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Unsplash, Ruben Sukatendel
도널드 트럼프가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경솔한 정책으로 인해 최근 주식 시장에 혼란이 일어났고, 이는 정당한 한 가지 질문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주식 시장의 하락과 폭락에 대해 올바른 태도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최근 주식 시장을 하락시킨 결정과 사건들의 연쇄를 떠나서 제기되고 있다.
나는 자본가 계급과 우파 엘리트가 이런 하락에 경악하는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매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싱크탱크들과 주류 언론을 보면 명백하다. 이런 하락은 그들에게는 격변적 사건이다. 그들의 의견은 단 두 가지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자신들의 세율을 낮추는 것, 그리고 자신들이 소유한 자본의 가치 상승을 통해 더욱 부유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주식 시장의 하락에 그들이 격분하는 것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문제는 좌파가 왜 주식 시장의 하락에 반대해야 하는가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겉으로 보기엔 오히려 모든 논거가 좌파는 주식 시장 하락에 찬성해야 한다는 쪽에 있다.
첫째, 주식 시장의 하락은 부의 불평등을 덜 극적으로 만든다. 이는 실증적으로 사실일 뿐 아니라, 반대 방향의 움직임을 통해서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최근의 주식 시장 호황이 수많은 금권주의자들에게 엄청난 자본 이득을 안겨줬을 때를 보자. 일론 머스크의 경우 재산이 약 2천억 달러에서 4천억 달러로 증가했다. 이 사건은 많은 좌파 경제학자들과 옥스팜(Oxfam, 세계적인 불평등과 빈곤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는 국제 구호 및 개발 NGO 연합체)으로 하여금 세계의 부가 얼마나 집중되어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도록 만들었다. 이들은 작은 버스 하나에 겨우 들어갈 만한 억만장자 집단이 나머지 80억 인류와 맞먹는 부를 소유하고 있다고 썼다. 그러나 이제 정반대의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생각한다면, 최근 주식 시장의 하락은 비율상 더 부유한 이들에게 더 큰 타격을 주었기에, 이는 부의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것이며 환영받을 일이다. 옥스팜의 상상력을 빌리자면, 이제 우리는 더 큰 억만장자 전용 버스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둘째, 최근 많은 좌파 정책들은 고부유층 과세를 지지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는 재산이 10억 달러를 넘는 사람들에게 초과 재산 전체에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즉, 10억 달러 초과 자산의 몰수)까지 제기된 바 있다. 이는 주식 시장 폭락이 바람직하다는 관점을 추가로 뒷받침한다. 국가가 초부유층 자본가에게서 세금을 걷는 대신, 이들은 자기들 시장의 작동을 통해 스스로에게 고통을 가하고 있다.
이 관점을 지지하는 세 번째 이유도 있다. 미국인의 약 60%와 다른 선진국의 사람들 대부분은 재산으로부터 어떤 소득도 얻지 못한다(아래 그림 참조. 자료는 전국 대표 가구 조사에 기반한다). 따라서 미국인의 40%만이 재산으로부터 어떤 소득을 얻으며,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는 그 비율이 37% 수준이다(예: 페루 4%, 콜롬비아 7% 등). 전 세계를 놓고 본다면, 금융 자산으로부터 긍정적 소득을 얻는 사람은 10%를 넘지 않으며, 아마도 5%에 불과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세계 인구의 90~95%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사안을 주류 언론이 과장해서 보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류 언론의 소유주와 주요 소비자가 부유층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꽤 있다.
우리는 더 나아갈 수 있다. 전 세계 인구의 5~10%, 그리고 미국인의 40%가 금융 자산으로부터 소득을 얻는다고 해도, 그 소득은 극도로 부유한 사람들에게 치우쳐 있다. 금융 소득의 불평등은 노동 소득의 불평등과 같지 않다. 훨씬 더 심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노동 소득(세전) 지니 계수는 일반적으로 0.55 정도이지만, 자본 소득 지니 계수는 0.9를 넘는다. 이는 사실상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마찬가지다. 금융 자산으로부터의 소득은 부의 경우처럼 분배 상위층이 압도적으로 많이 가져간다. 미국에서는 전체 금융 자산과 금융 상품의 약 90%를 상위 10%의 부유한 미국인들이 소유하고 있다(에드 울프(Ed Wolff)의 ⟪미국에서의 1세기 동안의 부⟫(A Century of Wealth in America), 쿤(Kuhn), 슐라릭(Schularick), 스타인스(Steins)의 ⟪미국의 소득과 부의 불평등, 1949–2016⟫(Income and Wealth Inequality in America, 1949-2016) 참조). 따라서 미국인의 40%가 금융 자산으로부터 일정한 소득을 얻는다고 말하는 것은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들 대부분은 아주 적은 소득만을 얻고 있으며, 소수만이 거대한 몫을 가져간다. 이는 곧 주식 시장이 하락해도 우리가 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요약하자면, 주식 시장의 하락을 반길 이유는 몇 가지 있다. 이는 분배 상위층의 부를 감소시켜 부의 불평등을 완화시키고, 대부분 사람들의 소득에 영향을 주지 않으며(미국인의 60%, 전 세계 인구의 90~95%), 영향을 받는 소수 중에서도 가장 상위층만이 가장 많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실상 이들은 과세를 당하는 셈이 된다(이는 다른 방식으로는 실현하기 어려운 정책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좌파는 우파만큼 하락에 대해 한탄하지는 않지만, 주식 시장의 하락에 대해 명백히 불편함을 느낀다. 여기에 대해 보통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되며, 이는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게 만든다.
첫 번째 주장은 이렇다. 미국인의 60%가 자본 소득을 전혀 얻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중 일부는 IRA나 401(k) 같은 퇴직연금 계좌를 가지고 있다. 이 금융 상품들은 특정 조건(예: 연령이나 긴급 상황)이 되어야 접근할 수 있지만, 자산이 축적되는 동안에는 인출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연간 소득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자산은 미래에는 중요해진다. 이런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 특히 백만장자가 아닌 사람들은 주식 시장이 하락할 경우 자신들의 자산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이들은 현재로서는 소득 하락을 경험하지 않지만, 이는 앞서 말했듯 현재는 이 자산으로부터 소득을 받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마도 3년, 5년, 또는 30년 후에 이 자산에 접근할 때 예상보다 적은 소득을 경험할 수도 있다. 이 자산이 낮은 가치에 머무른다면 미래의 소득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미래 소득 흐름은 언제나 다양한 우연적 조건들의 결과이며, 그중 하나가 주식 시장의 성과다. 마찬가지로, PAYG(부과식) 연금을 가진 사람들 또한 은퇴 시 자신들이 낸 것을 모두 받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이들 역시 노동 시장 상황과 현재 소득이 충분히 확보되는가에 따라 달려 있다. 따라서 주식 시장의 하락이 지속된다면, 연금 기금을 가진 이들은 미래에 더 적은 소득을 받게 될 것이다. (덧붙이자면, 어떤 특정 연도에 개인 연금에서 얻는 소득을 금융 자산 소득의 일부로 포함시킬 경우, 이 포함은 실질적 차이를 만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연금을 받는 사람들은 이미 금융 자산 소득이 0이 아닌 40%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주장은 이렇다. 주식 시장의 하락은 투자자들의 미래 수익에 대한 기대가 낮아졌음을 나타내며, 이는 투자 축소로 이어지고, 결국 고용도 감소하게 된다. 자본가들은 일종의 ‘자본 파업’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만약 가장 부유한 사람들의 부가 감소하면 궁극적으로 경기 침체와 고용 감소로 이어진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어떤 근거로 초부유층에 대한 과세를 주장할 수 있는가? 만약 이들에게 과세를 한다면, 이들은 주식 시장이 부진할 때처럼 투자를 줄이지 않겠는가? 결국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우리는 부유층에 대한 높은 세율을 옹호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세금은 미래의 고용과 노동자들의 임금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우파의 주장이다. 그런데 좌파는 이 주장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며, 다만 이 논리를 주식 시장 하락에만 적용하고, 과세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세 번째 ‘변호’는 아마 가장 흥미롭다. 여기에는 이념적 요소가 있다. 주식 시장의 중요성이 실제 삶에서의 역할에 비해 지나치게 커졌고, 우파와 중도뿐 아니라 심지어 좌파에 의해서도 숭배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이들이 유지하는 ‘자본주의를 초월해야 한다’는 믿음과 ‘주식 시장을 넘어선 사고를 할 수 없음’이라는 무능 사이에 깊은 불일치가 있음을 보여준다. 만약 주식 시장조차 초월하지 못한다면, 자본주의를 어떻게 초월할 수 있겠는가? 만약 투자 자금의 배분을 주식 시장에 의존하지 않는 다른 자본주의 시스템(비자본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을 상상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자금 대출이 주로 상업 은행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자본주의 모델이 있다. 여기서 주식 시장은 훨씬 작은 역할을 맡는다. 배당을 분배하지 않고 이익 대부분을 재투자에 사용하는 자가 금융 모델도 있다. 이것이 지난 40년 동안 중국 국유기업(SOE)들이 해 온 방식이다. 또한 국가는 막대한 투자를 수행하는 제3의 모델도 있다. 마리아나 마추카토(Mariana Mazzucato)는 미국조차도 많은 핵심 기술 혁신들(특히 정보기술 분야)이 정부의 투자로부터 기원했음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자본주의 시스템이 반드시 주식 시장의 우위를 내포해야 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더 기이한 것은 자본주의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시스템이며 초월해야 할 체제라고 믿는 사람이 정작 ‘부자들의 주식 가격’이 왜 문제인지 묻는 질문 앞에서 그 첫걸음부터 넘어지는 경우다.
추신. 다음은 2022년 미국의 금융 자산 소득(개인 연금 포함) 분포다.
가구의 59%는 1인당 연간 100달러도 안 되는 소득을 금융 자산으로부터 얻었다. 중앙값은 연간 22달러(즉, 월 2달러 미만)였다. 상위 1%는 1인당 연간 평균 12만 2천 달러를 얻었다.
그러므로 당신이 주식 시장을 걱정할 때, 당신은 이런 분포를 걱정하는 것이다.
(룩셈부르크 소득 조사(Luxembourg Income Survey), 2022년 미국 인구 조사 기반 계산)
추신 2. 아마 내가 언급했어야 할 뻔한, 뻔히 알려진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허구적인) 금융 자산과 실물 자산 사이의 차이다. 주식 시장이 하락할 때 발생하는 부의 ‘손실’은 단지 우리가 미래 전망을 재평가한 데서 비롯된다. 실제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바뀐 것은 오직 우리의 기대뿐이다. 이제, 예를 들어 10억 달러 규모의 이런 허구적 손실과 10억 달러어치의 실물 자산 파괴—예컨대 지진으로 인해 주택이 파괴되는 경우—를 비교해보자. 후자의 경우는 자명하게도 실제 복지에 영향을 끼친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집을 잃게 될 것이다. 이는 매우 큰 차이다.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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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는 경제학자로 불평등과 경제정의 문제를 연구한다.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센터(LIS)의 선임 학자이며 뉴욕시립대학교(CUNY) 대학원의 객원석좌교수다. 세계은행(World Bank) 연구소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메릴랜드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