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노동자 박호현 |
노가다? 노동자? 현실은 그대로
전 날 철근공으로 서른 해를 일하며 시를 써온 노동자 시인 김해화를 만나 밤새워 술을 마셨다. “사진기도 노트북도 버려부럿다”며 가족과 떠나 목포의 아파트 공사현장에 갈 수밖에 없었던 기구한 이야기를 들은 다음날이었다.
하루종일 철근 메고 쳐진 어깨
기울이고
해지는 쪽으로 한 사람
긴 그림자 끌고 간다
캄캄한 밤이 기다리고 있는 마을
돌아가서
또 짊어져야 할 짐
애비노릇
사내노릇
김해화의 ‘사랑1’ [시집 ‘누워서 부르는 사랑노래’(실천문학사, 2000)에서]
“대구에서 건설노동자들이 서울에 왔는데, 꼭 좀 와주세요”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민주노총으로 갔다. 안전모를 쓰고 꿋꿋하게 앉아있는 박호현 씨의 구릿빛 살갗이 눈에 강하게 박힌다.
“대구에서 건설노동자가 일주일 넘게 파업을 하고 있는데, 2000명의 노동자가 공사장을 멈추고 파업을 하고 있는데, 언론에 실어주지를 않는 기라. 철저히 무시하는 기라”
공사현장 멈췄다
대구경북지역의 건설노동자 2천명이 지난 6월 1일 연장을 버리고 파업에 들어갔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건설노동자에게 파업은 생명을 바치는 행동과 같다. 그만큼 건설노동자의 삶이 벼랑으로 몰렸다.
“우리도 몰랐는 기라. 5월 21일에 결의대회를 할 때도. 하루 벌어 사는 건설노동자가 파업을 할 줄은. 6월 1일 공사현장들이 멈춘 거라. 곳곳에 흩어져 있는 처지라 파업이 쉽지 않거든. 하루하루 지나며 파업에 동참하는 사람이 늘어있어. 우리가 왜 파업하는지는 파업이 확산되는 것만 봐도 이유가 충분하지.”
조합원이 아닌 노동자도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 IMF 때 떨어진 일당은 오르기는커녕 제자리에 맴돌고만 있다. 그나마 일자리도 이주노동자에게 밀려나고 있다.
수모를 당하는 건설노동자
“건설현장에서 잔뼈를 굳혀왔는데, 앞으로도 계속해야하는데….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그가 처음 건설노동자가 된 것은 1972년이다. 올해 나이 쉰다섯. 그의 청, 장년이 고스란히 건설현장에 담겨져 있다. 아들과 딸이 있다. 둘 다 대학생이다.
“등록금은 대출 받아 어찌 만들었다 아이가. 공부를 해야 하는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데 공부 뒷바라지는 꿈도 못 꾸는 기라. 지들이 아르바이트해서 다닌다 아이가. 이것해서 애비노릇 하기는 물 건너 간 기라.”
건설노동자에게는 공휴일이 없다. 비가 오면 ‘공친 날’만 있을 뿐이다. 목수인 박호현 씨는 기능공이라 일당이 그래도 나은 편이다. 하루 10만원. 공치는 날만 없으면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할 수 있단다. 하지만 건설노동자에게 공치는 날은 자신들의 생각과 무관하다.
“한 해에 일곱 달 벌어 한 해를 먹고 살아야 하는 기라. 일당이 십만 원이라 캐도 한 달 평균 하면 백오십만 원 이라. 네 식구 먹고 살기도 빡센 기라.”
먹고 좀 살자
이 현장 끝나면 또 다른 현장 찾아 떠나야 하는 아슬아슬한 삶을 이어간다. 일요일 쉬는 것은 생각도 않는다. 안정된 일자리는 건설노동자에게는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은 단어다.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가 근무시간이다. 기본일당에 포함된 잔업시간을 따지면 일당은 십만 원에서 더 내려간다. 6시에 정확하게 일을 끝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일이 남아있으면 자연히 근무시간이 늘어난다.
건설노동자의 요구를 들어보자.
“물가는 뛰는데 일당은 10년 전이랑 똑같은 기라. 1년에 200일 이상 일하기 힘든 우리에게 일당 10만원은 겉보기만 많아 보이지 실제 수입은 입에 풀칠하기에 빠듯한 거 아이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적정임금을 보장해달라는 거지.”
건설현장의 안전도 지적한다. “말만 선안전 후시공 이라. 한 해에 800명이 공사현장에서 죽어가고, 2만 명이 재해로 다치는 거라. 목에 풀칠할끼라고 목숨 바치는 거라. 다쳐도 산재는 꺼내지도 못하고 잘하면 공상처리를 해주지. 건설업체는 발을 빼고 산재의 책임을 인력 동원하는 십장(시공참여자)에게 돌리는 기라.”
“또 쓰메끼리라는 게 있어. 제 때 일당을 주는 게 아니라 한두달 월급을 유보하는 거지. 일용직한테 쓰메끼리는 고통을 갑절로 씌우는 제도라. 당연히 없애야지. 이 쓰메끼리 때문에 부도가 나든지, 십장이 돈 들고튀면 받을 길이 없는 기라. 건설노동자 치고 일당 제대로 받은 사람은 없을 기라. 다른 현장에 일이 있어도 쓰메끼리 때문에 이 돈 받으러 다니느라 공치는 날도 많아.”
쓰메끼리 없애라
안전한 일터에서 일한 만큼의 대우를 안정적으로 받고 싶다는 게 건설노동자의 요구다. 하지만 이들의 요구는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있다. 언론은 모르쇠로 이들의 목소리를 감추고 있다. 대구경찰청장은 건설노동자의 파업을 고발하라는 전단을 현장소장에게 뿌리고 있다. 대구지방노동청은 교섭장소 사용요청마저 거절하고, 오히려 노조에게 불법이라고 겁을 준다고 한다.
“답답하고, 속이 터져 서울로 올라온 거 아이가. 사용자와 관이 똘똘 뭉쳐 우리의 요구를 짓밟고 있으니. 우째튼 물러서지 않을 기라. 장마철이 다가오면 또 일을 못하니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할 때지만 그냥 물러서지는 않을 기라. 노가다도 노동자라는 걸 똑 부러지게 보여 줄 끼다.”
똑 부러지게 싸운다
다시 안전모를 챙기고 대구로 내려갈 준비를 한다. 돌아오는 주말에 대구경북 건설노동자가 큰 집회를 열거니, 꼭 관심을 가져달라고 몇 번이고 부탁을 한다. 6월 10일 늦은 4시 대구 국채보상공원에서 “총파업 승리 투쟁 결의대회”가 열린다.
너희들은 우리들의 가슴에다 못을 박는구나
날카로운 대못을 골라
칵- 숨이 막히도록 쾅 쾅 쾅
망치를 휘둘러 못을 박는구나
주먹을 불끈 쥐며 앞장서서
총무를 때려잡아야 한다던 손
밀린 노임을 받기 전엔
결코 못 하나도 박을 수 없다던 손
우리들과 다름없는 굳은 살 박힌 그 손으로
아직 눈물도 마르지 않은 그리움을
빼앗길 수 없는 사랑을
눈물 하나 흘리지 않고 못질해 버리는구나
꿈틀거리며 일어서던 노동의 양심을
우리들 손때 묻은 망치로
열심히 대못을 박아 쓰러뜨리는구나
가면도 쓰지 않았던 너희들
뜨거운 피, 설움도 많았던 너희들
앞장 서 분노하고 앞장 서 일어서던 너희들
주먹이 단단하고 목소리가 우렁차던 너희들
너희들을 우리는 안다
살며시 불려나가
거짓 눈물을 앞세운 총무의 맥주 몇 잔에
가난한 가슴을 적시고
사슬을 철렁거리는
가시돋힌 법규 몇 조 몇 항에 주눅이 들어
우리들의 싸움을 등 뒤에서 허물어야 하는
너희들 노동의 고뇌를
너희들과 더불어 가슴이 가난하고
순하게만 살아온 우리들은 안다
쓰러져버린 우리들 해방의 꿈
찢긴 살점 한 점, 핏줄 한 올까지 찾아내어
단단하게 못질을 하면서도
너희들의 손은 지금 떨리고 있다
총무의 교활한 웃음 앞에서는
일당에 추가로 지급될 수당을 헤아리지만
해방의 맥박 몇을 소중하게 숨기고 있는
너희들 중의 몇 사람
가슴 아픈 속도 안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쓰러져도
끝내 일어설 것이다
우리들과 더불어 너희들도
끝내 일어서고 말 것이다
김해화의 ‘인부수첩 24’ [시집 “인부수첩 (실천문학사, 1986)”에서]
‘노가다 박 씨’를 만나고 돌아온 길, 스무 해 전 누렇게 바랜 건설노동자 시인의 시집을 펼쳤다. 낡은 시집의 활자가 2006년 파닥파닥 뛰어나온다. 전화가 울린다.
“나, 박호현이요. 요 말 좀 해 주이소. 사람답게 살고 싶다. 정당한 직업인으로 대접받고 싶다.”
툭 끊는다. 경상도의 무뚝뚝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의 무뚝뚝함에 담긴 경상도식 사랑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