부터 다시 상승하므로, 경기순환적 요소가 들어가 있다고 판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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