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직후에는 민주노동당 여성최고위원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 자리에서 저마다 힘든 사연을 이야기 하던 조합원들은 결국 너나 할 것 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연말연시 어떤 사람들은 연이은 송년회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지만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의 다이어리는 결의대회, 단식, 집회 일정으로 빼곡히 차있었다.
고용직제 폐지하고 즉각 기능직으로 전환하라
민주노동당 기자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노조는 12월말 직권면직만을 되풀이 주장하며 노조의 대화 요청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경찰청과 정부를 강력히 성토했다. 또한 고용직 공무원을 전원 직권면직하고 그 빈자리를 일용직으로 채우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는 경찰청에 고용직공무원들을 ‘공무원임용령 제9조와 부칙 제2조’에 의거해 즉각 기능직으로 특별 임용할 것을 촉구했다.
22일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전 조합원 상경 결의대회를 개최할 것을 밝힌 조합원들은 △정부는 스스로 실업자를 양산하는 강제면직을 즉각 중단하라 △대책 없는 고용직제 폐지, 유사경력 3년 이상 기능직으로 즉각 전환하라 △여성이 99%인 경찰공무원, 여성차별 강제면직 즉각 중단하라 등 3대 요구안을 제출하며 기자회견을 마무리 지었다.
현재 경찰청고용직공무원들은 각급 지구대, 경찰서 등에서 수많은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일상적인 고용직공무원의 업무 외에 소재수사, 사건조회, 공문편철, 도급경비 등 경찰들이 해야 할 업무까지 맡고 있을 뿐 아니라 각종 행사가 있을 때면 한복을 입고 행사장 안내에도 내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청에서 고용직공무원을 내년 상반기 까지 전원 직권면직 시킨다고 해도 결국 그 업무는 고스란히 남게 된다. 경찰청은 고용직공무원들을 직권면직한 후 일용직으로 다시 채용하겠다는 속내를 보이고 있다. 또한 현재 면직당하거나, 사표 제출을 강요받은 고용직공무원들은 일용직으로 재임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고용직 자르고 월급 덜 주는게 구조조정?
고용직 공무원을 일용직으로 재임용하는 것의 문제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장희정 전국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 사무국장은 “현재 고용직공무원은 43세의 정년을 보장받고 공무원연금 등의 혜택을 받는 정규직 공무원인데 일용직이 되면 그런 보장이 다 없어지는 비정규직이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현재 약 50만 원의 본봉에 각종 수당 등을 합해 겨우 100만 원을 넘길까 말까 하는 급여를 받고 있는데 일용직으로 전환되면 그나마 절반 정도로 뚝 떨어진다”며 “길게는 10년이 넘게 짧게는 4, 5년씩 일한 고용직공무원들을 이제 일용직으로 바꿔 쓰겠다는 것이 경찰청의 입장”이라 잘라 말했다.
결국 경찰청은 업무 수요가 있는 고용직공무원들을 일용직으로 재임용하며 구조조정의 성과로 내세우겠다는 속셈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한 조합원은 “고용직 면직으로 확충되는 경찰청공무원 정원에 대해선 경찰로 채울 것”이라며 “힘없는 사람 자르는 게 구조조정이냐”고 되물었다.
'이 년은 시키는 일도 제대로 안 해‘, 눈물 바다 된 간담회
기자회견에 이어진 민주노동당 여성 최고위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는 조합원들이 저마다 가슴속에 묻어 놓았던 절절한 사연들이 쏟아져 나왔다. 경찰청 고용직공무원으로 11년째 일하고 있는 조합원은 “일반회사에 취업한 친구들 월급에 비하면 턱없는 급여였지만 공무원 신분이고 정년도 보장된다는 말에 94년 고3 신분으로 고용직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며 “지금은 지구대로 바뀐 파출소에서 아침에는 당직자에게 라면을 끓여다 주고, 점심 저녁에는 밥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자, 컴퓨터 업무는 도맡았고 심지어 김장 몇 백포기를 담그기도 했다”고 털어놓으며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역시 94년부터 일하고 있는 최혜순 위원장이 털어놓은 이야기는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어떤 경장이 뒤통수를 때리며 ‘이 년아 너는 사람을 보면 인사를 해야지 인사도 안 하냐’ ‘이년은 시키는 일도 제대로 안 해’라며 이년 저년을 반복 하길래 듣다 못해 ‘저도 나이가 있고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있는데 이 년 저 년 하지 마세요’ 라고 했더니 ‘이 년아 저만 애가 있냐’ 더라” 며 듣다 못해 옆에 있던 4살 어린 여경이 ‘이 언니도 나이가 있고 애가 있는데 너무 심하신 것 아니냐’고 끼어들었다. 이렇게 취급하더니 이제는 직권면직 이란다”며 분노를 표했다.
원주에서 상경한 한 조합원은 “같은 경찰서에서 일하던 정보과 형사들이 ‘당신 딸이 이상한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며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협박해 아버지가 병석에 눕고 어머니가 울면서 전화해 상경투쟁 하던 조합원이 결국 돌아갔다”고 말했다. 70년대 동일방직, 원풍모방 아니면 80년대 중반 구로공단에서나 일어났었을 법한 일이 2004년 국가기관에 의해 아직 자행되고 있는 셈이다.
절절한 사연이 이어지는 동안 조합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간담회 자리에 함께한 박인숙 민주노동당 여성부문 최고위원은 “공공연맹이 현재 함께 싸우고 있는데 민주노총, 당 할 것 없이 같이 결합해 이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현장에서 만난 사람, 사람들
6일째 상경투쟁 중인 김향실 조합원
미디어참세상은 간담회가 끝난 직후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동자들이 농성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회의실에서 일반 조합원들을 만났다. 박봉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이라는, 정년보장이라는 미사여구에 이끌려 경찰청고용직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사정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였다. 동료들이 절절한 사연을 털어놓을 때는 눈시울을 붉혔지만 담담하게, 때로는 힘차게 말하며 대화 말미에는 웃음을 짓기도 한 전북경찰청 산하 한 경찰서에서 일하고 있는 김향실 조합원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마친 김향실 조합원은 늦은 점심을 위해 컵라면에 물을 따랐다.
어떤 업무를 하고 있는지
-전북경찰청 산하 경찰서 청문감사실에서 일하고 있다
경찰청 고용직 공무원으로 일한지는 얼마나 됐나
-97년부터 일하기 시작해서 이제 7년 8개월이 됐다
고용직공무원에 대한 경찰청의 직권면직이 올 해 처음 벌어진 일이 아니라고 하는데
-작년 같은 경우에 정말 아무 예고도 없이 급작스레 직권면직을 내려 제대로 대응도 못했다. 작년 경험이 있어서 올 해는 제대로 싸울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작년 같은 경우엔 우리 끼리 적이 되어 싸우기도 했다. 서로 면직 명단에 포함 안 되려고...그 와중에 간부들은 이간질을 시키고...지금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
기존에 하던 업무가 있으니 직권면직 시켜도 다시 일용직으로 채용하겠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 경무과나 경리계 같은 곳은 정말 고용직이 빠져버리면 일이 안 된다. 그래서 경리계 같은 곳에서는 일단 일용직으로 일해라. 월급 차액은 (업무추진비나 자체예산으로) 메꿔 주겠다. 그러다가 나중에 기회 봐서 자리가 나면 기능직으로 전환시켜준다고 회유하기도 한다.
6일째 농성투쟁 중 이다. 법외노조라 파업 처리가 안 됐을 텐데
-무단결근 상황인가 보다. 연가를 제출해도 사인을 안 해준다. 우리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보장된 연가카드가 있다. 그런데 연가신청서에 사인을 안 해주고 무단결근으로 처리하고 있다. 무단결근으로 처리하면 지시위반 등으로 징계처리 할 테고 직권면직 시킬 명분이 또 하나 생기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