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잊지는 않았지. 오렌지 빛깔 조끼의 기륭을. 2005년 7월 5일 기륭전자에서 조합이 결성되었던 그 감격의 순간을. 꼬박 일년이 되는 날, 난 구로공단 2단지 기륭을 찾아갔어. 기념식도 꽃다발도 없는 1주년을 맞이하여.
교도소 철문보다 더 두툼한 철문 옆에, 삼팔선에나 있을 가시철조망이 덮은 기륭전자를 찾았어. 푸른 천막이 있지. 알지. 천막 안에 지친 여성조합원 둘이 누워 있었어.
“뭐가 제일 힘들어?”
“생계가 어려워 떠나가는 친구를 보는 게 힘들지.”
“넌 왜 아직도 여기에 있어?”
“무지개가 보이니까?”
이길 수 있을까 하며 승리에 대한 불안감을 지니고 떠난 이들이 많잖아. 2005년 7월 5일, 10분 만에 200명이 조합에 가입했지.
▲ 닫힌 철문 안에는 검정 옷의 용역경비가 있다. |
일 년이 지나고 이제 40명이 남았어. 이길 수 있을까? 회의하며 떠나갔지. 정말 먹고 살 수 없어 떠나갔지.
“언니 미안해. 애가 학교 가는데 차비 줄 돈이 없어.”하며 울며 떠나갔지.
너는 왜 떠나지 않았어, 물었지. 갈등은 하지 않았어, 물었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어. 한 번도.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무너질 것 같아서.”
이길 거다, 이긴다, 자기 최면을 걸었어. 물론 언제 이길 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몰라. 하지만 이긴다는 확신 하나로 버텨 온 거야. 그 일 년을.
“야, 더 좋은 공장도 있잖아. 기륭이 돈을 많이 준 것도 아니고. 떠날 수 있잖아.”
“웃기고 있네.”
구로공단 15년이야. 비정규직이 전국에서 제일 많은 곳이 이곳이야. 여기서 지면 내가 어디 가도 반복이야.
▲ 윤종희 기륭전자 조합원 |
더 비참해지기 싫어서, 싸우는 거야. 한 번 더 수모를 당하면 우울증에 걸리고, 미쳐 버릴 것 같아서.
윤종희. 내게는 동생뻘이다. 내가 말을 놓으니 종희는 반말로 대든다. 종희는 선배다. 가치관의 선배다. 삶의 선배다. 그 앞에서 나는 동생일 수밖에 없다.
상급단체도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를 만나면 얼굴을 피한다. 너무나 절실하게 싸우는 그들의 얼굴이 두려운 거다.
“나는 준비 됐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목숨마저 내놓을 수 있어. 왜 우리를 두려워 해. 내가 죽을 테니, 멍석이라도 깔아주면 되잖아.”
“자본과 싸움은 어찌 보면 더 편해. 동지들끼리 의견 차이가 날 때 더 가슴이 아파. 생각은 달라도 서로의 마음은 보듬어 줘야지. 아니 이해하려고 는 해야지.”
2005년 기륭전자 철문 사이로 연대의 손을 내민 것을 잊을 수 없어, 잊어서는 안돼. 오렌지색 조끼가 더욱 사랑스러운 것은 그들의 마음에 신념이 아직도 가득하기 때문이다. 아마 비정규직이 없어지는 날, 우리는 기륭전자를 전태일로 섬길 것이다.
돌아서며 한없이 울었다.
종희도 밤에 홀로 천막을 지키며 눈물을 흘리겠지. 짜증 나. 울지 않을 것처럼 말하니까.
그 날, 비정규직이 사라지는 날, 니캉 내캉 부둥켜안고 미친 듯 울자. 승리의 눈물 말이야. 아, 잊을 수 없는 동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