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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

들꽃 이야기 (13)

겨울 추위를 견디며 봄을 준비해온 것들이 있다.

알집이나 고치도 없이 낙엽 밑이나 바위 아래에서 맨 몸으로 겨울을 버텨낸 네발나비와 멧노랑나비 따위 곤충들과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찬바람을 피하면서 태양열 집광판처럼 잎을 펼쳐 좀더 많은 햇볕을 모으려 안간힘 쓰던 로제트 식물이 그것들이다.

이른봄은 이들의 몫이다. 일찍 찾아온 봄기운에 멋모르고 싹을 낸 것들이야 꽃샘추위에 곤욕을 치르지만 겨울 추위를 가로질러온 전사들에게 꽃샘추위쯤은 위협이 되질 못한다. 그늘 진 곳엔 여전히 잔설과 얼음이 그대로 남아 있는 2월초부터 네발나비는 짝을 찾아날고 꽃다지는 노란 꽃을 피워내며 봄의 영토를 넓혀간다. 겨울은 모두에게 위기이지만 이것들은 오히려 이 위기를 기회로 삼은 것이다.

냉이에게도 참고 견디며 기다려왔던 때가 왔다. 땅바닥에 붙어 있던 잎들이 일제히 일어선다. 꽃을 달고 있는 줄기가 가운데서 쑥쑥 자라 올라온다. 땅속뿌리에 겨울 동안 쌓아왔던 힘을 한꺼번에 토해내듯 자라난다. 겨울을 견뎌낸 대가를 톡톡히 받아 내려면 서둘러야 한다. 밭을 갈아엎고 씨를 뿌리기 전에 냉이는 서둘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씨를 뿌려야 한다. 들은 한순간 냉이로 덮여버린다. 겨울 동안 준비해온 것을 모르는 이에게 이것은 그저 경이로운 모습으로 보일 뿐이다.

원래 유럽에서 자라던 냉이는 농경 활동을 따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한반도에는 아주 오래 전 중국을 거쳐 들어왔다. 예로부터 함께 살아온 냉이는 우리에게 아주 친근한 풀이다. 봄이면 나물 바구니에 쑥과 함께 가장 많이 담기는 게 냉이였다. 잘게 썰어 죽에 넣어 먹으며 보릿고개를 넘겼고 나물로 무치고 김치를 담그고 국거리로 먹었다. 나물 뜯으며 부르는 노래에는 어김없이 냉이가 나온다.

"쏙쏙 뽑아 나싱게(냉이) 잡아뜯어 꽃다지 이개 저개 지칭개 한푼 두푼 돈나물(돌나물)……"

냉이는 약효 성분도 다양하고 풍부하다. 동맥 경화 예방, 만성 간염, 위궤양, 빈혈, 당뇨, 고혈압 따위에 쓰였다. 씨앗은 허기질 때 씹어 먹으면 배고픔을 잊게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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