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계화운동의 동원전략과 정치적 방향 수립을”

[특별기획] “세계화에 저항하라”(1)-세계화 10년, 저항의 세계화<2>
이창근 민주노총 국제부장, 반세계화운동 과제 제기

반세계화운동의 도화선, 씨애틀 전투

1999년 씨애틀 전투가 반세계화 운동의 도화선이었다는 데 의견을 달리 하는 사람은 없다. 우루과이 라운드에 이어 새로운 무역협상을 출범시키려 했던 WTO 각료회의가 5만의 반세계화 시위대에 가로막혀 개막식도 치르지 못하고 무산된 사건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대 투쟁에 전념하다시피 했던 한국 노동운동에 있어 씨애틀 전투 소식은 다소 먼 곳의 이야기로 받아들인 것이 사실이다.

시애틀전투는 미국노총 AFL-CIO의 대규모 동원으로 70년대 베트남 반전투쟁 이후 최대의 투쟁으로 발전하였다. 90년대 후반 MAI(다자간투자협정) 반대투쟁, 실업과 사회적 배제에 반대하는 유로마치, 유럽차원의 EU-G8 반대투쟁 등 지역별, 국가별 반세계화 투쟁을 전개하였지만, 이 투쟁들 모두는 시애틀 전투를 만들어내기 위한 전주곡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씨애틀 전투에 대한 이창근 민주노총 국제부장의 말이다.

“첫째, 국제기구와 협정에 맞선 직접행동과 국제적 조정과 연대 투쟁의 필요성을 국제적으로 각인시켰고, 둘째,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세에 맞선 20여 년 간의 수세적인 국면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으며, 셋째, 전술적인 측면에서 각료회의장을 포위, 타격하여 각료회의를 실질적으로 저지시킴으로써 국제공동행동의 전형을 창출했다는 점 등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

반세계화 운동은 2001년 9.11 테러를 전후해서 소강 국면에 접어든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선언은 반세계화 운동을 크게 위축시켰다. 미국 내에서 IMF-세계은행 총회에 맞서려던 투쟁이 취소되었고,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WTO 각료회의 대응 투쟁은 상징적인 국제행동의 날 행사로 대신했다. 9.11 이후 벌어진 미국의 아프간 공습에 시의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자, 씨애틀 전투로 고양되어온 반세계화 운동이 소멸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낳았다.

반제국주의, 반전운동과 결합으로 확장

그러나 2002년 1월말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제2차 세계사회포럼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4월 바르셀로나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반세계화 시위를 벌임으로써 반세계화 운동의 물꼬가 다시 트이기 시작했다. 이 즈음 반제국주의와 반전 운동을 연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많이 제기되었고, 반전투쟁 역시 고양기를 맞았다. 영국 런던의 40만 반전시위가 이를 웅변한다. 이창근 국제부장은 이후 전개된 반전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애틀 투쟁 이후 반세계화, 대안세계화 투쟁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계기는 국제적인 반전운동의 활성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2003년 2.15국제반전공동행동은 9.11사건으로 제공된 국제적인 공안국면을 공세적으로 극복하고, 반세계화 운동의 정치적 의미를 강화시킨 계기였죠. 즉 현재 무한전쟁은 금융세계화,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에 대한 제국주의 국가들과 초국적자본의 공동관리, 공동지배를 위한 전쟁이고, 이는 이라크에 대한 침략 전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플랜콜롬비아 등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형태의 무력, 폭력 개입까지 포함하는 것이었어요. 이러한 맥락에서 2.15 국제반전행동은 대안세계화 운동에 있어서, 국제기구 및 협정에 대한 포위, 타격 투쟁을 반제, 반미 등 군사세계화 문제와 결합시킬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것입니다.”

세계사회포럼이 처음 열린 것은 2001년 1월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 투기자본 거래에 대한 토빈세 신설을 목표로 유럽의 반지구화운동을 주도해온 프랑스 ATTAC(투자과세시민연합)과 진보적 신문 "르몽드 디를로마티크"의 제안으로, 지배엘리트가 주도하는 세계경제포럼에 대당하는 대안 토론의 장이 마련되었다.

대안 토론의 장, 세계사회포럼

2001년 1차 포럼에는 12,000여명이 참석하였으나, 2002년에는 1차포럼의 성공에 힘입어, 123개국 공식대표단 12,000여명을 포함, 모두 6만명 규모가 포르투 알레그레로 결집했다.

제2차 세계사회포럼은 제국주의의 신자유주의 지구화공세와 전쟁공세를 저지하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는 데 정치적으로 성공하였으며, 2003년 1월에 열린 3차대회에서는 2.15국제반전공동행동을 결의하는 등 반세계화운동과 반전운동이 하나의 운동임을 확인하였다. 이창근 국제부장은 반세계화 운동의 발전을 위한 세계사회포럼의 과제를 짚었다.

“세계사회포럼은 대안세계화 운동의 발전과 전망의 재구성에 있어서 핵심적인 결절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세계화의 상징적 의미를 넘어, 어떻게 운동으로서의 세계사회포럼을 활성화시킬 것인가가 핵심적인 과제죠. 즉 세계사회포럼 운동의 미래를 위해서 현재 무엇인가를 변화시켜야 할 때라는 말입니다. 세계사회포럼은 국제적으로 '세계화가 대세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대중화, 여론화시키는 데 성공한 지금의 국면을 한 단계 더 진전시켜야 합니다. 반세계화 담론(안티 담론)을 극복하는 초창기의 유의미성을 넘어야 한다는 건데,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의 도전 과제가 제기됩니다. 하나는 강령인데, 워싱턴컨센서스에 대비되는 포르투알레그레컨센서스를 구성할 필요가 있어요. 이는 세계사회포럼의 각종 워크숍 등에서 제기되는 내용들을 이론화 정치화시켜 지속적으로 논쟁하고, 업데이트 해나가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두 번째로 구조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합의 구조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인데, 이 과정에서 세계 사회운동세력의 민첩함과 유연함을 유지하면서도, 공동소유 사상을 유지할 것인가가 관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03년 1월말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제3차 세계사회포럼은 2002년 하반기 유럽 반전운동의 성과를 전지구적 투쟁으로 확장시켜 2.15국제반전공동행동의 역사적 투쟁을 가능하게 했다. 비록 3월의 이라크 침공을 저지하지는 못했지만, ‘테러와의 전쟁’을 주도하는 제국주의세력에 강력한 타격을 가하는 정치적 성과를 통해, 전쟁세력들의 국내적 정치적 기반을 와해시켰다.

세계사회포럼에서 결의한 2.15국제반전공동행동

반전투쟁의 맥락에서만 보면 하반기 9.27, 10.25 등 국제반전투쟁이 반전운동의 불씨를 살리는 중요한 투쟁이었지만 2.15국제반전공동행동 당시 국면을 확장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11월의 유럽사회포럼에서 제기된 2004년 3.20 국제반전투쟁, 제4차 세계사회포럼에서의 반전총회, 각 국에서 벌어진 파병 철군 투쟁과 9월 베이루트 반전 전략회의 개최 등 국제 반전운동의 명맥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반전운동과 반세계화운동 역시 지속적인 양상을 보여왔다. 특히 반WTO, 반FTAA 투쟁은 매우 큰 성과를 낳기도 하였다. 2003년 9월 WTO 칸쿤회의와 11월 마이애미 FTAA 회담은 모두 강력한 반세계화 투쟁에 막혀 결렬됐다. 2003년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공세를 통해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하려던 제국주의의 시도는 전세계 노동자들과 민중들의 저항에 부딪혀 사실상 좌절된 것이다.

지난 2003년 9월의 칸쿤투쟁은 반세계화운동의 투쟁력을 복원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9년의 시애틀 전투를 재현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는 WTO 체제 고유의 모순과 한국 농민 이경해 동지의 자결에 따른 투쟁 성과였다. 칸쿤투쟁 승리로 반세계화운동은 신자유주의 공세를 저지할 수 있다는 정치적 역량과 자신감을 갖추게 되었으며, 보다 정교한 전략과 동원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과제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역시 이창근 국제부장의 말이다.

“결국 반세계화, 대안세계화 운동은 시애틀 투쟁과 국제반전투쟁을 거치면서, 두 가지 측면의 과제가 제기됩니다. 하나는 국제적 동원전략과 일국적 동원전략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국제공동행동의 날은 국제주의적 시각의 형성과 확산, 국제적인 수준에서의 투쟁의 집중점 형성 등에 있어서 그 유의미성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전술이 남발되고 일국적 동원전략과 결합되지 않으면 홍보용 이벤트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일국적 동원 전략, 일국적 수준의 운동주체 형성, 특히 대중조직과의 결합력 강화가 핵심적으로 요구됩니다. 두 번째로 대안세계화 운동의 내용적, 정치적 측면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어떻게 공동의 내용을 만들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이 차원에서의 핵심은 금융세계화와 군사세계화 문제를 결합하고 공동 강령 및 내용을 합의해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한국 반전, 반세계화운동, 세계 민중투쟁과 함께

미국 주도의 제국주의 질서 재편, 지역블록화와 자유무역협정의 확산, 다자협상의 연장과 세계적 수준의 축적위기의 심화 등으로 압축되는 오늘날 자본운동의 흐름은 반제, 반전, 반세계화 운동과 필연적으로 대치하게 된다.

한국에서의 반전, 반세계화 운동도 어느덧 세계 민중의 투쟁과 맥락을 같이 해나가고 있다. 특히 작년 교육개방 반대, 한-칠레자유무역협정 반대, 공공성 쟁취 투쟁과 반전투쟁의 형성 등 민중의 투쟁은 세계 반전, 반세계화 투쟁의 내용과 큰 차이를 갖지 않는다. 나아가 한-미 양자투자협정, 한-일, 한-싱가폴 자유무역협정 체결 반대 투쟁 등 신자유주의적 자본협정에 반대하는 투쟁 과제를 제기함으로써 본격적인 반세계화 운동을 열어가고 있다.

이창근 국제부장의 말대로 한국에서의 대중적 동원전략과 국제적 동원전략을 결합시켜가야 할 과제와, 반세계화의 정치적 내용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의 과제를 동시에 풀어가야 할 시점을 경과하고 있다.

[특별기획]세계화에 저항하라
○ 기획을 시작하며
○ 1회(9. 9) 세계화 10년, 저항의 세계화
[취재] 지금은 다 개방중 - 이정석 기자
[인터뷰] 반세계화운동의 동원전략과 정치적 방향 수립을 - 이창근
○ 2회(9.16) 미 제국주의와 반제, 반전 운동
[기고] - 박하순
[좌담] - 원영수 vs 최일붕
- (좌담上) 세계 반전운동, 반세계화운동 만나 급진화
- (좌담下) 한국 반전운동, 중장기적 전략을 가져야 한다
○ 3회(9.23) - [기고/영상] 반동의 제국주의, 전쟁은 계속된다
○ 4회(10. 5) - [기고/취재] 한-미동맹의 현주소와 한반도 전쟁 위기
○ 5회(10.12) - [기고] 무한 자본시장 확장의 결절점, 지역블록화
○ 6회(10.19) - [기고/취재] 아시아 황금시장 노리는 초국적자본
○ 7회(10.26) - [기고/좌담] 초국적자본이 점령한다(1) : 의료,교육,스크린,방송,에너지 개방
○ 8회(11. 2) - [기고/대담/취재] 초국적자본이 점령한다(2) : 금융세계화와 투기자본의 횡포
○ 9회(11. 9) - [대담/취재] 초국적자본이 점령한다(3) : 산업공동화, 한-일FTA, 기업도시
○ 10회(11.16) - [대담] 자본의 세계화와 저항의 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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