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경제, 큰 문제라지요?

크게 아가리 벌린 불황, 탈출구 없다

강성윤(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연구원)

반짝 회복의 실상을 들여다보니…

미국경제의 침체가 본격화되고 있다. 1990년대 내내 '신경제'라는 이름의 호황을 지속해오던 미국경제는 2000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성장둔화에 이어 지난해에는 일시적으로 마이너스 성장까지 기록하면서 침체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올해 1/4분기 GDP 성장률이 예상을 뛰어넘는 5.8%에 이르고, 노동생산성도 8.6%나 향상된 것으로 나타나자, IMF를 비롯한 몇몇 기관들이 2002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예상보다 높여 제시하는 등 한때 미국경제의 조기회복과 이에 따른 세계경제 전반에 대한 낙관론이 우세하기도 했다.
그러나 1/4분기의 경기회복은 주로 부동산가격과 주가상승에 따른 소비지출의 지속과 재고조정에 기인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즉 GDP 성장률 중 3.1%가 재고조정에 따른 '성장 아닌 성장'이며, 아프간 전쟁으로 인한 국방비 지출과 계절적 요인 등을 고려하면 실제 성장률은 1.5% 수준에 불과하다. 본격적인 경기회복에 필수적인 투자는 오히려 계속 감소하고 있으며, 19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노동생산성 향상 또한 향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기업들이 신규고용 없이 생산만을 늘렸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6% 수준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실업률과 5월 둘째주 실업수당 수혜자수가 역시 19년만에 최고치인 389만명에 달했다는 사실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높은 생산성 향상은 결국 미국 노동자들의 노동강도 강화를 통해 달성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갈수록 증대되고 있는 경상수지 적자가 올해에는 통화가치의 급락이 불가피할 정도인 GDP의 5% 수준(5천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한편, 누적 국가채무가 이미 GDP의 절반 수준인 5조달러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부채한도액을 늘리지 않으면 '국가파산' 사태까지 염려할 정도로 연방정부의 재정상황이 악화된 상태이다. 그리고 최근 연이어 불거진 거대한 규모의 회계부정사태로 인해 주식가격이 폭락하고 미국경제의 생존에 필수적인 해외자본 유입이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달러화도 연일 급락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경기침체가 이른바 더블 딥(Double Deep), 즉 일시적인 반짝 회복 이후 다시 침체에 빠지는 W자형 경기순환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더욱이 미 증시의 주가하락으로 수익률이 떨어진 글로벌펀드들이 총투자비용을 줄이고 신흥시장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하면서 세계증시가 동반추락하고 있다. 또한 GDP의 2/3를 차지하면서 미국경제를 지탱해 온 민간소비조차 균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미 가처분소득의 14%를 가계부채의 이자와 원금을 상환하는 데 지출해야 할 정도로 가계의 금융비용부담이 큰 상황에서 주가하락은 소비심리의 위축을 부채질할 것이며, 이에 따라 경기침체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더욱이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시장인 미국의 침체에 따라 미국발 세계동시불황에 대한 위기감이 급속히 확산되는 한편, 제2차 세계공황의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미국 자본측의 발버둥,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했다

이상과 같은 미국경제의 침체는 사실상 수년 전부터 예견되어 온 것이며, 다만 그 발발 시기가 문제였을 뿐이다. 미국정부와 자본가들 또한 이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었으며, 조금만 시야를 확장해 보면 이들이 당면한 위기를 회피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는가를 알 수 있다. 미국의 FRB(연방준비위원회)는 경기둔화가 시작된 이래 무려 11번에 걸쳐 6.5%였던 미 연방기금 금리를 40년만에 최저치라는 1.75%까지 그야말로 미친 듯이 인하해 왔다. 즉 본격적인 경기침체에 돌입하기 이전부터 미리 금리를 인하해 이른바 경제의 '연착륙'을 시도한 것이며, 이것은 최소한 주식시장의 파멸적 폭락을 일시적으로 막는 데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연방정부도 재정수지가 작년의 1,270억 달러 흑자에서 올해에는 1,500억달러의 적자로 전환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380억달러를 감세하고 9.11 대미 공격 직후 550억 달러 규모의 추경 예산을 편성하는 등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을 시도하였다. 게다가 최근에는 무역분쟁을 촉발시킨다는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철강수입에 대한 세이프가드를 발동하고, 농업보조금을 대폭 늘리는 내용의 신농업법을 통과시켰다. 결국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는 시장질서에 위배된다는 명목으로 비난해 온 케인즈주의적 정책과 보호무역주의 정책까지, 사실상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는 회복되지 않고 있으며, 이것은 역으로 현재의 침체가 그리 쉽게 해소되지 않으리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투자가 회복되지 않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금리인하와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책은 일시적인 소비촉진을 통해 경기를 지탱할 수는 있지만, 경기침체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인 과잉생산과 과잉설비를 해소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자본가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앞으로의 회복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더 이상 팔리지 않을 상품을 만들기 위해 신규투자를 할 리 없는 것이다.

기업들, 왜 회계부정 저지르나?

그리고 바로 여기에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대규모 회계부정사태의 본질이 있다. 이것은 결코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도덕적, 윤리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은 전세계에서 빚이 가장 많은 채권국이며, 오랜 기간 만성적인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를 보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경제가 지탱될 수 있었던 것은 경상수지 적자를 넘어서는 외국으로부터의 자금유입이었으며, 현재도 매일 외국으로부터 40억달러를 순유입해야만 정상적인 경제 운용이 가능한 상황이다. 결국 외국투자가들이 미국을 가장 안전하고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투자처로 믿고 미국의 주식과 채권을 지속적으로 사들이는 한, 미국은 빚을 계속 지면서도 전세계를 상대로 큰소리를 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대를 지탱해 온 것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에 대한 믿음과 함께 이른바 '신경제'의 주역으로 불리는 IT(정보통신)산업에 대한 막연한 환상, 그리고 투명하고 건전하다는 미국식 경영에 대한 선전이었다.
그러나 IT산업의 지속적인 불황과 함께 연달아 터져나온 회계분식(=뻥튀기 장부조작)사태는 이러한 믿음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광범위하게 불러일으키고 있다. 월가의 분석가들이 내놓는 보고서들이 투자가들의 수익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에만 충실한 쓰레기같은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미국 경제 자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버린 것이다. 계속해서 그 규모와 파장에서 새로운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분식회계는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만 하더라도 17개의 미국 대표기업들이 연루되어 있으며, 업종 또한 전통산업과 IT산업 등을 가리지 않고 망라되어 있다. 이에 따라 종목을 불문하고 미국기업을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며, 세계최대자동차업체인 GM의 분식회계설이 나돌자, 당사자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창업 이래 최저수준으로 폭락하는 상황조차 벌어지고 있다. 미국 경제가 거대한 '도덕적 암'에 걸려 있다거나, '월가는 사기꾼들의 거대한 카지노판'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대우사태가 터졌을 때, 미국식 회계기준을 본받자고 외쳐대던 한국의 부르주아 경제학자들과 이데올로그들이 과연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생각해보자. 대우가 왜 회계부정을 저질렀는가? 부진한 판매실적과 마이너스 이윤율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1990년대의 호황은 사실상 무늬만 호황이었을 뿐, '신경제'라는 이름에 걸맞는 높은 수준의 이윤을 가져다주지 못했던 것이다. 전 세계가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 미국 기업들만 호황을 누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부터 경상수지 적자를 외부로부터의 자본유입에 의해 벌충해 왔고, 그 유인이 미국의 채권과 주식 등 금융자산이 가져다주는 수익에 대한 기대였기 때문에, 이 기대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매출액을 부풀리고, 실제로 나지도 않은 이익을 조작하는 것으로 지탱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밖에는 지탱될 수 없는 취약한 구조가 미국경제의 본래 모습이었다. 현재 드러나고 있는 사태들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 공황 조절책 한계점 도달

작금의 상황이 어디까지 진전될 것인가를 예상하리란 쉽지 않다. 물론 자본가계급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최악의 사태-미국의 공황과 연쇄적인 세계대공황-를 피하려 할 것이지만, 전망은 별로 밝지 않다. 1957년 이래 미국에서 나타난 7차례의 경기침체 중에서 1980년과 1990-91년의 2차례를 제외하고는 5번의 뚜렷한 더블 딥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공황조절책이 사실상 거의 매번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9일 세계최대의 투자은행이자 세계 금융자본의 대부격인 골드만 삭스가 당초 올 11월로 예상했던 미국경제의 회복시기를 내년 4/4분기 이후로 늦춰 잡는 수정 전망보고서를 발표한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들의 예측은 늦어도 올해말에는 경기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미 재무장관 폴 오닐과 월가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냉정한 현실을 상당히 객관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증시가 지속적으로 침체되면서 금융환경이 악화되었기 때문에 현재 상황은 2001년 초 FRB가 통화정책을 완화하기 시작했던 때보다 결코 더 낫다고 볼 수 없으며, 금리정책이 당시와 비교해 볼 때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FRB에서 나온 [디플레이션 대책: 1990년대 일본의 경험이 주는 교훈]이라는 제하의 보고서는, 디플레이션의 위험이 높을 때는 통상적인 수준을 뛰어넘는 자극이 필요하며 초강력 통화정책으로 인한 부작용(인플레이션)을 감수하는 편이 최선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더욱이 초강력 경기부양책으로 충분한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유동성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이들이 최근의 상황을 그만큼 심각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편 한 국가의 불환지폐임에도 불구하고 세계화폐인 양 행세해 온 달러는 이제 신뢰를 상실하고 연일 급락을 거듭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공식적으로는 화폐가 아닌 금 가격의 상승률이 다른 어떤 통화보다도 높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금융자산 투자들이 줄줄이 큰 피해를 입고 있음에도 금에 투자한 펀드만이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메릴린치는 달러 약세와 주가 하락 등으로 광산개발업체, 금 선물, 금 현물 등에 투자하는 금 투자 펀드가 76%의 고수익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였는데, 이 펀드는 60% 이상을 남아프리카와 호주의 광산업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지난 6월4일 금 선물 가격은 온스당 330.6 달러로 최고점을 기록했으며, 온스당 335달러에까지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것은 마치 달러의 금 태환성이 의문시되던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의 상황을 연상케 한다.
그렇지만 달러를 대신할 국제통화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유로나 엔이 달러를 얼마나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는 EC와 일본이 미국을 대신해 세계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얼마나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 있지만,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회의적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달러를 믿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더 이상 달러에 우선적인 지위를 부여할 수 없다는 판단을 각국이 공유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세계경제를 주도하던 한 강대국의 능력이 상실된 다음 그 역할을 이어받을 주체가 불확실한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1930년대에는 그 귀결이 국제무역의 급감과 현물교환, 경제블록화로 이어진 세계대공황이었다. 그 다음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자본주의는 아직까지 전쟁 이외의 해결책을 찾아낸 적이 없다. 어쨌거나 마침내 올 것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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