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는 고병권 연구자의 ‘대중이란 무엇인가 - 코뮌주의 신체론’, 박정수 연구자의 ‘코뮌의 욕망, 욕망의 코뮌주의’ 그리고 정정훈 연구자의 ‘코뮌주의에서 능력의 개념’ 순서로 진행되었고, 마지막에는 전체 내용을 아우르는 토론이 있었다.
각 발표의 토론자는 고병권 - 박순열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박정수 - 승준 자율평론, 정정훈 - 조현진 동덕여대 연구자였고, 토론은 전반적으로 개념이 모호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질의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흐름으로서의 대중”
고병권 연구자는 대중을 대상화된 실체로 간주하는 기존 시각들을 비판하고, 대중을 인민, 군중, 계급 등과 구분하는 것에서 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남성, 민족, 계급 등과 같은 몰적인 것이 되지 않는 분자적 흐름들이 존재하며, 몰적인 조직화의 영향력이 아무리 크더라도 분자적 흐름으로서 대중에게 일어나는 발작과 변신을 근절시킬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분자 대중은 모든 것이 될 수 있고 또 항상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신체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대중의 분자적 흐름을 새로운 역학으로 설명하려 했던 들뢰즈와 가타리의 논의를 빌려와 대중의 새로운 역학을 설명했다. 국가는 대중들을 어떤 식으로든 포획하고 계산가능한 형태로 만들고자 하지만, 대중을 포획하는 데 전능한 존재는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완전한 전제정치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대중에게는 결정불가능한 지대가 있기 때문이다.
“혁명은 대중들의 것이자 대중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대중들은 선한 만큼이나 악하며 민주투사인 만큼이나 잔인한 독재자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대중은 언제든지 반동적으로 전화될 수 있다고. 그는 대중의 반동적인 전환은 두 가지 죽음, 즉 전체주의와 파시즘으로 경고한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 번 대중이 혁명적이라는 점을 상기한다.
“대중이 혁명적인 것은 대중이 혁명을 욕망한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욕망’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따라서 그는 혁명을 대중 밖에서 기획하려는 시도는 무익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대중의 일부로 존재하는 혁명가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발표를 정리했다.
토론자로 나선 박순열 연구자는 대중이라는 개념에 대한 질의와 함께 대중이 발표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발표문에서는 예외적인 현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지적했다. 고병권 연구자는 "대중의 개념을 개별화된 실체에서와 흐름에서로 구분해서는 곤란하다"고 대답하고, "대중은 운동의 예외적인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일차적인 성격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답했다.
“코뮌적 욕망의 체제를 구성하자.”
박정수 연구자는 현재 신자유주의 흐름을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아닌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워진’ 자본주의의 노골적인 욕망이 드러난 지대라고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는 오히려 알몸을 드러낸 자본의 욕망과 유물론적 전쟁을 치러볼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욕망에 대해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물질적 생산의 능력이자 형식"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욕망을 분석하는 것은 물질적 생산의 힘과 형식을 분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분석하는 것이 곧 자본주의적 욕망 체계를 분석하는 것과 같다는 설명이다.
박정수 연구자는 "자본주의적 욕망 체계를 역사상 최악의 공동체이면서 가장 놀라운 생존전락을 지닌 ‘가족 공동체’"로 분석하면서, 그와 다르게 자본주의 속에서 탄생하지만 자본주의를 해체하는 운동 속에서 탄생해야 하는 코뮌을 주장한다.
“자본주의는 욕망의 탈영토적 흐름들을 자본의 재생산에 투여하기 위해 오이디푸스 가족 공동체 속에 재영토화 했지만 코뮌은 욕망의 탈영토적 흐름을 중단 없는 과정 속에 두면서 탄생한다. 자본주의의 죽음을 ‘도래하는 현재’로 만들면서 형성되는 코뮌의 욕망은 자신의 죽음을 현재화하는 운동으로 미래를 향한다.”
“혁명은 관능적으로, 관능은 코뮌적으로”
그는 코뮌의 섹슈얼리티는 자본주의적 가족 제도를 이탈하는 흐름이기 때문에, 코뮌의 향락자는 가족을 형성하지 않은 자, 즉 독신자로 일컫는다. 가족적 배치를 이탈하는 욕망을 가진 자, ‘나’에게 결여된 것을 ‘타자’에게서 찾지 않는 자가 바로 독신자이다.
토론자 승준 연구자는 욕망을 강조하다가 맑스가 말하는 구체적인 실천을 상실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질의 했다. 박정수 연구자는 "대부분 사람들이 욕망을 늘 수동적이거나 활동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는 데, 오히려 의식이 수동적이며 반동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글은 구성이나 창조의 매커니즘을 개별자의 의식으로 한정하는 것을 비판했다."고 설명했다.
“코뮌주의에서 능력의 개념”
정정훈 연구자는 현실사회주의가 붕괴된 현실은 자본주의보다 더 증대된 사회적 능력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로서 공산주의에 대한 전망은 포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맑스의 능력 개념이 노동력과 생산력을 의미할 때조차도 그것이 존재론적으로 잠재력과 협력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을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코뮌이라는 사회적 관계를 갖추어야 하며, 코뮌주의란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물적 조건을 구성해가는 활동임을 그는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진행된 세 발표를 종합하는 전체 토론은 ‘코뮌주의’에 대한 정리와 세 발표의 주요한 근거인 흐름을 사고하는 사람들인 들뢰즈, 스피노자, 베르그손과 구조, 제도를 강조하는 맑스의 조화가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고병권 연구자는 이 질문에 대해 흐름은 제도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흐름을 제도적 관점에서 파악하느냐, 혹은 제도를 흐름적 관점에서 파악하느냐이다. 발표문들은 제도를 흐름의 관점에서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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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구공간 수유+너머 권은영 님이 보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