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반응도 대체로 냉담하다. 야 3당은 일제히 강력한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물론 각각 반대 근거들의 차이는 있다. 연정의 핵심 상대인 한나라당은 정권의 실정에 대한 회피용이라고 하면서 민생현안 집중이라는 명분을 내세워서 반대하고 있고 민주당은 자기 당에 대한 말살정책이라고 하며 분노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보수세력의 대야합 제안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반응들이 모두 이러다 보니 아무 메아리도 없는 의미 없는 연정 제안, 이제 그만 거두라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면 정말 물 건너 간 것일까? 연정 제안은 이런 한바탕 소동으로 끝난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노 대통령이 그간 밀월관계에 있던 삼성이 X파일 사건으로 궁지에 몰리니까 삼성 살리기 긴급 구호 작전으로 급작스레 제안한 것에 불과한 것일까?
야당과 여론 반대에도 여당 내 논의 활발
그러나 여당 내에서는 처음과 달리 날이 갈수록 논의가 분주하게 진척되고 있다. 호남지역 출신 의원들 중 일부는 탈당까지 거론하며 연정에 따른 입지 축소를 우려해 긴장해 있는 반면 이른바 친노세력이라고 불리던 의원들을 중심으로 연정론에 보다 적극적인 옹호와 공론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연정론을 옹호하는 의원들은 한나라당을 지역주의에 기생하는 정치세력이라고 비난하고 심지어는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노골적으로 비아냥대며 한나라당을 몰아세우고 있다.
또한 노 대통령의 이번 제안을 옹호하는 쪽은 언론이나 야당들이 노 대통령의 진의를 왜곡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즉 노 대통령 제안의 핵심은 연정이 아니라 선거구제 개편을 통한 지역분할 구도 타파라는 것이다. 망국적인 지역분할 구도야 말로 한국 정치 발전을 가로 막는 고질병이요, 이것을 타파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의 노 대통령의 정치적 숙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권력까지 기꺼이 내 주는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노 대통령의 제안을 비호하고 있다.
그럼 노 대통령 제안의 핵심은 연정일까? 아니면 지역구도 타파일까? 또는 어느 것이 목표이고 다른 하나는 수단일까?
90년 3당 합당은 파시즘-보수대연합
흔히 그 상황과 형태의 유사성 때문에 90년 3당 합당과 이번 제안을 비교한다. 그 때도 4당 구도였고 여소야대 국면이었다. 그런데 잘 보면 그때의 여소야대 국면은 이미 그 이전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비록 87년 대선에서 정치권내 야당의 분열로 민주화세력의 패배로 끝났지만 87년 민주화 대투쟁,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성장한 민주 역량은 군사정권을 압도할 만큼 성장했다. 그것이 결국 총선을 통한 여소야대 국면을 창출해 낸 것이다.
당시는 아직까지 민주, 민중세력들의 정치적 이익을 직접적으로 대변할 제도권내 다른 정치세력들이 없었으므로 그것은 일정하게 제도권 야당을 통해 표출되었고 이에 따라 당시의 노태우정권은 정치권내의 정국주도성 뿐만 아니라 이후 민주, 민중진영과의 대결 구도에서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야당도 한편으로는 정치권 내에서의 정치적 주도권을 잡아야 되겠다는 강렬한 욕심이 있었지만 다른 한편 이미 87년 이후 나날이 성장해가는 민주, 민중세력들의 요구가 자기네들이 부담 없이 받아 안을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고 있다는 데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집권세력이 내놓은 권력분점과 양도의 미끼를 받아 쥔 그들은 향후 정국주도권과 민주, 민중세력들의 성장에 따른 불안감을 한꺼번에 해소시킬 수 있는 3당 합당에 기꺼이 찬성한 것이다.
그런데 90년의 3당 합당은 합당 이후 곧바로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표가 야당시절 그렇게 반대하던 날치기 통과를 강행한데서 보듯이 어디까지나 민정당을 중심으로 한 노태우 군사정권이 주도하는 합당이었다. 즉 파시즘 세력이 주도하는 파시즘-보수대연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연정 제안은 신자유주의 보수대연합
이번 연정 제안은 그 성격이 어떤 것일까? 여소야대 국면이라는 상황과 권력을 나누어 주겠다고 제안한 점에서는 매우 비슷한 것 같다. 그러나 다른 것도 있다. 그간의 민주 역량의 성장은 이미 파시즘 세력을 권력의 주변부로 밀어내기까지에 이른 것이다.
사실 한나라당의 김용갑, 정형근 의원이나 조갑제, 조선일보 등 극우세력이 아직 우리 사회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정치나 사회의 주도세력에서는 이미 밀려나 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이 정책이념 노선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한 것이다.
당장 현안 문제로 볼 때 부동산 대책에서 무슨 차이가 나겠는가! 비정규직 노동자 대책에서 차이가 나겠는가! 사실 당내 의원들간의 차이나 양당간의 차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가장 첨예하게 부딪혔던 국가보안법 문제조차도 부분적 개정이나 아니면 대체입법 마련 수준에서 충분히 통일될 수 있는 정도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 전에 또 의미심장한 말을 한번 했다. 이제 권력은 시장에 넘어간 것이라고. 실제로 우리나라는 박정희 시대의 개발 독재 때는 물론 새 천년에 들어 서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본에 대해 정치권력의 힘이 절대 우위에 있었다. 정말이지 정치권력의 지원에 힘입어 기업은 엄청나게 클 수도 있고 한 순간에 비리의 누명을 쓰고 도태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때로는 정주영 전 현대 회장이 그랬던 것처럼 재벌들이 정치권에 직접 진출하려는 시도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달라졌다. 진짜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즉 자본의 손아귀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정치권은 이제 그들의 들러리로 전락해 간다는 말이다. 자본의 주도권은 IMF이후 급속한 시장개방과 이에 따른 초국적 자본의 국내 진출, 신자유주의 이념의 전파와 함께 더욱 가속화되었다.
한 예로 FTA 체결과정은 국내농업보호와 농민들의 생존권 요구에도 불구, 자본의 요구와 신자유주의 논리 앞에 정치권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거 운동권 출신이고 개혁적 성향의 의원으로 분류되던 의원들이 이미 정치이념적으로 신자유주의에 투항하고 있음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이미 국내시장의 상당 부분을 점령하기 시작한 초국적 자본,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일정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국내 재벌 그룹, 이것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논리가 우리 사회의 권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제 그들의 정치적 이해를 보다 안정적으로 뒷받침해 줄 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 바로 연정 구상의 배경이다.
지역분할 구도 타파는 보수대연합의 중요한 수단
그런데 그들은 하찮은 것 때문에 분열되어 있다. 바로 지역 구도의 덫에 갇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것을 깨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의 작은 이해들 때문에 큰 흐름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토호들의 지역적 이해에 안주하다 보면 국가적 차원(?)의 거대한 흐름과 이익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도대체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는 여당 의원의 한나라당 질타는 다른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전혀 당신네들의 이익을 해치는 것이 아니니 안심하라는 말로. 물론 한나라당의 거부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린 우리끼리의 이익을 좀 더 챙겨서 함께 하겠다고 말이다.
물론 이런 연정 구도 구상은 노 대통령 자신의 입지와도 무관한 것은 아니다. 사실 지금과 같은 정치 구조 하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 역시 전임 대통령처럼 임기 내에 한정될 수 있다. 그리고 자칫하면 엉뚱한 문제로 임기 후에 곤욕을 치를 수도 있다. 그러나 연정이 실현되면 그게 꼭 내각제까지 가지 않는다 치더라도 각 세력들의 힘의 균형 관계에 의해 충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임기 내에서 자신과 열린우리당 세력의 주도성도 마찬가지다. 지금 상황에서 권력의 어느 정도까지를 내준다 해도 정국 주도권을 틀어 쥘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의석수에 있어서도 그렇고 지역 구도가 깨졌을 때 얻을 수 있는 프리미엄도 그렇다.
연정 논의는 이제 시작
그래서 노 대통령의 이번 제안은 일시적이고 즉흥적인 게 결코 아니다. 이번 제안이 삼성에 대한 비난으로부터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는데 기여했을지 모르지만 결코 그런 단순한 이유에서 제안된 것도 아니다. 그리고 한나라당 흔들기와 같은 정치적 술수와 테크닉으로 한정해 볼 수도 없다. 꼭 이 시점에 의미를 두고자 한다면 아직 어디까지 확대될지 모르는 X파일의 후유증을 정치권의 단합(또는 담합)된 힘(연정 분위기)으로 돌파해 나가자는 것일 게다.
결국 이번 연정제안은 지역구도 타파를 통한 신자유주의 보수대연합 구축에 있다고 할 것이다.
앞으로도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할 것임에 틀림없다. 때가 되면 한나라당 쪽에서 응답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열린우리당 내에서 일어나는 일정한 분열 양상은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호남지역 출신이라 향후 입지 문제 때문에 갈라져 나가는 것이라면 오히려 그가 지역주의 틀에 갇혀 있다는 비난을 뒤집어쓰기 십상일 뿐더러 다음 큰 판을 짤 때 민주당 역시 통합 대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당 정체성 문제로 반발하는 의원이라면 결국 대단한 각오가 없는 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떠나도 문제없다. 사람이 그 밖에 없는 것이 아니므로 대체하면 되니까.
일시적으로 곧 잠잠해질 수도 있다. 또한 연정이나 정치권의 통합 과정이 한순간에 일사천리로 진척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요구와 조건들은 상당히 형성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계기다. 아무래도 선거철이면 정치적 요구와 국민적 관심사가 커진다. 내년 봄에는 지방자치 선거가 있다. 물론 그전에도 보궐 선거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대권을 둘러싼 각 예비후보들과 정치세력들의 움직임도 활발할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들은 항상 뇌관이 될 수 있다. 이제 판은 이미 벌려져 있다. 그래서 분위기만 된다면 누구라도 쉽게 뇌관을 건드릴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아마 때로는 남들이 그 뇌관을 강타하는 것을 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자신이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할 것이다. 어쨌든 그는 뒤에서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은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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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