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 차라리 죽여라!

정부는 덤프노동자들의 피맺힌 요구에 답해야

5월1일 파업을 시작하다

5월1일 서울, 경기, 인천과 전국의 여러 지역에서 이른 새벽부터 덤프 트럭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 지부별 지침에 따라 모처로 집결하여 총파업 출정식 대오를 갖추어 가고 있었다. 최초의 덤프노동자 총파업이 서막이 오른 것이다.
각 지부별 출정식을 마친 조합원들과 이제 막 대열에 합류하려는 덤프노동자들이 뒤섞여 오전 5월1일 오전11시에는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모였다. 어림잡아 1,300명 정도의 인원이었다. 붉은색 펼침막에는 '차라리 죽여라'라는 피맺힌 구호가 적혀있었다.

덤프노동자들을 모이게 만든 것은 일하면 일할수록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삶에 대한 분노였지만 한결같이 얼굴에는 환한 희망으로 가득했다. 우리 덤프노동자들도 선배 노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모일 수 있구나'라는 감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별적으로 일하며 한 탕이라도 더 뛰어야 한 푼이라도 더 벌어 가는 도급노동의 현실이 그 동안 덤프노동자들을 서로 끝 모를 경쟁의 나락을 떨어뜨렸다.
이렇게 모여든 덤프노동자들은 민주노총 노동절 행사에 결합한 후 서울대로 이동하여 숙식을 하였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제법 많은 수가 이탈 없이 이동하여 서울대 노천극장에 모였다.

학생회관 복도 여기저기서 새우잠을 자고 아침이 되어 과천 정부종합청사로 향하려 할 때는 약간 당황스러웠다. 300명도 채 남아있지 않았다.

[출처: 건설운송노조 덤프연대]

과천에서 한 판!

과천에 도착했을 때 알아서 먼저 와 있던 동지들이 있었다. 그러나 다 합쳐서 고작 300명을 조금 넘기는 수준이었다. 정부는 면담요구를 거부했다.
그러다 시간이 차츰 지나면서 덤프노동자들이 계속 불기 시작했다. 다시 전날 마로니에 공원에 모였던 인원에 육박하기 시작했다. 덤프노동자들의 요구를 가득 담은 덤프트럭도 들어오고, 화물연대와 수도권지역 건설노조들을 비롯하여 연대대오도 속속 결합했다. 그러다 1,500명을 훌쩍 넘기자 면담은 결국 성사되었다.

절박한 요구를 생각한다면 면담결과를 기다리며 마냥 앉아 있는 것은 사치스런 일이었다. 운동장에 모였던 1,500명의 동지들은 사수대를 앞세우고 청사 앞까지 이동하여 경찰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한 목소리로 요구를 외쳤다.

면담 결과는 요구가 전면적으로 수용되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공식적인 대화 창구를 만들어 내고 일부요구에 대해 진전된 정부입장을 얻어냄으로써 조합원들의 사기는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이제 투쟁을 보다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파업을 실현시키는 것이었다. 파업을 통해 현장과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조합원들은 1박2일간의 상경투쟁을 마치고 다시 각 지부별로 해산했다.

지부별 투쟁, 확장되는 조직

지부별투쟁을 벌일 당시 조합원들이 많이 잡아 2,000명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수도권 지역 약 20,000대의 덤프트럭 가운데 15,000대 가량이 운행을 멈췄다. 이는 조합원들의 강력한 저지투쟁의 영향도 있었지만 비조합들의 파업동참이 큰 힘이 되었다. 비조합원들의 동참은 파업 초기의 대단한 위력을 갖는 무기가 되었지만 노동자집단으로써 각인 되지 못한 비조합원들의 파업대오는 5월10일 이후 현장투쟁력이 급격히 약화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현장에서 파업을 지키기 위해서는 약간의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부당한 수사도 많았다. 경기도 화성경찰서의 경우에는 부상당한 조합원을 연행하며 치료를 약속하였으나 결국 경찰서에 곧바로 연행하여 조사를 시작했다. 이에 분노한 조합원들과 지역의 동지들 300여명이 화성경찰서를 강력하게 항의 방문하여 결국 조합원을 치료받게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연행된 조합원들이 20명을 넘었다.

경기지역의 파업은 곧바로 충청권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조합원들도 주변 지역을 돌며 파업을 홍보하였다. 수도권 지역의 파업소식을 언론을 통해 접한 충청, 강원 지역의 덤프들이 스스로 운행을 자제하기도 하고 최소한 수도권 지역으로 이동하여 일을 하려하지 않았다.
정말 전국에서 빗발치는 가입문의가 있었다. 일일이 찾아가 상담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 연락처를 확인하고 파업이후를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여건이 조금만 허락했더라도 각 지역을 돌며 조직확대를 전담할 사람을 배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5월10일 총회와 현장복귀 투쟁

5월8일 일요일이 다가오면서 9일 월요일부터 파업을 풀고 업무에 복귀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조합원들 내에서는 동요가 일었다.
파업지도부였던 각 지부장들이 주축이 되었던 투쟁본부에서는 신속히 회의를 통해 주말을 넘겨 파업을 지속한다는 입장을 정리하고 10일 화요일에 전체 조합원들이 집결하는 총회를 소집하였다. 총회 투쟁은 일반적인 추측을 넘어서는 강고한 투쟁을 벌이겠다는 투쟁본부의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분명한 지침을 내리고 그것을 집행할 수 있는 투쟁본부의 역량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총회는 파업 열흘을 맞는 시점이지만 인원이 줄지 않고 오히려 5월2일 과천에서보다 더 많은 동지들이 동참했다. 그곳에서도 가입원서를 새로 쓰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총회안건은 투쟁경과 보고와 향후 투쟁전술에 관한 것이었다. 향후 투쟁전술을 결의하는 투표는 '파업을 계속 할 것인가? 그만할 것인가?'라는 조금은 거칠고 단순하게 던져졌다.

5월9일 투본회의에서의 지부장들의 다수 의견은 이미 조합원들의 동요가 있고 비조합원들의 동참에 한계가 왔기 때문에 결과는 아마도 파업을 접는 것으로 나올 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상당한 차이로 계속 파업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조합원들은 덤프연대 의장의 선창에 맞춰 힘찬 구호를 외치고 해산하였다.
그러나 5월9일 월요일을 지나면서 지부별로 투쟁력 차이가 급격히 벌어졌다. 총회가 있던 5월10일 밤에 있었던 투본회의에서는 주변정황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주체역량에 대한 판단을 두고 많은 의견만 오가고 구체적인 전술을 결의하지 못했다. 결국 투본은 5월11일에는 결국 12일 07시부로 현장복귀투쟁으로 전환한다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비조합원들의 동향과 주체역량의 한계 그리고, 정부의 노사문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통한 강력한 압박 등의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파업을 계속한다는 결의를 한 총회를 불과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파업을 접는 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일일 수 있다. 이것이 조합원들의 결의를 실천으로 묶어 세울 만한 체계적인 틀을 갖고 있지 못해서든, 지도부의 후퇴이든 향후에 차분히 평가해볼 일이다. 그리고 곧 다가올 투쟁을 보다 탄탄하게 준비하는 치밀한 계획도 필요하다.

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작년 5월초에 사무실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계기가 되어 덤프노동자들을 만나고 조직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부당한 과적에 항의하고 운반비를 인상하기 위해 서울북부지역 덤프차량 150 여대가 파업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긴 통화를 마치고 태능을 지나 경기도 남양주의 공터에 도착했을 때는 누구를 붙들고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망설여 질 정도였다. 몇 일 동안 덤프트럭을 세우고도 누구를 상대로 싸움을 해야 할 지조차 분명하지 않은 가운데 사람들은 실망하며 조금씩 떨어져 나가고 있던 중이었다.

몇 일 동안 그곳을 다니며 나름대로 투쟁을 준비했던 사람들과 당시의 투쟁을 아쉽지만 빨리 접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가능한 전국적인 조직을 건설하기로 하였다. 현장에 나와서도 여기저기서 술을 먹는 조합원들을 설득하고 토론하며 우리가 초동주체가 되어 전국 6만 덤프노동자들을 조직하기로 결의하였다. 덤프연대라는 이름도 그 자리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딱 1년전, 구호하나 외칠 수 없었고, 교섭상대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던 150명의 노동자들이 좌절하지 않고 열 배로 덩치를 키워 한판 싸움을 벌인 것이다.
이번 파업의 성과에 대해 아직 많은 덤프노동자들이 만족할 만한 것이 아닌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덤프노동자들은 좌절하지 않고 조직을 키우며 투쟁을 준비해나간 경험을 갖고 있다. 또 이미 여기저기서 함께 하고자 하는 덤프노동자들이 나오고 있다.

보다 더 큰 투쟁은 곧 다시 시작될 것이다.

< 덤프노동자 요구 >

* 대 정부 요구

- 과적 관련 법 개정 이전까지 시기에 덤프에 대한 부당과적 단속 금지 대책을 제시하라
- 실질적인 과적 방지를 위해 현장에 측중계 설치 의무화, 공사 허가 과정에서부터 과적 금지 방안 삽입하라
- 덤프기사 들에게 직접적인 유가 보조 실시하라
- 다단계 하도급과 알선구조 근절방안 수립하라

* 대 사용자 요구

- 사업주들은 현장에 측중계를 설치하고, 부당한 과적을 요구하지 말라
- 부당한 과적 지시나. 불법 재하도급, 다단계 알선 시행을 원청과 하청간의 입찰 평가기준에 반영하라
- 사업주들은 품셈에 반영되어 있는 덤프의 운송단가를 보장하라
- 전문건설업체들은 덤프연대의 실질적인 교섭 요구를 수용하라


[%=영상1%]
덧붙이는 말

건설운송노조 덤프연대 건설과 이번 파업투쟁은 1년여에 걸친 민주노총 서울본부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지난 겨울 운명을 달리한 민주노총 서울본부 박상윤 전 사무처장의 명복을 빈다.
장동지 님은 전국건설운송노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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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운송 , 덤프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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