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적 수준의 연대투쟁으로 신자유주의 공세를 넘어서야 한다

이종회(노동자의 힘 대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관장하는 WTO

가트(GATT.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관세의 한도를 설정함으로써 국가간의 무역분쟁에 따른 전쟁을 피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것은 무역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의 높은 관세를 배경으로 하는 미영독일 등 제국주의 본국과 그 식민제국 제 블록간의 자본전쟁이 결국 2차 세계대전을 몰고 왔다는 진단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다른 대륙과 국가들은 전쟁으로 초토화되어 전 세계 생산량의 60%에 가까운 비중을 점하던 승전국 미국의 무역을 위한 관세제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50-60년대 호황을 구가하던 자본주의는 60년대 말 위기를 맞게 된다. 이윤율 저하에 시달리던 자본은 그간의 자본의 고생산성-고임금에 기초한 사회적 합의를 일방적으로 깨부수고, 정리해고를 자유롭게 하고 파견제를 도입하여 완전고용에 따른 노동비용을 줄이고, 의료 및 사회보장에 대한 민영화로 사회복지에 대한 자본의 지출을 줄인다. 그리고 한계기업을 정리하는 한편 거대 공기업의 민간자본으로의 사유화를 통하여 자본의 강화를 꾀했다. 우리가 흔히 거론하는 구조조정은 이에 연유하며 이에 저항하는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단호한 탄압으로 대응하였다. 그것이 소위 '영국병'을 내세운 광산을 위시한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대처정부의 공격이었고, 관제사 파업에 대한 폭력적 탄압과 블랙리스트를 통한 재취업을 봉쇄한 미국 레이건의 공격, 민영화를 거부하는 국철노동자에 대한 공세와 이를 매개로 총평을 깨어버린 일본 나까소네정권의 공격 등 우리가 흔히 드는 신자유주의 사례들이다.
이러한 구조조정을 통하여 집중, 강화된 자본에 민영화로 시장을 열어주는 한편, 국가간 무역경계를 없애고 그간 GATT의 공산품으로 한정된 무역품목의 제한을 없앰으로써 무제한적 시장을 보장하게 된다. 그 시발이 우리가 잘 아는 우루과이라운드이다. 이러한 국제적인 수준에서의 무역질서를 관장하는 기구가 WTO(세계무역기구)인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세계화 반대투쟁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결과에 따른 농민의 쌀수입 개방저지투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자본의 요구로 받아들인 세계화

87년 민중항쟁과 노동자대투쟁으로 재벌중심의 국가주도 자본축적체제가 붕괴되었다. 과잉생산과 과잉축적에 따른 자본의 위기의 표현으로서, 억압적 사회관계와 병영적 노동통제를 배경으로 한 자본축적체제가 붕괴된 것이다. 이후 과잉축적된 자본은 노동비용을 적게들일 수 있는 국가들 즉 동남아시아나 남미를 향하여 나가기 시작했다. 90년대 초반에는 이미 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자본보다 외국으로 나가는 한국의 자본이 더 많기 시작했으며, 96년에는 대우그룹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해외지사를 가진 초국적자본으로 기록될 정도였다. 이 당시 자본의 해외 이전은 주로 한국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한계자본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지만, 그에 따른 위장폐업과 그것에 대한 철폐투쟁을 광범하게 전개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인식은 못하고 있었지만 노동자의 반세계화투쟁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모가지를 걸고라도 쌀수입개방을 막겠다'던 김영삼대통령의 공언은, 절실하게 세계화를 요구하는 자본의 요구에 밀려 우루과이라운드협정 조인으로 허언에 그치고 말았다. 세계화와 개혁을 외치는 김영삼정권의 개혁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다름 아니며 세계화는 한국자본의 해외진출의 장벽을 없애는 것이었다. 김영삼정권의 세계화를 위한 드라이브는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내세워 추진한 OECD가입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OECD가입을 위한 조건을 충족하기 위한 시장개방, 그 중 특히 금융시장 개방은 97년 환란을 불러오는 하나의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한국정부의 서비스시장 개방전략

94년 우루과이라운드협정이 체결될 당시 각국의 저항이 심하던 농업부문과 서비스부문의 개방에 관한 논의를, 2000년에 개최될 새로운 라운드 즉 뉴라운드의 기설정 의제로서 재논의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1999년 11월 말 씨애틀에서 개최된 각료회의가 전세계 노동자 민중운동의 투쟁으로 무산됨으로써 연기되었으나 2001년 11월, 시위조차 법으로 금지된 중동 사막 한가운데 카타르 도하에서 숨어서 개최하다시피 하여 결국은 뉴라운드를 출범시켰다. 그리하여 농업부문과 서비스부문을 핵심으로 한 뉴라운드 협상(도하개발의제)이 시작되었고 2005년까지는 타결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97년 외환위기를 틈타서 IMF는 채권국을 대변하여, 변동환율제로 금융부문을 세계시장에 연동시키고 주식시장을 육성하여 주식으로 대체한 채권의 손실을 보전하는 한편, 구조조정을 강제하여 '신흥시장'으로 바꾸는 전략을 예외없이 한국에도 적용하였다. IMF 구조조정협약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은 IMF의 개방요구치 이상을 넘어선 김대중정권의 치적(!)으로 WTO협상에서 공세적 개방을 요구하는 전략을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우루과이라운드 당시 시장개방을 단계적으로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이제는 '경제운영이 바람직한 상황에서는 정부지원 내지 보조금은 바람직하지 않고, 결국 사회적 효율성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보조금은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기조아래 협상에 임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아래 농업부문이 포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언명하는 바와 달리 쌀시장을 포함한 농업부문의 완전한 시장개방은 눈앞의 일로 다가와 있다. 농토에서 쫓겨나 도시주변의 반노동자나 농업노동자로 전락하지 않겠다는 농민들이, 우루과이라운드 저지투쟁 이후 최대의 투쟁을 준비하고 있음은 이에 연유한다. 금융, 인력이동, 시청각서비스, 통신, 에너지, 관광, 항공운송, 해운 등의 서비스분야 개방이 준비되고 있다. 이 중 저항이 거세든, 순위에 밀려 그러하든 개방정도가 낮은 부문의 개방준비가 구조조정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금융, 보험, 주식시장 등 업종간 영역을 없애고 자본을 강화하기 위한 금융구조조정이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소위 귀족학교인 자립형 사립학교를 만들고 대학교를 비롯한 외국의 학교가 들어올 수 있는 시장 개방을 교육개혁의 이름으로 추진하거나, 스크린쿼터를 없애고자 시도하고 있다. 어느 한 업종, 노총의 어느 한 연맹조차 자유로울 수 없는 시장개방과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거나 예상할 수 있는 바, WTO 서비스협정과 무관하지 않다.

파국으로 내딛는 세계화와 노동자 민중운동의 과제

60년대 말 자본운동의 위기 이후 다자간 협정으로서 우루과이라운드협상이 타결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역간 협정이 맺어졌다. 씨애틀에서의 뉴라운드 출범이 저지되자 지역간 협정이 왕성하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지역간 협정이 진전되어 EU처럼 단일통화권으로까지 진전되어 연합국가까지를 넘보는 경우, 미국-캐나다-멕시코 3국의 관세를 없애버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확장하여 2005년까지 남북미를 합친 전미자유무역협정(FTAA)을 체결하려는 시도, 동남아시아국가의 아시아자유무역협정(AFTA) 등으로 블록화되고 있다. 도하개발의제에서는 WTO를 '세계무역규범 형성 및 자유화를 위한 유일한 포럼'으로 '세계'를 강조하면서도 '지역무역협정을 무역의 자유화와 확장 그리고 개발을 촉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지역'을 강조하고 있음은 WTO의 적법성 문제가 제기될 경우에 대한 보완이자 현실 자본운동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 블록이 강화됨으로써 공황과 같이 세계적인 자본운동이 격렬해질 때 경제적 긴장은 정치적 긴장으로 전이되었으며 그 결과는 전쟁으로 표출되었다는 역사적 교훈을 상기할 때, 현재의 WTO체제는 전율스러운 것이며 그 폐악은 고스란히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될 것이다. 한국자본 역시 '대동아 엔공영권'을 구상하는 일본과 함께 동북아 및 아시아지역의 자본블록 구축을 위해 애쓰고 있다. 한일투자협정 체결, 한중일 자유무역협정, 아세안+3 모색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역블록을 뚫어보고자 한칠레자유무역협정 등이 추진 중에 있다. WTO 협상과 달리 일대일 협상이라 통신, 발전 등과 같은 에너지, 통신, 철도의 민영화에서부터 노사관행에 까지 개입하는 보다 구체적이고 강제력 있는 협정이 체결되거나 추진중이다.
각 부문운동 수준에서,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축적전략의 핵심으로서 투기금융 저지운동에서, 신자유주의를 강제하는 국제금융기구로서 IMF나 세계은행 반대투쟁 등 세계화 반대투쟁은 다양한 층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최근 유럽의 몇 차례에 걸친 총파업은 그 일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제 지구적 수준의 연대투쟁이 아니라 일국적 수준에서의 구조조정 저지투쟁, 농산물 수입개방저지투쟁만으로는 이러한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넘어설 수 없음을 인지하는 데서 투쟁은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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