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번 자살을, 수다거리 삼아 가볍게 말해보고 싶다

자살로 인한 기사가 TV나 신문등에 너무 많이 등장한다

나도 한번 자살을, 수다거리 삼아 가볍게 말해보고 싶다

어제 저녁, 늦은 밤에 TV를 보면서 잔잔한 충격을 받았다. 충격이면 충격이지 웬 잔잔한 충격이냐고 묻는다면, 그래요 이렇게 말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답니다. 라고 여전히 자신있게 말하겠다.

어릴적부터 비교적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살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생명의 주관자는 하느님이시다’라는 의식에 철저한 사람이다. 하여 ‘생명’에 관한한 신성불가침의 성역이요 도무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배워왔다.

한 생명을 위한 절절한 기도도 해봤다. 생명의 주관자이신 분은 당신이시오니 오! 주여 당신의 능력으로 치유시켜주소서! 하고 무릎이 닳도록, 맨발에, 돌부리가 발에 채이도록 나무 십자가를 등에 떠메고 골고타의 언덕으로 가는 기도도 해봤다. 이토록 간절히 목숨을 놓고, 한 인간의 치유를 위하여, 절대자인 ‘저 높은 분을 향하여’ 피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도 해봤다.

그래서다. 시도 때도 없이 ‘자살’에 대한 기사나 TV보도가 나오면 아랑곳도 않는 나였다. 자살뉴스라는 것은 나에겐 그저 스쳐지나가는 뉴스 일뿐이었다. 그런가보다 저런가보다. 심심하면 나오는 뉴스. 이정도로 흘려버리는 뉴스에 지나지 않았다. 뭔 놈의 아름다운 소식이라고 귀를 쫑긋하고 귀담아 들을 일이 있을 것이며, 채널을 고정시키고 절절하게 공감할 것이란 말인가.

왜 저래, 저 사람들? 어찌 인간 생명을, 가지고 장난을 쳐. 목숨을 가지고 어찌하는 것이야?
듣지도 말고, 보지도 말자. 뭐 이런 거였다. '오늘 하루는, 어제 죽은 사람의 소중한 내일이다‘라는 거 몰라? 지들은 사치스런 놀음 하는 거야? 병실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해봐! 아파서, 고통 중에서, 단말마의 애원을 내지르는 사람들을 생각해봐. 인기 얻고, 돈 있고, 명예 있으면서 하는 사람들이 하는 자살이란 사치놀음 아닌가 말이다. 세상을 아직 잘 몰랐을 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 그러나 얼마나 고민했을까. 얼마나 우울한 심정이었을까, 얼마나 상실감에 절어 있기에 그랬을까를 생각하면 난 이제 자살자들에 대해서 그리 단순하게 함부로는 말을 못한다. 매도하지 못한다. 폄하하지 못한다. 전혀 이해가 안 가는 듯이 배부른 소리 하네. 라고 단순하게 말하지 못한다.

자살도 한 삶의 방법인지 모른다. 중국의 인기 가수이자 유명한 배우는 ‘마음이 피곤해서 세상을 사랑할 마음이 없다’고 짤막한 글을 남기고 죽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유명한 남자 배우는 수십억의 빚에 쪼들리다가 못해 연탄불을 펴놓고 죽었다. 그 한 달 뒤에는 또 유명한 탤런트이자 배우인 최모씨가 자살했다. 바로 요 며칠 사이에도 자살 뉴스가 보도됐다.

이들은 다 누구인가. 주변의 환경과 옥죄는 시선을 견디다 못해서 스스로 자살을 택한 사람들이다. 여기다 한 사람 더 보태서 말한다면 고 장자연씨를 들 수 있다. 장자연씨는 소속사와 사회 고위층들의 전방위 공세 즉, 성을 상납하라는, 놀이개 노릇하라는 압력과 갈취에 어찌할 바를 몰라서 항거의 수단으로 자살을 택했다. 모멸감과 수치감에 떨면서 외치는 단 한 번의 절규였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승양이 떼들로부터 피해 나오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다. 그녀의 절규가 옳았다는 것이 판명되지 않았는가. 자신은 힘없는 여배우일 뿐이라는 한 맺힌 하소연이 정확한 말이었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았는가.

이름께나, 권력께나 있는 사람들은, 어디 하나 다친 곳이 없다. 이런 그녀에게 소속사는 ‘계약을 지키지 않았다.’면서 소송을 걸 것이고, 그녀를 괴롭히다 못해서 평생 노예로서 더욱 완벽하게 묶어놓으려고 획책하지 않겠느냐 말이다. 이런 자살에 대해서 우리가 왜 죽었느냐고, 공 테이프 돌리듯이 의미 없는 물음을 해야 한단 말인가. 아니다. 이런 질문을 한다면 우리야말로 너무도 가혹한 사람들이다. 그녀가 ‘저는 힘없는 여배우입니다’라고 가녀린 목소리로 말했듯이, 그녀의 자살은 자구책으로 선택한 마지막 수단이었을 뿐이다.

그래서다. 정말 사회적인 약자 차원이 아니라, 자기인생을 위한 승부적인 차원으로 이용한 것 같은, 편치 않은 시선으로 자꾸 바라보게 되는 자살이 있다. 그 자살은 두고두고 이익을 챙길 수 있는 로열티처럼 자살자가 의도했던 뭔가가 끊임없이 더해지고 있다. 마르지 않은 샘물처럼 뭔가가 있다.

정말이지 얄미울 정도로 계산된, 승부사적인 측면에서 행해진 자살도 있다. 일본의 극우파요 천황숭배지인 ‘미시마 유키고’를 보라. 그 같은 사람은 자신의 과시욕과 주장을 극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해서 추종자 5명을 데리고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면서 할복자살을 감행했다. 바로 극우논리와 제국주의와 강한 일본이 되기 위해서는 천황을 숭배하자는 천황숭배를 외치면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고위직에 오른 사람으로서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이 있다. 수많은 애도와 충격의 파고가 전국에 출렁거렸고, 죽음의 이유와 배경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탄식이 일어났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왜 자살했을까? 한두 가지 이유로는 예단할 수 없다. 나름대로 생각하는 점에 대해서는 나중으로 미루려 한다.

이렇듯 수없이 많은 일련의 자살기사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가슴에도 어느덧 낙엽 쌓이듯이 감정과 생각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하여 자살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던 것이다. 나도 한번 이 자살이라는 것에 대해서 수다 떠는 것처럼 맘 편하게 말하고 싶은 맘이 생긴 것이다. 그래야 이 힘든 세상 부초가 되어 나부낄지라도 원치도 않게 여러 번 듣게 된 자살에 대해서 도대체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내게 잔잔한 감동을 준 보도 내용에 대해서 말할 차례이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여자 권투선수인 매기(힐러리 스웽크)는 회복 불가능한 부상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여기서 주인공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의 제자인 매기의 간청을 도와 편히 갈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와 비슷한 뉴스가 토요일 늦은 저녁 시간에 방송을 타는 걸 보게 되었다.

영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에이즈로 죽어가는 친구의 간청에 응하여 친구의 자살을 도운 내용이다. 여기서 뉴스는 덧붙이기를 영국에서는 한해 평균 자살여행을 하기위해서 약 100명 정도가 스위스를 찿는다고 한다. 이 소리를 들으니 한 가지 더 생각나는 죽음이 있다. 미국의 저 유명한 펜실베니아 경제학과 교수이자 문명비평가이며 자연주의자인 스코트 니어링도 스스로 죽음을 택한 사실이다.

위에서 소개한 죽음 중에서는 수치심과 모멸감에서 한 자살과 병마의 고통이나 생활고나 빚에 내몰려서 택한 자살 등이 있다. 물론 일본에서는 이지메로 인한 자살도 흔하다. 실직이나 애인의 변심 같은 자살도 있다. 특이하다면 스코트 니어링 같은 지식인이의 자살일 것이다. 천수를 누리는 과정에서 서서히 곡기를 끊고 죽음을 맞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리해 보자. 자살은 충동적으로 저지르는 것도 있지만, 스스로 심사숙고 끝에 하는 자살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의 인생관과 우주관 그리고 자연관을 엿볼 수 있다. 이래서 나는 자살에 대해서 전처럼 단순 논리로 매도하거나, 그저 고개를 돌리는 짓을 할 수 없다는 거다. 사람의 목숨은 참으로 천의, 만의, 아니 만만.........만만의 얼굴을 가진, 전 우주적인 무거움을 갖고 있는 아주 복잡한 것이라는 점 밖에는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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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노무현,이은주,장자연 안정환 , 최진실, 영국, 자살여행, 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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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lfkxhsl

    제 삶을 되돌아 보게 되네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모두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