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만 해도 스물 넷이 죽었다고 한다. 팔루자 최소 넷, 아마라 최소 열 둘, 나자프 최소 여덟. 이렇게 수를 헤아리면서 점점 나도 목숨이 죽어 가는 것을 숫자로 읽고, 숫자로 기억하려 한다. 오늘 하루 죽은 스물 네 명의 사람들 또한 모두 사랑하는 식구가 있겠지, 그이가 만약 아버지라면 굵은 수염을 부비며 사랑했을 아기가 있겠지, 그이가 만약 사춘기를 지나가는 소년이라면 풋사랑에 빠져드는 여자친구가 있었는지도 모르지. 내일이 돌아오면 고백을 해야지 하며 마음으로 수줍은 용기를 키우고 있었을지도 몰라. 그이가 만약 가축을 치는 농사꾼이었다면 새끼를 밴 양을 보면서, 달걀을 품는 닭을 보면서 앞날에 대한 꿈을 꾸었는지도 모른다. 아침저녁으로 어미 양을 들여다보면서, 닭 모이를 주러 나가면서……. 그런 사람들, 우리와 똑같이 꿈이 있고,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그이들이 하룻밤 사이에 또 스물 넷이 죽었다. 당장 끝내야만 하는 이 전쟁, 하루라도 앞당겨 끝내면 그와 같은 목숨을 최소한 스물은 더 살릴 수 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최소 하루에 스물 가까운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식구들을 남겨둔 채, 아직 채 꺼내지 못한 수줍은 고백을 남겨둔 채, 새끼를 밴 어미 양을 남겨둔 채.
엊그제는 미국의 정책연구소(IPS)가 낸 보고서를 읽으면서 이 전쟁에서 죽은 이라크인들의 수가 1만 1487명~1만 3458명쯤 된다고 기억했다. 그런데 새벽에 프랭스가 소개해 놓은 '평화만들기'의 자료를 보니 실제 죽어간 이들의 수는 세 배 가까이 되는 3만 7000명 정도라고 한다. 이것은「People's Keeper 운동」이라는 이라크 정치 운동 단체가 미군의 방해 속에서 목숨을 걸고 조사한 것이라 한다. 여기에는 올 4월과 5월의 팔루자 학살을 비롯해, 지금 한참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는 나자프 학살 들은 더하지 않은 수이기 때문에 그 수를 모두 더하면 4만 명을 넘을 것이다. 4만 명이 넘게 죽었다, 그것은 곧 4만 개의 꿈이, 4만 개의 설렘이, 4만 개의 곰인형의 주인과, 구두의 주인, 코란의 주인들이 넘게 사라졌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의 목숨
나에게는 오늘이 어떤 죽음을 기억하게 하는 날이기도 했다. 이오덕 선생님의 죽음. 일 년 전 오늘이 바로 선생님이 돌아가신 날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라크에서 돌아온 것도 꼭 일 년 하고 이틀이 되는 날이구나. 지난 해 8월 23일, 나는 이라크에서 돌아왔고 오자마자 짐도 다 풀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내고, 그 다음 날 아침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들었다. 그리고는 곧 선생님이 살다 가신 무너미 마을로 내려갔다. 일생을 아이들을 위해 살다 가신 선생님, 선생님이 아이들을 위해서 살았다 하는 것은 그저 아이들을 귀여워했다는 뜻이 아니라 아이들 안에 있는 평등을, 평화를, 자연을, 연민을, 그 깨끗한 마음을 사랑했다는 뜻이다. 그랬기에 선생님은 그토록 사랑하는 아이들을, 아이들의 참 마음을 지키기 위해 혹독한 세월에 맞서 싸웠다. 선생님의 아이들 사랑, 우리말 사랑, 자연 사랑,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은 관념이나 낭만 속의 사랑이 아니라 처절한 싸움이었다.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 처음 선생님을 만난 나는 그 뒤로 선생님을 쫓아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지내왔다. 늘 부끄러움 투성이이지만. 문득 문득 선생님은 무어라 말씀 하실까, 지금 서른 둘의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싸우셨을까, 무얼 어떻게 하실까 궁금했다. 언제나 목숨을, 자연을, 아이들을, 일하는 백성을 가장 앞자리에 생각하시던 선생님. 선생님이 살아 이 전쟁을 본다면 누구보다 아파했을 것이다. 목숨과 자연, 아이들과 일하는 사람들을 한 순간에 깡그리 죽게 하고 파괴하는, 인간이 만든 가장 큰 재앙 앞에서.
선생님은 몇 해 전에 <<글쓰기>>라는 책에 연재해서 소개하던 일본 아이들의 시를 묶은 글모둠을 펴낸 일이 있다. 그 책을 펴내면서, 세상과 이 세상 속에서 짓눌리고 비틀려 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선생님이 꼭 하고 싶던 말씀을 책의 맨 앞에서 얘기해 놓았다. 3년 전 선생님이 하신 말씀은 지금 다시 읽어보아도 어느 한 구절이 틀리지 않다. 그래서 더욱 답답하고, 마음이 아프다.
이 꽉 막힌 절망의 시대, 어느 나라고 미치광이 같은 어른들이 있어 돈과 무기를 가지고 그것을 마음대로 쓰고 휘두르면서 제 나라고 남의 나라고 모든 사람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모든 생물이 이 미치광이들에게 짓밟혀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 아직도 학살되지 않은 아이들이 있어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바로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의 시를 읽어 보십시오. 아이들의 세계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쓰는 시의 세계에는 모든 사람을 안아들이는 평화와 자유와 민주와 사랑이 넘쳐 있습니다. 이 아이들의 세계를 살려야 합니다.
- <<한 사람의 목숨>> 머릿글 가운데에서
오늘 아침은 선생님을 떠올리며, 선생님이 누워 잠든 산에 마음만 인사를 보내며, 몇 해 전 손수 골라 엮은 아이들 글모둠을 읽었다. <<전쟁>>이라는 시를 보며 나자프 하늘에서 폭격을 쏟아 놓고 있는 미군의 에프-16C 팰컨 전폭기를 생각했고, <<한 사람의 목숨>>이라는 시를 보면서 날마다 죽어 가는 스물 여 명의 목숨과 잘 헤아려지지도 않는 수 만 명의 목숨들을 생각했다.
전쟁
도쿄 초2 후지모도 류스케
나는 비행기가
모양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만약에 나한테
"타라!"
고 하면
죽이러 가는 비행기라서
싫어요.
(이라크 바그다드 기지에서 출격한 미군 에프-16C 팰컨 전폭기가 이라크 무장세력 근거지를 폭격하고 있다. 이 사진은 24일 미군이 배포한 것이다. 바그다드/로이터 뉴시스) |
한 사람의 목숨
가나가와 현 초4 시게타 아사키누
걸프전쟁이 터져서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아버지가 사 온 잡지를 보니
하얀 빛과 꼬리를 끌고
미사일이 날아가는 사진.
사람들이 죽어 있는 사진.
나보다 작은 아이들도
상처를 입고
죽고 했어요.
몇 달 전에
소련에서 크게 화상을 입은
콘스탄친 군이 있어요.
그 아이 목숨 살리려고
소련과 일본이 협력해
수술을 하고
치료를 한 덕분에
건강하게 되어
다시 소련으로 갔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한 삶 소년의 목숨이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전쟁에서는
많은 사람이 죽어 갔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좀더 귀하게 여겼으면 좋겠어요.
소원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전쟁은, 그만두세요.
거짓말, 그리고 사람의 목숨
오전 8시 50분 기사, 지율 스님이 쓰러졌다고 했다. 위독하다는 소식이다. 걱정이다. 끝내 이 정권은 사람의 목숨을 또다시 외면하는가? 그리고 몇 시간 뒤 12시가 넘어 지율 스님과 청와대 사이에 합의가 되었다고, 그래서 스님이 단식을 풀었다는 뉴스가 떴다. 천만다행. 하지만 의사의 말은 스님의 단식이 너무 길어 의학적으로는 어떠한 손도 쓸 수 없다고 했다. 어느 정도 자연치유, 자연회복이 있어야 의사의 도움을 줄 수가 있다는 얘기인가 보다. 합의가 되었다는 소식에 마음이 놓이기는 하지만 걱정에 걱정이다. 걱정. 그리고 또 몇 시간 지나 청와대의 발표가 거짓 발표였다고, 청와대측의 언론플레이였다는 뉴스가 올랐다. 스님은 병원에 실려간 상태에서도 계속 단식중이라 한다. 빌어먹을! 지금껏 최소한 인간의 도리도 하지 않더니 이제는 죽음을 앞둔 사람을 두고 거짓말까지 하다니. 스님에 대한 걱정과 정말로 부도덕한 이 놈의 정권에 대한 분노가 함께 겹쳤다.
군청 앞 버스정거장의 농성. 한동안 전기를 쓰지 않다가 오늘부터 다시 정거장 옆 빵집 가게 도움을 받아 전기를 끌었다. 종이학 글자판도 내 놓고 평화모임의 중학생 아이들이 실리콘 접착제로 종이학을 붙여 새 글씨를 만들었다. 어제 하루 '철' 자를 다 만들더니, 오늘은 '군'자를 만든다. 전기에 씨디를 이어 음악도 다시 틀었다. 음악을 틀어 놓으니 아무래도 사람들 눈길이 더욱 모아진다. 나도 파병철회 우산을 들고 농성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오랜만에 듣는 노래들에 귀가 더 쏠렸다. <미련한 세상>이 흘렀고, <앗쌀람알라이쿰>이 나왔고, <헌법 제5조>가 지나가고, …… <제망부가>가 나왔다. 처음 들을 때는 노랫말이 좀 길다 싶었지만 7월 촛불집회 때 일부러 배워서 불러야 했기 때문에 노랫말이 하나 하나 귀에 들어왔다. 그러다가 간주가 흐르는 동안 나오는 김선일 씨의 마지막 흐느낌, "아이 원트 투 라이브! …… 플리이즈, 프레시던트 플리이즈 부시 투 노, 무, 현 나는 살고 싶습니다, 제발 나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한동안 방송만 틀면 듣던 목소리, 들을 때마다 온 몸을 감싸던 떨림. 노랫 사이에 나오는 그이의 절규를 들으니 다시 온 몸으로 무언가가 번졌다.
솔직히 요즘 들어 농성장에 앉아 있노라면 자꾸만 노곤한 졸음이 오곤 했는데, 이 노래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심장부터 크게 뛰었다. 어제 찾아본 기사에서는 김선일 씨에 대한 국정보고서를 놓고 논란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알맹이를 쏙 빼놓은 국정조사, 정부는 김선일 씨의 납치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전혀 알리지 않았고, 계속 거짓말만 거듭해 오고 있다. 목숨을 놓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죽기 전에도 거짓말, 죽은 뒤에도 거짓말, 계속 거짓말만 이어진다. 김선일 씨의 목소리, 아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을까? 우리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어느덧 가라앉고 있는 듯한 철군의 목소리 또한 우리 나라 사람 누구 하나가 더 죽어야 다시 일어서게 될까? 김선일 씨의 죽음 하나, 그리고 4만이 넘는 이라크인들의 죽음으로는 아직도 모자라기 때문일까?
(2004년 8월 25일 군청 앞, 종이학을 붙여 '철군' 글자 모양을 만드는 아이들) |
사람, 사람들
군청 앞 농성을 마치고 모여서 울진평화모임의 회의를 가졌다. 엊그제 종례에서 갑자기 제안해서 알린 건데도 꽤 많은 분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하는 일, 저마다 동기가 다를 수 있고, 저마다 경험이 다르고, 저마다 더 눈길을 두는 자리가 다를 수 있다. 다른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오히려 다르지 않다면 언제나 그 자리, 그 모습으로 머물 뿐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다름과 다름 들이 잘 조화를 이루고, 서로가 서로에 대한 받침이 되는 일일 것이다.
지난 해 이라크에서 반전평화팀 생활을 하고 난 뒤, 함께 했던 이들 모두가 느끼던 뼈아픈 숙제가 있었다. 정말로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숙제. 그 말은 아주 아이러니하게도 "반전평화팀에는 과연 '평화'가 있었던가?" 하는 질문이었다. 그건 동시에 우리가 해 나가고 있는 평화운동 전반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우리의 평화운동에는 '평화'가 있는가? 민주주의 투쟁을 하면서 조직 내 운영은 아주 권위적이고 군사적으로 한다거나 사회 운동을 하면서 개인적인 관계는 아주 폭력적으로 맺는다거나 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당장 죽어 가는 목숨들, 전폭기의 폭격을 막는 것이 최우선의 일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그 일을 함에 있어서 우리 안의 평화가 혹시라도 깨어지고 있지는 않은가 되돌아 볼 일이다. 이 평화모임을 하는 힘도 결국은 모임을 함께 하는 분들과 같이 나누는 평화가 그 밑바탕의 힘이 될 것이다. 우리 안의 평화, 내 안의 평화가 깨뜨려지는 순간부터 어쩌면 우리는 하나 하나 지쳐 떨어지게 되거나 무력감 따위에 젖어들게 될 것이다. 회의 시간에 나누던 이야기는 하나 하나 다시 질문이 되어 내 안으로 깊이 들어왔다.
해가 저물고 저녁이 늦어서 서울에서 사람들이 내려왔다. 낮은산 아저씨와 사과꽃. 낮은산 아저씨는 지난겨울 소망나무 천막을 치고 앉았을 때도 거의 날마다 들러 걱정을 하곤 했는데, 이번에도 걱정 걱정이라더니 계획도 없이 이 먼 곳에 내려왔다. 그래야, 밤이 늦어 저녁 먹는 자리를 함께 했고, 먼길을 운전해 오느라 술을 많이 마시지도 못했다. 게다가 다음 날도 또 그 먼길을 운전해 올라가야지, 다음 날의 점심 약속까지 올라가려면 새벽에 출발해야 하니 말 그대로 정말 '얼굴이나 잠깐' 보러 여섯 시간 넘는 길을 내려온 거였다. 걱정 말아요, 그리고 기운 잔뜩 얻었습니다.
손님들이 밥을 먹으러 들어간 밥집 안 쪽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얼핏 들렸는데, 올림픽 축구 4강에서 이라크가 파라과이에게 졌다고 한다. 이겼으면 했는데, 지고 말았다. 오늘만 이라크에서는 최소 스물 넷이 죽고, 쉰 넷이 부상을 당했다. 한 시라도 종전과 철군을 앞당겨야 한다. 내일 모레면 자이툰의 대규모 부대를 그리 떠나보낸다. 인간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일이 우리가 사는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