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끌어내리는 것만으로, 하청 노동자의 삶은 바뀌지 않아"

단식 21일째, 김형수 거통고조선하청지회장 인터뷰

9일 오전, 국회 앞 농성장에서 만난 김형수 지회장. 참세상 

"모든 노동자 시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윤석열이 하려고 했던, 윤석열이 바꾸려고 했던, 윤석열이 원했던 세상, 그 세상을 우리는 이야기해야 됩니다." 

9일 오전, 국회 앞 농성장에서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을 만났다. 그가 국회 앞에 자리한 바로 다음날,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탄핵' 국면은 많은 것을 빨아들였다. 조선하청지회가 세웠던 여러 상경 투쟁 계획도 취소됐다. 

김 지회장은 모든 것이 '탄핵' 구호만으로 흡수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탄핵이 되고 윤석열이 물러나고 나면, 다시 대선 국면으로 전환되고 노동자와 시민들의 여러 사회적 요구는 또 묻혀 버릴 수 있다"면서, "민주당에 그냥 정권이 넘어가는 것 외에 뭐가 있나" 라는 고민도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윤석열 탄핵이 물론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하고", 자신도 "누구보다도 윤석열이 탄핵이 돼야 한다고 그리고 탄핵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탄핵만으로 우리 사회 문제나 윤석열 탄핵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삶의 문제가 다 나아지지 않는다"면서, "윤석열이 하려고 했던, 윤석열이 만들려고 했던, 윤석열이 바꾸려고 했던 것들"에 관심을 갖고, 청년, 노동자, 시민의 구체적인 요구를 광장에서 드러내면서 싸울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구체적인 요구들로는 "청년 실업, 과다 경쟁, 저출생, 고령화, 여성 차별, 재벌 개혁과 해체' 등을 꼽으며, 이런 문제들의 근본 문제는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노동 현장의 차별"이라고 생각을 전했다. "행정 권력만이 아니라 부당한 입법 권력, 사법 권력에도 주권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게끔 함께 맞서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9일 오후, 국회 앞 기자회견 발언 영상. 참세상
4일 저녁, 비상계엄 후 첫 촛불집회에서 발언하는 김형수 지회장. 참세상

김형수 지회장은 지난 4일 저녁 광화문, 시민들과 함께 비상계엄 후 첫 촛불집회에 참여하여 자유발언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발언에서 정당한 투쟁에 나섰던 조선하청 노동자들에게 사측과 검찰은 470억이라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중형을 구형했다면서 "온 국민들을 불안에 떨어놓고 밤잠 설치게 한 윤석열에게는 도대체 우리 국민이 얼마나 많은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되겠는가"라고 물었다. 

51일 파업, 지켜지지 않는 약속들 

지난 2022년 여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조선하청 노동자들은 "이대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호소하며 51일간 파업에 나섰다. 노동자들의 요구에 사회적 지지가 형성되고, 회사는 많은 것을 약속했다. 정부도 중재에 나섰다. 그러나 파업 후 두 해가 넘도록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조선업은 '전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하청 노동자의 삶은 여전히 어둡고 어렵다. 

2022년 파업, 스스로 만든 철창 감옥에 갇힌 유최안 당시 부지회장. 거통고조선하청지회

김 지회장은 "2024년 하반기가 되도록 정부도 한화오션도 전혀 약속했던 바를 지키지 않고, 고용구조만 더 악화시키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파업 이후 정부는 원·하청이 참여하는 '조선업 상생협의체'를 추진했다. 지난해 2월에는 한화오션 등 조선 5사 원·하청이 조선업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원청과 하청 노동자 사이의 임금 격차 등을 최소화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김 지회장은 "한화오션은 하청 노동자 임금을 정규직 임금의 최소 80%에서 최대 90%까지 끌어 올리겠다, 이중 구조, 원하청의 문제, 하도급 문제를 개선하겠다 약속했지만 어느 것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한화오션은 '2026년까지 개선하겠다'고 이야기하며 약속 이행을 미루고만 있다. 정규직 노동조합의 교섭 타결로 이행되는 상생격려금 100만원 지급을 두고도 하청 노동자에게는 근로자대표를 통해서 '불량률 줄이기' 등 회사의 요구에 확약하라는 차별적인 단서 조항을 내걸었다. '블랙 리스트 문제 해결'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파업에 참여했다 회사를 옮기는 노동자들은 '에라(에) 걸려'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에라 걸리다'는 조선업 현장 용어로 하청 노동자들이 업체가 공유하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다른 회사로 이동해서 일을 할 수 없게 된 상황을 말한다. 

파업 노동자 옥죄는 손배 청구와 형사 고소

발빠르게 추진된 것은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 뿐이다. 한화오션은 2022년 파업 참여 노동자들에게 47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파업 참여자들 중 절반에 가까운 70여 명의 조합원들을 고소했다. 검찰은 조합원 22명을 기소하고 이들에게 총 20년 4개월의 징역형과 3,300만 원의 벌금형을 구형했다. 11일로 예고되었던 1심 선고 공판은 미뤄진 상태로, 오는 18일 변론이 재개될 예정이다. 

윤 대통령의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거부권 행사로 원청과의 교섭 가능성이 가로 막힌 하청 노동자들은, 하청업체 19개 사와 개별 교섭을 추진했다. 하청업체들은 하청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원청에다 수 차례 현장 노동자들의 의사들을 전달했으나, 올해는 아예 묵묵부답이었다.  

다시 곡기 끊고, 거리로 

결국 조선하청노동자들은 다시 파업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마주했다. 이에 조선하청지회 조합원들은 지난 11월 13일 한화오션 사내에서 노숙농성에 돌입했고, 11월 20일부터는 김형수 지회장과 강인석 부지회장이 단식투쟁에 나서, 21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김 지회장은 2022년 51일 파업이 끝난 후에도 21일간 단식 투쟁에 나선 바가 있다. 그는 "회사의 탄압으로 현장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요구들이 드러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단식과 같은 투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조건"이라고 밝혔다. 

 

영하의 날씨, 노숙 농성 중인 조선하청 노동자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이날 오후 1시에는 국회 앞 단식 농성장 인근에서 김형수 지회장과 함께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의 기자회견도 열렸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윤석열의 위헌적 계엄사태 이전에, 위헌적 노동탄압과 국정농단이 있었음을 기억"한다며, 2022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공권력 투입에 민간인 명태균 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이들은 회견문을 통해 "김형수 지회장과 농성자들은 무죄"이고, "처벌받을 자는 윤석열과 명태균"이라고 주장했다. 

9일 오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 불법개입 국정조사 촉구 기자회견. 참세상 

기자회견을 끝으로 김형수 지회장은 국회 앞 상경 투쟁을 마무리했다. 이날 다시 거제로 돌아간 김 지회장은 노숙 농성 중인 조합원들과 함께 단식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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