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왕가 식 경영’ 자랑하던 두산, 형제간 이전투구

두산, “인사 반발하며 검찰 투서한 박용오 회장을 가문에서 퇴출한다“

극진한 형제 우애 내세우던 두산그룹, 형제 분란 발생

  68세의 나이로 집안에서 쫓겨나게 된 박용오 두산 회장 [출처: 두산그룹 홈페이지]
'형제간 우애에 바탕한 사우디 왕가식 경영’을 내세우며 형제간 회장 승계를 정당화했던 두산 그룹에서 내부분란이 발생했다. 두산그룹은 21일, ‘두산 최근 형제승계 관련 입장’ 이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해 명예회장으로 밀려난 박용오 두산그룹 회장을 ‘가문에서 퇴출’하겠다고 밝혔다. 두산이 노출한 형제 분란, 집안의 가족회의가 그룹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작동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이것이 회사냐 마피아냐’하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18일, 두산그룹은 맏형인 박용곤 명예회장 주재로 사장단 회의를 개최해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을 그룹회장으로 선임하고 박용오 현 회장은 두산명예회장으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박용오 회장은 이에 크게 반발하고 나섰고 급기야 검찰당국에 '비자금 500억 조성, 수백억원 해외 유출'등의 내용이 담긴 ‘두산그룹의 편법 경영상’을 투서로 만들어 검찰에 진정한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에 두산 측은 “두산그룹 회장 선임과 관련하여 그동안 보도된 내용과 달리, ‘박용오 회장이 반발, 두산그룹 경영상 편법 활용’ 등의 투서로 그동안 형제간의 좋은 우애로 칭찬받던 두산그룹이 하루 아침에 논란에 힙싸인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분란을 시인하며 ‘정면대응’하고 나섰다.

박용오, 이선후퇴 종용에 반발해 두산산업개발 떼어 달라고 요구


두산은 ‘형제간 공동소유와 공동경영’이 자신들의 원칙이라며 가족회의를 통해 (맏형인) 박용곤 명예회장이 (둘째인)박용오 회장은 은퇴하고 동생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두산그룹 회장을 맡을 것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두산은 박용오 회장이 이에 반발하며 “구조조정으로 회사 가치가 상승한 두산산업개발의 계열 분리를 주장하고 나섰”으나 “두산산업개발 지분율이 0.7% 밖에 되지 않는 박용오 회장이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가치가 상승된 상장회사인 두산산업개발을 자신의 가족 소유의 이름으로 만들어달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사안”이며 “선친의 ‘공동소유, 공동경영’의 확고한 원칙에도 반하는 것”이라 허용될 수 없는 것이라 설명했다.

두산그룹, ‘가족회의의 결정을 따르지 않으면 모럴해저드라 가문에서 퇴출한다‘

  박용오 회장이 자기 가족 몫으로 떼내 계열분리 해줄 것을 요구한 두산산업개발 [출처: 두산산업개발 홈페이지]

또한 두산그룹 명의의 보도자료인지 박용곤 일가의 보도자료인지 어려울 정도의 이야기들을 계속 이어나갔다. 두산그룹은 “이번 결정과 관련, 박용오 회장은 주위 사람들에게, 이번 일은 모두 동생인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이 박용곤 명예회장을 사주하여 벌이고 있는 일이라고 비난하고 있으나, 이상의 모든 결정은 전적으로 박용곤 명예회장의 판단과 결정에 의한 것으로서, 다른 모든 가족들도 이러한 결정을 존중하고 지지”한다며 형제간 이전투구의 양상을 부끄러움 없이 드러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가족회의에서도 결정된 사안을 박용오 회장만은 이번 인사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더나아가 아무 근거도 없이 그룹 내부에 엄청난 잘못이라도 있는 것처럼 협박을 통해 개인의 이득을 추구하려는 불순한 시도로, 이것은 두산그룹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그 결과 두산은 박용오 회장에게도 Morale Hazard(도덕적 해이)를 적용하여 퇴출을 단행할 계획”이라고 보도자료를 마무리 지었다.

지난 18일, 새로 그룹 회장 자리에 앉게 된 박용성 두산중공업회장은 형제 승계 문제에 대해 “사우디 왕가 방식”이고 “왕위직을 한 세대에서 쭉 승계하고 다음 장자로 넘어가서 그 세대에서 쭉 하는 식”이라며 “자랑스럽다”고 밝힌 바 있다.

재벌의 전근대성 극명히 드러나는 단면, 검찰은 즉각 수사 돌입해야

그러나 두산에서 벌어진 이번 형제 분란은 재벌가의 ‘형제간 우애’라는 것이 재산 앞에서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지적이다. 그리고 재벌그룹의 최고총수 자리가 ‘가족회의’를 통해 결정되고, 회사명의의 공식 보도자료로 ‘가족회의의 논의를 따르지 않으므로 가문에서 퇴출’이라는 어이없는 내용이 언론에 배포되는 것은 한국 재벌의 전근대성 정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지점이다.

68세의 박용오 회장이 형의 말을 듣지 않는 다고 ‘가문에서 퇴출’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지만 그가 보유한 두산 지분이 38만8천990주(1.76%)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파장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또한 그 속내야 무엇이든, 그룹회장을 지낸 인사가 자신이 속했던 그룹의 ‘편법경영상’을 비자금 500억 조성등으로 구체적으로 ‘내부고발’했으니 만큼, 검찰은 즉각 수사에 돌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