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은 황우석 사태가 "하나의 신드롬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이 집약되어 표출"되는 상황에서 "찬반토론이나 일방적인 비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차분히 돌아봄으로써 우리 사회 이성과 상식의 회복에 기여"한다는 취지에서 마련했다.
좌담은 나정걸 시민참여연구센터 회원, 한재각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이강택 KBS PD, 조이여울 일다 편집장, 최용준 민중의료연합 대표 등이 참석, 유영주 편집국장의 사회로 1부는 모두발언으로 의견을 발표하고, 2부는 종합토론 방식으로 진행했다.
유영주(사회자) 크게 세 가지 토론 주제를 잡아봤다. 1주제로 '황우석 연구팀의 정치사회적 의미, 그들의 잘잘못과 해야할 일'로 놓고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모두발언에도 있었지만 BT 투자와 의료산업,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와 황우석 연구팀의 위치, 그리고 생명공학 지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따위를 짚어볼 수 있겠다. 황우석 교수가 과학자로서의 정직성을 갖지 못한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연구원 난자 기증이나 노성일 원장의 난자 매매...
한재각 : 2005년 사이언스에 게재한 황우석 교수에 대해서 의료윤리 차원에서 논평을 한 밀드레드 조라는 학자가 있다. 이 사람은 줄기세포연구에 난자를 기증하는 여성을 불임부부를 통해서 난자를 기증하는 통상적인 범주와는 별도로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불임부부를 위해서 난자를 기증할 때는 그 위험성에 견주어 그 이점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자발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줄기세포연구를 위한 난자기증의 경우는 그 이점이 명확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치료를 위한 것이 아니며, 단지 연구를 위한 것이고 그 역시도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이점이 불명확한 상태임에도 이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난자기증에 대한 동의가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를 자발적인 것으로 봐야 하는지 좀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이여울 : 일다에서 '난자 기증 캠페인'을 문제삼으니까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이 항의를 해오고 그랬다. 그 정도의 희생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치 하나의 난자를 꺼내면 사람을 ‘살린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사실 왜곡이고, 그런 부분에서 제대로 정보 제공이 안 되고 있다.
나정걸, "황우석 교수 체세포복제방식 상업화 한다 쳐도 난자 어디서 구하나"
한재각 : 맞춤형 줄기세포 연구와 치료법이 실제로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치료법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왜냐하면 맞춤형 줄기세포 치료기술 개발이 성공한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환자 치료를 위해서 그 때마다 난자를 얻어서 배아복제를 해서 줄기세포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그 많은 난자를 대체 어떻게 구할 수 있겠는가? 환자 주변의 여성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성에게 난자 제공이 강요될 것이다. 이런 기술이 사회적으로 수용가능한지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냉동배아를 이용해서 배아줄기세포은행을 만들어서, 유전적으로 면역학적으로 일치되는 배아줄기세포로 치료하는 방법도 연구되고 있다. 이것은 전세계적인 협력을 통해서 줄기세포은행을 만들어서 나눠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성이 더욱 높으며, 연구개발 비용 및 치료 비용도 상대적으로 낮출 수 있는 접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조이여울 : 그렇다. 성공하더라도 난자 때문에 어려운 연구분야이다. 한국이 난자를 제공하는 국가가 된 것 같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 여성인권이 너무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나라가 경제력이 커지면서도 특이한 게 여성의 신체적, 성적 권리가 약하다는 점이다. 여성 인권이 낮은 나라는 교육권이 낮은 편인데 우리 나라는 교육을 비슷하게 받는데도 권리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난다.
한재각 : 한국처럼 1000명 단위로 난자를 기증하는 것은 유례 없고 특별한 경우이다. 그러다 보니 유럽 쪽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성주의적 관심일 수도 있고 연구자의 관심일 수도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즉 우리나라에서 난자기증에 있어서 사회정치윤리적 기준을 낮아지고, 그것이 혹시나 전세계의 소위 글로벌스탠다드를 끌어내리는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앞선 몇몇 기술분야, 예를 들어서 IT분야나 줄기세포연구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기준이 글로벌 스탠다드가 될 가능성이 있는데, 그것이 기존의 스탠다드를 낮추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
사회자 : 난자기증의사 전달식 현장에 취재차 갔다 왔는데, 선입견이 깨지는 게 있었다. 난자기증 희망자들은 불임 등 시술 후유증에 대한 공포를 충분히 갖고 있었다. 불치, 난치병에 대해 거는 희망이 너무나 뚜렷했다. 인터뷰를 했던 대부분이 먼 미래의 일인 줄도 잘 알고 있었다. 이데올로기 영향으로 동원된 것이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최용준, "난자 채취 말처럼 간단한 게 아님을 알게 될 것"
최용준 : 기증 의사를 밝히는 사람들이 막상 난자를 기증하게 될 때 다시 한번 큰 문제, 사회적 논란이 생길 것 같다. 대다수 사람들이 질병 치료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에 보탬이 되겠다는 고귀한 마음이겠지만, 구체적인 설명을 듣거나 별다른 설명 없이 난자 채취를 당하게 되면 말처럼 쉽고 간단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될 것 같다.
최용준 : 감시가 되어야겠죠. 그렇게 되면 실제 얼마나 기증할 지도 모르겠고...
한재각 : 황우석 연구가 실제로 이용될 시기는 언제이겠는가? 낙관적으로 잡아도 한 10년 후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성공한다고 해도 10년 후에 이루어질 성공이지만, 그 사회정치경제적 효과는 당장에 나타나고 있다. 이번의 황우석 교수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이 붕괴되고, 여성인권과 관련된 담론과 법제도적 체계가 완하되며, 불똥이 튄 국면이지만 언론의 공공성도 크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황우석 교수에 대한 정, 관, 재계의 지원이 난치병 환자 명분, 혹은 경제적 성장 가능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의도했을지 몰라도 우리사회의 공적 영역의 상당한 위축과 축소가 이번 사건을 경과하면서 나타나고 있다. 우려스럽다.
최용준 : 황우석 효과는 그런 현상과 귀결을 통칭하는 용어로 볼 수 있다. 그 효과를 노리는 ‘음모 집단’이 집권 세력일지, 인격 없는 총자본일지 모르겠으나 사태 전개를 상식적으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줄기세포 연구에 관한 지배적 담론이 의료산업의 사유화나, 방송 같은 공적 기구의 침식, 인권 담론의 무력화 내지 부차화 현상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것 또한 분명하다.
사회자 : 과학기술 지원 예산이 어떻게 쓰여지는지, 황우석 스타 과학자와의 연관은 어떤가도 관심을 끄는 질문인데.
나정걸 : 대형 국책 과제 중에 프런티어 사업이라는 것이 있다. 사업단에 매년 100억 정도씩 지원된다. 작년인가 프런티어 사업 자체에 대한 회의(懷疑)가 있어 사업단을 없애거나 대폭 정리하자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황우석 대박’이 터지면서 프런티어가 다 살아났다. 안정적인 연구환경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을 이용하고 싶고, 같이 묻어서 예산을 확보하고 싶은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결국 위에서는 탄탄한 내실보다는 한방 위주의 성과주의로 가게 되고, 아래로는, 특히 대학원생들의 경우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상징되는 혹독한 노동을 강요받게 된다. 이러한 현상에 황우석 교수가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과학기술계의 위기이다. 이번에 과학기술 원로라고 방송에 나와 발언한 사람들 보면, 예전에 황우석 교수와 함께 과실련이라고 ‘과학기술사회실현을 위한 시민연합’을 같이 하던 사람들이다.
최용준 : 과학기술 분야의 전체 파이를 키워보자는 생각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재각, "월화수목금금금은 연구원들이 감내하는 엄청난 노동시간과 강도"
사회자 : 민주주의가 채 성숙하기 전에, 사회구조적으로는 봉건성조차 청산되기 전에 현대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비롯되는 문제이다. 과학기술계나 의료산업계, 그리고 대학원 문화 곳곳에서 발견되는 요소다. 2주제, '주류 언론의 태도와 PD수첩의 공과' 이야기로 넘어가자.
조이여울 : YTN 보도 정말 의심스럽다. 윤현수 교수는 한양대 교수고 취재한 연구원들의 스승이다. YTN이 PD수첩 공격하는 메카니즘을 봐라. PD수첩에서의 취재과정도 문제가 있었지만, 취재윤리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YTN의 모든 취재 관계가 의심스럽다. 아마 상상도 못할 거다. 스승과 연구원의 수직적인 관계는...
최용준 : PD수첩이 취재 윤리를 위반하는 근거가 되었던 YTN 보도를 보고 사실 놀랐다. 언론이 독립적으로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 당사자인 안규리 교수가 마련한 자리에서 취재한 뉴스, 그것이 정확한 근거,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있느냐. PD수첩의 취재 윤리 위반을 비난하는 이들이 YTN의 보도 태도를 문제삼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조이여울, "취재윤리 측면에서도 YTN 모든 취재 관계가 의심스럽다"
이강택 : 황우석 연구팀은 2차 검증하기로 했다가 뒤집는다. 자존심 상한다는 둥 하면서... 그리고 나서 며칠 후 다시 입장 발표하겠다 하면서 시간을 끈다. 그 사이 안규리 교수가 YTN과 윤현수 교수 데리고 피츠버그 간다. 황우석 교수는 YTN 시청자위원으로 알려져있다. (연구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시청자위원까지 할 이유가 있나 싶다.) MBC, KBS는 물론 YTN도 현지에 특파원이 있다. 왜 여기서 YTN만 데려갔냐는 의문이 당연히 제기된다. 별도 비용을 들여가면서까지. YTN 보도에 대해서는 그 기획의 배경뿐만이 아니라 과연 YTN 측이 직접 촬영한 것이 맞는지, 두 연구원의 인터뷰 내용이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 것인지. 교수들을 대동한 채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 취재윤리에 부합하는지 등 다양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YTN한테 11번 주라는 둥 항간의 반응과 언론운동의 존재의미를 생각해본다. 경쟁적인 언론 환경 속에서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란 건가. 무엇이 진실이냐, 팩트가 뭐냐와 관계 없이......도대체 언론운동이 뭐냐. 언론노동운동이란 게 자기 구성원에 대한 최소한의 통제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무방비로 있어야 하나. 어떤 대응도 실질적으로 못하고, 판이 어떻든 내 파이만, 회사의 파이만 키우자는 건가.
조이여울 : KBS도 그렇고 언론사들이 이번 문제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틀이 있어야 한다. MBC는 X파일 때 스스로 검열했다가 된통 당하니까 이젠 그렇게 하면 안 되겠다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보도 이후 여론이 이렇게 될지 상상도 못했던 거다. 기자들 감봉되고 정말 위축돼 있다. 앞으로 MBC가 어찌 될 지 모르겠지만 이런 보도했더니 이렇게 맞는구나 하는 경험이 작가들과 PD들한테 영향 미칠 것이다. 언론 어떻게 하는지 점검하는 틀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이강택 : MBC는 올해 X파일과 이번 건 두 건을 둘러싸고, 한 건은 눈치보다가, 한 건은 속도 조절 실패로 괴로운 형국을 맞았다.
최용준 : PD수첩이 취재 윤리를 ‘현저하게 위반’한 것은 큰 문제였다. 그것은 MBC 스스로 인정한 바가 아닌가. 취재 윤리에 어긋나지 않았다면 사회 단체나 지식인들이 MBC와 PD수첩을 옹호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고, PD수첩의 취재 윤리 위반은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 윤리 위반과 대비되었다.
최용준, "이번 사태를 빌미로 PD수첩 폐지 안될 말"
이강택 : 균형잡힌 사고가 안 되어 있다. 조중동의 일상적으로 취재윤리 위반하는 것과 이번PD수첩의 경우를 구별해서 봐야 한다. 출입처에 유착해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안전하게 주류담론의 틀 안에서만 보도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가적인 특권을 누리기 위해 스스로 권력화 되는 주류 저널리즘 측과 허울뿐인 정보공개제도와 일상화된 취재거부 등 조금만 틈을 보여도 안 되는 상황에서 주류담론을 뛰어넘는 의제설정을 고민하며 취재하는 것과 구별해야 한다. 언뜻 표면적 양태가 비슷하다고 해서 무차별하게 언론의 권력화라고 싸잡으면 곤란하다. 나도 탐사보도 해봤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도망가 버리고 안 나타나고...
이강택, "한학수 PD와 YTN 취재 중 어느 것이 연구원들을 압박했겠는가"
이강택 : 조중동 같은 경우 원천적으로 그런 일이 벌어질 소지가 없다. 기본적으로 문제의식이 없고. PD수첩이 우리 사회의 공적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문제 의식이 있다는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조이여울 편집장이 이야기했지만 이번에 YTN이 안규리 윤 현수 교수 동원해서 면전에서 한 취재(?) 행위와 한학수 PD가 가서 했던 취재 중 어느 것이 그 연구원들을 압박했겠는가 비교해보자는 거다. 그리고 누구에게 더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조중동이 누구를 타겟으로 죽이려할 때 쓰는, 한 부분을 확대해서 일반화하는 전형적 수법 중 하나다. 지내놓고 보면 또 이렇게 당했구나 생각하게 되는 거다. 이 순간에도...
사회자 : 이 사태를 바라보는 사람들, 특히 네티즌의 반응이 극단적으로 표출되었다. 과거에 대중은 진실을 캐는 쪽에 있었지만 지금은 진실을 덮는 쪽에 서 있다. 이런 대중의 반응을 어떻게 봐야 하나.
한재각 : 촌각을 다투는 시점에서 일차 방송이 나온다는 정보를 갖고 있을 때, 내심 생각할 때 진실을 말하면 대중적 열광이 조금은 수그러지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내 예상이 빗나갔다. 대중들은 오히려 더 황우석에 대해서 맹목적이 되었다. 지금과 같은 황우석 교수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해야 할까? 사회경제적 구조를 볼 필요가 있다. 양극화, 청년실업, 비정규직 문제에서 괴롭고 벗어나고 싶은데 황우석이라는 영웅이 메시야적 존재로 다가와 있는 거다. 커다란 사회적 열망이 투영된 것이다. 이것은 황우석 교수의 논문진의 논란이 어떻게 되든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다.
이강택 : 희망과 공포 동시에 작용했던 순간이다. 아쉽게도 대중의 반응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PD수첩도 상당히 낙관적으로 봤을 것이다. 뒤늦게 1차방영 프로를 봤는데 조금만 구성을 달리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희망의 상징을 깰 때는 조심스럽고 애정있는 비판으로 느낄 수 있게 가줘야 하는데, 제보의 내용이나 사실을 알고 애정을 느낄 수 없었다 하더라도 그런 점에서 프로그램을 누가 보는가 생각했어야 하는...
조이여울 : PD수첩은 취재 과정에서 황우석을 둘러싼 많은 것들이 거짓이라고 판단하고 윤리적인 부분 건드린 것인데 오히려 더 세게 갔거나, 확신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런 논조를 확실히 전달했어야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달리 생각해볼 여지가 있었을 것 같다. 사실 어떠한 기자라도 설득력 있는 인물로부터 이러한 제보를 받으면 누가 보도하고 싶지 않겠는가.
이강택 : 제보자는 여러 군데 제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안 받았다. 결과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 상대가 너무 컸다. 그걸 PD수첩팀이 받은 거고 한학수 PD 뿐 아니라 팀 모두가 무지 고생했다. 연구 윤리 차원에서 두 달이면 될 거라고 보고 시작했는데 취재하는 과정에서 제보 들어오고, 사안이 민감해서 6개월 이상 준비하게 된 거다. 현재의 방송 시스템을 보면 인력사정이 너무 빤한데 나머지 PD들이 제작 기간 줄여서 땜빵 해줘야 하고... 책임 PD가 이런 결단을 내려준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높게 사야할 부분이 있다. PD수첩은 이렇게 15년을 왔다. 이런 성역 하나를 거리낌 없이 악조건에서 도전한다는 것은 전통과 사명감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PD수첩 중단한단다” “중단하나 보다” 이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사회자 : 조선일보는 며칠 전부터 내놓고 PD저널리즘을 공격한다. 지금까지 해왔던 맥락에서 보면 MBC가 행보를 너무 가볍게 하는 건 아닌가 싶다. MBC 내부 문제도 있겠지만 진실 보도롤 놓고 대중을 보고 버텨보고, 2차 방영이 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관건이 아닐까 싶다. 오늘 오후 한학수 PD가 취재윤리 부분 사죄와 함께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노조도 성명을 내고... 과학기술 문제의 일반적인 보도 측면은 어떻게 보나
나정걸 : 과학기술 보도 할 때 스포츠 보도하는 식으로 보도하는 것 같다. 과학기자들은 전문적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연구자가 보도자료 주면 받아 적는 식이다. 황우석 교수 건도 그렇다. 기자도 관람객의 일원이 되어 쓰게 되고 그러다 보니 국민의 입장에서 같이 피가 끓는다.
이강택 :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 전체 과제로서 책임있는 언론을 어떻게 길러내는가 생각해야 한다. 우리 언론 전문성이 뭐가 있나. 아무 것도 없다. 실제로 돌아가는 인력 사정이라는 게... 한 주제에 대해 전문성을 키울 것도 없거니와 단편적으로 치면서 가야 하는, 그러다 보니 의도하지 않아도 관람하면서 가게 된다. 거기다가 우리 사회 정보공개법이라든지 언론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인프라가 취약하고, 이런 상태에서 이 판에 있으면 주류 언론이든 비주류든 불가피하게 범할 수 있는 요소가 상당히 많다. 윤리 문제를 단편적으로 이야기할 게 아니라 이런 구조와 함께 봐야 한다.
한재각, "황우석 보도 연구성과에 일방적인 선전과 찬양 중심"
한재각 : 최근에 과학기자협회는 자체 윤리강령을 만들어 발표했다. 그중에는 ‘세계최초’라는 말은 되도록 쓰지 않겠다는 것도 있다. 우리나라 과학언론만이 아니라 과학언론이 보편적으로 새로운 발견, 놀라운 성과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좀 지나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특히 황우석 교수 관련된 보도는 더욱 심각했다. 연구성과에 일방적인 선전과 찬양이 중심이었다. 사회적, 윤리적 영향 등 다양한 시각과 입장을 반영한 보도는 거의 없었다. 한편 이전에 과학부 기자들이 쓴 기사가 신문 1면에 나오는 것이 대단히 어려웠던 반면, 황우석 교수 관련 기사로 인해서 신문 1면에 과학부 기자들의 기사가 올라가는 일이 많아졌다. 신문사 내부의 구도에 일정하게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조이여울 : 언론들이 전문성이 없다. 여성 관련해서도 그렇다. 너무너무 모른다. 특히 과학분야도... 지금 홍혜걸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라는 분의 태도를 보면, 전문가라는 이름을 가지고 해악성이 너무나 크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이나 의학 전문성에 있어서도 교육이라는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데 과학철학이나, 윤리에 있어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한재각 : 과학부기자 = 과기부출입기자 라고, 과기부 관료화 네트워크 안에서 받아서 쓰고, 과기부는 홍보효과로 기자와 관계를 맺는, 이건 전문성이 아니다.
조이여울 : 누구에게 전문가 타이틀을 주어야 하느냐부터가 문제다. 지금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과연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지, 전문가는 따로 있는 게 아닌지, 그것을 의심하자.
이강택 : 전문성이라고 얘기했을 때 반드시 출입처 기자와 같아지는 것은 한국풍토의 작용이 크다. 한 분야를 오래 해서 그 분야와 연계분야 전반에 정통한 사람을 전문가라고 불러야 하는데...
최용준 : 조금 다른 이야긴데 X파일 때는 진실을 공개하라는 여론이 더 많았다.
조이여울 : X파일과 비교하기 어렵지만, ‘과정에 있어서도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이라는 것을 점검하는 것과 그 부분을 더 정확하게 규명하는 것으로 촉구해야 한다. 기득권층은 이를 빌미로 계속 덮으려고만 한다.
사회자 : X파일 당시는 정치권에서 일정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공개의 폭을 둘러싼 정치권 수준의 합의가 작동했다. 대중적으로 볼 때, X파일이 과거에 일을 들추는 것이라면, 황우석 사태는 과거와 현재의 문제를 들어 미래를 헤집는 일이다. 대중들은 여기서 발생하는 불편함을 겪고 싶지 않는 거다.
최용준 : 난자 공여 문제는 그렇다 하더라도, 논문 내용의 진실성 여부의 검증이 과연 언론의 역할이냐, 과학자들이 맡아야 될 일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있다.
나정걸, "근거가 있으면 누가 제기했건 과학계에서 엄정하게 검증해야"
한재각 : 과학계가 검증해야 한다는 건 수긍하는데 전제가 필요하다. 논문이든 뭐든 과학자 사회 내에서 풀어지면 된다는 건데 연구 윤리 거짓말 잘 다루지 못했고, 그런 걸 밀어부칠 때 논문의 진위 문제도 불거졌다. 난자 관련 연구는 사회적 문제이고, 또 연구 진위는 과학적 문제인데, 해봐라. 과학자 사회가 풀어봐라 라는 거다.
나정걸 : 얼마 전 문제가 됐던 김현탁 박사의 경우, 대한물리학회에서 소위원회를 꾸려서 실제 그만큼의 파급효과가 있는 것인지를 조사했다. 과학자 사회에서 직접 풀어본 경우이다. 황우석 교수 사건 역시 제대로 되었으려면 서울대나 관련 학회에서 검증 시스템이 돌아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외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얀 헨드릭 쇤 사건은 과학계에서 직접 해결했고, 상온 핵융합의 경우는 BBC에서 과학자 집단에 의뢰하여 해결했다. 요는 제기된 의혹이 합당하고 근거가 있을 경우, 누가 제기했건 상관이 없이 과학계에서 엄정하게 검증을 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어떻게 비전문가인 언론이 검증할 것이냐’라고 말하는 건 어찌 보면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어차피 과학적인 검증은 과학자가 할 수밖에 없다. PD수첩팀이라고 PD 본인들이 했겠는가?
최용준 : 과학적 연구 성과 검증의 선례를 물어본 이유가 있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 성과에 이렇게 빨리, 그리고 즉각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검증해야만 했을까?
조이여울 : 동감이다. 우리 나라 속도가 너무 빠르다. 여성인권도 논의가 필요하다는 건데 논의란 게 언론의 이슈파이팅이 대부분이고, 그러면 법이 제정되는데, 중간에 뭐가 핵심인지가 없다. 그런 논의나 점검 없이 달려왔다.
이강택 : 1차보도와 2차보도 사이에 시간이 필요했다. 노무현 이야기도 있고. 전체적으로 보면 불리한 지형으로 빨리 달려갔다. 주위에서는 말렸다. 그 영역에서는 승산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목적 자체가 문제제기 하는 것이고 최대한 시간 끌면서 가자 했는데, 약간의 오만도 있었다. 왜 그리 빨리 갔겠는가. 지형이 그랬는데 많은 권력이 작용했다. MBC 내부의 균열이 크게 작용했다. 이쪽도 가장 센 카드를 꺼내야 하는 상황이 닥친 거다. 내부 균열과 주위 환경의 권력 관계 때문에 사후 반격의 계기를 못 잡고 있다. YTN 문제 등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 MBC 기자들이 어떤 프레임워크냐에 따라 금방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스스로 무장해제 되어 있다. 상황이 이렇게 움직이는 진짜 배경이 뭐냐. 연출자 급들은 진정 무엇을 노리고 있는가에 대해 여전히 상당한 의혹 가지고 있다.
한재각 : 황우석 교수가 스타 과학자로 떠오른 이후 과정을 보면, 초기에는 과학기술부가 적극 지원한 것이 주효했다. 과기부 입장에서도 자신들 활동의 주요한 성과로 내세울 수 있었다. 그러다가 청와대 박기영 보좌관과의 연결, 박기영 보좌관의 청와대 정찬용 인사수석과의 관계, 또 ‘황금박쥐’로 알려진 이너써글의 관계, 노성일 원장의 병원 영리법인화 주장과 관련하여 청와대에 대한 영향력 등이 얽여지면서, 황우석 교수가 현정부 핵심권력 내부에 참여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의료산업화정책에서 노무현정권이 승부수를 던진 곳이고 황우석 교수는 이를 위한 더없이 훌륭한 명분이 되어 주고 있었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황우석은 황우석 개인이 아니다. 만약 황우석 교수가 논문진위 논란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낙마를 하게 된다면, 이는 적어도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공개 사과하는 수준까지 갈 문제라고 본다.
사회자 : 황우석 교수가 개인이 아니듯 PD수첩도 하나의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세가 엄혹하다 했는데, 이야기를 들으니 무척 무겁다. 진보의 과제로 무엇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 다시 시작되어야겠다. 3주제는 '황우석 사태를 통해 본 대한민국 정치 사회 문화' 문제이다. 제목이 주는 뉘앙스에 구애받지 말고 진보적 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 나눠보자.
한재각 : 이번 황우석 논란을 거치면서 진보-보수가 뭐냐는 논쟁과 혼란이 존재한다. 전통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진보는 기술의 진보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혹은 이를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21세기 진보에 대해 다시 구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재해석과 재구성이 제기되는 시점이다. 기술에 대한 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현대기술은 이점을 주는 것 이상으로 위험성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술의 위험성을 최소화하고 또한 복잡한 사회경제문화환경과 관련된 이해관계들은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하는 점이 진보세력에게 새롭게 제기되는 과제이다. 이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진보는 재해석되고 재구성될 것이라 생각한다.
조이여울, "진보진영 느릴 뿐 아니라 담론도 없다. 대응하는 층위도 없다"
최용준 : 진보주의자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나? 과학적 진보가 진보라고...
한재각 : '오마이뉴스'의 일부 필자들이 그런 모습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번 논쟁에서 댓글을 달면서 황우석 교수를 옹호하는 네티즌 중에서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경향이 구체적으로 보인다. 또한 과거에 진보 혹은 개혁적이었다고 생각하는 30-40대의 경우, 국가경쟁력 담론, 시장주의적 개혁 등을 수용하는 이들에 의해서 그런 주장은 더욱 강화된다. 게대가 여기에 기술민족주의적인 경향이 부가되면서 더욱 두드러지는 것이 아닌가?
조이여울 : 한국의 진보진영이 문제가 많다. 하나가 민족주의-국가주의인데, 여성들은 진보하면 아 ‘좌파-마초’라는 식으로 나올 정도이다. 월드컵 열기에 대해서도 진보진영에서는 그것을 6월 항쟁에까지 비교하면서 민족주의를 부추겼다. 생명과 생태를 이야기하는 쪽에서조차 민족주의를 거론한다. 이런 걸 그냥 진보진영이라는 이름으로 갈 것인가.
사회자 : 20대는 민족주의보다 대한민국을 더 크게 받아들인다. 한반도 깃발보다 태극기에 더 열광한다. 월드컵 거치면서, 노무현 대통령 만들면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자체를 자신의 프라이드로 받아들여왔다. 지금 국가를 운영하는 지배세력은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다. 여기서 내부 모순이 발생한다. 가령 파병도 그렇고,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황우석 사태를 '이제 덮어두고 가자'고 한 것도 그런 내부모순의 표현이다. 이에 대해 진보진영이 실천을 안 하거나 못 하는 문제는 분명히 있지만, 단지 진보진영 = 민족주의로 볼 문제는 아니지 싶다.
한재각 : 작년에 캘리포니아에서 줄기세포연구에 큰 비용을 지원하는 주민청원이 통과된 적이 있다. 그 주민투표 때에 이에 반대하는 단체들이 있었는데, 여성건강권을 생각하는 여성단체와 연구과정의 위험성과 성과의 평등한 배분 등에 관심을 가지는 좌파 생물학자 그룹이 참여하였다고 알고 있다. 배아줄기세포연구를 반대하는 공화당 부시와 이를 지지하는 민주당 캐리의 구도는 미국의 전형적인 구도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좀더 복잡한 구도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단면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구도는 유럽의 구도와도 상당히 다르다. 그럼 점에서 배아줄기세포를 반대하는 미국 부시와 한국 진보진영이 유사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말도 안되며, 설사 표면적으로 유사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기독교 근본주의로 몰아가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나정걸 : 처음에 난자 사용에 대한 생명 윤리나, 연구원들의 난자를 사용했다는 연구 윤리 측면이 불거졌을 때는 진보적 관점이 필요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공이 연구 자체에 대한 측면으로 넘어가 버렸다. 사실 두 번째 문제는 상식과 진실의 문제인 것인데... 연구나 생명윤리 부분이 이대로 파묻히는 것이 아쉽다. 사태가 진정되면, 원래의 문제로 돌아가 사회적인 논의와 합의가 이루어져야 것이다.
조이여울 : 난자 관련해 이제 막 여성인권을 얘기하려 하는데, 곧바로 여론의 쟁점은 논문의 진위 여부로 넘어갔다. 이제 난자와 여성인권에 대한 중요한 이야기들이 또다시 묻혀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얘기가 나온다. 여성계 안에서도 계속해서 얘기가 되어야 하지만, 제도적인 노력, 논쟁이 필요하다.
이강택, "신자유주의 공포 넘어설 새로운 연대 틀을 모색할 시점"
사회자 : 배도 고프고 많이 늦었다. 김규종 교수가 참세상과 민교협 게시판에 PD수첩을 소재로 한 칼럼을 발표했다. 한 인터넷신문은 국립대 교수가 입을 열었다고 그 자체를 뉴스 삼았다. 진보적 오피니언들이 너무 발언을 안 한다는 이야기다. 황우석 사태는 노무현정권의 아킬레스 건이다. 황우석이 무너진다는 것은 노무현정권과 지배질서 자체에 심각한 균열이 생긴다는 걸 의미한다. 지금 여론에 쫓기고, 담론과 의제 설정에 밀리고, 보수언론을 방어하기조차 만만치 않겠지만, 보다 차분하게 치밀한 대응을 모색해나갔으면 한다. 특히 여성 인권, 기술에서의 진보의 문제, 과학기술의 민주적 감시와 통제, 진실 보도를 위한 저널리즘 등에 있어 더 많은 발언이 이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