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구화투쟁:진단과 점검]反자본주의 지향 강화...정치세력화 투쟁 결합 과제

반지구화운동은 소련 등 국가사회주의의 붕괴와 더불어 전지구가 전일적 자본주의 지배체제의 구축으로 귀결되는 것에 저항하는 전세게 노동자-민중의 투쟁이다.

원영수(노동자의 힘 회원)

반지구화투쟁의 서막 - 시애틀 전투

1999년 11월30일, 미국 시애틀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지구화 시위는 새로운 세기적 투쟁과 운동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우루과이 라운드에 이어 새로운 무역협상을 출범시키려 했던 WTO 각료회의는 시위대의 포위로 개막식도 치르지 못한 채, 회기를 하루 더 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합의도출에 실패했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를 주도하는 국제기구회의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팀스터와 거북이의 만남"으로 표현되는 시애틀전투는 미국노총 AFL-CIO의 대규모 동원에 의해 70년대 베트남 반전투쟁 이후 최대의 투쟁으로 발전하였다. 물론, 90년대 후반 MAI(다자간 투자협정) 반대투쟁, 실업과 사회적 배제에 반대하는 유로마치투쟁, 유럽차원의 EU-G8 반대투쟁 등이 소수 NGO(비정부기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지만, 시애틀 전투를 계기로 반지구화운동은 문자 그대로 전지구적인 운동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반지구화운동의 본질

시애틀 전투를 계기로 그 모습을 갖춘 반지구화운동은 본질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주도세력에 대한 저항이다. 신자유주의 공세는 전후 호황의 종결과 함께 나타난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대한 역공세로 시작되었다. 반지구화운동은 소련 등 국가사회주의의 붕괴와 더불어 전지구가 전일적 자본주의 지배체제의 구축으로 귀결되는 것에 저항하는 전세계 노동자-민중의 투쟁이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는 중심부 국가들의 비호아래 국제금융기구(IFIs)와 초국적 독점자본에 의해 주도면밀하게 추진되고 있다. 이는 세계은행/IMF, WTO 등의 국제금융기구만이 아니라, 1995년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나, 현재 추진중인 전미자유무역협정(FTAA) 등의 지역협정 등을 통해 초국적 독점자본의 초과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위로부터의 계급투쟁이다. 이에 맞서는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이 바로 반지구화운동이다.
시애틀 이후 투쟁의 확산과정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이 반지구화운동의 가장 일차적인 특징은 아래로부터의 폭발적 동원력이다. 이는 국가사회주의의 해체 이후 야기된 정치적 공백을 아래로부터의 반지구화투쟁이 돌파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곧 반지구화투쟁이 경제투쟁의 외관을 넘어 본질적으로 정치투쟁이며, 그 정치적 잠재력의 현실화가 운동에 내재한 목표임을 의미한다.
반지구화투쟁의 또다른 특징은 광범위한 포괄성이다. 반지구화운동은 초기의 무역-투자문제를 뛰어넘어, 노동권과 환경, 여성, 원주민과 문화, 종다양성, 식량안보 등의 총체적 이슈를 포괄하며, 그 만큼 다양한 주체들과 그들의 활동을 포괄한다. 일각에서는 이런 다양성을 탈중심성과 민주성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본질적으로 형이상학적 견해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 운동의 포괄성과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은 더욱 성장-발전해 나가야 하며, 그 과정에서 정치적 지도력과 조직원리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쟁점: 반자본주의적 지향

반지구화운동의 폭발력은 이 투쟁에 참여한 주체마저 놀라게 할 정도였다. 이 투쟁의 주역으로 참여한 활동가들도 이 투쟁의 전체적 상과 전망 내놓기를 주저하고 있다. 투쟁의 폭과 범위가 갖는 포괄성과 주체 및 주제의 다양성 속에서 다양한 쟁점들이 제출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쟁점은 바로 폭력의 문제였다. 시애틀에서 무정부주의 그룹에 의해 채택된 시민불복종(civil disobeysance) 투쟁전술은 엄청난 논쟁을 촉발했다. 그러나 이 논쟁은 본질적으로 기업화된 NGO 활동가들의 본능적 거부감과 노동조합 관료들의 소심함 때문이었다. 투쟁이 계속되면서 정부와 경찰의 폭력은 더욱 노골화되었고, 2001년 제노아에서는 청년 활동가 칼를로 줄리아니가 살해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폭력논쟁은 도덕적 문제에서 실천과 투쟁의 문제로 발전되었다.
또다른 쟁점은 운동의 목표에 관한 것으로, 반자본주의적 지향의 문제였다. 적지 않은 NGO들은 반기업 개혁노선으로 자신을 정식화했지만, 실질적 투쟁의 현장에서 반지구화는 곧 반자본주의임을 명확히 하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지구화에 대한 대항개념으로서의 지역화(localization)를 대안으로 제시하던 NGO류의 흐름이 퇴조하는 대신, 보다 근본적인 대안에 대한 모색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반지구화운동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바로 주체의 문제, 또는 이른바 NGO의 문제이다. 운동의 초기발생과정에서 이슈중심의 캠페인조직인 일부 기업형 NGO들은 반지구화 논리개발과 공간창출, 재정문제 등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지만, 운동 자체가 대중적-계급적 성격을 강화하면서, 안팎에서 강력한 비판을 받게되었다. 이들 NGO들의 반정치주의, 반위계주의는 한편에서 운동의 민주적 성격을 명확히 하는 데 기여했지만, 운동의 지도력과 책임성의 문제는 방기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은연중에 제도좌파에게 공작 공간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9.11사태와 반지구화운동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의 펜타곤에 대한 테러공격은 공세적 국면을 주도하던 반지구화운동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지난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WTO 각료회의는 시애틀의 실패를 딛고 새로운 협상을 시작할 예정이었기에, 따라서 이를 저지하기 위한 반지구화운동내 각세력의 응집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었기에, 9.11 테러가 특히 미국과 서유럽의 반지구화운동에 미친 영향은 막대한 것이었다.
더욱이 테러에 대한 무차별적 보복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공습은 부시정권의 광란이었지만, 전세계 노동자-민중운동은 이를 대중적으로 저지할 만한 힘을 가지지 못했으며, 영국과 호주에서 반전시위가 벌어졌을 뿐이었다. 급속히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극히 상징적인 일부 NGO의 항의행동과, WTO 반대 국제행동이 조직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도전은 응전을 부르는 법이다. 9.11 테러는 심각한 정치적 타격과 함께 투쟁력의 급속한 감소를 가져왔지만, 대다수 활동가들 사이에서 반지구화투쟁이 반제국주의-반전투쟁의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그 결과, 2002년 1월 브라질에서 열린 제2차 세계사회포럼은 포럼자체의 전반적 계급화 분위기 속에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반대"의 슬로건과 함께 "제국주의 반대, 전쟁반대"의 슬로건을 함께 주슬로건으로 제출하였다.

세계사회포럼: 성과와 가능성

투기자본규제를 위한 토빈세 신설을 목표로 유럽의 반지구화운동을 주도하는 프랑스의 NGO ATTAC(투자과세 시민연합)과 진보적 신문 "르몽드 디를로마티크"의 제안으로 출범한 세계사회포럼은 신자유주의 지배엘리트가 주도하는 세계경제포럼에 대한 대당으로 설정되었으며, 브라질 노동자당(PT)이 집권한 지역인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리게 되었다.
2001년의 1차 포럼에는 12,000여명이 참석한 대규모 국제행사로 진행되었고, 2002년에는 1차포럼의 성공에 힘입어, 123개국의 공식대표단 12,000여명을 포함하여 모두 6만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하여, 652개의 워크샵과 27개의 전체회의를 가졌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2차 사회포럼은 포럼의 사회운동적 성격을 강조하는 한편, 당면한 반전투쟁의 중요성이 공유되었다. 또한 전술적으로는 사회포럼을 한편으로 지역별, 국가별로, 다른 한편으로는 주제별 포럼으로 확산하기로 결의하였다.
전체적으로, 2차포럼은 제국주의의 신자유주의 지구화공세와 전쟁공세를 저지하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는 데 정치적으로 성공하였다. 그리고 올해 하반기부터는 유럽 및 아시아 사회포럼을 비롯한 지역별 사회포럼의 조직화를 통해, 2003년 포르투 알레그레, 2004년 인도에서 사회포럼을 지속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세계사회포럼은 어디까지나 반세계화운동의 한 흐름일 뿐이며, 다른 운동이나 형식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사회포럼 과정에서 주변부 민중의 목소리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조직할 것인가의 문제가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점이다.

일국운동과 국제운동

반지구화운동은 일차적으로 국제금융기구들을 대상으로 한 투쟁이었기에 막대한 국제적 파급력을 가지면서 각국의 운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각종 국제회의가 열린 국가는 그 동안 고립분산적으로 존재했던 활동가들과 운동을 한데 모으고, 신자유주의의 공세 속에서 상대적으로 무기력했던 각국의 운동을 자극하는 촉매제의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신자유주의의 하위파트너 역할에 만족했던 유럽의 노동조합들이 변하고 있다. 지난 4월 노동법개정에 반대하는 이탈리아 노동조합의 30만 로마시위, 5월의 스페인 총파업과 그리스 총파업, 지난 7월 영국 공공부문 파업 등은 한편에서 반지구화운동의 역학에 자극받은 투쟁임과 동시에 위축당한 반지구화운동이 새로운 공세를 준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한 투쟁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영국과 호주에서 진행되는 좌파들의 정치적 연합 또한 반지구화투쟁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압력에 힘입은 바 크다. 그 결과 초기에 반지구화운동을 일부 NGO들의 캠페인으로 폄하했던 비제도적 좌파세력 역시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페루 등 남미지역에서의 노동자-민중투쟁 역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대한 반대투쟁의 성격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신자유주의 공세 하에서 무기력했던 노동자-민중운동은 도움의 손길을 자처했던 바로 그 세계은행과 IMF가 경제위기와 실업, 빈곤의 원인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강고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반지구화투쟁

한국의 반지구화투쟁은 국제적 흐름과의 연관보다는 다소 괴리된 상태에서 소수의 좌파활동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1997년 IMF 경제위기로부터 촉발된 계급적 인식이 직접적 지구 대중투쟁으로 고양되지는 못한 것이다. 지난 2000년 반ASEM투쟁으로 어느 정도 명맥은 유지했지만, 민주노총과 전농이 참여한 "WTO-투자협정 반대 국민행동"(KoPA)의 경우도 강력한 대중투쟁을 조직하지는 못하고 있다.
물론 90년대 후반의 신경영전략 반대투쟁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대한 인식을 정립하고, 대중적 반신자유주의 투쟁노선을 정착시키기는 했지만, 현시기 민중운동의 구심인 민주노조운동 내에 팽배한 자생성주의와 정치적 기회주의로 인해, 반신자유주의 대중투쟁에서 노동운동의 지도적 역할은 상당히 심각한 수준으로 훼손되고 말았다. 그 결과, 전세계 노동운동의 지형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려는 움직임인 남반구 노조연대회의(SIGTUR)가 작년 서울에서 열렸지만 뚜렷한 성과를 나타내지 못한 채 하나의 국제행사로 끝난 것은 극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반지구화투쟁의 전망과 과제

전체적으로 보아 반지구화운동은 9.11의 직접적 충격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극복해야 할 많은 과제를 가지고 있다. 일차적으로, 반전-반제국주의투쟁을 반지구화투쟁의 핵심부분으로 정착시켜야 할 것이며, 그동안 흐트러진 동원력을 재정비함과 동시에 일국운동과의 유기적 연관을 더욱 강화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올해 프랑스 대선의 경우처럼 극우파의 공세를 제거하기 위한 국제적 반파쇼운동 역시 강화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보자면, 반지구화운동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반자본주의적 지향을 강화함으로써, 운동 자체의 정치적 발전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제도좌파의 파산으로 창출되는 정치적 공백 속에, 노동자-민중세력의 정치세력화가 긴급한 정치적 과제로 제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반지구화운동은 이를 강화하는 촉매제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반지구화운동 자체는 최근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주어진 정치경제적 역관계 속에서 다양한 주체들의 상호작용 가운데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면서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보장된 미래는 없으며, 반지구화운동의 성장과정 자체는 새로운 주체의 형성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비제도적 좌파의 과제는 주체형성의 관점에서 대중적 반지구화투쟁과 정치세력화의 과제를 정치적으로, 또 창조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이다.


* 반지구화투쟁: 주요일지

1999년 11월 30일 미국 시애틀 -- WTO 각료회의
2000년 4월 16일 미국 워싱턴 -- 세계은행/IMF 총회
7월 29일 미국 필라델피아 -- 공화당 전당대회
8월 11일 미국 로스 엔젤레스 -- 민주당 전당대회
9월 26일 체코 프라하 -- 세계은행/IMF 총회
9월 오스트레일리아 멜번 -- 세계경제포럼
10월 한국 서울 -- ASEM
2001년 1월 25일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 -- 1차 세계사회포럼
1월 27일 스위스 다보스 -- 세계경제포럼(WEF)
4월 20일 캐나다 퀘벡 -- 전미자유무역협정(FTAA)
6월 15일 스웨덴 고텐부르크 -- EU정상회담
7월 20일 이탈리아 제노아 -- G8 정상회담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펜타곤 테러
11월 8일 전세계 행동의 날 -- 카타르 도하 WTO 각료회의
2002년 2월 1일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 -- 2차 세계사회포럼
3월 15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 EU정상회담
4월 20일 미국 워싱턴-샌프란시스코 -- 대테러전쟁 반대
6월 26일 캐나다 캘거리-오타와 -- 캐나나스키스 G8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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