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일자리 창출 위해 임금동결해야"
노동계, "노동시장 유연화, 정경유착이 문제"

경총 '일자리' 정책안 노동계 거센 비판‥"기업수익 반해 인건비 비중 감소했다"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임금을 동결하고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재계의 주장에 노동계가 거세게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 김창성)는 27일 오전 서울 조선호텔에서 주요기업 인사·노무담당임원회의를 열어 이같은 내용의 경영계 입장을 정리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영계 정책 제언'을 채택·발표했다.

경총은 이날 "최근 경제는 성장세가 둔화되고 경기회복이 지연되는 가운데 일자리 감소와 청년실업증가 등 노동시장에 대한 불안심리가 확산"되고 "설상가상으로 국내기업의 해외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제조업 공동화 현상마저 우려되는 실정"이라며, '고용없는 성장'이 현실화돼 획기적인 고용확대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경총은 "(이는) 국내 투자여건이 경쟁국에 비해 여러 가지로 불리하고 임금, 노사관계 등 기업들의 고용부담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일자리 창출의 기본방향은 임금안정 및 투자활성화를 통한 고용기반 확충에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경총은 기업의 고용비용부담 완화를 통한 고용확대를 위해 호봉승급 동결을 포함해 대기업 임금을 동결하고, 출자총액제한제도폐지 등 기업투자 활성화를 위한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용비용부담 완화와 관련, 경총은 "임금 안정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며, 임금피크제 도입을 50세 이상 계층에 확대하는 한편, 4대사회보험료를 동결하고 국민연금과 퇴직금 연계 등 기업의 사회보장비용 부담을 경감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총은 또 "(일자리 만들기는) 기업의 투자확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폐지될 경우 10대 민간기업집단에서 5조2천억원의 투자여력이 증가하고, 칠레와 FTA(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경우 1만2천200명의 고용증대효과가 기대되며, 멕시코를 포함한 남미국가들로 FTA를 확대할 경우 장기적으로 18만명의 고용증대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나아가 노사관계 안정,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및 법인세율 인하, 수도권 첨단공장 증설 규제 완화 등의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고 경총은 덧붙였다.

또한 경총은 (가칭)'임시고용세액공제제도' 도입 등 단기 고용지원 특별대책을 세우고, 인력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한 노동시장 활성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칭)'임시고용세액공제제도'는 고용기여 기업에 대한 보상으로써 고용 1인당 연간 50만원의 법인세를 공제하는 제도를 말한다.

경총은 노동시장 활성화 방안으로 민간 고용안정기관을 활성화하고, 학교교육과 노동시장의 연계를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총 경제조사본부 관계자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지나친 임금인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임금격차가 커지고 있다"며 "이로 인해 대기업의 신규채용이 줄어들고 실업자가 양산되는 동시에,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재계의 임금인상안은 생산성증가를 고려해 3~4%인데 반해, 그동안 대기업노조를 중심으로 매년 10% 이상의 임금인상을 요구했으며, 또 그렇게 인상돼 왔다."며 "이번 정책안은 일단 동결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노조가 그 부분(3~4% 임금인상)만 받아들여도 진전된 것"이라고 말했다.

일자리 만들기 위해 모든 것 포기하라(?)

이날 경총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임금동결' 주장에 대해 노동계의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민주노총은 곧바로 성명을 내어 "일자리 문제는 절대실업률 보다 기업과 정부의 구조조정을 앞세운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으로 비정규직을 양산시켜 고용의 질이 크게 악화된 데 있다"며 경총의 주장을 반박했다.

민주노총은 "중소영세 기업의 구인난과 청년실업은 '괜찮은 일자리가 없는' 고용의 질 문제"라며 "마치 고실업률이 문제인 것처럼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식의 (경총의) 논리는 문제를 잘 못 짚은 것이며, 일자리를 앞세워 기업의 이익만 늘리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또 "지난 2년간 한국 기업의 수익은 사상최대를 기록했으나, 인건비 비중은 갈수록 줄어 한자리수로 떨어지고 있다."며 "돈을 벌어도 고용을 늘리고 분배에 앞장서지 않는 기업"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매출액 경상이익률(경상이익/매출액)은 IMF경제위기 직후인 1998년 상반기 0.4%의 적자를 기록했으나, 2002년 상반기와 2003년 두 해에 걸쳐 7.3%로 한국 경제 사상 최대의 수익성을 보였다. 매출액 영업이익률도 2000년 8.6%, 2001년 6.9%, 2002년 7.8%, 2003년 8.6%로 계속 상승해 미국의 4.9%나 일본의 2.8%를 훌쩍 뛰어넘었다.

반면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비정규직 고용, 임금삭감 등으로 IMF경제위기 직전인 1997년 상반기 12.0%였던 인건비 비중(매출액 대비)은 1998년 상반기 9.4%로 감소했다가, 2002년 상반기 10.0%로 다소 회복했으나 2003년 다시 8.9%로 떨어졌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기업의 수익성은 크게 증가하고 있는 데 비해,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은 이에 미치지 못해 상대적인 임금 수준은 하락하고 있다."며 "친기업 반사회 정책을 고집한다면 노사갈등과 사회갈등은 더욱 격렬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노총은 이어 "일자리 문제의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규직 정리해고, 비정규직 양산으로 대표되는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뿌리부터 재검토하고,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고 정규직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 또한 같은날 성명을 통해 "재계는 노동자임금 동결을 운운하기에 앞서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수백억원씩의 기업자금을 정치권에 불법선거자금으로 제공하는 정경유착부터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노총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불공정한 하도급 관행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노동자의 임금만 동결한다고 해서 중소기업의 경영여건은 개선되지 않으며, 대기업 사용자의 호주머니만 키우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비난했다.

한국노총은 이에 정부가 먼저 ▲공공부분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취업을 기피하는 열악한 사업장에 대한 작업환경개선 지원, ▲직업훈련과 재취업 지원 등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또 ▲투명경영과 노동자 경영참여 보장, ▲정경유착 및 불법정치자금제공 근절로 일자리 위한 재원 마련,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공정한 거래 통한 중소기업 일자리 창출, ▲임금피크제를 임금억제수단이 아닌 정년연장과 신규채용 위한 방편으로 활용, ▲주5일노동제 조기 도입과 부족인력 신규채용 등을 재계에 요구했다.

"돈 벌어도 고용확대·분배 않은 기업에 책임있다"

민주노총 손낙구 교육선전실장은 "대기업(재벌)에 의한 중소기업, 그리고 노동자로 이어지는 이중의 착취구조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상황에서 인건비 비중을 줄인다고 해서 (실업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며 "기업의 인력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노총 강훈중 홍보국장은 "대기업의 불공정한 하도급 관행이 중소기업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고 있고, 이를 통해 남은 돈이 대기업의 호주머니에서 정치권으로 유입돼, 결국 부패정치를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국장은 "고용창출을 위한 세제혜택에는 반대하지 않으나, 대기업에만 혜택이 주어진다면 형평성 문제가 야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일자리 만들기' 관련 경총의 이날 발표는 현재 노사정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에 따른 것이다.

노사정위는 앞서 지난달 26일 열린 본회의에서 최근 한국경제가 내수부진과 투자감소 등으로 경제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고, 특히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일자리가 감소하는 등 전반적인 고용창출 능력이 둔화되고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노사정간 협력을 기반"으로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 체결을 추진키로 했다.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청년실업의 증가 등 고용불안 심리가 가중되고 있으며, 이는 다시 내수침체와 기업의 투자부진, 노사관계의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

이에 노사정위는 지난 12일 협약 체결을 위한 기초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기초위원회는 한국노총·경총·노동부 관계자와 공익위원 등 6명으로 구성·운영되며, 다음달 7일까지 활동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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