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평화
시골에 살아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적어도 이 여름 한적한 자연에서 며칠 휴가라도 보내고 왔다면 알 거다. 풀, 나무, 벌레, 새, 들판, 냇물, 하늘이 얼마나 평화로운가를 말이다. 이 안에서는 들일을 하는 ‘인간’조차도 하나 흉악해 보이지 않는다. 개발과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파괴하고 빼앗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개발 동물’, ‘경제 동물’이 되어버린 인간이라는 종조차도 말이다. 물론 자연 안에 먹고 먹히는 사슬의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최소한 균형과 조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 온갖 목숨들이 제 빛깔을 내는 가운데 함께 어울려 있는 것이다.
내가 사는 마을도 그렇다. 여기는 울진에서도 깊은 산중으로 들어온 곳, 그래서 인터넷은 물론 신문이나 텔레비전 유선방송도 되지 않는 곳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벌써 마을에 사는 할머니들이 아랫논에, 건넛밭에 들어가 일을 하고 계시는 걸 보곤 한다. 허리를 굽혀 고추를 따는 할머니도 수레를 끌고 탈탈 먼길을 걷는 할머니도 누구 하나 그분을 감싸고 있는 들이나 하늘, 풀, 나무, 벌레, 새 따위와 다른 어떤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안에서 그대로 하나가 되어 있다. 평화. 때로는 이 모습 앞에서, 마을의 할머니들 앞에서 나는 내가 군청 앞 농성장이나 광화문 집회에서 외치던 ‘평화’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허나 그런 감상에 빠져드는 사이 문득 바그다드 외곽에서 우리의 농촌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곡식을 거두고, 채소를 가꾸던 마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곁을 지키던 탱크, 철조망 바리케이트, 곳곳에 폭격으로 무너져 내린 집터. 그 집에는 또 얼마나 되는 식구가 살고 있었을까. 내가 오늘 아침 본 할머니처럼 그저 섭리에 따라 살아가는 누구이거나, 애틋한 사랑을 품은 젊은이, 혹은 호기심을 주체 못하는 어린아이였겠지. 내가 눈감고 귀를 막고 있다고 해서 그게 평화일까? 사실 여기에서는 내가 일부러 읍내 피씨방에 나가 세상일을 뒤지거나 신문이나 잡지를 우편으로 받아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모를 뿐이다. 모르고 지내면 그 뿐이다. 아니, 모르면 더 좋을 수도 있다. 내 눈앞의 평화, 내가 누리는 아름다움만 보아도 좋다면.
허나, 이게 과연 평화일 수만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세상은 한 몸, 폭력과 빼앗음의 암세포들
시골이든 도시 어느 곳이든 만약 그곳에 평화로움이 있다는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함께 조화를 이룬다는 말과 다름이 아닐 것이다. 그 조화는 ‘관계’를 빼놓고 생각할 수가 없으며, ‘존재하는 어떤 것’도 빼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때문에 어느 한 부분이라도 그 조화가 깨지면 그것은 곧 전체를 망가뜨리기 마련이다. 우리 몸 어느 한 자리에 암세포가 있다고 해 보자, 그것이 눈이나 코에 있건 그것이 위나 간에 있건 어느 한 부분이 썩어가고 있다면 그건 눈이나 코, 위, 간 같은 어느 한 부분의 아픔이 아니라 몸 전체의 아픔인 것이고, 결국은 몸 전체의 목숨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내가 지금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엄청난 학살과 학대 아래에 있는 그 땅 민중들에 대한 연민과 미안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나 자신을 위해서이다. 세상의 한 곳, 이라크가 파괴되고 있는 것은 결국 이 세상 전체가 파괴되고 있다는 말과 같으며 머지 않아 내 삶 또한 온전치 못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위에 종양이 생겼는데 간이 누리는 건강함이 진정한 건강함인가? 이라크가 저토록 파괴되고 있는데 한반도 땅에서 누리고 있는 평화가 어찌 온전한 평화이겠는가? 한 나라에 대한 침략은, 더구나 이라크 전처럼 석유라는 한정된 자원을 가로채기 위한 자본의 탐욕이 낳는 전쟁은 끝내 온 세상을 한꺼번에 망가뜨릴 것이다. 내가 이라크 전을 반대하는 것은 내 삶을 온전히 지키고 싶은 바람, 그것에 다름 아니다. 지금 눈앞에 내다보이는 우리 마을의 평화, 앞산에서 지저귀는 산새들의 평화, 건넛밭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 저 할매의 평화를 지키고 싶은 바람, 그것이 내가 이 전쟁을 반대하는 까닭이다.
고라니, 도룡뇽, 지율 스님
농성을 마치고 밤에 들어오는 길에 깜짝 놀랄 일이 있었다. 자동차로 켠 불이 아니면 빛이라고는 별빛이 다인 길, 멀리서 움직이는 짐승의 그림자가 보였다. 속도를 천천히 줄여 앞으로 가다가 더 가지 못했다. 뭐지. 저게 뭐지? 사슴인가? 노루인가? 고라니! …… 고라니였다. 인기척을 느끼면 바로 달아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다. 고개를 뒤로 돌려 자동차가 있다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상관없다는 듯 사뿐 사뿐 거닐며 노닌다. 아마 겁을 모르는 어린 녀석인가 보다. 어떻게, 어떻게 하지? 가만가만 몇 걸음만 더 가면 손이 닿을 만큼 가까이 갔는데도 슬슬 피할 뿐이다. 안녕! 인사를 나누고 싶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무얼 어떻게 해야 할는지 몰라 더 가까이만 가고 있노라니 어린 고라니는 그제야 겁을 먹었는지 숲 가운데로 폴짝 뛰어 들어갔다. 예쁘다.
오늘 군청 앞 농성을 마치고 농성 물품을 맡겨 놓는 책방에 들렀을 때 잠깐 인터넷으로 뉴스들을 보았더니 지율 스님에 대한 기사가 유난히 많았다. 단식 44일째라 하셨던가. 정부에서는 내부적으로 지율 스님 하나 죽는 것쯤은 감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라 했다. 이런 미친, 미친 소리! 어찌 그럴 수가 있나? 그래, 김선일 씨가 납치되어 살해 위협을 받을 때도 대통령의 입 구실을 하는 유시민이라는 자는 그랬다지. 시민 하나가 죽는다 해서 정책을 어떻게 바꾸겠느냐고. 그리고 여당의 대표라는 자 또한 제2의 김선일이 나오더라도 파병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아주 당당하게 얘기를 하지 않았나. 아니, 500명의 국민이 죽을 것을 감수할 각오라 했으니 더 무슨 말을 할까? 이게 우리의 삶과 살림을 맡겨 일을 하는 정부인가, 그자들이 과연 우리 세금을 가지고 우리에게 봉사를 하는 심부름꾼들인가? 생각할 수록 기가막힐 일이다.
지율 스님이 함께 하려는 천성산, 그리고 천성산의 도룡뇽. 어디 도룡뇽 뿐일까, 그 산에 둥지를 틀고 있을 수많은 산새며, 수만 그루의 나무, 수만 그루의 풀과 꽃, 그리고 사람의 눈을 피해 살고 있을 다람쥐, 토끼, 너구리, 청설모와 오늘 밤 내가 만난 녀석과 먼 친척일지 모르는 고라니. 천성산 하나를 허물어서 그곳에 철길을 내어 우리 인간이 얻는 이익은 고작 22분을 빨리 가게 되는 것뿐이라고 한다. 그 수많은 목숨을 죽이고, 그 수많은 둥지를 허물고, 천성산을 둘러싼 세상 하나를 파괴해서 말이다. 천성산을 지키는 일, 그리고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일 그것은 결국 하나다. 세상을 지키는 일 그것은 다름 아닌 세상의 조화를 지키는 일이며 평화를 지키는 일, 결국 내가 살기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율 스님, 부디 생명의 기운이 스님의 몸에 끝없이 샘솟기를 바랍니다.
군청 앞
오늘도 군청 앞 농성장에 피켓을 들러 나온 사람들이 제법 많다. 우리 집에 온 꼬마 손님들도 있어서 함께 평화모임을 하는 분들이 나 대신 손님 대접을 다 해주고 계신다. 오늘은 햇살 님네랑 바라 님네 식구, 그리고 도토리까지 해서 다들 왕피천 골짜기에 가서 물놀이를 하러 나갔다. 내가 농성장으로 나가니 아직 덜 마른 옷을 입고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아이들 둘은 곯아 떨어져 있다.
오늘 단식자는 장혜경, 전양규, 황윤길, 박기범. 우산 농성 당번은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바하 님(장혜경 선생님)이다. 물놀이를 다녀온 사람들에 바하님과 나까지 해서 주륵 서니 또한 긴 피켓 띠를 이뤘다. 길에 나온 사람도 다른 날보다 훨 많다. 따져보니 오늘이 장날이다. 우리가 벌써 군청 앞에 피켓을 들고 나선지 두 달이 가까워가고 있으니 이 조그만 읍내에서 볼만한 분들이야 거의 다 봤을 텐데 아직도 멈추어 서서 피켓에 쓴 글자나 그림을 눈여겨보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이야 피서 끝물이기는 하지만 자동차 번호판을 보니 다른 고장에서 놀러온 사람들 수도 꽤 된다. 군청 앞 시위를 멈출까 하는 말이 있기도 했는데 역시 멈추지 않고 계속하기를 잘한 것 같다.
한 아주머니가 피켓들을 하나하나 다 살피더니 어디에서 나왔느냐고, 고맙다며 모금함에 돈을 넣어주셨다. 식구를 가득 태운 자동차 한 대가 피켓 앞으로 와서 서더니 내려 모금함에 돈을 넣고 가기도 했다. 돈 얼마를 넣어주어서가 아니라 함께 하는 마음을 확인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나는지 모른다.
군청 앞 바라님과 냉이, 바하 님 |
2.
석유와 자동차, 그리고 전쟁
지난겨울 16대 국회에서 파병안 통과가 있기 전 보름 단식을 마치고 바로 찾아간 곳이 안동이었다. 권정생 선생님을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더 잘알겠지만 선생님을 찾아가는 일은 찾아가 뵙는 일이 괴롭힘을 드리는 일이 될 만큼 선생님의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 전화만 해도 받을 기력이 없으실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데 찾아간 날은 선생님이 반겨 맞아주시며 좁디좁은 방안으로까지 들여주셨다. 그리고 두어 시간 말씀을 들었는데 그 때 하신 말씀 중에 단식은 왜 했느냐고, 그런 거 하지 말으라고, 하려면 한 천 명이고 만 명이고 다 같이 청와대 앞으로 가서 굶으면 모를까, 혼자 그리 굶는다 해서 어찌 되겠느냐 했다. 그리고는 지금 같이 해서는 될 일이 아니라는 말씀이셨다. 환경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죄 차를 몰고 다니면서 독한 연기를 뿜고 다니는데 그게 무슨 환경운동이냐고, 텔레비전에서 전쟁 반대 데모 같은 걸 봐도 얼굴에 화장을 하고 좋은 옷을 입고 하는 데 그래서 어떻게 전쟁을 반대하겠느냐고. 기름 때문에 지금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기름을 그리 써대면서 무슨 전쟁을 반대하느냐고.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선생님의 이 말씀을 심각하게 듣지 못했다. 그리고는 “어유, 선생님 자수할 게요. 저도 오늘 자동차 운전해서 왔어요.” 하는 말을 어리광처럼 했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그래도요, 더 못되게 자연을 망가뜨리고 다니는 사람들, 못살게 굴고 빼앗는 사람들은 온 나라로, 전 세계로 다니며 그렇게 나쁜 짓을 하니까 그거 못살게 구는 거라도 좀 덜 못살게 굴 수 있게, 그거 막느라고 다니려면 어쩔 수 없이라도 차를 타야 하지 않아요?” 하고 물었다. 여전히 나는 어리광 섞인 말투였다.
그리고 나서 몇 달 뒤, 여기 울진에서 가끔 뵙는 김진문 선생님이 안동에 다녀왔다 하시며 차 몰고 갔다가 선생님께 혼이 나고 왔다 하시며 웃었다. 하지만 그 때 또한 그래, 원칙으로야 선생님 말씀이 맞지, 하지만 어예 그리 살 수가 있나 하며 말끝을 흐릴 뿐이었다. 여전히 나는 심각하지 않았다.
버스값의 절약과 석유의 절약
그러다 문득 선생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내 문제로 여기게 된 건 광화문 집회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려고 동서울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탈 때였다. 생각해 보면 나는 지난여름 이라크에서 돌아오고 난 뒤, 가을에 2차 파병에 대한 이야기가 한참 될 때부터는 거의 반 년 동안 주말마다 서울을 다녀왔다. 서울까지 버스 값이 이만사천 원이니 한 번 다녀오면 적어도 오만 원, 차 삯만 해도 그게 보통이 아니었다. 때로는 버스를 탔고, 때로는 차를 몰고 손수 운전을 했다. 짐을 많이 싣고 가야 할 때나 이곳 저곳 들러야 할 곳이 많아 노선대로 움직이기 어려울 때면 주저없이 차를 몰았다. 그러면서 마침 서울에 갈 일이 있어서 내 차에 몇 사람을 태우면 나는 대단한 절약이라도 한 듯 뿌듯해 했다. 네 사람이 타면 버스 값이 십만 원은 드는 데, 한 차로 가면 많아야 삼사만 원이면 가지를 않나? 그러니 우리처럼 없이 사는 이들에게 이 얼마나 큰 절약인가?
하지만 나는 올 봄 버스를 타고 내려오다가 머리를 얻어맞는 것처럼 크게 깨달았다. 울진까지 내려오는 버스, 30명이 넘게 탈 수 있는 버스에 고작 세 사람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절약이라고? 만약 나는 네다섯 사람이 같이 내려와야 했으면 자동차를 몰고 운전을 해서 내려왔겠지. 그러면서 대단한 절약을 했다고 자부했겠지. 그런데 과연 그런가? 그래도 버스는 두세 명을 태운 채 똑같은 기름을 태우며 울진으로 내려온다. 자가용을 탄 그 다섯 사람은 버스값을 칠팔만 원 정도 아끼게 된 셈이지만, 기름은 버스 한 대가 태워도 될 것에 자가용 기름을 한 대 더 태우게 된 것이다. 이게 절약인가?
내 셈법은 어떻게 이렇게 간사할까? 다섯 사람이면 승용차 한 대로 움직일 수 있으니 버스 값을 아낄 수 있다는 발상은 그야말로 내 주머니의 절약만을 생각한 것이다. 석유가 없어서 전쟁을 하고 있다. 석유를 차지하려고 전쟁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반전을 외친다면서 내 주머니의 버스값을 아끼려고 저 커다란 버스는 텅텅 비게 해서 내려보내면서 따로 기름을 태워 자가용을 탄 게 얼마인가? 부끄럽다. 내가 과연 전쟁 반대를 말할 자격이나 있는가?
승용차를 버려야 파병도 안할 수 있다
‘승용차를 버려야 파병도 안할 수 있다‘ 이 말은 권정생 선생님이 <<작은책>> 8월호에 쓴 글의 제목이다. (혹시 아직 읽지 않은 분이 있으면 꼭 읽기를 바란다.) 선생님이 말한 승용차는 비단 승용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옳은 길이 아님을 알면서도 편안함만을 쫓는 우리의 생활방식. 내 몸, 내 생활은 계속해서 기존 질서에 순응해서 살며 파괴하는 삶대로 살아가면서 근본적인 삶에 대한 성찰은 없는 채 어떻게 세상을 구원할 수 있겠는가를 묻는 호된 가르침일 것이다.
그 생각에 미치면서 나는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웠다. 나는 그토록 권정생 선생님을 따르고, 배우며 살고 싶다 하면서, 그리고 내심 선생님이 나를 예뻐해주고 계시다는 생각에 더욱 좋아하며 지내면서도, 결국에는 그렇게 진짜 가르침을 몸으로 받지 못하고 지냈다. 석유 때문에 전쟁인데, 나는 내 몸이 조금만 불편하면 안 태워도 될 석유를 그토록 태우고 다녔다. 그래 놓고는 이라크 민중을 말했고, 이라크 전쟁 반대를 말했다. 내가 석유 1리터를 더 태우면 이라크 어린이 하나가 더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과연 아무 생각 없이 그리 차를 몰고 다닐 수 있었겠나? 승용차에 몇 사람을 태우고 가면서 버스 값을 절약했다고, 절약하는 삶을 산다고 생각한 내가 얼마나 모순에 빠져 있는가?
부끄러웠다, 부끄러웠다. 부끄러워서 당장 읍내에 나가 자전거를 샀다. 가파른 언덕이 넷, 자전거를 타고 읍내에 한 번 나갔다 오면 옷이 다 달라붙는다. 하지만 김선일 씨가 죽고, 그 뒤로 저녁마다 군청 앞에서 피켓 시위를 시작하면서 다시 그 길에는 차를 몰았다. 울진은 죽변에서도 20키로, 자전거나 걸음으로 다닐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단식을 하면서 농성장을 다니는 것 또한 차에 몸을 기대지는 않고는 다닐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도 차에 시동을 걸 때마다 가슴에 내려가지 않고 걸리는 게 있다. ‘석유가 모자라 사람들은 죽고 죽이는데, 나는 또 얼마만큼의 석유를 태운다.’
그저 지금 하는 것은 최소한 그 때를 빼 놓고는 버스를 타려고 한다. 버스를 타거나 걸어도 되는 곳이면 그만 걸어다녀야지.
석유, 에너지, 삶의 방식
결국 이 전쟁은 부시가 일으킨 것이기도 하지만 현재 삶의 방식에 길들여져 사는 내가 낳은 것이기도 하다. 나는 반전평화를 외쳤어, 나는 파병반대를 말했어, 나는 전쟁을 일으키는 저들 편이 아니야! 하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을까? 나는 소비하는 삶을 그대로 살면서, 개발에는 반대한다지만 개발에 기대어서 살면서, 전쟁에 반대하지만 결국 어떤 식으로든 전쟁으로 인한 이익에 기대어 살면서……? 반전 운동의 내용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이 세상에서 전쟁을 없게 하려면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소비에 기대지 않는 삶, 자본에 기대지 않는 삶, 개발에 기대지 않는 삶. 우리부터가 소비와 자본, 개발로부터 자유로워야 우리가 그것들에 맞서 싸우는 것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석유. 어차피 석유는 바닥이 날 것이다. 지금 부시를 비롯해 석유 개발권을 욕심 내는 자본들이야 그것을 알고서 발빠르게 탐욕을 부리고 있는 것이지만, 몇 백 년 뒤 석유가 바닥이 나고 나면 그 때는 어떨 것인가? 반전운동을 하는 이들조차 석유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하는 지경에 와 있는데, 그야말로 석유가 바닥난다면 어떨 것인가? 석유에 기대는 삶의 방식을 그대로 가져간다면 어떤 선한 권력, 어떤 반자본적 권력이 있다 해도 전쟁은 결국 불가피한 것이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석유가 모자라 싸움을 하는데 그 때에도 석유를 태우면서 전쟁을 하지 말라 할 건가? 한 마을에 물이 모자라 싸움을 하면 적어도 그 싸움을 말리는 사람은 물을 최소한으로 덜 써야 하지를 않나? 누구를 탓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 안의 문제다.
이 전쟁을 보면서 우리가 할 것은 당장의 침략과 점령에 맞서는 것, 그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 전쟁을 낳을 수밖에 없는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이 석유 전쟁과 관련해서는 그 대안이 두 가지일 수 있다. 하나는 석유에 기대지 않아도 좋을 대체 에너지를 개발해 내는 것, 또 하나는 석유든 다른 에너지든 굳이 기계의 힘에 기대지 않고 살 수 있는 삶의 방식 쪽으로 되돌아가는 것.
별똥별
오늘 밤 별똥별이 많이 떨어진다 했다. 요즘 하늘이 맑아서 밤이 되면 우리 마을 하늘은 완전히 별천지인데 별똥별이라니. 와아아. 지붕 마당에 올라가 돗자리를 깔고 꼬맹이 손님들과 함께 누웠다. 정말 별천지다. 하늘 속으로 내가 빨려 들어가는 것도 같고, 모래알 같은 별가루를 촤르륵 뿌려놓은 것도 같다. 한 십오 분이 지났나? 다들 한 목소리로 “어, 어어?”. 아주 굵고 진한 별똥별이 지나갔다. 소원 빌었어? 아니, 너무 빨라. 뭐라고 빌 건데, 몰라. 그럼 내가 하라는 대로 해. 별똥별이 지나가면 “파병철회” 그러는 거야. 갑자기 지나가면 못 하니까 지금부터 파병철회파병철회파병철회파병철회파병철회 하는 거야. 자, 어서 준비하고 있어.
겨우 삼십 분 사이에 우리가 본 별똥별은 열 개가 넘었다. 그 가운데에는 내가 놓친 것도 있어서 나는 여섯 개를 봤다. 나는 파병철회파병철회파병철회를 하고 있어서 다섯 번 모두 소원을 빌 수 있었다.
오늘 저녁 본 기사를 보니 나자프에서는 미군이 총 공격을 다시 시작했다 한다. 탱크, 미사일, 헬기 따위 모든 화력을 쏟아붓고 있나 보다. 오십 몇이 죽고 백 몇이 다쳤다고, 그 가운데 대부분은 여자와 어린이라고.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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