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싸움의 무기다.

[단식일지 12] 2004년 8월 20일

회의

울진에서 평화모임을 같이 해 가고 있는 일다 님이 답답한 마음으로 얘기했다. 곁에서 지켜보는데 무얼 어떻게 함께 해야 할지, 해도 좋은지 몰라 답답하다는 말씀이었다. 하루하루 날짜는 더해가지, 굶고 지낸 게 열흘을 넘기고 있으니 마음은 마음대로 쓰이는데 그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본 게 없기 때문이다.

울진의 릴레이 단식은 선발대 파병이 있던 8월 3일부터 시작했다. 김선일 씨의 죽음이 있던 6월 중순부터 7월말까지 군청 앞에서 하루도 쉼 없이 피켓 시위를 잇다가 8월로 넘어가면서는 전국에서 함께 하는 10만 릴레이 단식을 함께 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일꾼 몇 사람이 잠정으로 얘기한 건 첫 주는 쉬며 호흡을 가다듬어 둘째 주부터 시작하자는 거였다. 하지만 예고 없이 이루어진 파병이 있고 나니 둘째 주로 미룰 수 없던 마음들부터 밥을 굶고서 다시 군청 앞에 나와 섰다. 그렇게 시작된 군민들의 단식 릴레이. 단식 릴레이는 먼저 시작하고, 굶는 사람들의 군청 앞 시위는 이미 이어지고, 며칠이 지나서야 군청 앞 주자창 바닥에 둘러앉아 회의라는 것을 했다.

두 달이 가깝도록 군청 앞 시위를 잇고, 소박하나마 집회와 문화제까지 했지만 ‘회의’라는 이름으로는 처음 모인 자리였다. 전까지는 그야말로 자발성 그것 하나로 모였고, 이어졌다. 군청 앞에서 종이학을 접거나 시위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얘기하는 것으로 자연스레 역할을 나누었고, 일감을 맡아온 거였다. 그렇게 두 달을 해 오던 끝에 처음 ‘회의’라는 것을 했다. ‘회의’라 하면서도 이게 회의인지 서로 어색해 하면서 이게 회의이냐, 아니냐부터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모임인지, 아닌지. 우리가 어떤 자격으로, 어떤 성격으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건지 하는 그것부터 말이다. 해서 결국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스스로를 군청 앞 시위를 비롯한 울진 평화모임의 일을 심부름하는 ‘일꾼모임’ 정도로 매김했다.

군민 단식 릴레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첫 회의. 그 자리에서 나는 며칠 동안 단식을 하겠다거나 긴 단식을 할 거라는 따위 얘기를 따로 하지 않았다. 다만 좀 여러 날을 하려 한다는, 길게 갈 수도 있겠다는 심중을 다른 자리에서 비춘 적은 있지만 회의할 때에는 굳이 밝히지 않은 거다. 거기에는 이런 저런 까닭이 함께 있었는데 한 마디로 잘라 말한다면 나도 내가 얼마나 굶겠는지 정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정해두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는 단식 릴레이에 함께 하는 내 마음이 그랬다. 물론 이 단식이 파병철회 싸움을 위한 하나의 무기, 전술로써 구실을 하는 것이겠지만 나로서는 그 보다 먼저 내 마음을 풀고 싶었다.

끝내 파병을 막지 못했고, 기어이 침략국의 백성이 되고 말았다. 앞으로 내가 태우는 기름은 이라크인이 흘리는 피일 테며, 내가 먹는 음식은 죽어간 그 땅 사람들의 살점이 될 터였다. 그 앞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그이들 앞에 사죄를 하고 싶었다고 해야 하나, 참회를 하고 싶었다고 해야 하나? 어떤 식으로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빌고 싶었다. 그 마음으로 시작한 단식, 그렇게라도 목숨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다. 해서 나는 좀 더 여러 날 단식을 하겠다 생각은 했지만 그걸 꼭 며칠이라는 숫자 안에 가두고 싶지 않았고, 그래야 곁에 있는 분들께 괜한 마음을 쓰게 하는 걸 거라 생각했다. 거기에 한 가지 까닭을 더 둔다면 무슨 무슨 단식이 있을 때마다 ‘무기한 단식’이라는 말을 참 많이 하지만 그 ‘무기한’이라는 말을 너무 남발하는 것도 마땅치 않았다. 굳이 말을 하자면 나는 끝이 없다는 뜻의 ‘무기한’ 단식을 시작한 게 아니라 기한을 정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무기한’ 단식을 한 거였다. 그랬으니 마찬가지로 그 말은 언제라도 단식을 그만 둘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회의를 하러 모인 자리에서 굳이 얘기하지 않았던 거다.

그렇게 시작한 단식이 오늘로 열 이틀 째. 약속한 회의는 다음 주말이지만, 답답해하던 일다 님이 우선 가까이 있는 분들이라도 연락을 해서 자리를 만들었다. 서로 답답했던, 얼마 간은 눈치를 보았던, 혹은 먼저 무슨 얘기나 손짓이라도 해주기를 기다렸던 건 결국 서로 지나치게 배려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쪽에서는 불편해할까 싶어 말을 못하고 있는 동안 또 어느 편에서는 짐이 될까 싶어 제안하지 못하고 있던 거였다. 얘기를 내 놓고 풀고 있자니 답답했던 사람은 그 마음이 풀렸고, 여럿의 생각이 섞이다 보니 기대 이상으로 환한 그림이 그려졌다.

그 동안은 내가 굶어 오던 것이 평화모임 차원에서 벌여 가는 건지, 아니면 회원 한 사람의 개인적 실천인지 어정쩡했다는 것, 그것 때문에 어떤 이들을 가장 답답하게 한 것 같은데 그 순간부터는 모임에서 적극 끌어안고 함께 가꾸어갈 일로 삼게 되었다. 하나는 이 단식을 파병철회와 철군 운동의 기폭제로 만들어 나가는 일인 것이고, 또 하나는 지금까지야 개인적인 친분으로 마음을 쓰고 걱정을 하던 단식자의 몸 상태나 생활의 문제를 모임 차원에서 함께 챙기기로 한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있는 집은 울진읍에서 자동차를 타고도 삼십 분은 들어가야 하는 산골인지라 적어도 군청 앞 농성을 계속 하려면 손수 차를 타고 드나들어야 할 텐데, 조금 더 있으면 손수 운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여기에 대해 숙소를 아주 울진읍으로 옮길 것인지, 아니면 아주 군청에 천막을 치고 들어갈 건지 따위에 대한 문제 따위를 비롯해 소금이나 감잎차처럼 최소한 섭취해야 하는 것들을 챙기는 문제들을 말하는 것이다. 숙소를 아주 울진으로 옮겨야 하나 하는 얘기를 하는데 문득 깜비가 떠올랐다. 그럼 깜비 밥은 어떻게 하나? 지금도 내가 군청 앞 농성을 마치고 집! 에 들어오면 제 빈 밥그릇에 코를 들이박으며 밥 내놔라, 밥 내놔라 하는 녀석.

돌 하나

회의에서 그러한 결론을 낼 수 있었던 까닭 가운데 또 하나는 이제는 내 마음이 뚜렷이 섰기 때문이다. 단식에 들어간 동기는 파병을 막지 못한, 끝내 침략전쟁에 동참한 나라의 백성으로 이라크인들에 대한 참회랄까, 사죄, 생명의 나눔 같은 거였다면 이제는 다르다. 물론 처음부터 ‘참회와 사죄’라는 측면과 ‘싸움의 무기’라는 양면이 동시에 있었겠지만 앞엣 것에 의미가 더 컸다면 앞으로는 뒤에 말한 쪽으로 마음의 무게를 더 두고 있다. 이제는 싸움의 무기다.

오늘로 스물 엿새, 청와대 앞 수사님의 싸움을 생각하면서 다시금 내 마음을 확인했다. 자이툰 선발대의 파병이 있은 뒤, 정말 신기할 정도로 파병철회 운동은 잦아들었다. 오히려 지역의 단위의 풀뿌리 실천들이 계속 살아 있음에도 ‘파병반대국민행동’이라는 대표성을 가진, 가히 지도부라 말할 수 있는 중앙이 먼저 움직임을 멈췄다. 지역이나 부문 조직에서 계속해서 릴레이 단식에 동참하고 있음에도, 국민행동 홈페이지에는 어떤 설명도 없이 10만릴레이 단식 게시판과 관련 페이지를 지웠다. 솔직히 말해 황당 그 자체. 오히려 지역이나 부분이 지쳐서 꺼져 가면 그 불꽃을 살릴 수 있게끔 힘을 주고, 지역과 부분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있으면 그것을 받아 안아 더 큰 힘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중앙이 할 일이 아닌가. 모르긴 몰라도 지금껏 시민사회에서 영향력이 크다 하는 단체나 모임들, 그래도 파병철회 운동에 이름을 걸고 움직였던 조직들의 전반적 분위기는 일단 ‘다음을 기약’ 하자는 것이라 한다. ‘어차피 떠나지 않았느냐? 지금 당장 돌아오게 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느냐? 그러니 숨을 돌린 뒤 11월에 있을 파병기간연장 동의안을 막는 싸움에 힘을 모아야 한다, 운동 역량이라는 건 한정되어 있는데 어떻게 파병 싸움에만 매달릴 수 있나,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소강기라는 걸 인정하자…….’ 듣다보면 일리가 있어 보이는 얘기이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다. 현실적? 11월 싸움? 그래, 현실적으로 당장 철군을 가능케 하기는 어렵다는 것 안다. 11월 국회에서 안을 내놓을 때 그것을 부결시키는 게 비교적 현실가능성이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러한 구상이 진정 ‘현실적’이 되려면 지금 8, 9, 10월을 멈추지 않고 싸움을 축적시켜 가야 11월 연장 동의안 부결을 진정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거지, 8, 9, 10월을 멈추고 있다가 11월이 되어 힘 모아 싸우자 한다고 그 싸움이 제대로 되기나 할까? 그 때 가서 갑자기 힘을 모으자 한다 하여 힘이 모아질까? 집회 제목에만 있는 ‘총력’투쟁이라는 말, 진정 ‘총력’으로 가져가기 위한 짧고 긴 계획과 실천 없이 집회 제목에만 갖다 붙이는 ‘총력’이라는 말은 이젠 싫다. 우리 스스로를 너무 초라하게 만드는 말, 그런 식의 ‘총력 투쟁’에는 진저리가 난다. 진정 온힘을 다해 싸움을 축적해가도 막상 ! 11월에 가면 이길까 말까 한 싸움, 그것을 지금은 지켜보고 11월에 가서 ‘ 총력’을 다하자고 하니 그걸 정말 ‘현실적’이라 말할 수 있을까? 또다시 ‘그 때’만 하고 마는 시늉으로 그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리고는 결국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안이 통과되고 난 뒤 성명서나 한 장 발표하는, 집회 단상에서만 목이 쉬어라 외치고 마는 그런 싸움.

김재복 수사님은 <<부안독립신문>>과 인터뷰에서 꺼져들고 있는 파병철회를 다시 되살릴 수 있는 불씨, 그 길의 징검다리가 되고자 단식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 김재복 수사님의 단식은 낯설다. 목숨을 걸고 26일 째 단식을 하고 있지만 함께 파병철회를 외치던 사람들에게조차 그 소리 없는 절규에는 메아리가 없다. 있다면 고작 이제 그만 단식을 접으라고, 지금은 정세가 아니니 11월에 시민단체들이 다들 일어설 때 그 때에 힘을 합쳐 싸우자는 소리뿐이다. 수사님을 만나고 돌아온 뒤, 그리고 며칠 간 서울 일정을 마치고 울진에 돌아온 뒤, 오늘 군청 앞에서 우산을 쓰고 앉아 있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적어도 수사님의 싸움을 홀로 가게 하지는 않겠다. 혼자 가는 것과 함께 가는 것은 분명 다르다. 나 혼자 스물 엿새 째 단식을 하고 있다는 것보다 그 뜻에 함께 하면서 누군가 열 이틀 째 단식을 잇고 있다 생각하면 훨씬 든든할 수 있을 거다.

이래저래 보고 듣는 것처럼 파병철회 운동이 전반적으로 소강기에 접어들고 있다 해도 적어도 울진에서만큼은 그렇지 않다. 보름 남짓 동안 단식에 참여한 이들이 일흔 명. 우리가 군청 앞 버스 정거장 한켠에서 파병철회 우산을 들고 농성을 하고 있으면 이제는 버스가 우리를 피해서 선다. 버스기사 아저씨들이 우리에게 팔뚝을 들어 용기를 주고 가시고, 장에 나왔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동전지갑에서 돈을 꺼내 모금함에 넣어준다. 군청 앞에서만 두 달 남짓,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거기를 군청 앞 버스정거장이라 하는 말 대신 ‘파병반대 하는 데’라고 말을 한다. 8월로 넘어와 방학이 끼고 휴가철이 되면서, 그리고 선발대 파병 뒤로 전반적인 분위기가 가라앉으면서 혹시나 많은 이들이 지치고 떨어져가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그건 지나친 걱정이었다.

피켓을 들고 서는 사람들과 그 앞을 지나는 군민들과 나누게 되는 교감도 훨씬 가까워지고 있고, 그런 속에서 당위나 책임이 되어 하는 일이 아니라 즐거움 속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찾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게 어디 이곳 울진뿐일까? 울진 소식을 다른 곳에서 잘 모르듯, 곳곳에서 더 알차고 ! 속 깊게 벌이고 있는 싸움들이 계속되고 있을 거라 믿는다.

그래, 스물 엿새를 넘기고 있는 수사님의 단식 싸움이 결코 홀로 묻히는 외로운 싸움이 되게 하지 않겠다. 수사님이 말하는 징검다리, 그 징검다리를 놓는 일에 다음 돌 하나를 놓는 일, 이제 나의 단식은 그것이라 생각한다. 울진에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단식 릴레이, 그리고 날마다 그 자리의 철군 시위, 이것 또한 끝내 멈추지 않고 이어간다면 철군 운동의 큰 돌 하나가 되어 함께 싸우는 이들을 더욱 드넓게 만나게 될 거라 믿는다. 지금은 누구든, 어떻게든 돌 하나라도 더할 때.

태풍 메기가 지나던 날 울진 군청 앞


오늘 하루만 최소 20명, 47명.

오늘 하루 죽은 사람과 다친 사람의 수이다. 팔루자에 전투기 폭격으로 둘이 죽고 여섯이 다쳤다. 나자프에는 미군 전투기가 밤새도록 폭격을 퍼부어 열여덟이 죽고 마흔 하나가 다쳤다. 죽은 사람들은 모두 민간인. 날마다 죽어간다. 많을 때는 수백 명이 죽고, 못해도 열이 넘는 사람들이 날마다 죽는다. 나자프, 팔루자, 바그다드, 쿠프, 사마라……. 대전, 광주, 춘천, 대구, 부산에서 날마다 그렇게 죽는다.

어느 한 지역은 24시간 내에 모두 떠나라 하는 경고를 내보낸 뒤, 떠나지 않은 이들에게는 무차별로 폭격을 쏟아 붓는다. 전투기에서 폭격해 대는 그이들 눈에는 도시의 사람들이 개미만도 못한 걸까? 쏟아 붓는다, 죽이고 있다. 정말로 컴퓨터 게임처럼 그렇게 사람들을 죽인다. 이 전쟁을 하루라도 일찍 끝내는 것은 최소 스무 명의 목숨을 더 살릴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전쟁을 이틀, 사흘을 일찍 끝내면 마흔, 예순 명의 목숨을 더 살릴 수 있는 것이다. 4월에는 팔루자, 8월에는 나자프였다. 또 어느 도시가 그렇게 초토화될는지 모른다. 그 전에 이 전쟁을 끝낸다면 천 명 가까운 목숨을 살리는 일이다. 그래도 미룰 수 있는가? 현실적 운운 하면서 ‘운동판 정치’를 해야 하는가? 한국군 철군은 내 나라 군대가 점령 학살에 동참하는 것을 괴로워하고 반대해서이기도 하지만, 이 전쟁이 끝나기 위해서는 파병국들이 한 나라라도 어서 철군을 해야 한다. 점령군 미군을 고립시키고, 미군이 물러서지 않을 수 없는 싸움을 해야 한다. 때문에 파병철회와 철군은 단지 내 나라의 범죄 행위를 막는 것 뿐 아니라 종전을 앞당기기 위한, 이렇게 날마다 죽어가는 이라크 인을 조금이라도 더 살리기 위한 싸움인 것이다. 나자프의 이맘 알리 사원에는 천 명도 넘는 사람들이 자신의 몸으로 ‘방패’가 되겠다고 모여들었다 한다. 나이 어린 소년부터 나이 많은 노인까지 그이들은 지금 온 몸을 걸고 저항하고 있다. 말 그대로 결/사/항/전.

뉴스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지만 오늘, 고장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과 마음을 드러내어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아주 힘이 난다. 게다가 내 마음을 뚜렷이 세우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희망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다 버리고 나면 가벼워지고, 그 가벼움이라면 두려울 것이 없다. 하루라도 철군을 앞당기면 적어도 스무 사람 목숨은 더 살릴 수 있다, 이건 목숨을 살리는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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