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프랑스 온라인 뉴스채널 <아틀랑티코>(Atlantico)와의 인터뷰를 편집한 텍스트다. 이 대화의 프랑스어 번역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카멀라 해리스를 꺾고 다시 백악관에 복귀할 준비를 하고 있다. 당신은 선거 직후 서방 엘리트들이 고르바초프가 소련 붕괴로 이어지는 개혁을 시행하기 시작했을 때 동유럽 공산주의 엘리트들만큼이나 당황했다고 언급했다. 왜 이 두 상황이 비교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당신이 말한 바와 같이 동유럽 엘리트들이 고르바초프에 대해 느꼈던 것과 유럽 엘리트들이 현재 트럼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고르바초프와 트럼프는 각각 동유럽 위성국과 서방 동맹국들 내에서 반세기와 80년 동안 일반적이고 받아들여지던 관행과는 완전히 어긋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동유럽 엘리트들은 모스크바로부터 오는 "사회주의 블록의 '불가분'한 단결"과 "사회주의 블록이 세계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발전된 지역"이라는 주장, 그리고 "성공에서 성공으로 나아간다"는 메시지에 익숙했다. 그것이 옳거나 진실하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모스크바에서 나온 메시지라는 의미다. 동유럽 엘리트들은 이러한 메시지에 익숙했으며, 소련 지도부의 유형에 따라 자신들을 조정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공산당 서기장이 소련과 해외에서 그의 당이 행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고, 더 나아가 사회주의 블록의 존재 여부는 각국에 달려 있다고 말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고르바초프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 가사를 인용하며 동유럽 국가들이 "자신만의 길"을 가야 한다고 가볍게 말한 것으로 꽤 유명했다.
유사하게, (서)유럽 엘리트들은 1945년 이후 워싱턴으로부터 한 가지 유형의 메시지에 익숙했다. 이 메시지는 대통령마다 약간 달랐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미국과 유럽(처음에는 서유럽만, 이후 30년 동안은 전체 유럽)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며, 정치적 가치뿐 아니라 경제적, 군사적으로도 단합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 메시지의 적어도 두 가지 측면을 뒤흔들었다. 첫째, 그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은 매우 약하며, 서방 정치 동맹에 속한 국가들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인지 여부에 관심이 있는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둘째, 그는 첫 임기 동안, 그리고 아마도 2차 임기에서도 NATO의 상호 방위 동맹이라는 의미를 의문시했으며, 이를 미국에 가장 큰 군사비 부담을 주는 짐으로 간주했다. 이 두 가지 요인은 서방 지배층 사이에서 불편함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것이 내가 염두에 두었던 유사성이다.
출처 : Unsplash의Darren Halstead
유럽 엘리트들에 관해서, 무엇이 맹목성이나 숙명론의 문제인가? 그들이 상황을 보지 못하는 이유가 의도적인 맹목성 때문인가, 아니면 단순히 자신들을 변화시킬 수 없는 무능력 때문인가?
나는 트럼프의 첫 임기 동안 (아마도 2차 임기에도) 서방 엘리트들의 태도는 트럼프를 일종의 자연 재해로 간주하고 그저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미국의 압도적인 힘 때문에 그에게 반대할 수 없으며, 특히 현재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서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유럽이 절박하게 미국을 필요로 하는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그들이 적어도 말로는 트럼프와 함께해야 한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전 질문에서 언급했듯이, 그들은 아마 현재 상황에 대해 극도로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트럼프와 함께 있는 것을 호랑이와 같은 우리에 갇힌 것처럼 느끼며, 목표는 단순히 호랑이가 우리를 떠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그리고 그 전에 잡아먹히지 않는 것)일 뿐이다.
나는 유럽 엘리트들이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국에서 일어난 일을 일시적인 기형 현상, 매우 미국적인 기형 현상으로 보고 있으며, 4년 후 상황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더 우파적이고 포퓰리스트적인 지도자들, 즉 세계관이 트럼프와 훨씬 더 가까운 사람들이 용기를 얻고, 이제는 더 현실적으로 자신들이 권력을 잡아 (그들의 관점에서) 나약한 자유주의 엘리트들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신의 분석은 도널드 트럼프를 고르바초프에 비유하며(물론 이에 따라 미국이 붕괴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라고 본인이 언급했지만), 유럽은 "모국" 권력의 방향 변화에 불만을 품으면서도 이에 반대하지 못했던 위성 국가들에 해당한다고 본다. 유럽 엘리트들에게는 이미 도전이 끝난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그들이 반응할 가능성이 남아 있는가? 마지막 반격을 기대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들은 이미 동유럽 국가의 소련 엘리트들에게 닥쳤던 대대적 소멸과 같은 운명에 처해 있는가?
내가 앞서 말했듯이, 나는 유럽 엘리트들이 도널드 트럼프를 자연재해, 지진처럼 여기며 그저 자신들이 이를 견뎌낼 수 있기를 바라리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분명히 이에 직접적으로 반대할 수 없다. 그들은 트럼프에게 상호 이익을 나타내고, 개인적 아첨을 통해 그를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매우 신중하게 문제를 다뤄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문제는 다른 대안적 엘리트들이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엘리트들은 도널드 트럼프와 훨씬 더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내가 여기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덴의 우파 정당들이다. 이들은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이민에 대한 반감을 공유하며, 산업 보호주의 정책을 시행하는 것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물론 후자는 양날의 검일 수 있다. 왜냐하면 유럽의 보호주의가 미국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 워싱턴에 이념적 동맹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유권자들 앞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이전보다 덜 억제된 태도로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반공주의 엘리트들이 갑자기 모스크바에서 동맹을 발견했던 것처럼 말이다.)
냉전 시기, 미국은 유럽이 러시아와 연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유럽을 필요로 했으며, 이 때문에 마셜 플랜을 시행했다. 이번에는 미국의 세력이 중국에 맞서는 새로운 냉전 상황에서, 미국이 여전히 유럽을 안정적이고 번영된 상태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봐야 할까?
소련과 중국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소련은 유럽과 지리적으로 훨씬 가까웠을 뿐 아니라 1950년대나 심지어 1960년대에도 유럽의 일부를 정복할 가능성이 있는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소련은 서방 국가들 내에 이념적으로 연계된 정당과 노동조합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에 대해서는 이런 점들이 전혀 해당하지 않는다. 중국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유럽을 군사적으로 공격할 의도나 능력이 전혀 없다. 또한 중국은 소련이 가지고 있었던 소프트 파워나 이념적 매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따라서 내 의견으로는 유럽에 대한 중국의 위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에 도전하는 것은 실질적인 문제다. 이 문제는 세계 패권을 누가 차지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유럽연합과 같은 크고 부유한 국가들이 자신들의 편에 있기를 원할 유인이 있다. 나는 미국이 유럽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럽은 미국에 너무 중요하다. 물론 내가 말하는 것은 트럼프의 리더십에 직접적으로 답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더 큰 그림을 말하는 것이다.
당신은 세계화가 불평등에 미친 영향에 대한 전문가로서 이 주제에 대해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왔다. 이 문제가 미국뿐만 아니라 서방 민주주의의 민주주의적 불안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이 문제는 어디에 서 있는가?
당신의 지적에 동의한다. 이 문제는 지정학적, 국내 정치적으로 큰 역할을 해왔다. 곧 출간될 내 책에서도 이 주장을 다루고 있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주장은 아니지만, 단일하고 통합된 방식으로 제시되지는 않았다고 본다. 중국의 부상, 더 넓게는 아시아의 부상은 경제 활동의 중심을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이는 아시아의 소득 수준을 서방과 비교할 때 약 300년 전 수준으로 되돌리고 있다. 300년 전 유럽과 중국, 그리고 아시아 전반의 격차는 산업혁명 이후 유럽이 훨씬 더 번영하고 군사적으로 강해지면서 커졌던 차이보다 훨씬 작았다. 미국에 관해서는, 중국이 경제적·군사적으로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지정학적 측면에서 중국이 미국의 글로벌 패권 역할에 미치는 영향이다.
두 번째로는 중국의 경제적 영향이 있다. 이는 중국과 아시아의 성장으로 인해 서방 중산층의 상대적 위치가 변화하는 것이다. 사실 서방 중산층은 여전히 중국보다 훨씬 부유하지만, 중국과 비교했을 때 성장률이 낮았고, 서방 중산층의 일부는 글로벌 서열에서 하락하고 있다. 처음에는 큰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프랑스 중산층에 속했던 사람들이 글로벌 70번째 백분위에서 50번째 백분위로 내려간다면, 국제적으로 가격이 책정된 일부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유럽의 상대적 쇠퇴는 개인적 수준에서 체감될 것이다. 나는 지정학적 도전이 중국으로부터 오고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은 명백하지만, 경제적 도전은 더 광범위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와 같은 아시아의 다른 인구 많은 국가들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불과 40년 전만 해도 영국과 인도의 전체 GDP는 동일했지만, 현재 인도의 GDP는 영국의 4배에 이른다.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도 마찬가지다. 40년 전에는 두 나라의 GDP가 같았지만, 현재는 인도네시아의 GDP가 네덜란드의 4배가 되었다. 이는 아시아와 유럽 간 상대적 경제력 변화의 주요 사례 중 하나다.
[출처] Trump and the Rise of Asia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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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는 경제학자로 불평등과 경제정의 문제를 연구한다.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센터(LIS)의 선임 학자이며 뉴욕시립대학교(CUNY) 대학원의 객원석좌교수다. 세계은행(World Bank) 연구소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메릴랜드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