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DJ정부 도감청 시인은 연정 구상 일환

국가정보원 김승규 원장이 8월 5일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국민의 정부 시기인 2002년 3월까지 도감청을 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는 국민의 정부에 들어서는 절대로 도감청이 없다는 당시의 발표를 뒤집는 것으로 DJ 정부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했다. 휴대폰 도청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당시의 발표 역시 거짓말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국민들 모두 속은 셈이 되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왜 이번에 국정원에서 이런 발표를 했느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7월말에 청와대에 이런 내용이 보고된 것으로 보아 이 발표는 바로 노무현 대통령의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이 겨냥한 것은 3김 정치판 전체

민주당에서는 DJ죽이기를 한다고 펄펄뛴다. 그러면서 도청사실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는 보고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설사 보고되지 않았다 치더라도 김대중 대통령이 책임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 노무현 대통령은 왜 현 정부를 탄생시킨 어머니 정부라고 할 수 있는 국민의 정부에 화살을 겨눴을까? 그러잖아도 심상치 않은 호남 지역의 대대적인 민심이반을 감수하면서까지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X파일 내용에 대해서도 공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 결국 과거에 대해서 가능한 한 다 밝히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민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DJ를' 겨냥한 것이라기보다는 'DJ까지' 모두 밝히겠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럼 왜 바로 전임 대통령과 관련된 것까지 다 밝히겠다는 것일까? 구세대 정치를 대표하는 김영삼, 김대중 두 전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즉 3김은 이제 그 정치적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나 한 때 그들로 대표된 지역 분할 구도는 한나라당, 민주당 그리고 자민련 또는 중부권 신당으로 아직도 건재하다. 뿐만 아니라 그런 구도 속에서 정치적으로 성장한 정치인 역시 정치권에서 나름대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역 분할 구도 깨기 위해 구 정치판 전체 드러나게 해야

연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런 판을 깨야 한다. 지역 구도가 끌어당기는 힘이 있을 때 정치인들은 쉽게 이 판을 깨고 나오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감청 수사를 통해서 3김과 그들이 주도했던 정권이 도덕성에서 타격을 입고 그들로 대표되는 지역분할 구도가 퇴행적 정치행태로, 부도덕의 상징으로 되어야 지역 구도가 깨어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X파일 수사를 통하여 구시대 정치인들의 구체적 비리들이 터져 나오면 이런 판은 더욱 흔들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정당 단위의 행동 통일이 깨지기 십상이다. 같은 정당 틀 내에서도 연루된 정치인과 그렇지 않은 정치인들이 분리될 것이다. 또 이런 분리를 봉합하고 당으로 결속하기에는 조건이 그다지 좋지 않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뚜렷한 대권주자를 중심으로 힘의 중심이 형성될 터인데 당 소속이 없는 고건 전 총리를 제외하고는 당마다 각축 양상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되고 이합 집산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 될 공산이 크다.

민주당조차도 DJ가 타격을 입으면 일시적으로 지역성에 근거해서 호남지역의 지지를 더 확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X파일 공개에 따른 연루자들이 생기고 장기적으로 지역 구도가 파괴되면 더 이상 DJ 호남권이라는 지역성에 근거해서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기는 힘들게 될 것이다.

X파일 정국 처리는 연정 구상 현실화의 호재

그렇다면 바로 이번 X파일 정국이야말로 노 대통령에게는 연정 구상 현실화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셈일 것이다. 물론 한 순간에 당장 되지는 않더라도 분위기를 형성시켜주게 될 것이다. 지역 구도를 깨고 구 정치인들을 일정하게 솎아내는 것을 통해 연정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각 당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분열들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말이다.

그럼 이렇게 형성되는 정치세력의 지향과 정치적 기반은 무엇이 되는 것일까? 그것은 WTO체제, IMF 사태를 겪으면서 국내에 급속도로 영향력을 확대해온 초국적 자본과 국내에서 꾸준히 영향력을 확대해온 국내 거대 자본 등 국내외 거대 자본이 될 것이다. 이들은 때로 일정하게 대립하기도 하면서 각자의 영역을 구축해 가고 있다.

흔히들 이번 X파일 사건을 통해 삼성이 많은 타격을 입었고 앞으로 많은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한다. 단기적으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이런 정경유착 스캔들이 있었을 때처럼 삼성 역시 이번에도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 재벌들과 정치권 모두 이런 불합리한 정치 자금 제공은 없어져야 하며 투명화해야 한다는 주장들을 내세울 것이다.

X 파일 사건 처리를 통해 신자유주의 이념 공고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재벌들로서는 일차적으로 정치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투명화 된 정치자금 제공을 통해 오히려 음성적이 아닌 더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정치권에 자기의 영향력 확대를 꾀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치 자금의 투명화는 초국적 자본의 이해와도 매우 합치한다. 자기의 이윤들이 엉뚱한 곳으로 새는 것을 막을 수 있어서 좋고 경제적인 결정들이 자기들 몰래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외적 요인에 의해 흔들리는 것을 막을 수 있어서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부분들 중 상당수는 국내외 자본이 서로 이해를 같이 할 것이다.

이런 국내외 자본의 이데올로기가 바로 신자유주의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하여 국내시장의 개방화도 가속화되고 국내자본의 외국 진출 역시 더욱 힘을 받을 것이다. 각 나라들과 FTA의 지속적인 추진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시장 논리에 의해서 농업 같은 경우 대농 중심으로 소수만 남겨두고 도태시키게 될 것이다.

연정 대상은 장기적으로 기존 모든 정치세력

지역 구도가 무너지고 이에 기반한 구 정치세력이 도태되면 이런 신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한 정치권의 결합은 좀더 수월해질 것이다. 물론 권위주의 시대에 만들어졌던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들은 개혁이란 이름으로 일정 부분 폐기되거나 바꿔질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대상은 일차적으로 한나라당이겠지만 그 세력에 있어서는 오히려 각 당에 산재해 있는 신세대 정치인 그룹들이 주요한 타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역 구도나 과거를 고집하는 부분에 대해 타격을 가하면서 이를 포기하는 부분을 포함시킬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그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의 경우도 가장 큰 조직적 기반인 민주노총이 만약 한국노총과의 통합으로까지 발전한다면 이에 따라 민주노동당의 의회주의 성향이 더욱 강화될 것이고 그에 따라 충분히 연정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일본에서 자민당과 사회당이 연정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러한 전 과정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그리고 민주노동당 내부의 이념노선의 차이 때문에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주 불가능한 것 역시 아니다. 기층 민중 세력들의 정치적 성장이 결국 이를 가름하게 될 것이다.

아무튼 노 대통령은 이번 X파일 사건을 자신의 연정 구상 전략에 적절히 활용하면서 대응해 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중요한 정치적 계기들을 맞으면서 그의 구상이 점차적으로 구체화될 것이다. 밑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을 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 각각의 사건들에 대한 태도와 대응 방식들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덧붙이는 말

제가 오마이뉴스에 투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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