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문화운동협의회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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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소개]


새벽의 노래 테이프 '그날이 오면'에는 참 기억이 많다. 힘들었던 시절에 정성들이 모여, 욕심 내고 작업한 성과물이다. 개인적으로는 내 손에서 태어나온 자식 같은 노래들이 3곡이나 (부활하는 산하, 사월 그 가슴으로, 귀례이야기) 들어가 있기에 더욱 감회가 새로운.

정말 추웠던 85년 11월 어느 날이었다. 초기 선배들이 뿔뿔이 흩어져선 실체가 없어져 버린 새벽을 다시 추스리자는 제안을 승현이 형으로부터 받았다. 선배그룹에선 표신중(고대 노래얼76) 형과 문승현(서울대 메아리78)형이 참여했었고, 나와 신현중(성대 소리사랑81), 원영한(성대 소리사랑81), 이광기(연대 울림터82), 여계숙(서울대 음대82) 등이 실무그룹으로, 그리고 음악적 소양이 있는 후배를 물색해서는 김미영(고대 노래얼83), 윤선애(서울대 메아리84), 안치환(연대 울림터84), 이연규(이대 한소리84)등이 함께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기엔 음악적 전문성의 배양을 팀의 존재 이유라 생각하면서 음악 훈련에 정말 열심이었다. 난생 처음 전문 교재를 가지고 시창, 청음 훈련도 하고, 클래식 기타 합주도 해보고, 기존의 노래들을 음악적으로 해부하고 분석하여 토론도 하고. 이러한 음악적 작업엔 김광석(연합메아리82)도 함께 했었다.

하지만 음악적 전문성에 대한 노력이 그리 인정받고 대접받던 시절은 아니었다. 정치적 논쟁이 격렬하던 당시 상황에서 진보적인 운동그룹에서 인정받기 위해선 집회 참여, 가두 시위, 정치 세미나등의 정치적 활동 또한 등한히 할 수는 없었다. 당시 버려진 문짝에 스펀지를 붙여서 방음벽을 만들고, 시장에서 달걀판을 날라다가 본드로 벽과 천장에 도배를 해서 어렵게 만들어 놓은 작업실은 이러한 음악적 활동과 정치적인 활동의 근거지가 되어야 했다.

겨울에 기초훈련부터 시작한 음악적 성과를 테이프에 담기로 했다. 그 성과물이 바로 여기에 소개되고 있는 '그날이 오면'이라는 테이프이다. 86년 봄에 작업을 해서 완성한 것으로 기억한다. 소박하긴 하지만 여러 시도들을 해 보았었다. 기존의 운동권 테이프에서 벗어난 새로운 발상과 기획을 하고 싶었다. '기지촌'의 기타 에드립이나 리드 기타의 연주, 피아노 연주 모두 문승현 선배가 정확한 악보를 만들어 가져 왔다. 악보를 보면서 기타를 연주하는 데 전혀 익숙하지 않았던 우리로서는 너무 힘이 들었던 연주였다. 피아노 소리를 하꼬방 작업실에서 8트랙짜리 구형 사운드 믹서로 녹음하면서 나름대로 다른 사운드와 어울리도록 하기 위해서 마이크를 피아노 울림통 안에 넣어서 녹음 볼륨을 조정하면서 어렵게 편집하여 갔던 것도 기억이 난다. 타악기 소리를 넣기 위해서는 마이크 앞에서 여러 타악기도 두들겨 보았다. 독립적인 트랙 녹음이 가능하지 않고 여러 사운드를 한꺼번에 동시 녹음 할 수밖에 없었던 열악한 상황에서 녹음기로 들어가는 타악기 소리는 다른 사운드와 전혀 어울리질 않았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찾아낸 소리가 '사월 그 가슴으로'에 연주된 빈 종이 박스를 두들겨 대는 소리였다. '바람이 분다'나 '우리이야기'는 엄숙함을 벗어나는 파격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기타를 볼펜으로 두들기고, 노래 중에 소리도 질러대고.. 지금 들어보면 소꿉장난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때 엄숙하면서 긴장감이 팽팽했던 운동권 상황에선 정말 커다란 시도였다.


[사진 : 1986년 건대 점거농성 사건]


노래극 '부설학교'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한번 뮤지컬 작업을 하고 싶다는 거창한 계획이 있었다. 기존의 소설을 각색한 노래극을 창작하기로 했다. 대본을 표신중 선배가 쓰고, 연극 연습까지 해가면서 우리가 대사 녹음도 하고.. 노래는 모두 새롭게 창작을 했다. 며칠 밤을 새워가면서 작업을 했었다. 지금 테이프가 남아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노래는 문승현 선배와 나, 그리고 여계숙('언제나 시작은 눈물로'의 작곡자)이 주로 만들었다. 극에 의해서 설정된 내용에 따라서 뮤지컬 식의 노래를 창작해야 하는 작업이라서 매우 생소했다. 참 많은 노래를 만들었지만, 나름대로 완성도 있다고 남겨진 노래는 문승현 선배가 만든 '사계'와 내가 만들었던 '귀례이야기' 뿐이다. '귀례이야기'에 대해서는 많은 질문을 받는다. 도대체 '귀례'가 누구냐고. '귀례'는 '부설학교'극의 주인공이다. 주인공의 독백하는 노래가 '귀례이야기'이고.

떡볶이와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가면서 며칠씩 밤새워 작업하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이후 대중의 사랑을 받는 노래 일꾼들이 되었던 윤선애, 안치환, 김광석의 젊은 날의 목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는 소품이다. 내일에 대한 신념과 꿈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무언가 새로운 세상을 일굴 수 있다고 꿈꾸었던. 부식되어 가는 꿈에 대한 추억이 아련하다. 누군가의 노래 가사처럼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아직 많지 않은가?' 하고 자신에게 되묻지만 시계추 같은 일상에 지쳐가는 날 발견한다. 젊은 시절의 생기로 돌아가 다시 한번 꿈꾸어 봄은 어떨까? 그 꿈이 끝이 무엇이든간에. 꿈을 꾸는 자만이 희망을 갖는 법.

한밤의 꿈은 아니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이창학 (메아리 81학번..'벗이여 해방이온다' 작사,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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