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부터 예정했던 광화문 집회에 조금 늦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본집회가 거의 끝나고 행진을 준비하던 때였다. 사회자는 되풀이해서 미대사관으로 가자는 말을 외쳤다. 무대 뒤편 경찰 버스로 쳐 놓은 바리케이트 앞에는 선봉대를 비롯한 시위대들이 달라붙어 몸으로 밀고 당기는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잠깐 교보문고 쪽으로 길이 뚫리면서 한 떼의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세종로 쪽으로 치고 나갔다. 뚫렸던 길이 다시 막혔고, 시위대는 바리케이트가 된 경찰 버스들을 손으로 밀었다. 버스 위에 올라선 경찰 쪽에서는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바로 몇 미터 되지 않는 거리에서 사람들의 몸과 얼굴로 직접 물대포를 쏘았다. 그리고 분말소화기. 잠깐 소동이 있는 듯 하더니 방패를 찍고 휘두르며 달려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하기를 한 시간 한 시간 남짓. 시위대는 맨몸으로 경찰과 경찰차를 밀었고, 경찰 측에서는 계속 물대포를 쏘며 대응했다. 그대로라면 어느 한 쪽에서 더한 물리력을 쓰지 않는다면 그러한 형세가 바뀌지 않을 듯 했다. 몸싸움 과정에서 몸을 다쳐 몸을 다치는 이들도 나왔다. 그러다보면 흥분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고, 그런 이들 가운데 몇몇이 돌을 던진 모양이었다. 사회자는 시위대에게 돌을 던지지 말라고, 물대포를 쏘면 그대로 맞으라고 주문했다. 천 조각을 이어, 노끈을 이어 경찰 버스를 묶기는 했지만 사회자는 역시 묶기만 하고 당기지는 말라고 주문했다. 물론 물대포를 쏘는, 곤봉을 쳐드는 경찰에 대해 그만두라고 호통을 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런 과정이 이어질 때 나와 같이 간 이들은 모두 몸싸움이 있는 앞 쪽으로 가거나 또는 다른 곳 사람들을 만나러 흩어지고 본대에는 나 혼자 있었다. 갑자기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피곤함이 밀려온 것이기도 하지만 그건 몸의 상태에서 온 것만이 아니라 그러한 상황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아함 때문이기도 했다. 느닷없이, 정말 느닷없이 솟는 질문. ‘이래서 어쩌려는 걸까?’
이래서는 안 되는데 - 지금도 저 앞에서는 알게 모르게 휘둘러 대는 방패에 찍히고, 곤봉에 얻어맞아 머리가 찢기고 있는데 - 내 안에서는 불순한 궁금증이 일었다. 이 집회는 경찰 측과 어느 선까지 얘기가 되었을까, 대회를 하는 쪽은 어느 선까지 액션을 취하고, 경찰 측은 어느 정도까지 보장하는 것으로 얘기가 되었을까. 물론 어떤 집회든지 주관하는 이들과 경찰 측 사이에 그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때로 강행과 불허 속에서 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할 테고, 또 어떤 때는 경찰 측과 어느 정도 안에서 타협을 보기도 할 테지. 오늘 무대 너머에서 벌인 몸싸움은 결국 경찰의 폭력성, 정권의 폭력성을 보여주기 위해 편 전술이기만 한 거였을까? 본대에 섞여 짐을 맡고 서 있으면서 앞쪽 몸싸움의 모습과 사회자의 말을 들으며 든 생각은 고작 이런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다쳐서 부축을 받으며 뒤로 나오는 이들을 보이면 미안한 마음과 답답한 마음이 어지러이 지나갔다.
오늘 광화문에는 모두 1만 5천명이 모여 있었다고 한다. 더 이상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행진은 가능하지 않은 걸까?
노무현 정권, 한미동맹
내가 어제 오늘 집회에 참가하면서 못내 안타까운 마음이었던 건 파병강행, 전쟁참여를 이야기하면서도 정권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음을 부르는 한미동맹’, 물론 파병강행의 까닭 가운데 상당한 힘이 미국의 압력에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한국군의 파병을 결정한 곳은 어디인가? 미국인가? 한미동맹인가? 필리핀은 미국이 허락해주어서 철군을 했고, 미국이 압력을 넣지 않았기에 재파병을 취소한 것인가? 비록 나는 필리핀이라는 나라의 역사나 정치, 경제 환경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지난 7월 진보누리(www.jinbonuri.com)라는 인터넷 싸이트에 올라온 어느 글을 읽고 눈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글이 올라오던 때는 필리핀 국민 하나가 우리의 김선일 씨와 똑같은 상황에 놓인 뒤,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선택을 해서 커다란 부러움과 놀라움을 주던 때이다. (글은 ‘꿈꾸는 사람’이라는 아이디로 오른 것이다.)
‘꿈꾸는 사람’의 말을 빌면 필리핀과 미국의 관계는 오히려 한미동맹 이상으로 깊은 뿌리를 가졌다고 한다. 게다가 필리핀의 경제는 미국에 절대적으로 기대고 있다고 하지를 않은가? 뿐인가, 필리핀의 아로요 대통령은 맹목적으로 미국을 따르는 이름난 친미주의자이다. 그러한 처지와 조건에 살림살이조차 우리보다 훨씬 못한 필리핀이라는 나라가 미국의 협박을 거부하고 국민을 살리는 쪽을 택했다. 필리핀 정부의 철군 조짐에 미국은 아주 노골적으로 보복을 이야기하며 협박했고, 한쪽으로는 장기적인 이익을 운운하면서 철군 계획 포기를 종용했다. 하지만 그러한 보복 협박 앞에서도 끝내 필리핀 정부는 철군을 택했고, 재파병 계획마저 없었던 일로 지웠다.
한미동맹, 미국. 우리는 물론 이라크 전쟁의 주범이자 지금도 여전히 점령학살을 벌이고 있는 미국에 대해 규탄하고, 어서 점령군이 떠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또한 한국 정부에 파병을 강요하고 협박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서도 규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한국군 파병철회와 철군 싸움에서 미국을 규탄하고 한미동맹을 저주한다고 그것이 실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군의 파병을 결정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노무현 정권이다. 한미동맹이 중요한 조건이 되기는 하지만 한미동맹에 모든 책임이 있다고 말하지 말자. 우리보다 힘이 약한, 우리보다 더 미국에 기대고 있는 필리핀도 국민의 목숨 앞에서는 철군을 결정했다. 세계의 3대 친미 지도자로 부시가 꼽기까지 한 필리핀의 아로요조차 결국 미국의 칭찬보다는 국민의 칭찬을 택했다. 국민을 죽인 대통령, 침략전쟁 동참을 강행한 대통령, 온 국민을 전범으로 만들어버린 대통령, 왜 우리는 1만 5천이나 모여 파병철회를 위한 집회를 열면서 우리의 전선을 이 정권에게 분명하게 긋지 않는가.
필리핀의 철군 움직임에는 보복 협박과 갖은 압력을 아끼지 않던 미국, 그 미국도 필리핀이 철군을 하고 난 뒤 가진 외무부와 국무부 기자회견에서 처음에는 실망이라는 말을 써가면서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지만 “이번 사건으로 미국과 필리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결국 ‘동맹’이란 서로의 필요에 의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미국이라 해도 함부로 내칠 수 없다. 미국에게 필리핀은 그만큼 자신들에게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고, 한국 또한 마찬가지이다. 허나 으름장 몇 번에 설설 기는 나라라면 그들은 언제까지라도 협박과 압력으로만 대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왜 파병을 철회하지 못하는가, 이 정권의 핵심 인사들도 책임을 물어야 할 때는 ‘한미동맹’을 이유로 ‘어쩔 수 없었다’고만 말하지 않는가? 결국 한미동맹에 모든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파병을 결정한 이 정권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닌가?
진정으로 잘 생각해 볼 일이다. 그 놈의 한미동맹, 한미동맹을 가장 많이 떠드는 곳 가운데가 바로 조중동이다. 그리고 정부여당과 한나라당이 입을 모아 떠든다. 한미동맹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미동맹은 지켜야 한다고. 그렇다면 파병철회를 요구하는 우리가 말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한미동맹을 끊자? 그래, 한미동맹은 반드시 끊어버려야 한다. 동시에 한미동맹을 끊지 않고 그것을 방패막이로 삼으려는 이 정권에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한미동맹을 유지하고자 하는 건 미국 뿐 아니라 이 정권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부르는 한미동맹’은 파기시켜야 한다. 허나 그러기 위해서라도 전선은 노무현 정권에 그어야 한다. 싸움의 상대를 정확히 두지 않고 ‘한미동맹 끝장내자’라는 구호만 가지고는 결코 그 놈의 지긋지긋한 동맹을 끝장낼 수 없다. 명확히 해야 한다, 전범은 노무현 정권이다.
<<취한 말들을 위한 날들>>
정리집회까지 마쳤을 때는 저녁 여섯 시를 조금 넘겼을 때였다. 아직 이른 시간. 그대로 함께 집회에 참여한 이들이 그대로 헤어지기에는 남는 아쉬움이 있었다. 가볍게 맥주 한 잔씩 하자며 호프집에 들어가서는 정말로 가볍게 한 잔씩만 했다. (나야 물을 맥주 삼아 마셨지만 말이다.) 그리고 간 곳이 광화문 가까이에 있는 작은 극장이었다. 이란 영화 - 취한 말들의 날들. 여태껏 본 이란 영화들이 다 그랬듯 아이들이 참 많이 나왔다. 이란과 이라크 국경 지대에 사는 아이들. 가난하게 일을 하며 사는 아이들. 아윱, 마디, 로진⋯⋯. 스크린으로 보이는 아이들 얼굴은 내가 이라크에서 만났던 아이들과 정말 많이 닮았다. 올드바그다드 거리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저마다 배역 하나씩을 맡아 연기를 한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아니, 영화는 그 내용만으로도 시종일관 아프고, 아프고, 아팠다.
나자프 협살 결렬, 바그다드, 루마이타
나자프의 알-사드르 민병대는 미군이 나자프에서 철수만 한다면 무장해제라도 하겠다고 했지만 협상은 결렬되었다. 협상 자리에서 사드르 측은 임시정부에서 바라는 모든 것을 다 들어주겠다고까지 했지만 마지막 순간 임시정부의 총리가 협상을 틀어버렸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금 나자프에서는 모든 취재진마저 철수하라고 경고를 하면서, 아니 이를 거부하면 체포를 하겠다고까지 위협하면서 대대적인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벌써 나자프는 이 날만 해도 수십 차례의 폭발물 소리가 들렸고, 치열한 교전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직 죽은 사람 수는 보도되지 않았지만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며 숨을 거두고 있을까, 그리고 곧 다시 엄청난 화력을 쏟아 붓겠지, 나쁜 놈들!
바그다드 시내에서도 임시정부 주도 국민회의가 열리는 라시드 호텔 가까이에 박격포 공격이 있어서 둘이 죽었다. 남부 루마이타에서는 네덜란드 군의 공격으로 한 명이 죽고 다섯 명이 크게 다쳤다. 이제 곧 네덜란드 군이라고 쓰는 자리에 ‘한국군’ 이름이 들어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겠지.
오늘도 그 많은 사람들이 죽고, 피를 흘렸다. 지옥이다. 같은 하늘, 같은 시간 어느 곳은 지옥이다. 그리고 그 땅을 지옥으로 만들 악마와도 같은 군대를 보낸 몇 안 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가 우리나라이다. 오늘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보는데 자꾸만 저녁에 보고 온 영화 속 아이들 얼굴이 떠오른다. 그 닮은 얼굴의 아이들이 나자프에서, 바그다드에서, 루마이타에서 죽어가고, 벌벌 떨고 있겠지. 그 닮은 아이들이.
아이들, 2003년 7월 이라크 지원활동을 하던 때 바그다드 북부 알타쉬 마을의 아이들과 함께 꼬리잡기를 하던 모습. 오른쪽 앞에 선 사람이 이동화 씨, 왼쪽이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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