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같던 시절에 대한 조작된 복고〈태풍상사〉

2025년 tvN 드라마 <태풍상사>의 한 장면

레트로의 성공

한 달여 전 종영한 <태풍상사>는 1998년 IMF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로 첫 시청률 5%, 마지막 시청률 10.3%, 최고 시청률 11.4%로 전 채널 같은 시간대 1위를 차지하며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주연배우 이준호김민하뿐만 아니라 조연들의 열연도 빛났고, <아스팔트 사나이> <서울의 달> <젊은이의 양지>처럼 옛 인기 TV 드라마의 제목을 매회 부제로 내세운 점이나과거 유명했던 리복’ CF를 그대로 가져온 슈박’ CF 장면 등 1990년대 노래와 분위기말투처럼 레트로한 감성을 자극한 점도 깨알 같은 재미를 준 요소였다작가 장현이 이 부제들에 대해 내가 지난날의 드라마에 보내는 작은 헌사 같은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그 시대의 인물의지노력가족애 등에 대해 드라마는 따뜻한 시선을 던진다.

태풍상사의 사장 강진영(성동일)은 10여 년간 열심히 일하면서 작은 회사를 키워냈다그는 직원들에게 줄 적금통장을 따로 만들어 매달 입금하고 있었을 만큼 가족 못지않게 직원들에 대한 애정을 쏟았다그러나 그는 회사가 감당하기 힘든 만큼의 물건을 주문했다가 거래처로부터 받았던 어음이 부도가 나면서 회사의 위기를 맞이한다그가 입원해 임종을 맞이한 병원 로비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IMF 당시 MBC 뉴스의 앵커 멘트가 흘러나온다. 

시청자 여러분 정부가 결국 국제통화기금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기로 했습니다경제 우등생 한국의 신화를 뒤로 한 채 사실상의 국가 부도를 인정하고 국제기관의 품 안에서 회생을 도모해야 하는 뼈아픈 처지가 된 것입니다.”

강남 줄리아나 나이트에서 춤이나 추고 외제차를 몰면서 놀기나 했던 1971년생 오렌지족’ 강태풍(이준호)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회사 태풍상사 일에 뛰어든다회사 일과 경영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지만 아이디어와 열정패기로 회사를 이끌어 나간다거기에 경리로 일하면서 회사 업무에 대해 두루두루 파악하고 있었던 오미선(김민하)의 경험과 판단이 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태풍상사 강진영 사장에 대한 경쟁심과 미움을 간직한 표상선 대표 표박호와 그의 아들 표현준은 태풍상사의 노력과 열정에 사사건건 대립하는 빌런들이다이들의 훼방과 음모에도 태풍상사는 여러 고비를 극복해 간다그러자 경영 위기 상황에서 회사를 떠났던 태풍상사 직원들이 하나둘씩 회사로 복귀하면서 태풍상사는 예전의 활력과 서로를 향한 애정을 회복해 나간다.

IMF, ‘공동체로서의 회사라는 신화의 붕괴

태풍상사를 떠나는 차장 차선택은 회사가 직원을 지켜줘야지라고 말한다하지만 나중에 회사를 떠났던 직원들이 다시 태풍상사라는 이름으로 뭉쳤을 때 더 이상 태풍상사는 회사의 이름이 아니게 된다태풍상사는 그보다는 공동체의 이름에 가깝다강태풍은 말한다. “이름이 없다고 사라지는 그런 회사가 아닙니다우린그러니까 절대 망할 수가 없어요.”

고마진 과장은 나라가 잘돼야 회사가 잘돼고 회사가 살아야 내가 사는 거니까라고 말한다국가와 회사와 가족그것이 우리가 우리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공동체의 각기 다른 범주의 이름들이다이 공동체의 최소 단위인 가족에서 작동하는 가족애가 회사로국가로 확장된다그래서 1970~1990년대 기업과 재벌은 유난히 가족애를 강조했던 것일까? 1980년대 대우그룹의 사보 이름은 <대우 가족>이었고이처럼 회사와 가족을 결부시키는 논리는 모든 기업의 상투적인 클리셰였다울산 현대중공업 공장 벽면에 붙었던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며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될 수 있는 길이다라는 표어처럼 말이다집에서는 가부장의 말과 뜻을 따라야 하고회사에서는 사장님이 곧 아버지이며나라의 대통령이 곧 국부인 시절이었다국부와 사장과 부친국사부일체로 오직 앞으로 전진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국가와 기업이 추구하는 경제 발전을 위해 와 내 가족이 헌신하고 매진했지만 결국 IMF를 맞이해서 대규모 정리해고가 이루어졌다말하자면 아버지로서의 사장이 자녀인 직원들의 모가지를 쳤던 셈이다이 해고를 뒷받침해주기 위해 국가가 나서서 노동법 개악을 서둘렀다이 정리해고의 칼바람을 맞으면서 공동체로서의 회사라는 신화는 깨졌다회사가 직원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은 (그 이전에도 허구였지만) IMF 이후로는 그 누구도 믿지 않게 되었다. <태풍상사>에서 등장인물 김을녀가 은행에서 정리해고 당했던 것도 바로 이 당시 금융 부문 구조조정 과정에서였다. ‘IMF 이전’ 또는 IMF ‘국난’ 극복을 위해 함께 힘을 모았던 그 시절의 회사나라는 우리가 이렇게 그리워할 만큼 가족애에 가까운 인간애로 충만했던 시절이 아니었던 것이다.

잘 알다시피 IMF라는 것은 그 시대를 겪은 사람들에게 국제통화기금이라는 한 국제 기관의 이름만이 아니었다. IMF는 무엇보다 정리해고였다당시 정리해고 인원은 약 16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또한 IMF는 고용 불안의 다른 이름이었고구조조정과 민영화였고꽉 틀어막힌 취업길이었고가족의 붕괴와 누군가의 자살 등의 다른 이름이었으며 비정규직 고용의 일반화였고 노동시장 이중 구조의 고착이었다거리에는 노숙자가 넘쳐났고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출근 시간에 집에서 나와 등산로를 떠돌았다회사에서 잘리는 부모를 보면서 청소년들은 절대 패배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IMF는 그 시대의 모든 불행과 사건사고를 설명하는 키워드였다거기에 공동체는 없었다.

복고보다 복기 

IMF 시대를 그리워할 사람은 없다그런데도 <태풍상사시청률이 잘 나온 것은 어쩌면 IMF 때보다도 더 살벌해진 이 시대 때문이 아닐까그래서 막연히 이 살벌한 세태칼춤이 일상이 된 시대의 그 이전이 더 인간적일 거로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곳 한국이 얼마나 살 만하지 않길래, IMF 때가 더 인간적이고 낭만적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수치를 보면 이해가 간다한국은 OECD 38개국 중 삶 만족도 33자살률은 인구 10만 명 당 29.1(2024)으로 최상위권이다.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은 20여 년 동안 대부분 1위를 차지했다굳이 이런 통계치가 아니더라도 이 무한경쟁의 한국 사회가 숨 막히는 건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가 건네주는 위로를 갈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괜찮다애쓰고 있다노력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힘들겠지만 용기를 내라아니 좀 쉬어도 된다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뭐 등등부쩍 많이 제작되고 있는 복고 드라마들은 그동안 애쓰면서 살아왔다” “희생과 노고를 잘 안다는 위로를 건넨다. <폭싹 속았수다>(2025)라든가 <백번의 추억>(2025)도 그랬다또 <태풍상사강태풍(1971년생)과 한 살 차이 나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의 김낙수 부장(1972년생역시 1997년 IMF와 그 이후 한국이 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 경쟁이 격화되어 간 시대를 살아낸’ 이들에 던지는 위로의 손길 같은 드라마였다.

하지만 사실을 바꿔치기해가면서까지 위로를 던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위로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묻지 마 복고가 아니라 정확한 복기다소품이나 배경의 고증에만 매달릴 일이 아니다극이 전체적으로 그 시대를 어떻게 그려내느냐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IMF가 한국 사회에서 어떤 변곡점임은 분명하지만그 이전 국사부일체의 개발 독재 체제와 시간을 인간애와 확장 가족애로 가득찼던 공동체의 시대로 조작해 기억해서는 곤란하다.

또 가부장제와 기업국가 체제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잊어서도 안 된다. <태풍상사>에서 오미선과 오미호는 아버지가 없고그런 오미선에게 회사 사장님은 아버지같이 따뜻하게 그려진다. (<백번의 추억>의 고영례(김다미역시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명문 법대생인 큰오빠를 위해 버스 안내양이 되며, <폭싹 속았수다>의 오애순(이지은역시 아버지가 없다. K장녀들은 아버지가 없고아버지가 없어서 뭔가 결핍되고 불행하며 가난이 설명되는 것은 아주 오래된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다.) 오미선은 IMF 이전 회사에서 이름 없이 살았던 수많은 경리들을 대표하는데 자신의 노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총 11시간을 근무하는데요힘들지는 않아요늘 하는 일이니까요.” 이 말을 하는 순간에도 직원들 취향에 맞게 커피를 타서 책상으로 부지런히 나른다아버지 같던 사장이 세상을 떠난 뒤 회사 사장님의 자리에 그 아들인 강태풍이 자리하는데오미선에게 상사맨의 꿈을 꾸게 해주고 실현해주는 것도 강태풍이다하지만 우리는 한국의 회사에서 커피 타는 경리가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잘 알고 있다윗자리 남성들의 배려와 격려허락 때문이 아니라, IMF 당시 모든 경리그리고 여성 노동자들을 우선적으로 해고함으로써 남자들이 어쩔 수 없이 커피를 스스로 타 마시게 됐었다그때부터 커피는 누군가 타줄 때 외치는 --이나 --이 아니라 개별 포장된 동결 건조 믹스커피가 대세가 됐던 것이었다이처럼 드라마는 많은 사실관계를 호도함으로써 그 시절을 위기 극복을 위해 분투하는 우리들끼리의 따뜻한 연대감의 시간으로 그려낸다.

K장녀가 시대와 드라마의 이중적 한계 상황에서도 운명을 바꾸기 위해 몸부림칠 때, K장녀 서사의 반대편에서 <태풍상사>의 주된 대립 구도는 강씨 집안과 표씨 집안 남자들의 회사 간의 대를 잇는 복수혈전으로 그려진다. IMF 시대의 다양한 적대선이 그저 가부장적 가족-회사의 단일한 갈등 구조로 퉁쳐진 것이다.

드라마는 끝났고 오늘은 이어져 새해가 밝았다주위 사람들에게 살아내느라고 고생했다고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고 말을 전하자. IMF 시대의 유일한 교훈이 있다면 그 이전 시대의 허구에 찬 회사와 나라라는 공동체 신화가 무너진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공동체는 사라지지도사라져서도 안 됨은 분명하고 늘 새롭게 구성되고 만들어져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그 시작이 서로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들로부터 비롯될 수도 있다인간은 생각보다 약하고 개인은 더욱 깨지기 쉽다새해 함께 의지하면서 살아보자고 토닥이고 어루만져주는 서로가 되어주겠다고 다짐하며 새해를 맞는다.

덧붙이는 말

양돌규는 노동자역사 한내의 운영위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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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부도 공동체 가부장제 태풍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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