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에는 박석운 전국민중연대 집행위원장, 권영국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김혁준 의사(녹색병원 신경외과 과장) 등을 비롯해, 고 하중근 조합원 부상 당시 목격자들이 참석했다.
"방패에 찍히고 기어서 도망치던 하중근 조합원 뒷머리를 소화기로 가격"
권영국 변호사는 진상조사단의 현장 조사 결과와 고 하중근 조합원이 경찰에 의해 부상을 입은 날인 7월 16일 '건설노동자 승리결의대회'에 참석한 목격자 10여 명의 진술을 토대로, 현장 사진과 '사건 실황 조사도'를 공개하며 사건을 재구성해 발표했다.
▲ 권영국 변호사가 사건 재구성을 위해 당일 현장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이정원 기자 |
사건 재구성에 따른 고 하중근 조합원 사망사고 경위는 이렇다. 7월 16일 오후 2시로 예정된 '건설노동자 승리경릐대회'는 경찰의 집회 원천봉쇄로 20여 분 늦어진 오후 2시 25분 경 시작됐으며, 단병호 국회의원은 연설 후 포스코 항의면담을 위해 집회 장소를 떠났다.
오후 2시 58분 경 사회자가 "깜짝 놀랄 일이 있다, 이지경 위원장님을 모시겠다"라고 소개하는 순간, 집회 대오 왼쪽편에서 전경들이 가족대책위를 밀어붙이며 방패를 앞세워 10여 미터 밀고 들어왔고, 거의 동시에 일제히 소화기를 분사하면서 방패와 곤봉을 휘두르며 공격을 시작했다.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부분 참가자들이 허둥대며 뒤돌아 도망치게 됐다.
고 하중근 조합원의 고향 선배인 이영철 조합원 증언에 따르면, 하중근 조합원은 "무슨 일이야 있겠느냐"며 집회 대오 앞쪽으로 나갔다고 한다. 또다른 목격자 김 모 씨는 당시 집회 대오 오른편 인도에서 집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대부분 참가자들이 경찰의 공격에 도망치던 중, 전경이 방패를 들어 도망가던 하중근 조합원의 머리 뒷부분을 가격했고, 넘어진 상태에서 엉금엉금 기어 앞으로 가려던 하중근 조합원이 밀려오는 경찰 병력 속에 파묻혀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진술했다.
불과 몇 분 후 하중근 조합원은 집회 대오 오른편 인도 전화박스 부근에서 갓길에 세워진 차량에 비스듬히 기댄 채 피를 흘리고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쓰러진 하중근 조합원을 발견하고 후송 차량까지 운반한 안백일 씨(금속노조 조합원)은 "많은 집회에 참석해 봤지만, 경찰이 처음부터 이렇게 공세적인 위협을 가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며 "하 씨가 쓰러져 있는데도 경찰들의 공격이 이어져 주저하고 있는 상황에서 급히 달려가 일으켜세웠지만 이미 의식을 잃다시피해 걸어서 빠져나갈 상황이 아니었다. 또다시 경찰들이 공격해 올 것이 두려워 급한 마음에 들쳐업고 무작정 달려 반대편 차선에 있던 물차에 태웠다"고 증언했다.
▲ 고 하중근 조합원의 고향 선배인 이영철 포항지역건설노조 조합원이 사건 당일 하중근 조합원 동선에 대해 증언했다./이정원 기자 |
권영국 변호사는 이같은 정황들을 종합해 볼 때 "하중근 조합원의 사고는 방패에 의한 가격 시점으로부터 경찰이 뒤로 물러서는 시점 사이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은 경찰 방패에 후두부를 가격당해 쓰러진 후 경찰 대오 속에 파묻혀 그 속에서 대측손상에 뇌출혈을 일으킬 만한 가격을 당한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진상조사단은 지난 2차 진상조사 발표 당시 의학적 고찰을 통해 "당시 경찰이 소지하고 있던 경찰 장구 중 두피열창을 발생시키지 않으면서 동측의 두개골 골절을 일으키고 반대측 뇌좌상을 발생시킬 수 있는 강력한 외력은 소화기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경찰측은 사건 당일 현장에서 17대의 소화기를 사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동일 시간대에 5군데 손상, '집단 구타'일 수밖에"
김혁준 의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및 경찰의 부검 감정결과 발표 내용에 문제점을 제기했다. 김혁준 의사는 국과수 감정결과 요약문 중 '주요 부검 소견'인 △후두부 오른쪽 부위 좌열창 및 두피하출혈 △후두부 왼쪽 부위 세로방향 표피박탈 및 두피하출혈, 약 10cm 길이의 선상골절 △전두개와의 상안와개 1.3cm 선상골절, 뇌좌상 △가슴 오른쪽 바깥면의 제 4,5번 갈비뼈 골절 및 늑간출혈 △왼쪽 팔과 오른쪽 팔 윗부분 좌상 및 피하출혈, 근육간 출혈 동반 등에 대해 진상조사단 부검 결과와 일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동일 시간대에 5군데에 손상을 입었다는 것은 '집단 구타'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이는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없는 명백히 상식적인 일인데 국과수는 사인에 대해 '전도'라느니 엉뚱하게 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부검에 참석했던 김혁준 녹색병원 신경외과 과장이 소화기를 들어 보이며 사인이 된 후두부 상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이정원 기자 |
김혁준 의사는 국과수의 '직접적인 가격보다는 전도에 의해 형성되었을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할 것으로 사료됨'이라는 의견에 대해 "심각한 사실 왜곡이며 지식인으로써 부끄러운 교묘한 말장난"이라고 일축하면서 "의견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당황스런 결론"이라 평했다. 국과수가 뒷부분에 '단순하게 넘어져서 발생하였다고 단정하기만은 어려워'라고 서술한 것도 "전혀 다른 상반된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논리적 모순"이라 꼬집었다.
김혁준 의사에 따르면 고 하중근 조합원의 두피열상은 "상식적으로 방패 가격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방패 모서리 모양 그대로의 상처"이며 갈비뼈 골절의 경우도 "머리에 충격을 받아 팔로 머리를 감싼 상태에서 주먹과 발길질 같은 외력이 가해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국과수의 주장대로 '전도' 즉 넘어져서 발생한 상처라면, 환자가 고개를 앞으로 숙인 채 우측으로 돌린 상태에서 공중에서 추락한 경우라야 발생 가능한 매우 불가능한 경우이며, 설령 그렇더라도 경추골절이나 귀 및 안면 부위의 손상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아 부적절한 판단이라는 제기도 이어졌다.
진상조사단이 현장에서 소화기를 들고 직접 재연한 상황은 하중근 조합원이 방패에 뒷머리를 가격당하고 엎드려진 상태에서 뒤쫓던 전경이 들고 있던 소화기 측면으로 엎어진 상태의 하중근 조합원 머리를 가격했으며, 곧이어 에워싸여져 갈비뼈와 팔 등에 손상을 입힌 집단 구타가 시작됐다는 것으로, 부검 결과와 대조해 볼 때 상당히 납득할 만한 주장이었다.
▲ 진상조사단이 하중근 조합원이 부상을 입게 된 과정을 재연해 보이고 있다./이정원 기자 |
"위법적 강제진압한 가해자가 사건 수사 안될 말"
진상조사단은 이와 같은 종합 진상조사 결과 보고를 발표하면서 △경고 방송을 단 1차례도 실시하지 않고 기습적으로 돌진한 점 △방어를 위한 장구인 방패를 공격적으로 사용, 집회 참가자들에게 안면부와 두부 손상을 입힌 점 △화재 진압용인 소화기를 연막탄용으로 사용했다는 점 △당시 집회가 맨손의 평화적 집회였다는 점 등을 들어 경찰 진압의 위법성을 지적했다.
아울러 "사건 수사를 가해자인 경북지방경찰청에서 진행하고 있는 것은 다분히 은폐와 조작의 위험이 있으며,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독립적 국가기관에서 조사하여 진상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진상조사단은 마지막으로 하중근 조합원 사망사건이 한 달에 이르도록 묵살, 축소보도, 왜곡보도로 일관하고 있는 언론에 대해 지적했다. 박석운 집행위원장은 "한 번도 아니고 거듭 살인진압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실수가 아닌 구조적 위법성임에도 불구, 이를 방기하는 언론은 국민적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이라며 적극적인 취재를 해 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고 하중근 조합원의 사촌동생 하충근 씨도 "공영방송 등 언론에서 자체적으로 이 사건을 왜곡하고, 진상조사단 발표 그대로 똑바로 보도하지 않는다면 나 혼자라도 찾아가서 항의할 마음으로 올라왔다"며 취재진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고 하중근 조합원 사망 관련 진상조사단 종합 결론
1) 하중근 조합원은 경찰의 공격과정에서 방패에 찍혀 앞으로 쓰러졌고, 앞으로 쓰러진 상태에서 진격해오던 경찰의 무리 속으로 파묻혀 그 속에서 무언가 둔중한 물체로 후두부를 가격당하고 길바닥에 버려진 후 그 부근에 주차된 차량에 간신히 기댄 채로 발견되었던 것이다.
전도의 가능성마저도 배제되는 상황이라면 경찰의 행위는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하중근 조합원을 둘러싼 당시 사고상황에서 과연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이는 살인이라고 불러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2) 더욱더 상황을 명료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하중근 조합원은 집회에 맨손인 상태로 참석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하 조합원은 아무 일도 없는 멀쩡한 상태였다. 그런데 전투경찰들이 사전 경고도 없이 갑자기 집회대오를 침탈하면서 집회참석자들을 방패, 곤봉 등으로 타격하였다. 잠시후 전투경찰대가 대오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보니 전투경찰대열 앞부분에서 하 조합원이 피를 흘리며 차량바퀴 부분에 기댄 채 바닥에 앉아 쓰러져 있었다. 이를 본 동료들이 병원으로 후송하였는데, 바로 뇌사상태에 빠지면서 결국 사망하였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가사 백보를 양보하여 경찰의 주장대로 고인이 전도에 의해 사망하였든, 아니면 우리가 진상조사한대로 집단폭행에 의해 사망한 것이든, 그 어느 경우에나 경찰의 폭력진압에 의해 고인이 사망하였다는 것이 분명한 진실이다.
어느 경우에나 경찰의 폭력진압에 의한 사망임이 변함없는 진실이라면, 정부당국의 책임있는 조처가 신속하게 취해져야 한다. 부검결과까지 숨기면서 진상을 숨기기에 급급하는 군사독재 시대 같은 대응책은 극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