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불안정성은 제거될 수 있는가?

이미 금융화된 세계 경제에 깊숙이 편입되었고, 이후 신자유주의 개혁의 추진도 이 방향에서 진행되는 것이 현재의 조건이라면 한국 경제의 불안정성이 해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블랙 먼데이와 금융화된 세계경제의 불안정성

지난 10일 한국의 종합주가지수가 48포인트(5.73%) 폭락하면서 800선이 무너지고 코스닥 증시도 28.84포인트가 떨어졌다. 언론에서는 ‘블랙 먼데이(검은 월요일)’이며 ‘금융시장 패닉 상황’을 운운하며, 각종 분석과 대책 마련에 대한 요구를 쏟아냈다. 그 이틀 후인 12일 주가는 26.07포인트가 급등하며 안정세를 찾는 것처럼 보였지만, 13일 다시 27포인트 폭락, 14일 21.67포인트 폭락하는 등 주식시장은 계속해서 큰 폭으로 요동치고 있다. 주가뿐만 아니라 환율도 급등과 하락을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금융 관련 종사자들은 이에 대해서 중국의 긴축정책 시행에 대한 우려(차이나쇼크)와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는 국제유가가 한국 경제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 조짐에 따라 외국인 자산이 빠져나간데 기인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요동치는 금융시장이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한국 경제가 이미 금융화된 세계 경제에 깊숙이 통합되어 있으며, 미국을 위시로 한 세계 경제의 핵심국들의 변동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는 단지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미국의 금리 조기인상 가능성이 점쳐졌던 지난 10일 전 세계 주가는 동반 폭락했다. 일본과 유럽의 증시가 하락했고, 그 하루 뒤 11일에는 미국의 다우존스지수도 1만선 아래로 떨어졌다. 특히 급격한 하락을 보인 곳은 남미의 대표적인 신흥시장인 브라질(-5.46%)과 아르헨티나(-8.37%)로 그 하락의 정도가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번 사태를 통해 더욱 확실해진 것은 온갖 금융 기법을 통해 이익을 실현하는 투기자본의 움직임이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의 근저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발단으로 꼽히는 미국의 금리인상 조짐은 그 동안 미국의 저금리에 기대어 미국에서의 투자보다는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를 선호했던 투기자본들이 미국의 금리인상에 대한 기대로 투자 자본을 거둬들이게 했다. 더불어 확인되는 것 또 하나는 신흥시장의 종속성과 취약성이다. 게다가 이라크 전쟁, 고유가 등의 악재들은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고 있다.

한국 경제의 대외종속성과 취약성

주가 폭락과 반등, 다시 폭락이라는 불안정한 현상을 두고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조차 근본적인 문제점은 대외의존성이 지나치게 심한 한국 경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대외종속성은 단순한 약점이나 허약성이 아니다. 이는 오히려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 자체가 목적하는 바였고, 이제는 한국 경제가 놓인 구조적인 조건이다. 98년 이후 DJ 정권에서의 경기회복 과정은 증시부양과 벤처 붐에 힘입은 바가 큰데, 이 중에서도 증시를 부양하기 위한 여러 조치들은 금융의 영역을 거의 완전한 수준으로 개방하는 것과 맞물려 있었다. 2단계 외환자유화 조치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각종 조치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실제 97년까지 외국인의 상장주식에 대한 총 투자한도는 일반법인은 26%, 공공법인은 21%로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IMF 구조조정 협약 체결 이후 이 제한은 점차 확대되어 98년에는 이미 일반법인은 100%, 공공법인은 40%까지 투자한도가 늘어났다. 그 결과 증권시장에서 외국인투자비율은 급속하게 늘어났다. 상장주식에 대한 외국인의 주식소유비중이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96년 13.0%에서 2004년 10월 현재 40.1%로 늘어났다는 점만 보더라도 외환과 외국인 투자에 대한 자유화 조치 이후에 한국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자본의 지배력이 현저히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지분이 늘어나는 것만의 문제는 아니고, 한국경제 자체가 초민족적 금융자본(이미 한국의 몇몇 재벌들은 초민족적 금융자본이라 할 수 있다)의 지배력 하에 놓여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대외종속성 문제에 있어서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 경제 자체가 이미 세계 경제 특히 미국 경제의 상황에 따라 막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98년 이후 경기회복 과정에 있어서 수출을 주도했던 IT 산업의 붐도 미국의 신경제의 영향 하에서 가능했던 것이고, 올해의 주식시장 상승도 미국 경제를 비롯한 세계 경제의 회복세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투기거품의 형성과 붕괴가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위기를 지탱하고 있는 세계 경제의 상황에 이미 깊숙이 편입되어있는 한국 경제가 독자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금융시장의 급격한 요동은 어떤 신자유주의 개혁 조치를 취하더라도 피할 길이 없다.

연기금 주식투자 확대 요구와 금융화

그럼에도 이번 사태에 대한 지배세력의 대응은 더욱 강력한 신자유주의 개혁에 대한 요구이다. 지난 10일 주가가 폭락한 이후 언론과 기업은 한 목소리로 정부의 무능력을 질타하면서, ‘성장 vs 개혁’의 무의미한 논쟁을 중단하고 경제성장에 매달릴 것을 강력하게 주문했다. 기업의 투자요건을 개선하여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하고, 주식시장의 수요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연기금의 주식투자 제한 철폐, 고액 개인투자자들을 활성화하는 사모펀드 확대를 위한 간접자산운용법 개정, 퇴직연금 조기 도입 등 한국 사회에서 금융화를 심화시킬 방안들이 줄줄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연기금의 주식투자 제한 철폐에 관한 것인데, 그 규모면에서나 이후 사회에 미칠 영향에 있어서나 그 심각성이 매우 크다. 현재 운용 중인 연기금의 규모는 57개 190조원(이 중 국민연금기금이 117조원)에 달한다. 이 기금에 대한 주식투자 제한을 철폐하라는 것은 이 기금들로 주식시장의 버팀목을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의도대로 연기금을 주식시장에 끌어들이는 것이 주식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조금이라도 완화시켜줄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오히려 그보다는 주식시장의 급락과 급등을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더 크다. 세계 경제의 조그만 신호에도 매우 민감하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사고팔기를 반복하는 투기자본(이 자본을 국내외로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들을 막을 방도는 현재로서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투기자본의 또 다른 이름은 ‘기관투자가’이다(한국의 가장 큰 기관투자가는 바로 국민연금이다). 연기금이 주식시장에 투자된다는 의미는 주가 신호에 따라 수익률을 좇아 들고 나는 거대한 기금이 생긴다는 말이지, 안정적으로 주식시장을 받치고 있을 튼튼한 기반이 생긴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금융을 통한 거품에 매달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어찌할 방도가 없는 자본주의 구조적 위기의 시대에 자본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그 거품을 통해 조금이라도 수익률을 더 확보할 것인가이지 안정된 금융시장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것이 지배세력이 말하는 신자유주의 개혁을 통해 이루고자하는 성장의 참모습이다.

한국 경제의 불안정성은 제거될 수 있는가?

이미 금융화된 세계 경제에 깊숙이 편입되었고, 이후 신자유주의 개혁의 추진도 이 방향에서 진행되는 것이 현재의 조건이라면 한국 경제의 불안정성이 해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사실 한국 경제의 불안정성 근저에 놓인 원인은 구조적 위기에 처한 세계 자본주의의 현 상황이다. 세계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를 금융의 팽창을 통해 지연시키려는 전략은 반복되는 거품과 붕괴, 개혁을 빙자한 각종 위기관리 조치를 낳을 것이다. 이를 받아들인다면 한국과 같은 (반)주변부 국가의 선택은 이 거품의 끝자락이라도 잡기 위해 초민족적 자본의 요구에 따라 금융화를 촉진시키며 더욱 큰 불안정성을 감내하는 것이다. 이런 자본의 전략 하에서 안정적인 성장이란 없고 오직 소수의 초민족화된 자본의 성장만이 있을 뿐이다. 반면에 노동자민중에게 돌아오는 것은 금융세계화가 요구하는 불안정 노동에 내몰리는 것, 자신의 자산을 털어서 혹은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금융거품 형성에 일조했다가 깡통 차는 것, 노후소득마저 금융시장의 버팀목으로 내어주는 것뿐이다.
이라크 전쟁을 통해서 보듯이 금융세계화를 통해 자신들의 위기를 지연시키려는 초민족적 자본에게 민중들의 미래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의 실패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심화되는 경제위기에서 보듯이 그들에게는 대안도 없다. 오로지 현재의 위기를 지연시키기에 급급할 뿐이다. 이에 맞서는 노동자민중의 대응은 초민족적 자본에 대한 민중적 통제를 비롯하여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맞서는 투쟁이다. 대안도 없고, 미래도 없는 지배세력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투쟁과 연대를 강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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