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나라당에서 이한성 의원이 발의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17대 국회서 여야 만장일치로 본회의 상정됐으나 임기만료로 폐기됐다"는 등의 주장을 자료로 배포하자 이에 대응하는 자료가 등장했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통비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한 것에 대해 "이례적으로 수정안이 두 건이나 발의돼 법사위 대안과 경합을 벌였으며 이때 수정안에 서명한 각 30여 명의 의원 가운데 현 한나라당 소속 의원도 포함돼 있다"고 반박했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한나라당의 통신비밀보호법안에 대한 문답풀이 10선'을 소개하며 통비법의 통신 감청 등 사항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아래는 자료 전문이다.
한나라당의 통신비밀보호법안에 대한 문답풀이 10선
휴대폰 감청을 합법화할 필요가 있다. 어째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반대하는가?
개정안에서는 "휴대폰 감청"이라고 특정하지 않았다. "모든 통신사업자"에게 감청설비를 의무화함으로써 휴대폰, 인터넷전화, 인터넷메일, 인터넷메신저, P2P 등 현존하는 모든 통신수단 뿐 아니라 미래의 모든 통신수단을 감청의 대상으로 삼아 버렸다. 이는 지나치게 포괄적인 입법이며, 통신사업자에 대한 감청 설비를 도입하고 있는 다른 나라에서도 쉽게 전례를 찾을 수 없다.
통신 감청은 범죄수사를 위해 당연히 필요한 것이다
현재 통신 감청은 주로 국가정보원이 하고 있다. 심지어 2007년 감청 통계에 따르면 총8,803건 가운데 98%에 달하는 8,628건을 국가정보원이 감청하였다. 국가정보원의 감청은 일반 범죄수사와 관련이 없으며 이번에 무선전화와 인터넷으로 통신 감청을 확대하는 것은 국가정보원의 비밀 권력을 확대시키기 위한 것일 뿐이다. 무엇보다 통신 감청은 "범죄수사를 위해 필수적"인 수단이 아니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에서도 "다른 방법으로는 그 범죄의 실행을 저지하거나 범인의 체포 또는 증거의 수집이 어려운 경우에 한하여"(제5조) 감청을 허가한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다른 나라에서도 통신 감청은 다른 모든 범죄 수사 기법을 동원한 끝에 제한적으로 실시되는 "예외적" 수단이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들은 이 조항을 거의 염두에 두지 않고 통신 감청을 오남용해 왔으며, 특히 2005년 드러난 안기부와 국정원의 불법 도감청 사건 당시 정보수사기관이 감청을 ‘최종적 수단’이 아닌 특권으로 인식했던 것으로 드러나 많은 비판을 받았다. 정보수사기관의 정보독점과 이를 이용하려는 권력집단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도감청을 조장하면서 국민의 통신의 비밀과 기본권을 소홀히 취급하였던 역사적 오류를 기억하자.
범죄 수사를 하기 위해 통신사업자들이 협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개정안에서는 통신사업자들이 두가지 의무를 지지 않으면 통신서비스를 할 수 없도록 하였다. 모든 통신사업자는 감청설비를 갖추고, 통화내역이나 인터넷 로그기록 등 '통신사실확인자료'를 보관해 두었다가 수사기관이 요청하면 응해야 한다. 감청설비를 갖추지 않으면 매년 최대 10억의 이행강제금을 내야 하며, 자료를 보관하지 않으면 최대 3천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국가가 범죄를 수사하여 범죄자를 처벌할 필요가 있어도, 이를 위한 증거 수집을 모든 통신사업자에게 의무로 부과하는 것은 매우 과도하다. 수사기관이 자기 업무를 위해 통신사업자에게 그 자료의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일종의 협조 사항이지 강제할 일이 아니다.
통신사업자를 통해 감청하면 수사기관이 하는 것보다 감청이 투명해질 것이다
지금 우리처럼 국가 권력의 외압에 취약한 통신사업자의 상황에서 불법 감청을 거부할 것을 기대할 수 없다. 2005년 국가정보원의 불법 감청 당시 사용되었던 R2 장비는 통신사업자를 통한 것이었다. 2000년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도 통신사업자가 수사기관의 불법 감청에 협조하고 있는 실태가 지적된 바 있다. 무엇보다 통신사업자가 감청설비를 운영하거나 통신자료를 보관하면서 이를 오남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가 없다.
통신사업자가 감청 장비를 오남용될 것이라는 우려는 오해다. 평상시에는 접근이 차단될 것이다
통신사업자가 감청 장비를 구비하고 '협조'하도록 하겠다는 개정안의 취지대로라면 감청 장비는 통신사업자의 재산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통신사업자가 자기 재산인 감청 설비에 접근하여 이를 오남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만약 통신사업자가 감청 장비에 접근할 수 없도록 국가가 접근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건 국가기관의 장비를 '위탁'받는 것이다. 통신사업자의 위상이 수사기관의 장비를 위탁받는 정도라면 어떻게 투명한 감청 집행의 견제자가 될 수 있겠는가? 기관원이 상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감청 의무만큼 심각한 문제는 보관 의무이다. 옥션에서 1천 81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지 1년도 되지 않았다. 통신사업자의 개인정보 과다 수집과 유출 문제가 중요한 시점에서 국가는 이를 규제해야 하는데, 오히려 이를 조장하다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정보 보관 의무가 아니라 폐기 의무이다.
법원이 잘 통제할 것이다
법원의 통제는 꼭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법원 통제는 매우 형식적이다. 법원의 통신감청 영장에 대한 기각률은 3.6%(2007년)에 그치고 있으며 통신사실확인자료에 대한 청구 기각률은 0.9%(2007년) 뿐이다. 수사기관이 법원에 감청 허가를 받을 때 다른 방법으로는 그 범죄의 실행을 저지하거나 범인의 체포 또는 증거의 수집이 현저히 어려운 이유를 엄밀히 따지지 않는다. 수사기관이 법원에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허가를 받을 때 수사 또는 형의 집행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만 하면 된다. 기본적으로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이 너무나 허술하다.
통신사실확인자료 보관 의무는 이미 시행령에 포함되어 있어 이를 모법에 올리는 것은 문제가 없다
시행령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법을 개정해야 하나? 통신사실확인자료 보관 의무가 시행령에 포함된 것은 2005년의 일로, 모법에 관련 규정 없이 정부가 제맘대로 신설한 것이다. 이로 인해 당시 시민사회단체들이 강력 비판하였었으며 법학계에서도 그 위헌성을 지적한 바 있다. 위헌적인 시행령 개정 내용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모법에 관련 규정을 추가한다는 것은 잘못된 논의순서이며, 특히 보관 의무를 어기는 모든 통신사업자에게 과태료 3천만 원을 부과하는 벌칙 규정을 신설한 것은 중대 사태이다. 보관의무 자체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
해외에도 다 도입되었다는데
해외에서 다 도입된 것이 확실한가? 면밀히 살펴보면 우리의 개정안과 많은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 통신사업자에 대한 감청설비가 의무화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처럼 인터넷 부가통신사업자를 포함한 "모든 통신사업자"에게 적용하지 않았다. 전화사업자에게만 의무가 적용되며, 그것도 많은 비판과 감시를 받고 있다. 2007년 미국 전체에서 보고된 감청 건수는 2,208건에 불과하다.(22개 주의 통계가 빠져있지만, 같은해 8,803건에 달한 우리 감청 수치와 비교하여 보라.) 영국에서도 통신사업자에 대한 감청설비 의무화가 일부 도입되었지만, 모든 통신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대상 사업자를 개별 지정하도록 하였으며, 이때 지정된 사업자는 이의신청을 살 수 있는 절차도 보장되어 있다. 자료 보관 의무는 또 어떠한가? 미국은 자료 보관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독일은 연방헌법재판소에서 통신사실확인자료 보관 의무의 위헌성을 인정하여 효력정지 가처분 명령을 내린 상태이다.
어쩌자는 것인가? 왜 수사기관을 믿지 못하는가?
워낙 오남용이 많아서 그렇다. 2005년 드러난 안기부와 국정원의 불법 감청 실태도 충격적이었지만,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정부에 불리한 기사를 쓴 기자의 통화내역을 조회하는 일이 잊을만하면 발생하지 않는가? 얼마전에도 검찰과 경찰이 국방부 ‘감사처분 요구서’를 보도한 기자들의 통화내역을 조회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이 범죄수사인가? 오남용이 횡행하는 것은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이 너무나 허술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36시간 동안 자유롭게 감청할 수 있는 '긴급 감청' 제도이다. 통신 비밀을 보호하겠다는 법 취지에 크게 못 미치는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을 먼저 개선해야 한다. 이 상태로 새로운 제도나 의무를 도입하는 것은 정보수사기관에 의한 끔찍한 감시 사회를 불러올 것이다. 요지를 말하자면, '선개선 후논의'이다.
현재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17대 국회에서도 여야간 합의된 바였다
현재 이한성 의원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17대 국회에서 발의되었던 법사위 대안과 유사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당시 이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반발이 일어 본회의에서 법사위 대안에 반대하는 수정안이 2개 발의되어 경합을 벌였기 때문이다. 당시 각 수정안에는 30명 이상의 의원들이 서명하였으며 서명자에는 현 한나라당 소속 의원도 포함되어 있다. 여야가 합의하였다면 어째서 2007년 6월 법사위를 통과한 후로부터 2008년 5월 17대 국회가 임기만료할때까지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