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행.정성진.채만수, 자본주의 위기 쟁점토론

진보전략회의 쟁점토론회 요약

진보전략회의가 주최한 ‘현 시기 세계 경제위기의 성격과 전망’ 쟁점토론회가 지난 9일 오후 3시 국가인권위 배움터(11층)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수행, 정성진, 채만수 등 세 연구자는 발제문 없이 의견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이론 쟁점을 다루었다.

세 연구자는 주로 현대 자본주의의 시기 구분, 과잉생산.과잉축적 위기 진단 등 연구 쟁점을 확인하고,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 분석과 좌파의 대응방향에 대해서도 코멘트 했다.

아래는 당일 토론 내용의 일부(요약)이다.

  진보전략회의 주최의 '현 시기 세계 경제위기의 성격과 전망' 토론회. 100여 명의 활동가와 연구자가 참석해 관심을 모았다. 사진/ 주영

김세균(사회자)
이번 세계적 공황은 1930년대 세계 대공황에 비견되거나 능가하는 공황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하는 거 같다.
실천진영의 대응과 관련 상당히 많은 이론적 쟁점이 존재하는데, 오늘은 이론 쟁점을 정리하는 토론회이다. 이 급한 판에 무슨 이론 쟁점이냐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올바른 이론적 관점이 올바른 실천적 관점을 가져오므로 이번 쟁점 논의가 실천적 함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발제문은 없고 세 분 선생에게 이 토론회에서 토론하고 싶은 쟁점을 질문형식으로 보냈고, 질문 사항에 대해 세 선생이 각각 준비를 해왔다.
우선 의견을 듣고 싶은 건 세계 공황을 이야기하기 전에 현대 자본주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현대 자본주의의 기점을 어디로 잡을 건지에 대해 질문하겠다. 19세기 말-20세기 초부터 현대 자본주의로 넘어왔다고 파악하는 학자도 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기점을 잡는 분도 있다.

정성진
현대 자본주의 기점이 언제부터냐 문제는 채만수 선생과 저의 해묵은 쟁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핵심은 국가독점자본주의(국독자) 여부이다.
20세기 자본주의 변화 속도는 어떤 경우 빠르기도 하고 또 점진적으로 변화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21세기도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지금 자본주의가 맑스가 자본론을 썼을 때의 자본주의와 다르다는 건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이론화에 있어 지금은 이야기하지 않지만 20년 전까지 좌파의 교과서로 받아왔던 인식들, 국독자에 대한 인식은 타당성을 상실한 것이라고 본다.
국독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는가는 여러 가지 상이한 접근이 있을 수 있다. 염두에 두는 것으로 소련이나 중국의 경제학 교과서에 따르면 19세기 이전까지의 자본주의는 자유경쟁 자본주의이다. 이 시기 맑스 자본론의 전개는 여러 운동법칙들이 적용되지만, 19세기 말-20세기 초를 경과하며 자본주의가 변모하는데, 과거 개념과 운동법칙을 가지고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레닌의 제국주의론 다음, 대공황과 국가 개입 전면화 이후 자본주의는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자본주의와는 다른 차원의 국가 개입으로 볼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중층적 이론, 즉 자본론+제국주의론+국독자론이라 하겠다.
20년 전쯤 아마 채만수, 윤소영 선생 등과 비슷한 논쟁이 있었는데, 우리 나라에서 국독자에 대한 이론적 정교화는 윤소영 선생이 했다. 국독자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평균이윤율과 독점이윤율의 편차를 정식화 했다. 국독자로 바라보는 것이 맞느냐 라고 했을 때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가. 자본의 집적과 집중으로 대자본이 출현한 것은 이미 맑스가 다 이야기한 것이다. 자본론의 타당성이 약화되고 별도의 이론이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평균이윤율과 독점이윤율은 새로운 이야기이긴 하나, 맑스 자본론 경제학비판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현재의 현실 경쟁 격화에 실증적으로 부합하지 않는다. 좌파 국독자론으로 현재의 위기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게 어디 있는지 궁금하다.

채만수
현대 자본주의를 19세기 말-20세기 초냐, 2차 대전 이후냐 라는 질문 자체가 문제가 있다. 현대 자본주의는 무개념적인 단어이다. 정확하려면 어떤 구조의 자본주의냐를 물어야 한다. 맑스가 활동하던 19세기 고만고만한 산업자본가들이 경쟁하던 자본주의냐 경쟁 법칙이 관철되고 독점자본이 특출하게 발전해서 그들이 이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냐의 문제이다.
현대 자본주의를 국독자로 이야기하는 것은 맑스 자본론을 덜 평가하는 게 아니라 그런 기초위에서 새로운 걸 반영하는 거다.
정성진 선생이 불가사의한 것은, 트로츠키가 맑스레닌주의 계승의 연장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현대 자본주의를 독점자본주의, 국독자로 규정한 것은 누구보다도 레닌이었다. 현대 자본주의는 독점자본주의 단계라고 했고, 대공황을 거치면서 국가가 생산과정에 전면적으로 개입하지 않고서는 자본주의가 유지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걸 가리켜 국독자라 이야기하고 오늘날 대공황도 그런 맥락에서 파악할 때 명백해진다. 좌파 활동가와 이론가 중에 누가 그러느냐고 물었는데 국내에서는 김성구 선생이 전형적인 국독자 관점에서 현대 자본주의와 그 위기를 진찰하고 있다. 맑스로부터 떨어지는 게 아니라 연장선상이고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생각한다.

김수행
현대 자본주의라고 하면 시대 구분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기준을 놓아야 단계든 뭐든 이야기할 수 있는데 자본론 3권 47장에 자본주의 지대의 기원이 있다. 맑스는 봉건사회 단계 구분을 했다. 노동지대의 단계, 생산물 현물지대의 단계, 화폐지대의 단계로 구분했다. 봉건사회가 자본주의사회로 넘어왔다는 거다. 자본주의로 넘어오는 과정에 농노들의 잉여노동 취득이 어떻게 변화했느냐로 단계를 구분했는데, 자본주의 단계를 구분하려면 자본주의 이후 사회에 대한 생각이 없으면 단계 구분은 의미가 없다.
자본주의 이후 세상은 노동해방, 인간해방이라고 보면 단계 구분이 달라진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적 민주주의, 그래서 인민들의 필요 욕구를 충족하는 단계라고 이야기하면 충분하다. 내 생각은 지금의 자본주의는 아직도 자본가들이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라고 이야기해도 문제가 없다고 본다.

정성진
레닌이나 트로츠키, 맑스를 받아들인다고 그걸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경제학비판의 측면에서 레닌의 제국주의론, 부하린이나 트로츠키의 독점자본주의, 국독자 개념은 맑스 자본론이 하지 못한 데 대한 이론적 기여가 있었지만, 이론적 체계로 볼 때 제국주의론의 독점자본주의 단계론이 맑스의 자본론을 대체한 건 아니다.

채만수
우선 현대 자본주의를 독자, 국독자 틀에서 분석하는 것이 자본론을 대체한 거냐는 건데, 그걸 대체하는 걸로 보는 사고가 사실은 변증법적이지 못하고 자본론적이지 못한 것이다.
이윤율 문제와 관련 평균이윤율과 독점이윤율의 틀이 자본론적이지 않다고 하는데 그건 자본론적이다. 이 자리에 없는 윤소영 선생과 서로 대립점에 서있지만 공통점은 현대 자본주의를 이야기할 때 이윤율의 데이터로 입증하려고 한다.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과학적으로 보인다. 통계와 그래프를 통한 접근이야말로 자본론적이지 않고 과학적이 아니다. 실증이 아니고 실증주의다.
맑스가 자본론에서 통계 이야기를 하지만 이윤을 이야기한 적은 없다. 이윤의 성격 때문이다. 한 번 있다. 자본론 1권 7편에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에서 통계를 제시한다. 이윤율 변화 자체가 아니라 소득세의 대상으로 되는 이윤의 변화이다.
대공황을 맞아 미국 정부가 개입하는 구제금융이 1조 달러가 넘는다. 환율로 1300조 원이 넘는다. 경제적 재생산 과정에서 위기에 국가가 어마한 규모로 개입하는 상황 자체를 눈감을 수 없다. 이게 국독자이다. 이렇게 국가가 엄청난 개입을 해도 꿈쩍 않는 상황이 뭘 의미하는가. 국가가 어떤 작용과 역할을 했느냐를 문제 삼지 않고서 우리가 이 위기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국독자 관점이 필요하다.

정성진
우리 나라에서 김성구, 채만수 선생이 그리 이야기하는데 누가 많이 주장한다고 해서 이론이 맞고 몇 명이 주장한다 해서 이론이 틀린 건 아니다. 내가 과문하고 무지해서인지 모르나 국제 좌파 이론 동향에서 국독자로 오늘날 위기를 설명하는 건 거의 본적이 없다. 어떤 데와 교류하는지 알고 싶은데, 국독자가 우리 나라에서 20년 전만 해도 금과옥조였다. 현대 자본주의를 당연히 그렇게 보고 소련, 중국 공산당 교과서에 그리 적혀있으니 받아들인건데 1990년대 이후에는 완전 일소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론 맹점들이 현실과 부합되지 않는 측면들, 현실 데이터와 부합하지 않은 부분들로 인해 기각된 거 아닌가.
1980년대 이후는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고 케인즈주의가 퇴각하는 시점이었다. 국독자가 가장 흥성했던 시기는 케인즈주의를 했던 시기였다. 좌파 이론의 지배적인 것이 국독자였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자본이 호황을 누리고, 소련과 동유럽이 존재한 시기이고,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하나의 힘을 발휘했던 때였다. 1990년대 이후 자본주의는 상당한 변화를 했다. 정책 레짐의 변화라 보지만 국가가 퇴각하고 시장 금권주의가 맹위를 떨쳤다. 1980-90년대 세계화가 전면화, 국제화 되면서 국독자라는 용어는 상충되고, 따라서 소멸되었다. 2008년 위기에서 국가의 개입이 나오니까 국독자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면 그랗게 볼 수도 있겠지만.
다음으로, 채만수 선생이 실증주의라고 하는데 맑스는 잉여가치율에 대해 계산하고 있다. 그게 무슨 실증주의인가. 맑스가 한 번만 계산했다고 해서 우리도 한 번 정도 부분적으로 할 건 아니다. 현대 자본주의를 잘 설명 할 수 있다면 최대한 해야 맞다.

김세균
채만수 선생은 자유경쟁자본주의에서 독점자본주의,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단계론을 지지하는 입장이고, 정성진은 단계론의 시기 구분이 불필요하다고 보는데, 단계가 필요하다면 어떻게 나눌 수 있나.

정성진
제가 아는 범위에서 단계론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비판적인 생각이다. 특정한 정세라든지 자본주의 장기파동적 인식을 말씀드렸는데 그런 수준에서 이야기할 수 있고, 국독자를 주장한 분 중 전향하지 않은 분들 빼고는 90년대에 금융화론으로 돌아섰다.
국독자를 폐기하고 금융화로 가야 한다, 정태인이나 이른바 케인즈주의자들도 그런 식으로 세상이 바뀌었다고 본다. 맑스가 지향한 반자본주의 이론과 다른 이론 담론, 가령 네그리 하트의 제국론도 그렇다. 제가 보기에는 단계론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측면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채만수
맑스가 자본론에서 잉여가치율까지도 데이터에 기초해서 계산한다는 이야기는 놀라운 이야기다. 제가 알기로 맑스는 논리적 근거로 설정했다.
신자유주의는 케인즈주의의 기초 위에 있다. 신자유주의에서 국가 위기가 축소됐다거나 작은 정부와 시장만능주의가 이루어졌고, 그래서 국가 역할과 규제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건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다. 신자유주의는 국가 역할을 축소하고 작은 정부를 한 게 아니라 대단히 큰 정부로 갔다. 독점자본에 대해서는 그들의 활동 영역을 넓혀주었다. 강화한 국독자이다.
신자유주의의 전형이었던 레이건 정부 하의 재정구조를 보라. 재정이 축소되는 게 그 경제적인 표현일 텐데, 신자유주의에서 국가 재정은 폭증했다. 국가가 개입해왔다는 거다. 1970-80년대 중반과 어떤 차이가 있나. 자본주의 위기 자체가 격화되므로 국가 개입 방식이 과거와 상대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다.

정성진
역사적 자본주의 설정은 타당치 않다고 본다. 아리기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이 비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하나의 진보적 대안이 된다고 이야기했지만 맑스주의의 입장이 아니다. 월러스틴도 그렇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문제를 구별하고 있다. 그점에서 국독자론과 상통하는 점도 있다. 현대 자본주의에 대해 브로델, 월러스틴, 아리기의 경우 시장경제를 구별하고 다음에 물질경제, 자본경제 3중으로 보는 식인데, 그러한 인식은 단계론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위기 설명에 있어 금융화 부분은 대다수 주류 이론가들의 분석과 달리 1980-90년대 자본주의의 경기 회복에 있어 미국 중심으로 한 경기회복은 장기 상승 국면이 아니라 마지막 하강에서 금융적 축적 국면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금융화 분석이 기여한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인 문제설정을 함축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잉여가치율에 대해서는 자본론 1권에서 예증하고 있다. 잉여가치율이 어떻게 해서 필요노동시간과 잉여노동으로 구분되는지 해명하기 위해 예증을 통해 논증했다. 예증 자체가 계산이 아니고 뭐냐. 맑스 3권에서도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김세균
자본주의 이후 사회 전망과 연결해서 이야기했는데, 독점자본에 대한 해석은 자본주의 이후 사회주의 건설에서 일차적으로 독점자본의 사회화 없이는 사회주의가 불가능하다. 중소자본도 많지만 중소자본을 일거에 그렇게 하는 것은 모험적이다. 자본주의가 발달되고 시장시스템 문제점을 보완하는 국가적 경제 조절메카니즘은 대체하는 사회주의 시스템을 만드는데 전용할 수 있을 것이다.

채만수
국독자는 생생한 많은 학자들에 의해 살아있다. 80년대 이후 사회과학이 부흥하면서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이야기될 때 레닌은 국독자를 최후의 단계라고 했는데 지금 어찌된 거냐. 레닌은 제국주의를 최후의 단계로 한 게 아니라 기계제 대공업을 최후의 단계라고 했다. 기계제 대공업이냐 수공업이냐 구분에 의해서 보면 기계제 대공업은 최후의 단계이다. 국독자냐 비국독자냐에서 국가의 전면적 개입 단계냐, 그렇지 않고도 자본주의가 자기발로 걸어가느냐를 보면 여전히 국독자이다. 90년대 이후 국가 주권이 약화되었느냐. 전혀 그렇지 않고 신자유주의 시대 국가 주권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가장 본질적인 측면은 계급적 억압이다.

김세균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 중반 이전을 ‘세계자본주의의 장기성장 국면’으로, 그 이후를 ‘장기불황 국면’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과잉생산의 위기와 과잉축적의 위기의 진실은 무엇인가.

채만수
많은 사람이 1970년대를 계기로 호황과 불황을 가르는데, 공황은 2차 대전 이후 10년 주기로 벌어졌다. 1970년대 초까지는 10년 산업순환의 격렬함의 진폭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1930년대 대공황이 엄청난 과잉 공황이었고, 2차 대전이 생산 근거지를 초토화시켰기 때문에 장기적 호황이 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1970년대 이후를 불황 국면으로 보느냐도 동의하기 어렵다. 1960년대까지를 장기적이고 상대적인 호황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1970년대 이후에도 호황과 위기가 반복되었다.

정성진
현실을 구체적으로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10년 주기의 산업순환 뿐 아니라 그걸 포괄하는 장기적인 파동으로 봐야 한다. 이론은 장기파동이론이라든지 그걸 원용하는 세계체제론을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개념은 적극 고려할 수 있겠다. 그점에서 채만수 선생과 개념을 달리 한다. 2차 대전 이후 70년대 초까지 장기호황이 있었다. 이는 현대 경제사회 모든 연구에 의해 정형화되고 사실로서 인정되고 있고 채만수 선생도 인정했다.
70년대 초반 이후 시기를 하나의 구조적인 위기, 장기불황으로 보는 것 역시 여러 사실에 의해 뒷받침되는 정형화된 사실이다. 대체로 입장을 달리하는 많은 정치경제학적 연구 성과에 의해 하나의 컨센서스가 이루어진 것이고, 주류 경제사관에서도 인정된다. 문제는 구체적인 위기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가 하는 건데, 장기불황이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장기 상승국면으로 들어갔는가, 그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견이 있다.
현재 돌입하는 공황이 단순한 산업순환이 아니라 30년대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가 될 건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본론에서 장기파동적 인식이 들어가 있지 않은 건 사실인데, 트로츠키와 콘트라디에프론 논쟁에서도 볼 수 있듯이 10년 주기로 설명이 안 되는 양상이 있고, 대공황이 터지기 전 볼세비키에 의해 논의되기도 했다. 장기파동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케인즈주의 개량주의와 관련하면 하나의 모델로 2차대전 이후 골든 에이지로 설명한다. 분배와 성장의 동시 실현 시기라고 하는데 그 부분은 유보해서 볼 필요가 있다. 장기파동적인 인식을 우리가 적극 받아들인다 해서 조절이론 포드주의론이 특권화하는 황금시대로 귀결되는 건 아니다.
2차 대전 이후 황금시대 장기호황이 상당기간 지속되었지만 긴 시기는 아니었다. 1945-60년 한국 전쟁 후로 보면 10년보다 조금 많은 정도로 하나의 장기 10년보다는 길지만, 2차 대전 이후 대량의 자본파괴를 거치고 그 바탕 위에서 가능했다고 봐야지 조절이론으로 설명하는 건 옳지 않다.

김수행
장기파동과 관련 콘트라디에프나 슘페터는 기술혁신을, 만델은 이윤율의 변화를 갖고 주장했는데, 왜 하필이면 주기가 50년이냐에 대한 이론적 설명은 없다. 경험상으로 이야기한다. 이론적으로 자본주의 경제가 50년 주기로 반복한다는 건 무리다.

(* 이어진 ‘과잉생산.과잉축적의 위기’ ‘이윤율 경향 저하’와 관련한 토론 정리는 생략)

김세균
1980년대 이후 미국 자본주의의 변화 발전은, 그리고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올해부터 본격화되는 공황의 특징은 무엇인가.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을 어떻게 할 것인가.

김수행
우선 금융공황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맑스도 자본론에서 금융공황을 이야기할 때 두 가지를 말했다. 하나는 독립적인 금융공황이 있고 하나는 산업공황에 뒤이어 나오는 금융공황인데 이를 구별했다.
독립적 금융공황은 자본주의 신용제의 발달로 주식, 채권시장이 발달해 실제로는 다른 문제가 없는데도 여러 풍문이나 상상력에 의해 금유시장이 혼란에 빠지는 것으로, 주가 폭락으로 산업이나 상업에 영향을 준다고 했다. 1987년 10월에 있었던 세계적인 주식시장 공황의 경우가 그렇다. 미 재무장관이 미 정부는 금리를 낮추고 달러 가치를 낮게 유지하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기관투자가들이 대폭으로 주식을 팔아 주가가 엄청나게 폭락한 경우도 있다. 산업이나 상업자본의 위기가 없었기 때문에 각국 중앙은행이 통화 공급으로 위기를 극복하는데 이는 지금의 금융공황과는 다르다.
하나는 주택산업에서 큰 투기가 일어난 것이다. 1990년대 아이티산업의 거품이 무너지고 9.11사태 이후 미국 경제가 위기 국면에 들어가니 FRB가 중앙은행의 금리를 낮추고 자금 공급에 들어갔다. 이 자금이 주택산업으로 들어가 주택 가격을 올리고, 주택담보대출 모기지 나오고, 파생금융상품 부추겼다. 이러다가 2006년 하반기 주택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주택산업에서도 과잉생산이 일어났다. 모기지 받은 사람들의 연체율이 올라가고 주택 모기지 관련 금융상품 가격이 폭락하면서 시작된 게 이번 공황이다. 이것은 금융기관이 그냥 뭔가 욕심을 부렸다든지 사기를 쳤다든지 한 게 아니다. 자본주의 전체의 위기라고 파악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세계적 대공황으로 폭발한 것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경제를 금융화시키고 금융기관의 금융활동을 활발히 해서 생산적인 부분의 생산활동을 감축한 데 기인한다. 고용도 안 늘고 임금 수준은 줄어들고 이런 수준의 경제바탕에서 주택산업의 붕괴를 통해 전 세계적인 공황이 일어난 것이다.
다음으로, 지금 세계적 대공황의 극복을 위해서는 어떡해야 하느냐. 좌파들은 대체로 케인주주의 정책에 적대적인 태도를 많이 취하는데 꼭 그럴 필요가 있는가 싶다. 지난 1월 1일 메사츄세츠대와 뉴스쿨 교수들이 오바마에 공개 선언문 비슷한 걸 하나 보냈다. 공황을 어떻게 해결할 거냐 묻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경제회복을 촉진하기 위한 대규모 재정확대 프로그램과 더 푸른 경제로의 전환, 노동.가족.공동체에게 사회적으로 균형적인 세력과 건강을 회복하는 경제정책, 금융기관에 대한 인민의 필요의 제기와 금융안정을 위한 금융재편, 국유화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세계 경제 회복을 위한 공정하고 균형잡힌 국제적 협력과 조절에 우리 좌파가 어느 정도 개입이 가능할 것인지, 내용은 어떤 것이지 등을 치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안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실제로 케인즈주의 일반이론에서는 금리생활자를 죽여야 한다고 했다. 금리생활자는 고리대금업자 뿐 아니라 증권 투기 다 포함된다. 투자를 사회화해야 한다. 투자를 사회가 규제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다 한다. 이런 건 좋은 아이디어인데 이 아이디어가 자본주의 생산관계, 즉 자본가가 착취하는 문제는 손대지 않고 주장되어서 문제다. 이에 대해 맑스는 부르주아소시얼리스트라고 한다. 치명적 약점이 있지만 우리는 여러 가지를 연구해야 한다.

채만수
금융위기에 대한 김수행의 판단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부르주아언론이 금융위기이고 실물경제로 전이되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것은 정확히 사태를 거꾸로 보는 것이다.
과거 신뢰받던 세계적인 좌파라고 하는 사람도 그런 이야기를 해서 문제다. ‘진보평론38호’에서 달러지배체제에 대한 관측도 있다. 여러 측면이 있으므로 그렇게 볼 수도 있는데, 경제위기는 달러지배체제의 위기를 초래하겠지만 그게 주요원인이 되어서 발발한 게 아니다. 그 글이 갖는 화폐론에 대해서는 글로 준비하고 있다. 사회주의, 꼬뮌주의로의 이행에 있어 증권시장 이행 부분은 천재적인 아이디어로 기발하다. 이 경우 혁명은 필요없고 사회연대기금으로 사회주의로 가는 거다.
현 위기는 전형적인 과잉생산의 위기다. 자본주의 내적 모순이 관철된다. 지난 연말에 한 토론회에서 왜 그렇게 과잉생산 위기를 강조하느냐 라고 물어서 대답했는데, 첫째는 이 위기의 본질 원인 자체가 그것이니 강조하는 것이고, 둘째는 현재 위기 과잉 파악은 역사적인 의의가 있다. 과잉생산 위기는 절대적인 과잉이 아니고 자본주의라는 생산양식 체제이기 때문에 나오는 과잉생산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역사적으로 자기생명을 다했다는 것, 새로운 생산체제, 사회체제로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30년대 이후 케인즈주의, 신자유주의를 포함하는 국독자, 국가의 경제위기 완화 회피의 모든 노력이 위기가 증폭하면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걸 현재 사태가 보여주고 있다. 엄청난 규모로 오는 건 어떤 계기를 통해 극복되어도 의미가 없다. 오히려 더 큰 위기가 폭발 할 것이다.
요인이 뭐냐. 첫째는 자본간 축적 과잉, 생산 과잉, 경쟁 격화로 과학기술혁명을 비약적으로진행시켜온 것이다. 노동자와 산노동을 배재해 모순이 격화되어왔다. 둘째, 신자유주의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세 역시 모순을 격화시키는 요인이다. 셋째, 소련 등의 붕괴로 독점자본의 노동자 밀어붙이기 공세를 조성한 것도 현재 위기 격화의 요인이다.
이명박 정부가 최근 독점자본과 부자를 위한 세금 정책을 편다. 과거 노동운동과 노동자 문제에 관심과 애정을 가졌던 이영희 노동부장관이 반노동자적인 최저임금법, 비정규법 내오는 사태들, 전반적인 파시즘 강화와 정권 기반 유지를 위한 언론 관련 움직임, 코미디 같은 미네르바 체포, 이런 거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금년과 내년에 큰 격돌이 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노동자계급이다. 작년 노사관계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노사관계의 상대적 안정의 보답은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감옥에 가있어야 한다는 것과 한 짝이다. 작년에 대립적이었다면 이석행 위원장이 감옥에 앉아있을 수 있겠는가.
민주노총이 아직까지는 계급적, 전투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투쟁, 철탑과 굴뚝을 오르고 천막을 치는 것도 상징적인 상황이다.
금속노조의 일자리 나누기는 표현은 재밌지만 1930년대 이후 서유럽, 북유럽 사회복지제도 사민주의 제도가 어떻게 확립되었는지 역사적 맥락을 봐야 한다. 사민주의 사회복지제도는 투쟁을 했으므로, 혁명적이어서 획득한 것이다. 대공황이 벌어지는 속에서 자본, 국가와 타협하고 협상하면 어찌되겠나. 대중적으로 아래로부터 극복하고 새로운 투쟁 기풍을 새워낼 수 있느냐의 정세에 달려 있다.

정성진
위기는 경제학자들이 이야기하듯 탐욕과 고삐 풀린 금융의 과도한 유동성 규제 미비 때문이 아니다. 위기는 깊고 오래 되었다. 오래 묵은 게 터져나왔다. 70년대 초부터 시작된 자본주의 경제불황이고, 그 사이 위기에 대한 지배계급의 대응이 있었지만 결국 위기 극복에 실패했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 재편과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 강화, 세계화가 추진되고, 양극화 심화와 노동자의 구매력 및 실질임금의 정체는 자본의 과잉생산 경향의 다른 한편이다.
이윤율 저하에서 착취율 증대로 만회하면 다시 구매력 증대와 과잉생산이 악화된다, 가계부채의 증대는 그야말로 거품을 어마어마한 규모로 불려 커지는 과정에서 초래되었다. 위기 처방에 있어 케인즈주의 처방은 다 안 되었고 먹혀들지 않았다. 심도나 규모에서 위기는 글로벌 위기로 시작되었다. 비동조화 이야기도 하지만 중국은 올해 5% 대로 뚝 떨어지는 경착륙이다. 설 명절 때 1억 명이 집으로 가는데 이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을 걸로 예상된다. 브릭스와 신흥시장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많은 좌파들은 세계적으로도 이 위기를 금융과 서브프라임모기지 측면을 강조해서 금융위기라고 하는데, 채만수 선생의 지적처럼 케인즈주의 위기가 아니라 맑스적 위기이다. 그러므로 해법도 맑스적 해법에서 발견될 수밖에 없다. 이번 위기는 1930년대 대공황 수준으로 장기화되고 오바마의 재정부양책이 어느 정도 먹히더라도 위기 반전이 아니라 지지부진하게 질질 끌고가는 효과 정도일 거다.
케인즈주의에 대한 비판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유화 요구라든지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손실을 사회화 하는, 돈 나오는 거는 지들이 다 먹고 손해되는 건 국유화를 통해 대중에게 떠넘기는 사이비 국유화를 진정한 의미의 노동자 통제를 통한 국유화 요구로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자본에 반격을 하는 것, 임금삭감 반대, 비정규직 철폐, 노동강도 강화 반대, 사유화 반대의 노동자 투쟁을 건설하는 데 방점을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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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 경제위기 , 공황 , 좌파 , 과잉생산 , 채만수 , 과잉축적 , 김수행 , 정성진 , 이윤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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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게 뭐니?

    사민주의.트로츠키주의.스탈린주의, 자본주의 위기 쟁점토론.
    제대로 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은 하나도 없구나. 에휴.
    다음에는 오세철 교수.윤소영 교수 모셔놓고 토론을 해보도록.

  • ㅇㅇㅇ

    오세철 좌익공산주의자 국가보안법 말고 내란죄로 처벌하라니 기가 막힘. 윤소영 알뛰쎄 발리바르 주의자 이쪽이 오히려 더 사이비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