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 김재복, 목숨을 건 싸움

[단식일지 10, 11] 2004년 8월 18, 19일

청와대 가는 길

정말 가도 되는 건지, 괜찮은 건지 겁이 났다. 가봐야 굳이 드릴 말씀이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가서 힘들게만 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몸 힘들 때면 사람 하나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다른 무엇보다 사람에게 치이는 일이야말로 정말 기운을 잃게 하는 일일 텐데 말이다.

주말에 서울 올라와 하루 더, 하루 더 있으면서 오늘 내려가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하나 아쉬웠던 게 김재복 수사님을 한 번 못 보고 가겠다 하는 거였다. 수사님은 파병반대국민행동 지도부가 파병철회를 위한 무기한 단식농성을 시작하던 지난 7월 26일 함께 단식을 시작했다. 여드레가 지나 자이툰 선발대는 달아나듯 몰래 떠났고, 그것을 막기 위해 시작한 국민행동 지도부의 단식농성은 그것으로 마쳤다. 여기에 수사님은 오히려 이런 때야말로 더욱 중요한 시기인데 그대로 단식을 접어버리면 어떻게 하느냐며 명동성당에 폈던 농성장을 청와대로 옮겼다. 그렇게 길가에 나와 굶기 시작한 게 오늘(8월 18일)로 스물 나흘 째. 수사님의 싸움은 외로울 것 같았다. 얼굴이라도 한 번 뵙고 가야지, 이렇게 응원하고 있다고, 함께 하고 있다고 힘을 드리고 가야지 하면서도 막상 그리하지 못했다. 어떻게 가야 하는지, 가도 되는지, 청와대 앞이라는데 들어갈 수는 있는지…….

경복궁 역에 내려 4번 문으로 나와 청와대로 가는 길. 나로서는 그 길이 처음이다. 머리를 짧게 깎고 뒷주머니 불룩하게 무전기를 가진 사복 경찰에게 길을 물으며 청와대 앞 무궁화 동산을 찾아갔다. 사람이 거의 없는 한적한 길, 잠깐 걷노라니 어느 건물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아니나 다를까 한 사내가 앞에 다가서며 말을 붙인다. 그래도 어디 기차역 같은 곳에서처럼 고압적인 자세는 아니다. 짐짓 예의바른 태도로 소속과 계급, 이름을 말한 뒤 어디를 가느냐 묻는다. 소속, 계급, 이름은 너무 빨리 말을 해 알아듣기가 어려웠지만 다시 물어보면 천천히라도 대답해줄 모양이었다.

“청와대 앞 무궁화동산에 농성하는 김재복 수사님을 만나러 왔는데요.”
“아, 그러세요? 무슨 일로 오셨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네에, 수사님 안부도 궁금하고 해서 뵙고 가려고 왔어요.”
“아아, 들어가면 시간은 어느 정도나…… 아니, 혹시 밤이 되면 안전 문제도 있고 해서……”
“뭐,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한 시간 정도.”
“실례지만 이름을 물어도 되겠습니까?"

사내는 말하는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게다가 부드러운 말투였다. 나는 괜한 실랑이질을 하면 안 들여 줄까봐 그게 걱정이었던 걸까? 아니, 그렇게 물어보는 사내를 나는 하나의 공권력이라기보다는 순간 길을 가다 만나 통성명을 나누게 된 사람정도로 착각한 거였을까? 나는 순순히 내 이름을 댔다. 나이를 말했고, 하는 일을 얘기했다. 가방에 뭐가 들었는지를 물을 때도 사내 얼굴에는 미안한 기색이 살짝 들었다. 아니, 그건 나만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 자리에서 왠지 사내의 처지가 이해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구차하게, 또는 비굴해 보이기까지 하면서 임무를 다하고 있는 사내에게 어떤 같은 걸 살짝 느낀 것도 같다. 사내가 미안한 기색으로 가방 안을 묻길래 이번에도 나는 순순히 가방 안을 보여주었다. 내가 그렇게 했으니 함께 가던 햇살 님과 아멜리도 다 그렇게 했다.

그 사내들을 지나 무궁화동산 쪽으로 걷는데 아멜리가 조금 전의 일에 대해 몹시 불쾌해 하며 투덜거렸다. 왜 저런 불심검문을 하는 거야? 아차, 순간 나는 내가 무척이나 잘못했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잘못했구나, 그것도 아주 많이. 그래, 맞다. 사내가 아무리 웃음 띤 얼굴로 요구한다 하더라도 나는 마땅히 거부를 했어야 한다. 내가 범죄자인가, 내가 현행범인가? 영장 없이 나에게 신상을 밝히라는 요구는 그렇게 순순히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 게다가 가방까지 열어 보였다니! 내가 그렇게 협조적인 태도로 응하고 있는데 그 옆에서 햇살 님이나 아멜리가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부끄러웠다. 햇살 님, 아멜리에게 정말 창피하고 미안했다. 내가 오늘 보인 것 같은 태도들 때문에 불심검문을 거부하는 당연한 권리가 오히려 이상한 일이 되어버린다. 공권력을 남용하는 그들에게는 마치 그것이 당연한 것인 양 인정해주는 결과가 되고 만다. 잘못했다.

김재복 수사님

한참을 걸어 들어가니 청와대가 보였다. 그 뒤로 구름을 걸친 인왕산이 있다. 기껏해야 아홉 시 뉴스에서나 보던 것들이다. 나는 여지없이 촌놈이 되어 신기해했다. 저기가 바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대는, 사람 하나 죽는 거야 눈도 깜짝 않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사는 곳인데, 나는 그래도 그게 무어 그리 신기하다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김재복 수사님과 지율 스님이 농성을 하고 있는 무궁화 동산은 청와대 길 건너편 분수대가 있는 조그만 마당을 지나 안으로 움푹 들어온 자리였다. 분수대 앞에는 수사님이 말하는 단식 농성의 이유를 적은 피켓이 세워져 있었다. 그걸 보니 정말 수사님과 스님이 계신 곳으로 왔나 보다 싶었다.

지난 해 6월, 수사님을 처음 만났다. 바그다드가 끝내 미군 탱크에 함락된 뒤, 나는 이후에 해 나갈 구호 활동을 준비하러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6월, 다시 이라크로 들어갔을 때 팀의 숙소에서 수사님을 만났다. 지금도 청와대 앞에 찾아오는 이들 가운데에는 수사님을 보고 지율 스님이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는데, 수사님은 그 때나 지금이나 꼭 스님처럼 머리를 깨끗하게 깎았다. 수사님은 다른 수사님 한 분과 같이 천주교평화연대 모임의 파견자로 이라크에서 활동을 하고 계셨는데, 다른 수사님 한 분이 한국으로 돌아가자 내가 속했던 이라크민중지원활동팀과 함께 생활을 했다. 함께 생활하는 이들 가운데 수사님은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른이었지만 그 안에서 수사님은 누구와도 또래 친구처럼 대하며 어울렸다. 젊고 어린 어떤 팀원들보다도 부지런히 공동생활을 했고, 주방장을 자처하면서 끼니마다 열 다섯 가까이 되는 식구들의 밥상을 마련했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해 어디를 가나 아이들 사진을 찍던 수사님은 여러 가지 민간의학 쪽으로 잘한다는 게 알려지면서 꽤 오랜 시간 동안은 쉴 새 없이 이라크! 인들 몸을 돌봤다. 지압과 안마, 부황. 수사님의 지압과 안마를 받은 효과가 입 소문이 나면서 당시 일하던 알마시뗄 헬스센터에는 전쟁 통에 몸이 망가진 이라크인들이 줄을 지어 기다렸다. 뿐 아니라 다른 고장 헬스센터에서도 며칠만이라도 그쪽으로 와서 해주면 안 되겠느냐는 부탁이 들어오기도 했고, 결국 처음 계획보다 일주일을 연장하고, 보름을 연장하면서 아픈 사람들 몸을 풀어주고 고쳐주었다. 그리고는 칠월 말 한국으로 돌아온 수사님은 다시 10월이 되어 이라크로 들어갔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규모 전투병력을 파병하겠다고 선언한지 2주쯤 지난 때였다. 그리고 12월 초, 티그리트에서 한국인 노동자 두 사람이 총에 맞아죽던 날 수사님은 다시 돌아왔다. 그 때는 단식농성을 하던 대학로로 수사님이 찾아오셨다.

무궁화동산 안, 농성장은 다른 게 아니라 공원 안에 있는 벤치였다. 누가 벤치 위에 깔개를 깔고 누워 눈을 붙이고 있다. 벤치가 기댄 담벽에 붙여 놓은 ‘생명과 평화를 위한 단식기도’라는 글귀 때문에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수사님이구나! 인기척 때문인지 수사님이 눈을 떴다. 일어나 앉으면서 수사님은 엄지손가락을 세워 뒤쪽을 가리켰다. 나는 괜찮아, 스님한테 가봐. 그러고 보니 담벽을 가운데 두고 대칭으로 벤치가 나란히 있는 거였다. 공원으로 들어가면 이쪽을 마주보고 있는 벤치가 수사님의 자리, 그리고 담벽 너머가 스님의 자리. 물론 스님께도 가서 인사를 드리고 싶고, 모습을 뵙고 싶었지만 왠지 조심스러웠다. 게다가 담벽 너머 쪽에는 손님들이 제법 있는 반면, 수사님 곁에는 우리가 다였다. 그래서 스님께는 조금 나중에 인사를 드리더라도, 아니 인사는 못 드리고 먼발치에서 뵈면서 마음으로만 인사를 드리더라도 당장은 수사님 곁에 있고 싶었다. 물론 도롱뇽을, 천성산을 지키는 스님의 마음과 반전평화와 철군을 바라는 수사님의 마음이 다 하나이겠지만 왠지 수사님 자리가 많이 외로워 보였다. 뭐랄까 이 날로 스물 나! 흘 째 굶고 있는 수사님 또한 지금 목숨을 다 내놓고 있는 싸움을 하고 있는 거고, 날마다 한계를 이겨가면서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데 그 곁에 스님이 계신 터라 수사님의 싸움은 많이 묻혀지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 날도 그랬지만 찾아오는 사람들도 거의 스님을 뵈러왔고, 그 가운데에는 수사님 또한 긴 단식 중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실제로 수사님의 단식은 파병철회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조차 널리 알려져 있지 못하다. 스님께도 더 가까이 가보고 싶었지만 그래서 더 수사님 계신 자리에서 얘기를 길게 나눴다.


8월 18일, 이라크 평화와 한국군 철수를 위한 단식기도 24일 째, 김재복 수사님
죽어야 끝나겠지만.

수사님은 선발대 파병 뒤로 파병철회 운동이 빠르게 꺼져가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에 무척 답답해했다. 수사님이 함께 활동하던 쪽 모임이나 교회 쪽 사정도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시민단체나 교회 쪽에서 만나러 찾아오기는 하지만 와서 하는 말은 대부분 그만 단식을 접으라는 권유들이라 했다. 그렇다면 대안은? 최소한, 적어도 어떻게 싸워가겠다는, 어떻게 싸워가자는 대안조차 없이 그저 시민사회단체와 보조를 맞추어 함께 해 나가자는 막연한 말만 내 놓으면서 단식을 접으라는 권유를 한다는 거였다. 다들 그런 식이었다고, 몸은 어떠십니까 하고 묻는데, 그런 소리하지 말고 여기 와서 다 같이 굶기라도 하자고……. 수사님은 답답해했다. 나 또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농성 생활에 대해 더 얘기를 하다보니 수사님 농성에는 지금 책임 있게 붙어 있는 도우미가 뚜렷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물론 시간이 될 때마다 들러서 곁이 되려는 분들은 있지만 대부분 직장 생활을 하는 분들이어서 저녁 시간 정도에 들렀다 가는 거고, 그것도 체계 있게 움직이는 게 아니라 저마다 시간이 될 때, 되는 만큼 들러 마음을 쓰는 거라 말하자면 안정적인 도우미는 없는 상태였다. 아니, 그러면 안 될 텐데. 그래서 수사님은 최근 이라크 소식이나 파병반대 운동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하는 정보들도 제대로 듣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최근 나자프에서 수백 명이 죽었다는 얘기도, 바그다드 시내를 비롯해 도시 곳곳에서 격렬한 교전이 날마다 이어진다는 얘기도 수사님은 처음 듣는다 했다. 아,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싶었다. 최소한 그런 뉴스들이라도 모아다 전해주고, 상시적으로 수사님의 상태나 필요한 물품을 챙기고, 농성장의 소식을 바깥으로 전하고 하는 일들이 있어야 할 텐데 현재로선 그게 거의 안 되다시피 한 거였다. 수사님이 노트북을 가지고 있으니 무선 인터넷이라도 설치를 하면 일단 바깥 정보에 대한 문제는 해결 될! 텐데, 그 무선 인터넷 설치 방법에 대해 아는 대로 설명을 드리다가 아예 그런 것들을 바끼통 모임에 맡아서 하면 어떻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난 그대로 수사님께 말씀드렸더니 수사님도 그렇게 해 주면 좋지 하며 반가워한다. 그래, 바끼통에 얘기해 봐야겠다. 할 일은 적지 않다. 우선 수사님 몸의 상태를 챙기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일 테고, 그 다음은 농성장에 필요한 물품을 챙기는 일, 수사님께 이라크 관련, 파병철회 운동 관련 정보를 챙겨드리고 이후 진로를 모색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수사님의 이 외로운 싸움을 널리 알려내는 것이다.

수사님은 찾아와서 자꾸만 똑같은 걸 묻는 기자들이나 아니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함께 싸울 의지 없이 단식을 접으라고 권하는 시민단체 사람들 얘기를 하다가 형사들도 얼마나 와서 지분거리는지 아주 귀찮다 했다. 하루는 이 사람이 슬금슬금 다가와서 언제까지 할 거냐 묻고, 또 어떤 날은 다른 사람이 와서 건강은 어떠시냐 하면서 지분거리듯이 물어본다며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거 물어볼 때마다 구십 일 할 거야, 구십 일! 하고 대답하는데, 그러니까 또 슬그머니 곁에 와서 90일은 어떤 의미냐고 묻더라나? 수사님은 이라크에 사람이 죽었다 하면 그곳에서 눈을 맞추던 아이들이 눈에 생생하다고 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때는 마음만 아린 게 아니라 구역질 같은 게 나기도 한다. 수사님도 다시 이라크에 가고 싶지요? 그런데 이 싸움이 끝나야 가지. 결국 죽어야 끝나겠지만……

지율 스님

지율 스님 앞에 서는 건 정말 떨렸다. 바람을 훅 불면 날아가지 않을까, 손을 대면 가루처럼 부서져 내리지 않을까. 뵙는 것만으로도 조심스러웠다. 수사님하고 한참 까불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지율 스님이 담을 돌아 우리 앞쪽으로 오셨다. 어떻게 인사를 드려야 하지? 무어라고 인사를 드려야 하지? 그저 고개만 꾸벅. 스님도 가볍게 목례로 인사를 받으셨다. 조금 뒤에 스님이 계신 자리에는 한 떼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왔다. 그 전까지 있던 분들까지 해서 꽤 많은 분들인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수사님과 농성장 이야기며 이라크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는데, 담벽 너머에서 지율 스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뭐라고 한참이나 긴 말씀을 하셨다. 말 한 마디 하기에도 기운이 모자랄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달랐다. 그렇다고 힘이 넘치는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기어드는, 아픈 목소리는 아니었다.

여럿이 함께 온 분들은 ‘환경을 생각하는 교사모임’ 분들이라 했는데, 그 분들이 가고 난 뒤 수사님과 나도 스님 벤치가 있는 쪽으로 건너갔다. 겨우 담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쪽 벤치와 저쪽 벤치일 뿐이지만 그곳에서는 그게 꼭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옆집에 놀러 가는 느낌이었다. 스님이 계신 곳에서 우연히 아는 선생님 한 분을 뵈었다. 어린이도서연구회라는 모임에 계신 분인데 그 선생님 덕에 다시 스님에게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조심스러운 마음에 다시 떨렸다. 스님, 손 한 번만 잡아 봐도 돼요? 스님이 내준 손 가만히 감아쥐었다.

스님은 내가 생각했던 것하고 많이 달랐다. 스님을 직접 뵙기 전까지는 몹시 여리기만 한 분일 거라 생각했다. 곱기만 하고, 힘이 없고, 목소리는 기어들고, 누구와 눈이 맞으면 피하는 그런 분일 거라고. 아니, 달랐다. 물론 스님은 아주 곱고 여린 분이기는 했지만 동시에 안에서 느껴지는 힘이 정말로 단단하게 전해졌다. 외유내강, 내가 실제 본 스님의 모습은 그랬지만 나는 속으로 스님이 바깥으로도 여리고 안으로도 여린 분일 거라 생각한 거였다. 이 정부가 하는 짓, 대통령이 하는 짓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스님은 “무슨 폭탄, 대포 같은 거라도 있으면 그걸로라도 쏠 텐데…….” 하고 말을 하며 웃었다. 깜짝 놀랐다. 스님이 그런 말씀을 하다니? 스님은 미물의 목숨조차도 내 목숨과 똑같이 생각하며 아파하는 분 아닌가? 이제는 지율 하면 ‘이 세상 모든 숨쉬는 것들의 목숨’하는 느낌이 떠오르는데 폭탄에 대포라니? 지율 스님의 그 말에 깜짝 놀라는데 나는 동시에 떠오르는 분이 있었다. 안동 조탑에 사는 할아버지, 권정생 선생님. 어쩜 그리 같은 말을 하시는지……. 작년 봄, 미군과 이라크 정규군의 전쟁이 끝나고 조용해! 질 무렵 한국에 돌아와 안동에 찾아갔을 때 선생님이 그러셨다. 그런 곳을 왜 갔느냐고, 전쟁터에서는 모두 다 미치광이가 될 수밖에 없다고. 그러더니 나중에는 농담으로 아예 갈려면 이라크가 아니라 미국을 갔어야 했다며, 알카에다 같은 데를 들어가 미국 백악관에다 자살폭탄 같은 걸 하지 그랬느냐고 하셨다. 지율 스님이 대포 얘기도 그렇고, 권정생 선생님이 한 알카에다 얘기도 그렇고 그걸 말만 똑 떼어 내어 보면 도무지 평화주의를 품은 사람이 할 말이 아니다. 그런데 스님이, 할아버지가 얘기하니 그 느낌이 아주 달랐다. 두 분 모두 우리에게는 평화의 끝에 닿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깊고 고운 어른들이다. 그런 분들이 모두 절망처럼 폭탄, 대포, 자살폭탄을 얘기했다. 어쩌면 정말로 용서할 수 없는 이들조차 용서해야 한다고, 그이들의 목숨도 소중하다고, 그이들마저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하는 건 목숨 또는 평화라는 관념을 그야말로 ‘척’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바닥까지 아파보았다면, 진정으로 사랑을 안다면 오히려 더 분노와 증오를 분명히 하게 되는 건지도 말이다.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 정도로 지율 스님은 지금 이 정권에 절망하고 있고 분노하고 있다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의 결혼>>

스님은 지금 살면서도 수없이 천국과 지옥의 마음을 오간다 하시며 엊그제 신문에 부분 소개가 되었다는 시 한 편을 외워 들려주셨다. 한 이십 년 전에 좋아하던 시라면서 외는데, 그 긴 시를 반 가까이 그대로 외웠다. (스님이 읊조린 이 시를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시의 제목이라 했던 <<천국과 지옥의 결혼>>은 이 시가 들어있던 민음사 판 시집의 제목이었고, 그 제목은 시인이 그린 그림에 붙인 거였다. 그게 중요하지는 않다.) 스님이 외워 들려주는 동안 어느 구절 하나가 귀에 와 박혔다. ‘주인집 문앞에 굶주림으로 쓰러진 개는 / 한 나라의 멸망을 예고한다.’


윌리엄 블레이크 / 순수의 前兆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 손바닥 안에 無限을 쥐고
한 순간 속에 영원을 보라.
새장에 갇힌 한 마리 로빈새는
천국을 온통 분노케 하며,
주인집 문앞에 굶주림으로 쓰러진 개는
한 나라의 멸망을 예고한다.
쫓기는 토끼의 울음소리는
우리의 머리를 찢는다.
종달새가 날개에 상처를 입으면
아기천사는 노래를 멈추고……
모든 늑대와 사자의 울부짖음은
인간의 영혼을 지옥으로부터 건져올린다.
여기저기를 헤매는 들사슴은
근심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준다.
학대 받는 洋은 전쟁을 낳지만,
그러나 그는 백정의 칼을 용서한다.
그렇게 되는 것은 올바른 일이다.
인간은 기쁨과 비탄을 위해 태어났으며
우리가 이것을 올바르게 알 때,
우리는 세상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다.
기쁨과 비탄은 훌륭하게 織造되어
신성한 영혼에게는 안성맞춤인 옷.
모든 비탄과 슬픔 밑으로는
비단으로 엮어진 기쁨이 흐른다.
아기는 강보 이상의 것,
이 모든 인간의 땅을 두루 통해서
道具는 만들어지고 우리의 손은 태어나는 것임을
모든 농부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이 보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그대가 무엇을 하건 그것을 결코 믿지 않을 것이다.
해와 달이 의심을 한다면
그들은 곧 사라져 버릴 것이다.
열정 속에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열정이 그대 속에 있는 것은 좋지 않다.
국가의 면허를 받은 매음부와 도박꾼은
바로 그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 거리 저 거리에서 들려오는 娼婦의 흐느낌은
늙은 영국의 수의를 짤 것이다.


다시 수사님 집으로 건너가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지율 스님이 부르신다. 영화를 볼 거라며 건너오라 했다. 스님의 노트북에 씨디를 끼워 영화를 틀었다. 제목은 <<곡선>>. 부산대 학생들이 만든 영화라 했다. 스님이 잠깐 나온다고도 했는데, 역시 영화의 내용은 산을 망가뜨려 고속철도를 놓은 것을 소재로 삼은 거라 했다. 그 안에서 영화가 다루는 주제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잃어버린 어떤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이다. 한 시간 걸리던 것이 사십 분 걸리게 되었다면 이십 분을 일찍 간만큼 잃어버리게 된 그 이십 분은 과연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이야기.

분위기가 참 좋았다. 노트북 하나를 놓고 스님과 수사님까지 모두 여덟 사람이 빙 둘러앉았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빗소리에 견줘 노트북에서 나오는 소리가 너무 작아서 하나도 말하는 걸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거였다. 말소리 없이 화면만 한참 보다가 우리는 모두 집 공사에 들어갔다. 집이라면 물론 농성을 하는 벤치를 말하는 거다. 다행히 벤치 위에는 지붕이 있어 비가 오는 건 막을 수 있지만 혹시라도 오늘 밤 태풍이 심하면 비가 들이치는 건 대비를 해 두어야 했다. 수사님의 지휘감독 아래 몇 사람이 들러붙어 공사가 끝났다. 양 쪽 벤치를 다 감싸게 하는 사각뿔 모양의 비닐 천막을 둘렀다. 사람들이 놀린다. 이로써 스님과 수사님은 드디어 한집 살림을 하게 된 거 아니냐고, 제대로 된 한 지붕 두 가족이 되었다며 말이다.

8월 18일, 천성산을 지키기 위한 단식 50일째, 지율 스님. 영화를 보여주려고 노트북으로 씨디를 틀고 있습니다.


청와대에서 나와 사람들과 더 함께 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스님과 수사님을 만나고 오니 아주 힘이 났다. 이상하게도 힘이 솟았다. 거꾸로 그 분들께 힘을 드려야지 하고 갔는데 정녕 힘을 얻어온 건 나다. 스님의 맑은 눈, 수사님의 개구장이 같은 웃음. 무슨 까닭이 있어서가 아니라 저절로 기운이 났다. 그리고 마음도 평안해졌다. 모두 그 분들에게 받아온 거겠지. 스님 그리고 수사님, 두 분의 몸으로 생명의 기운 늘 샘처럼 솟아나기를 바랍니다. 두 분 앞서 가시는 길에 함께 할게요.

8월 19일, 울진으로 돌아와

울진에 내려왔다. 강릉부터 바다가 보이기 시작해 동해, 삼척을 지나도록 바다는 몹시 성이 나 있다. 울진에 도착할 무렵 빗줄기는 한결 약해졌지만 오전에는 무섭도록 비바람이 불어댔다고 한다. 집에 들어오다가 잠깐 해수욕장이 있던 자리들을 보니 포장마차를 쳐 놓았던 자리가 뼈대만 남은 채 모래밭에 굴러다닌다. 집으로 들어오는 산길, 언덕길은 부러진 나뭇가지, 뽑혀 나온 풀이 길을 덮었다. 그나마 다행인 게 밤이 되도록 다시 비바람이 강해지지는 않는다.

그 사이 울진에서는 군청 앞 농성이 계속 이어졌다. 릴레이 단식만 오늘로 17일째. 그저께는 모두 일곱 사람이 함께 했고, 어제는 셋, 오늘은 둘이다. 17일 동안 다 하면 예순 사람이 넘는다. 까페에 올라온 어제 사진을 보니 태풍 비바람 속에서도 비옷을 입고 농성 우산과 피켓을 들었다. 태풍 비바람 속에 우산을 들고 농성하는 사진을 보니 그 모습이 꼭 지금 우리 같다. 태풍보다 더한 전쟁, 그 앞에서 전쟁에 맞서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저녁이 되어 닷새만에 군청 앞 농성장에 나갔다. 며칠 못 보다 보니 함께 하시는 분들 얼굴 모두 반갑다. 그 사이에 못 보던 피켓도 몇 장이나 더 있다. 농성 우산을 들고 깔개 위에 앉아 있었는데 한 시간이 아주 잠깐인 것처럼 금세 지나갔다. 나도 내일이면 열 이틀 째. 나도 이제 긴 싸움으로 접어들고 있다. 서두르지 말고, 성급하게 덤비지 말고, 기다리며 긴 싸움을 준비해야겠다. 내 몸과 대화를 잘 나누어야겠고, 그리고 함께 하는 분들에게 힘을 잘 실어드릴 수 있어야겠다. 파병철회, 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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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종복

    눈시울이 뜨거워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이 세상에서 맑은 마음 지니며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살아있는 것을 마구 죽이고 그것을 온갖 논리로 정당화시키는 세상에 맑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지만 우리는 해야 한다. 세상을 살리기 위해 내 자신의 순수를 찾기 위해 걸어 가야 한다.
    지율 스님, 김재복 수사님, 박기범 님이 걷는 길을 따라 가야 한다. 우리 한사람한사람이 자기가 살고 있는 바로 그 곳에서 평화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
    정말 얼마나 나를 죽여야 내가 보일까. 어떻게 하면 내 속 깊이 뿌리 박혀 있는 더러운 탐욕을 끄집어 내어 죽일 수 있을까. 그래서 이라크 아이들을 살리고 천성산 고속철도 공사로 죽어가는 이름없는 수많은 목숨을 살릴 수 있을까.
    나는 책방에 있으며 지율 스님, 김재복 수사님, 박기범 님을 생각하면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르면서도 가슴 한 켠이 따뜻해져옴을 느낀다.
    이 분들은 모두 자기 목숨 귀하면 남의 목숨 귀하다는 간단한 사실을 알고 온몸 온마음으로 실천하고 있다. 그만큼 세상은 조금씩 밝아진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서 할 일이 많다. 아무리 세상의 어둠을 걷기 위해 밥을 굶어도 자기 목숨 버리며 할 수는 없다.
    지율 스님, 밥 굶기를 그만하세요. 제발이요. 살아서 싸워요. 살아서. 스님 생각하면 제 속이 시꺼멓게 타 들어가요. 스님 제발 살아서 함께 싸워 좋은 세상을 맞이 해요.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배가 너무 고팠다. 나도 오늘은 한 끼를 굶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낮밥을 굶으니 배 속에서 밥 달라고 요동을 친다. 이 지구상에는 5살 전후의 아이들이 굶주림과 어른들이 벌인 전쟁, 질병으로 하루에 3만명 이상이 죽는다. 그리고 그 중에 5천명은 단지 물을 못먹어 죽는다. 누가 이 세상을 아름답다고 했는가. 돈 있고 배부른 자들에게는 이 세상이 그런대로 살만한지 모르겠다. 하지만 단지 물이 없어, 물을 떠오기 위해 30km를 걸어서 오는 수단의 어린 아이들에게는 이 곳이 바로 생지옥이다.
    지율 스님은 이것을 알고 있다. 경제개발이라는 이름이 가난한 나라의 수많은 목숨을 죽인다는 것을.
    스님은 단지 천성산의 도롱뇽을 살리기 위해 밥을 굶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갖고 있는 물질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죽이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살려야 할 것을 살리려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김재복 수사님, 박기범 님도 한마음이다. 세상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죽이는 것이다. 배고픔의 고통을 참는 것이다.
    하지만 살아야 한다. 살아서 같이 싸워야 한다.
    스님, 지율 스님 죽으면 안돼요. 제발 이제 한박자 쉬고 다시 싸울 수 있도록 밥굶기를 멈추세요. 제발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스님의 목숨이 한 줄기 바람으로 바뀔까봐 조마조마 해요. 살아서 싸워요. 스님.

    2004년 8월 20일 살아있는 것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날 낮,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

  • 은종복

    눈시울이 뜨거워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이 세상에서 맑은 마음 지니며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살아있는 것을 마구 죽이고 그것을 온갖 논리로 정당화시키는 세상에 맑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지만 우리는 해야 한다. 세상을 살리기 위해 내 자신의 순수를 찾기 위해 걸어 가야 한다.
    지율 스님, 김재복 수사님, 박기범 님이 걷는 길을 따라 가야 한다. 우리 한사람한사람이 자기가 살고 있는 바로 그 곳에서 평화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
    정말 얼마나 나를 죽여야 내가 보일까. 어떻게 하면 내 속 깊이 뿌리 박혀 있는 더러운 탐욕을 끄집어 내어 죽일 수 있을까. 그래서 이라크 아이들을 살리고 천성산 고속철도 공사로 죽어가는 이름없는 수많은 목숨을 살릴 수 있을까.
    나는 책방에 있으며 지율 스님, 김재복 수사님, 박기범 님을 생각하면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르면서도 가슴 한 켠이 따뜻해져옴을 느낀다.
    이 분들은 모두 자기 목숨 귀하면 남의 목숨 귀하다는 간단한 사실을 알고 온몸 온마음으로 실천하고 있다. 그만큼 세상은 조금씩 밝아진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서 할 일이 많다. 아무리 세상의 어둠을 걷기 위해 밥을 굶어도 자기 목숨 버리며 할 수는 없다.
    지율 스님, 밥 굶기를 그만하세요. 제발이요. 살아서 싸워요. 살아서. 스님 생각하면 제 속이 시꺼멓게 타 들어가요. 스님 제발 살아서 함께 싸워 좋은 세상을 맞이 해요.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배가 너무 고팠다. 나도 오늘은 한 끼를 굶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낮밥을 굶으니 배 속에서 밥 달라고 요동을 친다. 이 지구상에는 5살 전후의 아이들이 굶주림과 어른들이 벌인 전쟁, 질병으로 하루에 3만명 이상이 죽는다. 그리고 그 중에 5천명은 단지 물을 못먹어 죽는다. 누가 이 세상을 아름답다고 했는가. 돈 있고 배부른 자들에게는 이 세상이 그런대로 살만한지 모르겠다. 하지만 단지 물이 없어, 물을 떠오기 위해 30km를 걸어서 오는 수단의 어린 아이들에게는 이 곳이 바로 생지옥이다.
    지율 스님은 이것을 알고 있다. 경제개발이라는 이름이 가난한 나라의 수많은 목숨을 죽인다는 것을.
    스님은 단지 천성산의 도롱뇽을 살리기 위해 밥을 굶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갖고 있는 물질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죽이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살려야 할 것을 살리려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김재복 수사님, 박기범 님도 한마음이다. 세상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죽이는 것이다. 배고픔의 고통을 참는 것이다.
    하지만 살아야 한다. 살아서 같이 싸워야 한다.
    스님, 지율 스님 죽으면 안돼요. 제발 이제 한박자 쉬고 다시 싸울 수 있도록 밥굶기를 멈추세요. 제발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스님의 목숨이 한 줄기 바람으로 바뀔까봐 조마조마 해요. 살아서 싸워요. 스님.

    2004년 8월 20일 살아있는 것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날 낮,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

  • 지나가다

    집이 청와대와 가깝습니다. 외로이 싸우는 수사님께 도움이 되고 싶은데, 단식을 한적도, 하는 사람을 본적도 없어 뭘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 지나가다

    집이 청와대와 가깝습니다. 외로이 싸우는 수사님께 도움이 되고 싶은데, 단식을 한적도, 하는 사람을 본적도 없어 뭘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 oom1906

    스님 생각하면 속이 시커멓게 타 들어간다는 님의 말씀..살아 있음이 부끄럽습니다...()

  • oom1906

    스님 생각하면 속이 시커멓게 타 들어간다는 님의 말씀..살아 있음이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