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하느님

[박기범의 철군투쟁 단식일지28] 2004년 9월 5일

김재복 수사님과 문정현 신부님은 오전부터 잇달아 성당에 가서 미사 시간에 성당의 신도들과 만났다. 열 시 반 울진 성당, 그리고 바로 이어서 열한 시 반 북면 성가정 성당. 울진에서는 미사 시간을 아예 두 분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대신했고, 북면 성당에서는 미사를 마친 뒤 바로 이어서 하기로 한 거였다. 두 곳 성당 모두 신도가 가장 많은 시간에 수사님과 신부님을 모시고 싶다 하여 그렇게 무리한 일정을 잡은 것이다. 그래서 울진에서 수사님이 먼저 말씀을 하고 나면 신부님이 말씀하시는 동안 수사님은 북면으로 옮겨가 있고, 북면 성당에서 수사님이 말씀을 하고 있는 사이에 신부님도 그쪽으로 옮겨와 수사님 이야기에 뒤이어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나는 수사님이 북면 성가정 성당으로 옮겼을 때 그 때부터 함께 했다. 북면 성당 앞은 자주 오갔지만 안으로 들어가보기는 처음이었다. 참 예뻤다. 아담한 정원에 예쁘게 지은 건물. 들어가는 길에 가톨릭 단체에서 일을 하는 안원영 선생님께 성당은 다 이렇게 예뻐요? 하고 물었더니 웃으시며 예뻐서 그게 문제지요 한다. 그래, 옳다. 너무 예뻐서 문제, 너무 멋있어서 문제, 너무 커서 문제, 너무 근사해서 문제. 그건 성당이고 교회고 절이고 할 것 없이 모두 마찬가지다.

스스로 가난해지지 않는 채 어떻게 헐벗은 사람들, 병든 사람들, 약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의 곁이 될 수 있을까. 그래도 오늘 간 북가정 성당은 다른 으리으리한 성당 같은 곳에서 느끼던 웅장함이나 화려함, 위압적인 느낌이 아니라 아담한 정원에 드는 느낌이어서 그렇게 생각한 거였는데, 어쨌든 그 말은 맞다. 이렇게 예뻐서도 안 된다. 그저 너무 불편하지 않을 정도면 된다. 그 이상은 모두 내 것이 아니다. 내 집, 우리 교회, 우리 절, 성당, 학교를 예쁘고 좋게 꾸미는데 드는 힘이면 헐벗은 이에게 옷이 될 수 있고, 배고픈 이에게 밥이, 아픈 이에게 약이 될 수 있다. 지금 세상, 자본주의가 사람들 마음을 가장 해치게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착각하게 길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내 돈으로 하는데 그게 무슨 죄냐고, 내 것을 내 마음대로 하는데 왜 잘못이라고 하느냐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나에게 필요한 것 이상으로 더 누리면 반드시 그만큼 못 누리고 빼앗기고 있는 이가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이 세상은 너무도 쉽게 잊도록 만든다.

수사님은 이라크 전쟁을 돌이키면서 생명과 평화를 이야기했다. 신부님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그것 자체로 평화를 찾아가는 싸움에 대한 이야기였고 전쟁을 반대하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그이들도 하느님을 믿고, 우리도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한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다를 수 있는지, 그 사람들이 믿는 하느님이 다르고,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 달라서 그런 건가요?' 하고 답답해하던 말씀이 자꾸만 생각났다. 그 물음을 놓고 혼자 곱씹고 있노라니 권정생 할아버지의 <<우리들의 하느님>>이 떠올랐다.


… 기독교 2천년 역사 가운데서 예수님은 많이도 시달려왔다. 한때는 십자군 군대의 앞장에 서서 전쟁과 학살에 이용당하기도 하고, 천국 가는 입장료를 어마어마하게 받아내는 그야말로 뚜쟁이 노릇도 했고, 대한민국 기독교 백년사에서는 반공이데올로기의 선봉장이 되어 무찌르자 오랑캐를 외쳤고, 더러는 땅투기꾼에게 더러는 출세주의자에게, 얼마나 이용당하며 시달려왔던가.

… 나는 지금 20여년 전에 내가 구상하고 꿈꿨던 교회는 벌써 전에 잊었다. 교회는 새삼스레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온 세계와 온 우주가 바로 하느님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나는 떳떳하게 모든 자연과 더불어 사람이나 동물이나 서로 섬기며 살고 싶을 뿐이다. 하느님은 그것을 원하셨기에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주셨다. 서로 섬기는 삶이야말로 예수님이 가르쳐준 사랑이며 그것을 위해 피흘려 희생하신 것이다. 이 땅위의 진짜 우상과 마귀는 제국주의와 전쟁과 핵무기와 분단과 독재와 폭력이다.

-<<우리들의 하느님>> 가운데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적은 성경이건 부처님의 법을 담은 불경이건 지금 고통받는 땅 마호메트의 코란이건 하나같이 모두 귀한 가르침만 가지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목숨을 귀하에 여겨야 한다는 것에는, 세상 무엇보다 목숨이 앞선다고 강조하는 것에는 한 치도 다름이 없다. 아니, 그 가치는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이라도 누구 하나 모르는 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 엄청난 일,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세상 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을까? 아파하고 슬퍼하던 것도 한 해를 지나고 두 해 가까이 계속되면서 무뎌지고 만다. 그저 그건 '몹시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미사일 폭격으로, 미사일 대포로, 기총 난사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도, 언젠가부터는 그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해 눈을 돌리려 한다. 그리고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말 뒤로 숨어버린다. 이라크 사람들이 겪는 참상이 뉴스에서 사라진지는 오래되었고, 이라크 소식이 궁금할 때면 찾아가 보던 인터넷 한겨레에도 눈에 띄는 자리에 따로 모아놓던 <이라크 특집>이라는 꼭지도 며칠 전부터는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다른 특집이 대신한다. 오히려 전쟁 초기보다 더 잔인하고 집요하게 학살을 하고 있는데도, 게다가 이제는 대규모 전투병까지 보내놓았으니 더는 미·영 만의 전쟁이 아니라 바로 우리 나라의 전쟁이 되었는데도 오히려 이라크 소식은 멀리하고 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아주 많은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과 부처님의 말씀을 듣곤 한다. 사람들은 정말 다 다른 말씀을 듣고 있을까? 예수님과 부처님, 하느님은 지금 과연 무슨 말씀을 하고 있을까?

울진군 북면 성가정 성당에서 평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김재복 수사님
부구, 평화의 바람

부구는 바로 강원도 삼척과 맞닿아 있는 곳으로 울진군에서도, 경북에서도 가장 위에 있는 마을이다. 오후 네 시, 오늘 꽃마차와 함께 평화바람을 몰고 갈 곳은 부구. 처음 울진에서 계획하기로는 오후 한 시쯤 죽변에서 한 번 공연을 갖고, 저녁에 부구로 가서 한 번 더 공연을 하는 것으로 짰는데 그것을 조정해서 부구에서만 네 시에 한 번을 하기로 했다. 죽변, 부구 두 군데 모두 그래도 울진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산다 하는 곳이기는 하지만 길 바깥은 정말로 한적하고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다. 게다가 일요일이기까지 하니 사람은 더 없을 거라 그게 걱정이었다. 그래서 조정한 것이 부구에서 한 차례, 오후 네 시에 하기로 한 거였다.

시간에 맞추어 부구로 나갔더니 벌써 터미널 반대편으로 길놀이패가 공연 시작을 알리며 돌고 있었다. 터미널에서 나와 꽃마차를 세운 공연장 쪽으로 가니 와아, 사람들이 얼마 없으면 어쩌나 하던 걱정이 싹 달아났다. 어제 연호정 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깔아놓은 빈자리에 가 앉았다. 앞에 할머니 세 분이 앉아 계시길래 어떻게, 누구한테 얘기 듣고 오셨느냐고 물으니까 아까 성당에서 얘기 듣고 오는 거라 한다. 할머니 한 분은 성당에서 사진 동아리를 한다면서 렌즈가 아주 두꺼운 사진기까지 목에 걸고 계셨다. 그렇게 성당에서 오신 분들 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 학생들, 그리고 초대장을 받고 온 분들에, 시끌시끌한 소리에 나와 본 분들까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앉았다.

어제처럼 풍물을 놀고, 평화바람 단원들의 재미난 합주에 노래를 듣고, 수사님과 내가 나가 조금씩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별음자리 아저씨의 노래를 듣는 순서들이 이어졌다. 어제는 어제대로 멋지고 신나는 공연이었다면 오늘은 오늘대로 아주 가족적이고 즐거운 공연이었다. 장소도 어제보다는 좁은 길가여서 사람들이 더 가까이 모여 앉을 수밖에 없었고, 아직 해가 있을 때 하는 공연이어서 따로 조명을 쓰지도 않았다. 그 자리에서 아이들이 앞에 나가 노래를 불렀고, 울진 모임의 바라 님을 비롯해서 도토리, 바끼통의 사과꽃과 saba도 앞에 나가 노래를 불렀다. 잘 부르는 가수, 잘 짜여진 공연도 좋지만 재주가 별로 없더라도 흥만 있으면 누구라도 어울릴 수 있는 자리이니 이건 또 얼마나 좋은가?

별음자리표 아저씨는 뭐니뭐니 해도 <<앗쌀람알라이쿰>>을 부를 때가 가장 좋다. 한동안, 꽤 오랫동안은 사실 노랫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제는 귀가 트였는지 노랫말도 귀에 잘 들어온다. 그리고 노랫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게다가 요즘에는 후렴구를 길게 늘이며 소리를 치며 애드립을 넣는데 그 부분에서 마음이 찡해지곤 한다.
단식평화순례단과 함께 한 울진군 북면 부구리의 평화바람 공연

폭탄 사고

울진에서 순례를 시작하면서부터 이라크 전쟁과 관련한 기사를 비롯해 철군 운동과 관련한 글들을 제대로 찾아 읽지 못하고 있었다. 일정에 따라 움직이고, 다음 일정을 준비하고, 중간중간 정리를 하다보면 시간이 몹시 모자란다. 일정에 따른 행사를 잘 치루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 일을 하다보면 그렇게 되기가 쉽다. 일정이나 행사 안에 매몰되는 것, 그건 언제나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늦은 시간이었지만 관련 글과 자료들을 찾아 살펴보았다. 이제 어느 뉴스 싸이트를 들어가 보아도 이라크 소식을 찾아 읽는 건 쉽지 않다. 그러다가 만난 동화의 일지. 동화의 일지 내용은 무척 걱정스러운 이야기들이었다. 9월 1일, 동화가 사는 집에서 이십 미터 왼쪽에서 폭발물이 터지더니 9월 4일에는 사는 집에서 오른쪽 삼십 미터쯤 떨어진 곳이라 했다.

지나가는 미군 탱크나 자동차를 공격하기 위해 터뜨린 폭탄이라고 하는데 다치기는 이라크 민간인들이 다쳤다. 그 사고들로 모두 셋이 죽고 여러 사람들이 다쳤다고 했다. 우리 모두에게 잊혀져 가고 있는 그곳에서는 이렇게 계속 죽고 있다. 그리고 그 죽은 이는 바로 가까운 동생일 수도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걷는 단식평화순례의 길은 물론 아주 즐겁고 신나고 흥겨운 바람이기도 해야겠지만 동시에 지금, 오늘, 이 시각에도 죽어 가는 사람들에 대한 긴장과 아픔으로 철군의 움직임을 일으켜 낼 수 있는 걸음이어야 할 것이다. 이 순례의 발걸음의 주인은 두 명의 단식자도, 공연하는 단원들도 아닌 바로 지금도 피흘리며 죽어가는 이라크인들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파병 철회를 위해 지난 7월 23일부터 단식하고 있는 김재복 수사님( 현재 41일째)과 동화작가 박기범님(현재 27일째)과 함께하는 " 이라크 파병철회 단식평화순례" 일정입니다.


+++++++++++++++이라크 파병철회 단식평화순례 일정++++++++++++++++++


9월 4일(토)~7일(화) 경북 울진
9월 8일(수) 경북 안동
9월 9일(목) 휴식
9월10일(금)~11일(토) 경남 함양
9월12일(일)~13일(월) 전남 여수
9월14일(화) 충남 논산
9월15일(수) 휴식
9월16일(목) 강원도 춘천
9월17일(금)~18일(토) 경기도 시흥
9월19일(일) 인천
9월20일(월) 서울
9월21일(화) 마무리- 청와대

** 일정은 사정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단식하는 분 연락처>
김재복 수사님 - 손전화 : 011-294-2965 / E-mail : chaminad@chollian.net
박기범 님 - 손전화 : 016-441-6531/ E-mail : how-do@hanmail.net

<단식평화순례 문의>
평화유랑단 푸념 011-9873-8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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