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참으로 숭고하다. ‘숭고’에 대한 국어사전 뜻풀이는 폐기되어야 한다. 숭고는 존엄하고 고상한 것이라고 되어 있지만, 숭고한 대한민국의 ‘숭고’는 존엄하지도 고상하지도 않다.
숭고sublime란, 한계limit에 미치지 못하는sub 것, 따라서 한계에 다다르지 못하는 것이기에, 숭고는 우리의 상상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숭고는 우리의 상상력을 초월해있는 것이다.
최근 황우석 파동을 겪으며, 다시 한 번 ‘상상’이란 무엇인가, ‘상상력’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나같은 범인의, 웬만한 상상력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긴, 숭고한 나라를 존엄하지도 고상하지도 못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우리는 흔히 압축적 근대를 이야기한다. 말이 ‘압축적’이지 그 단어의 의미를 상상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압축적 근대를 겪으며 빨리빨리 신화를 만들었고 그 때문에 백화점이 붕괴하고 다리가 무너지며 대구지하철 참사를 겪는 등 육해공군을 방불케 하듯이 하늘 ․ 땅 ․ 지하, 공간의 형태를 가리지 않고,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났다.
다시 한 번 묻자. 상상이란 무엇이고, 대한민국에서 상상하기란 가당키나 한 단어인가. 김수환 추기경이 황우석 파동을 겪으며 기도드리며 울었다 한다.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는 것인지’ 되뇌이며. 추기경도 당연히 대한민국의 미래를 상상할 수는 없다.
아니 나 같으면 추기경의 태도도 상상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우리의 상상력을 초월해있는 나라이고, 해서, 초월적인 국가이기 때문이다. 초월적이고 숭고한 나라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고, ‘압축적 근대’라는 평범한 어구로 대한민국을 어찌 상상할 수 있겠는가.
교수들이 입시철이면 학생들 모집을 위해 잡상인출입금지 팻말을 보며 고등학교 세일을 다니고 연구비 횡령은 물론 그 돈을 빼돌려 투기를 하고 제자들 돈을 갈취하는 나라, 당신같으면 상상이 가는가.
한 대학에서 성폭행 혐의로 쫓겨난 교수가 다른 대학에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현실, 당신 같으면 상상할 수 있는가.
군대 보냈더니 자식이 간암으로 죽어나가고 화재시 사람을 보호해야 할 방화벽이 건물 절벽으로 변해 사람이 떨어져 죽는 나라, 당신 같으면 상상할 수 있는가.
한마디로 벌건 대낮에 청천벽력같은 일들이 촌각을 다투며 일어나는 나라, 당신의 상상력으로 포착할 수 있는가.
지나간 시절 이야기지만, 극악무도한 국가폭력이 기능을 부리던 유신독재시절, 죽은 조선대 총학생회장 몸뚱아리가 통나무마냥 굴려도 그냥 굴러갈 정도로 뻣뻣해진 사진을 보며 ‘상상할 수 없는 국가’를 애써 상상해보려고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상상이 불가능할 정도로 국가폭력이 극악무도했던 탓이다.
대한민국에 ‘~카더라’ 담론이 무성한 이유는 간단하다. 대한민국이 숭고한 나라인 탓이다. 필부필녀들의 상상력을 초월해있으니 ‘~카더라’하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세상은 추측을 통해 작동하지 못한다. 상상력으로 포착되고 상상력이 이성을 분만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지독한 상상력불임증에 시달리고 있다.
공중파방송이나 신문지상에서 보도하는 대한민국 교수들의 천태만상은 우리의 상상력을 봉쇄한다. 대한민국을 상상하기 불가능한 두 번째 이유다. 상상력은 나의 상상력이고 나를 통해 이루어지고 작동하는 것이기에 나와 다른 매체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별의별 일들을 다 소개해주게 되면 상상력 작동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얼마 전 아침시간을 감사안고 있는 안개처럼 자괴감에 휩싸여 고등학교 세일을 나갔다. 학부장의 지시가 아니라, 형체를 알 수 없는 예의 그 ‘구조조정’이라는 괴물의 명령으로 고등학교 교실에 들어갔다. 나를 원치않는 학생들의 눈치를 봐가며 과 홍보를 했다.
설상가상격일까. 나의 자괴감 위에 또 다른 자괴감이 덮쳤다. 교실과 복도를 가득 메운 쓰레기들, 학생들의 신발자국이 선연한 신문조가리들, 나뒹구는 음료수 병들. 순간, 쓰레기장으로 변한 교실을 수능점수만 유령처럼 배회하고, ‘교육’은 휘발유처럼 증발해버린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상상력이다. 아무리 3학년 2학기 막판이라지만, 고등학교 3년 동안의 교육과정, 아니 태어나서부터 한 인간의 최종목표가 ‘입시’였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상상하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하긴, 나의 ‘자아’가 아니라, 예컨대 부모라는 타인의 ‘자아’, 입신양명을 위한 자아를 충족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 타인의 자아를 상상하기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탤런트를 뺨치는 연기력과 천연덕스러운 거짓말로 우리의 상상력을 엄청나게 휘젓고 헤집고 있는 황우석 파동이 꺼져가는 한 해 끝자락에서 대한민국을 다시 예의 그 숭고한 자리에 올려놓고 있다. 상상하고 싶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이러한 상상력을 현실화시키고 제도화시키는 것 아닌가. 그러나 상상력의 현실화 ․ 제도화가 지난한 탓일까. 상상력의 제도화를 상상할 수 없으니 말이다.
떠나가는 한 해가 애인 보내듯이 아쉽거나 애틋하기는커녕, 차라리 무섭고 공포스럽다. 나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숭고한 사건들이 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날 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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