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공사가 에너지 수급능력을 상실한다면

[가스 선진화 특별기고](2)천연가스 산업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①

천연가스 산업은 매우 복잡하고 특수한 구조를 가진다. 3차 선진화 방안에서 발표된 가스 산업 도·소매 경쟁구조가 의미하는 바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의 천연가스 산업이 처해 있는 특수한 조건을 살펴보아야 한다.

도매의 경직성
천연가스의 수입 구조는 그 어떤 재화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경직성을 지니고 있다. 흔히 비교 가능한 석유 시장과도 엄격히 다르며, 액화하여 배로 수송하는 LNG(한국은 100% LNG 공급임) 형태는 유럽과 미국에서 일반적인, 파이프라인을 통해 공급하는 PNG 형태보다 더욱 경직되어 있다.


천연가스는 가스전에서 직접 채취하여 소비국 혹은 소비지역까지 파이프라인으로 공급하는 PNG와 가스전에서 생산된 천연가스(NG)를 정제하여 영하 162도로 냉각시켜 액화 형태로 배로 수송하여 다시 기화시켜 공급하는 LNG 형태로 나뉜다. 미국, 유럽 등이 대다수 PNG 형태라면 일본, 한국, 대만은 대표적인 LNG 수입국이다.


파이프라인으로 수송하는 PNG와 달리 LNG는 개발과 도입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여 거래 형태가 매우 경직적인 국제투자 사업의 형태로 출발하게 된다. 개발·생산·수송 인수 전 과정에 장기간이 소요되고 막대한 투자비를 요구한다. 경제성이 있는 규모인 연간 약 300만 톤 이상의 가스전을 개발, 생산하는 것으로 출발하여 우선적으로 소요되는 시설 투자 기금이 40-50억 달러 정도이다. 탐사와 개발에 들어가는 이 비용을 전제해야만 개발이 시작된다. 개발에서 LNG 생산까지 3-5년이 걸리고 수송선 건조에도 상당기간이 요구되며 대부분의 수송선은 특정한 계약과 장기근속 계약을 맺고 건조된다. 저장탱크 건설에도 3-5년(1기당 약 940억원)이 소요된다. 이렇듯 LNG 산업은 공급자와 소비국(소비자), 수송선사, 국제금융단이 함께 추진하는 장기 프로젝트로서 거래 계약은 20-35년 장기계약을 기본으로 한다. 또한 장기간 연중 균등하게 도입하는 조건으로 한국과 같이 여름철 수요가 적고 겨울철 수요가 매우 높은 나라에서 도입계약을 체결하고 수요와 공급량을 맞추기는 어렵다.

세계 LNG 시장은 판매자와 구매자가 소수인 쌍방 독점 형태이며 서로 간 선택 폭 역시 제한적이다. 2006년 말 기준으로 국제 LNG 시장에는 수입 17개국, 수출 13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나, 북미·유럽·아시아/태평양 등 세 개의 지역으로 시장이 분할되어 있다. 이는 수송 비용 등 제약 조건 때문이다. 이들 소비국 중 지정학적으로 가장 고위도에 있고, 수요의 비중도 발전용 약 35%, 도시가스용 약 65%에 달한다. 수급안정을 위한 저장 설비도 부족한 상황이다. 다른 소비국들이 70-90일분 저장하고 저장 비율이 20% 정도인데 반해 한국의 2006년 말 저장 시설 용량은 33일분으로 저장비율이 약 9%에 불과하다.

생산·수송·소비가 연계되어야만 하는 특수한 거래 형태이기 때문에 계약 물량을 의무 인수해야 하는 조건인 TOP, SOP 조건이 거래의 관행이다. 이는 구매자에게 연간 일정량의 가스를 의무 인수토록 하고 가스를 인수하지 못할 경우에도 가스 대금은 지불해야만 하는 계약조건으로 철저히 구매자에게 유리한 천연가스 시장의 특성을 보여준다. 또한 도착지 지정, 재판매 금지, 연간 균등 공급 조건 등 매우 경직적인 조항을 포함하여 buyer's market 즉 판매자 위주의 전형적인 시장 형태이다. 더욱이 장기계약 중심의, 주문생산 방식이기 때문에 현물 거래 비중(spot)이 적어 구매자가 원하는 물량, 원하는 시기의 선택이 불가능하다. 즉 한국과 같이 겨울철 수요가 많은 나라에서 원하는 물량을 시기에 따라 선택 구매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도·소매 경쟁체제 도입으로 탄력적 도입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천연가스 시장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한 결과일 뿐이다.

도매 경직성을 불러오는 조항들

20년 이상의 장기계약 조항 : 가스전 개발의 막대한 비용 때문에 개발의 경제적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개발단위당 20년간 최소한 200만톤 이상을 생산할 수 있어야 개발한다. 이에 미달하는 경우 생산자는 높은 가격을 받더라도 개발에 착수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의무인수조항(TOP; Take or Pay): 생산자가 가스전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투자비용의 대부분을 국제 금융단을 통해서 조달한다. 생산자는 원리금 상환에 따른 금융 리스크를 전혀 부담하지 않기 위해 생산된 LNG 전량을 구매자가 의무적으로 인수하는 계약조건을 강요한다. 이를 TOP라 한다. TOP 없이 계약이 체결된다고 하더라도 그 만큼의 가격 할증요인이 발생하기 때문에 구매자가 이를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은 없다. 이에 따라 구매자는 연간 구매물량을 무조건적으로 인수하고 구매대금을 지불해야 한다. 물론 LNG를 인수하지 않아도 그 물량에 해당하는 대금을 지불해야 한다

의무선적조항(SOP; Ship or Pay): LNG는 특수 제작된 LNG 수송선으로만 수송할 수 있으며, LNG 수송선 역시 3년 정도의 건조기간에 수억달러의 비용이 소요된다. 따라서 LNG 수송선 선주는 연간 수송물량을 보장받음으로써 자신의 금융 리스크를 제거하고자 한다. 결국 TOP와 유사한 경제논리에 의해 LNG 구매자는 수송선을 사용한 회수와 상관없이 약정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도착지지정(Destination Clause)과 재판매 금지 조항: LNG 도입계약 체결시 판매자는 구매자가 LNG를 재판매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 생산지에서 선적된 LNG 수송선은 특정 지역에서만 하역할 것을 강제한다. 물론 협상 과정에서 이 조항을 거부할 수 있지만, 이는 바로 도입가격의 상승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LNG 구매자간의 자유로운 LNG 교환거래가 불가능한 것이 LNG 시장의 특성이다

연간 균등공급 조항: 가스는 석유와 달리 일단 채굴에 들어가면 가스전 자체에서 저장이 불가능하며 지속적으로 균등한 양의 가스를 생산하여 판매하는 것이 생산자에게 최대의 이윤을 보장한다. 이에 따라 구매자는 연간 균등하게 도입하는 것이 국제 관행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에 포함되어 있는 대부분의 국가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절기 수요가 급증하기 때문에 계절간 수요격차를 완화시키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도입가격을 인상하고라도 동절기와 하절기의 도입물량을 조절하는 계약을 체결한다. 이 경우에도 동절기와 하절기 물량조절 비율은 6:4를 초과하는 경우가 드물다

또한 수송선과 저장 설비의 제약으로 예상치 못한 수요 증가에 공급이 탄력적으로 반응하기 어렵다. 공급이 부족하게 되거나 겨울철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단기 물량인 Spot 시장을 제한적으로 사용하여 수급 조절을 해왔지만, 도입·도매 경쟁이 시작되어 가스공사가 가지는 수급 능력이 상실된다면 2006년 기준으로 20% 이상이 비쌌던 Spot 물량 등에 의존도가 높아져 결과적으로 도매 천연가스 가격이 인상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천연가스 시장 자체가 가지는 특수성으로 인해 천연가스 물량 전반의 수급 정책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한국과 같이 겨울철 수요가 집중적인 나라에서 연중 균등하게 들여오는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여름철에 남는 물량을 인위적으로 소화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수급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저장 시설을 효과적으로 이용해야 하고 공급을 조절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바로 이러한 수급 조절 역할을 공적 기관인 한국가스공사가 수행하였기 때문에 지난 23년 동안 단 한 번의 공급 중단 사태 없이, 저렴한 가격으로 민생연료로서 천연가스가 기능할 수 있었다.

도매·도입 경쟁이 시작되면 기존의 가스공사가 가졌던 구매력이 상실되며 국내 도매업자 간 경쟁시장이 형성되어 도매가격을 오히려 인상하게 된다. 이미 2004년부터 직도입을 시작한 포스코와 SK가 추가적인 직도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이를 증명한다. 적극적으로 천연가스 직도입 시장에 뛰어들고자 했던 GS 등 일부 기업들이 직도입 자체를 시도조차하지 못했던 상황 역시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국제 LNG시장의 수급상황

2005년을 기점으로 국제 LNG시장이 판매자 중심의 시장으로 급반전하면서 구매자 입장에서는 조달 가능한 물량이 극히 제한적이며, 가격도 급등하는 추세이다. 이와 함께 ① 기존 LNG 수입국(한국, 일본, 대만 등)의 수요 증가와 대규모 신규 수입국(중국, 인도, 미국, 영국 등)이 등장하고, ② 인도네시아 등 기존 생산국의 생산 차질, 건설원가 상승 및 국제 분쟁으로 인한 신규 프로젝트(호주, 이란 등) 개발이 지연되면서 수요증가에 비해 공급이 못 미치는 초과수요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표 1>에 나오는 계획된 공급물량 중 호주의 Gorgon, Browse 프로젝트가 원가상승 등으로 파이낸싱이 지연되고, 이란의 Persian, Iran, Pars 프로젝트가 미국과의 정치적 분쟁으로 인해 지연되면서 2015년까지 공급물량이 당초 계획된 공급물량보다도 현저히 부족할 수 있다.



3. 가스선진화, 에너지 수급 불안 가중-> 요금 인상 불러
- 천연가스 산업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②
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말

송유나 님은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이며,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

가스공사 , 가스공사 , 에너지 수급능력 , 에너지수급능력 , 상실 , 3차선진화방안 , LNG수입국 , 의무인수조항 , 쌍방독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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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본문 내용 중 '도매 경직성을 불러오는 조항들' 표 바로 위 문단 세번째 줄의 철저히 구매자에게 유리한 천연가스 시장의...'은 맥락상 구매자가 아니라 판매자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