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미국, 우리 안의 미국

[철군투쟁 단식일지 23] 2004년 8월 31일

바빴다

바빠졌다. 어제 회의에서 짠 울진 순례 일정을 준비하는 데 해 놓을 일이 많다. 햇살 님이나 일다 님은 고장 안에 있는 학교 선생님들께 연락을 해서 수사님이나 신부님이 아이들과 어느 날, 몇 시에 만날지를 확정지어야 했다. 그리고 성당 쪽에 알아보아 성당을 찾는 군민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 또한 그게 가능한지, 날짜와 시간들을 알아봐야 했다. 그 밖에 다른 작은 모임들. 일다 님이 함께 하는 엄마들 동화 모임이랄지, 바라 님이 강습하는 어머니들 풍물패랄지, 순례단이 울진에 머무는 동안 그런 크고 작은 모임들과 어떻게 만나게 해주고, 어떻게 평화 이야기를 나누어갈지에 대해 하나 하나 다 짜야 했다. 그런데 적어도 내일부터는 현수막이며 초대장, 포스터 따위 홍보도 나가야 하고, 미리 집회 신고도 내 놓아야 서둘러 알아보고 확정을 지어야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평화바람 쪽 분들, 수사님, 민중법정 제안팀과도 준비하고 있는 내용을 수시로 소통하면서 공유해야 했다.

바쁘지만 바빠도 일이 되어 가는 모습이 눈에 보일 때는 마음이 한결 좋다. 몸이 바쁘고, 손이 바빠야지 그게 아니라 무얼 할지 몰라하면서 마음만 바쁠 때는 정말 힘들고 서로 지친다. 저녁 농성을 마치고 피아노 학원에 모여 마침 회의를 가지며 울진 순례 일정에 대한 확정 안을 함께 정리했다. (물론 이것은 울진 안일뿐이고, 3일 밤 수사님과 평화바람 분들, 민중법정 제안 팀이 내려오면 그 자리에서 함께 검토하고 수정 보완해야 할 것이다.)


단식평화순례 - 김재복 수사님의 평화이야기

2004년 9월 4일 10시 40분 ㅇㅇ중학교
2004년 9월 5일 10시 30분 울진 성당
2004년 9월 5일 11시 30분 북면 성가정 성당
2004년 9월 6일 오후 울진동화모임 '싸리나무', 울진풍물모임

평화바람과 함께 하는 신나는 집회

2004년 9월 4일 18시 울진읍 연호정
2004년 9월 5일 13시 죽변 버스 터미널
2004년 9월 5일 18시 부구 우체국 앞마당
2004년 9월 6일 18시 후포
2004년 9월 7일 오후 울진 읍내(장날)

문정현 할아버지와 어린이들의 만남

2004년 9월 4일 오전 ㅇㅇ초등학교
2004년 9월 6일 오전 ㅇㅇ초등학교


수사님과 신부님이 학교에 찾아가 아이들을 만나는 자리는 생각보다 많이 짜이지 못했다. 부르는 곳이 많으면 그 조정을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이 더 앞섰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건 교사 분들이나 아이들이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학교에서 정규 수업 시간에 그런 자리를 마련하는 것에 학교나 교사가 모두 어느 만큼의 부담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데 반해서 오히려 성당에서는 아주 적극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잘 몰라서 그리 생각했나 몰라도 성당에서 하는 건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그게 웬걸. 햇살 님이 알아보고 온 두 성당 모두 군민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가장 좋은 시간을 내주면서 그 시간에 김재복 수사님과 문정현 신부님을 모시고 싶다고 했다. 이제는 성당에서 협조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아니라 거꾸로 시간을 어떻게 짜야 하나 하는 게 걱정이었다. 왜냐하면 두 성당 모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간은 일요일 오전의 같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평일 저녁의 다른 미사 시간이 있기도 하지만 그 시간대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하는데, 그건 우리보다 성당 쪽에서 더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짠 것이 울진 성당에서는 일요일 미사를 뒤로 미루고, 원래 미사 시간인 10시 30분부터 한 시간 정도, 그리고 북면 성가정 성당에서는 10시 30분부터 시작하는 미사를 마치고 11시 30분부터 한 시간 정도를 하자고 했다. 울진에서 한 시간을 하고 바로 북면으로 올라가 한 시간을 해야 하는 거였다. 하지만 수사님 혼자 하시는 게 아니라 수사님과 문 신부님이 함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해서 최대한 수사님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수사님은 인사 말씀 정도를 10분~20분 가량 하는 것) 시간을 짜면 할 수는 있겠다고 싶었다. 수사님과 밤에 전화통화를 해서 여쭈려 했는데 주무실 시간이신지 전화는 되지 못했고, 성당 쪽에서는 미리 주보에 홍보를 냈으면 좋겠다면서 확정해서 알려달라는 통에 그대로 계획해 놓았다. 울진 성당에서는 따로 성당 안에 걸 현수막까지 부탁하면서 적극 함께 하는 모습이었다. 힘이 났다, 고맙다.

어느 정도 일정을 짜놓고 일이 눈에 보이니 힘이 붙어 일을 하게 되면서도 마음에 하나 걱정이 있기는 하다. 토요일 저녁 연호정 집회는 몰라도 죽변과 부구, 후포, 울진 장날에 계획한 집회들은 그게 얼마나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여기는 군 단위의 작은 촌이어서 사실 어디를 가도 사람이 많지가 않다. 혹 사람들이 너무 적게 모여서 첫 순례를 시작하는 수사님과 평화바람, 민중법정 제안 팀 분들 모두에게 힘을 빠뜨리게 하지는 않을는지 하는 그런 걱정이 있다. 나는 순례단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울진에서는 순례단을 맞는 지역일꾼이니 그런 부담이 없지 않다. 그래서 따로 내가 아이들과 만난다거나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 같은 것을 울진 순례에서는 준비하지 않기도 했고 말이다.

벌써 23일

38일째가 되고 있는 수사님을 생각하면 '벌써'라는 말이 참 무안해지기도 하지만 벌써 23일째를 보냈다. 단식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단식을 시작하고 며칠 지난 뒤부터 등에 지고 다니는 가방에 꼬리표 하나를 매달고 다녔다. 초등학생들이 가슴에 다는 이름표인데 거기에다 '저는 오늘로 파병철회를 위한 단식 00일째입니다' 하는 글자를 써넣은 것이다. 날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00일째'에 들어가는 숫자를 바꿔 넣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앞 숫자 2는 그대로 두고, 뒷 숫자 2 위에 3이라고 쓴 종이 조각을 오려 그 위에 풀로 붙이는데 문득 '23일'이라는 시간이 다른 때하고는 다르게 다가왔다. 아마 나는 날마다 별 감흥 없이 숫자만 하나씩 더하기만 했나 보았다. 그런데 오늘 문득 내가 써넣은 숫자가 가리키는 시간이 아주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내가 생각해도 솔직히 놀랍다. 이렇게 길게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있다니. 다른 때보다 조금 더 피곤함이 온다는 것 말고는 몸으로 느끼는 이상도 거의 없다. 오히려 단식을 한 뒤로 다른 때보다 훨씬 바쁘고, 훨씬 많은 일을 하고 있다. 평소 그렇게 게으름도 많이 피우는 내가 요사이에는 늘 시간이 모자라 문제이지, 잠깐도 그냥 시간을 보내거나 한 적이 없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보면 나도 내가 단식을 하고 있다는 걸 잊기까지 한다. 그러다가 함께 모인 분들이 밥을 시켜 먹는다거나 과자 같은 음식을 먹을 때, 그 때 알아차린다. 내가 단식자라는 걸. 모르긴 몰라도 어떤 마음가짐이라거나 마음의 상태, 마음의 기운이 정말로 몸의 기운이 되기도 하나보다. 나는 지금 어느 때보다 힘이 있다.

한 십 분 정도 늦어 농성장에 나가보니 벌써 일다, 도토리 두 분이 농성장 준비를 다 해 놓았다. 농성 시간만큼은 절대 늦지 말아야지, 늦지 말아야지. 핵폐기장을 유치하고 싶어하는 아저씨들은 군청 옆문 곁에 여전히 방송차를 대 놓고, 주차장 안 근사하게 쳐 놓은 농성천막에 많이들 모여 있었다. 농성이라는 걸 나는 여태까지 정말로 간절하고 절실함에서 우러나오는 표현 또는 물러설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 같은 개념으로만 생각했는데, 그 농성장 곁을 지나치며 보니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남의 집 마당에 들어가 자리를 깔아 놓고 눌러 앉아 벌이는 어떤 행패 같은 것. 하지만 앞에 한 표현이나 뒤의 표현이나 결국은 다른 말이 아니다. 그저 어감이 좋은가 아닌가 정도 차이일 뿐. 우리가 내 놓은 집회 신고가 오늘로 끝나는 날이어서 다시 9월달 집회 신고를 내려고 했더니 우리가 늘 농성을 하던 자리를 그 아저씨들이 먼저 신고해 놓았다고 한다. 그러니 원칙대로 하자면 우리는 우리가 해오던 자리에서 더는 할 수가 없고 다른 자리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요 며칠 본 기억으로는 그 아저씨들이 버스 정거장 앞에서 특별히 하는 게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니 아저씨들하고 얘기만 되면 신고야 그 쪽에서 버스정거장까지 다 해 놓았다지만 아저씨들 계획과 겹치지 않는 선에서 양해를 구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농성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그 분들이 모여 있는 군청 안 농성 천막에 들어갔다. '울진발전포럼'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모임의 아저씨들이 꽤 여럿 있었다. 우연이겠지만 거기에 있는 아저씨들은 다들 몸집이 컸다. 그 분들께 얘기를 하니 괜찮다는, 해도 좋다는 대답을 했다. 아마 나는 그 분들을 다른 자리에서 보았으면 털털하고 수더분한 이웃 아저씨, 혹은 화끈하고 호탕한 이웃 아저씨라고 느꼈을지 모른다. 누구 말처럼 그런 분들도 다 집에 가면 집안을 위해 애쓰는 가장이고, 인자한 할아버지이거나 좋은 아버지일 것이다. 해도 좋다는 얘기를 듣고 나오는데 한 아저씨가 "그런데 말이야……" 하면서 무슨 말씀인가를 한다. 그래도 미국이 없으면 안 된다는 둥, 나라에 충성을 해야 한다는 둥.

어제부터 울진 군청 앞에는 두 개의 농성장이 있다.

항의만 하다 말 것인가, 전쟁을 막기 위해 싸울 것인가?

파병철회 우산을 쓰고, 피켓 하나를 든 채 농성장에 앉아 있으면 꼼짝 않고 앉아 있는 그 한 시간 동안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때로는 건너편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눈을 피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런 데에서 어색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앉아 있는 바로 코앞에 배기 가스관이 오도록 세워둔 자동차 때문에 숨이 막히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건너편 길가에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과자나 핫도그를 먹으며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거기에 한 눈을 팔기도 한다. 한 번은 농협 쪽에서 어떤 학생 하나가 빨간 케첩을 묻힌 핫도그를 먹으면서 오고 있는 걸 보고 있었는데 그 학생이 저쪽 다리쪽으로 지나갈 때까지, 안 보일 때까지 나도 모르게 멍청히 고개가 따라가기도 했다. 우산 쓰고 앉아 있는 시간 주로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건 인터넷에서 정신없이 수집했던 기사를 속으로 다시 정리해 본다거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논쟁 관련한 글에서 사람들이 했던 얘기들을 더듬어 보곤 한다. 물론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나도 그 논쟁에 참여하기도 하고, 거꾸로 내 생각이 정리되기도 할 테고.

그리고 하나 더, 얼마 전부터 다시 농성장에 카세트를 내놓고 음악을 틀면서는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그 노랫말을 곱씹으며 듣곤 한다. 보통 반전집회 같은 곳에서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을 여러 개 씨디로 구워 놓은 것들인데, 솔직히 어떤 노래들은 들어도 들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주로 '반미'라는 것을 당위적인 정서로 표현한 노래들. 미국이 전세계에서 벌이고 있는 만행에 대해 나는 누구 못지 않게 분노하지만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 눈 앞에 둔 모둔 싸움의 전선을 미국에다 긋는 것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신나는 곡조로 부르는 "전쟁반대 뻐킹 유에스에이, 파병반대 뻐킹 유에스에이"라는 노래에는 그저 미국만 있을 뿐이다.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은 미국의 압력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이라크 파병으로 이익을 얻게 되는 한국인들의 욕심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이 그렇고, 수구 기득권층으로 대표되는 자본가들이 그렇다. 파병은 노무현 정권을 비롯한 자본가들이 원해서 한 일이지 결코 압력에 못 이겨 한 것이 아니다. (노무현은 원치 않지만 미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병했다. 그러니 미국의 압력을 규탄하자고 주장하는 측들이 바로 노무현 정권을 옹호하는 아주 대표적인 자들이다.)

파병을 막는 싸움을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싸움과 미국에 대한 싸움을 둘로 놓고 본다면 필요조건은 앞쪽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에 대한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싸움을 하면 그것으로 미국에 대해 싸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전선을 미국에 두었을 때 파병의 가장 큰 책임자인 노무현 정권은 중간에 쏙 빠져 버리고, 어부지리로 면죄부를 얻는 꼴이 된다. <헌법 제5조>라는 노래도 아주 힘찬 곡조 위에서 "한미동맹이 무엇이길래 헌법 위에 있는가?"를 묻는다. 하지만 한미동맹을 원하는 세력이 누구인가는 전혀 밝히지 않는다. 한미동맹을 헌법 위에 있게 한 세력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다. 단지 미국의 책임, 미국의 압력에만 모든 원죄를 놓는다. 한미동맹은 미국만 원하는가? 한미동맹을 자신의 통치수단, 자신의 배를 불리는 수단으로 삼는 자들이 누구인가? 한미동맹은 한국에도 그것을 원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에 여태껏 이어져 올 수도 있는 것이고, 노랫말에서 말한 것처럼 한미동맹을 헌법 윗자리에 올려놓는 것 또한 그것을 원하는 세력이 하는 짓거리다. 그러면 말을 하자, 한미동맹 나쁘다 나쁘다 하지만 말고 그것을 헌법보다 우선시 하는 자들에게 책임을 지라고, 물러나야 하지 않느냐고.

미국의 탐욕스런 계획으로 인류 뿐 아니라 지구 생태 자체가 다 망가져 버리고 있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한다. 하지만 그 '미국'이라는 말에는 지구 위 힘이 센 어느 나라 '미국'을 뜻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미국식 사고', '미국식 개발', '미국식 자본', '미국식 삶의 방식' 담고 있는 것이다. 그건 다시 말해 지구 위 힘이 센 어느 나라인 '미국'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분명히 말하자,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미국'인가, '전쟁을 벌이는 자들'인가? 당연히 우리는 '전쟁을 벌이는 자'들과 싸우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전쟁을 벌이는 자'가 '미국'인 것이고, 우리는 미국에 분노하고 미국과 싸우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우리를 당장 전쟁의 수렁으로 밀어 넣고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애초 전쟁을 벌인 미국에도 커다란 책임이 있지만 자신들 탐욕을 채우겠다고 우리 군대와 우리 세금을 들여 그 전쟁에 끼어든 자들 아닌가? 우리가 이 전쟁에 참전한 나라가 아니라면 나는 당연히 이 싸움의 전선을 온전히 미국에다 다 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 정권이 우리 동생들을 죽음터로 몰아넣고, 우리 세금으로 학살의 무기를 만들고 있는 지금, 우리가 명확히 싸워야 할 상대는 이 정권이 아닌가? 이 정권과 싸움은 그 자체로 이 전쟁과 싸우는 것이고, 이 전쟁을 벌인 미국과 싸우는 것이다. 허나 모든 전선을 미국에게 두는 순간 이 정권에는 면죄부를 주게 되는 것이고, 그 싸움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싸움이 아니라 그야말로 '항의' 차원의 싸움밖에 안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을 망치고 있는 미국, 그 '미국'은 어느 국가를 말하는, 지도 위 어느 나라를 말하는 고유명사로서의 미국이 아니다. '미국'이란 '자본의, 탐욕의, 개발의, 소비의, 파괴의 질서와 문화'를 말하는 것이고 그러한 삶의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안에도 분명 미국이 있고, 한국에도 미국이 있다. 우리는 세상을 망쳐먹고 있는 미국과 싸운다, 그 말은 내가 젖어 있는 자본과 소비, 개발에 기대어 있는 삶의 방식과 싸운다는 뜻이며, 이 나라의 그러한 세력과 싸운다는 뜻이다. '내 안의 미국'이란 얼마 전 권정생 선생님이 승용차와 수세식 변기, 점점 넓히는 아파트 평수에 빗대어 단호하게 말씀해주신 바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외 안의 미국'이란 미국과 마찬가지로 이 침략전쟁으로 탐욕을 채우려는 자들이다, 에두르지 않고 바로 말하면 정권과 자본. 우리가 진정 싸움을 벌이고자 한다면 정서적으로 반미 감정에 기댄 싸움을 하지 말자.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뚜렷이 밝히고 전선을 명확히 하자. 내 안의 미국과 싸우는 일(삶의 방식을 바꾸어 내는 일)과 더불어 지금 시기 한국 사회 안에 있는 미국 - 정확하게 말하면 노무현 정권과 싸우는 일이 바로 이 세상을 망치는 '미국'이라는 괴물과 싸우는 일이다. 이 전쟁 앞에서 우리는 항의만 하다 말 것인가, 진정 전쟁을 막기 위해 싸울 것인가? 미국 규탄은 항의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지만 노무현 정권과 싸우는 것은 철군을 당기는 싸움이다. 우리가 파병국가 국민으로 할 것은 하루라도 빨리 파병을 철회시키는 것, 그것이 궁극으로 전쟁을 벌인 미국을 압박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라크 민중을 생각하자, 우리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림일기

농성을 마치고 마침 회의를 하고 난 뒤, 다들 크레파스를 들었다. 포스터를 만드는 일. 도안을 해서 바로 인쇄를 맡겨도 되지만 그렇게 해서는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다는 생각에 손수 그리고 글씨를 쓴 포스터는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볼 거라며 이렇게 하기로 했다. 그래서 4절 색지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린 것과 4절지로 인쇄한 포스터를 한 쌍씩 나란히 붙이기로 한 것이다. 크레파스 그림은 어린이들이 쓰는 그림일기처럼 했다. 그림 그리는 칸에는 노래하고 춤추고, 머리 빡빡 수사님 얼굴도 그리고, 수염 북실북실한 신부님도 그려놓고, 유랑극단 자동차 같은 것들을 그려놓고, 그 아래 가상 일기를 썼다. "2004년 9월 4일 토요일. 오늘 나는 연호정에 갔다. 사람들이 아주 많이 모였다. 신기하게 생긴 자동차가 있었는데, 그 앞에서 사람들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놀았다. 참 재미있었다." 다들 처음에는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나 망설였지만 좀 못 그리면 어떠나? 하지만 한 두 번 그리다 보니까 재미도 붙고, 그림도 조금씩 더 나아졌다. 못 그린 그림은 못 그린 그림대로, 잘 그린 그림은 잘 그린 그림대로 다 예쁘고 좋았다. 햇살 님은 너무 좋다며 벽보로 하기에 너무 아깝다고 하기까지 했다. 함께 모여 일을 하니 즐겁다. 오늘 이라크에서 온 동화의 일지를 보니 나자프 평화안이 체결 된 바로 다음 날 싸드르 시티와 팔루자에는 폭격이 있었고, 못해도 수십 명은 죽었다고 한다. 나자프 평화안 체결 뒤에는 일간지건 인터넷 뉴스건 이라크 소식은 단신 취급되던 것마저도 거의 끊어졌다. 계속 죽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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