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을 향한 정치권의 불꽃 튀는 경쟁 못지않게 뜨거운 곳이 언론이다. 그런데 요즘 언론의 처지가 난처하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정치권의 예민한 반응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사사건건 언론을 찾아가 '항의'하고, 손해배상까지 청구하는 모습을 어찌 바라봐야 할까.
한나라당의 경우 이미 <한겨레>와 <문화방송>을 상대로 전면전을 선포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나라당뿐만이 아니다. 요즘 각 당은 자신들에게 '쓴소리'를 하는 언론을 찾아가 어김없이 '의견제시'를 가장한 '항의방문'을 진행한다.
민주노동당도 예외는 아니다. 한나라당으로부터 이미 6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당한 <한겨레>는 민주노동당으로부터도 거센 '항의'를 받아야 했다. 지난 22일 최규엽 선대위 공동선대본부장 등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한겨레가 왜곡 과장 보도를 했다'며 <한겨레>를 항의차 방문했다.
이날 항의방문에는 최규엽 공동선대본부장를 비롯해 이상현 미디어홍보위원장, 이해삼 최고위원, 이영희 민주노총 정치위원장 등이 함께했고, <한겨레> 측에서 이들을 맞이한 사람은 김종구 편집국장.
민노, "한겨레 30건 중 6건이 부정적 기사"
이상현 홍보위원장은 이날 면담 자리에서 "지난 한 달 간 한겨레를 모니터링 한 결과 민주노동당 관련 보도가 30건 정도 있었는데, 이 중 6건이 굉장히 부정적 기사였다"고 말했다.
그는 '6건의 기사'와 관련해 "대선과 무관한 당 안에서 노선투쟁을 하고 있고, 비례대표(지분싸움)에 경주하고 있다는 등 과장되고 왜곡된 기사"라고 주장했다.
이날 항의방문한 당 지도부는 특히 <한겨레> 지난 20일자 8면에 실린 '민노당, 노선투쟁 다시 불붙어' 제목의 기사를 문제 삼았다.
이 홍보위원장은 이 기사에 대해 "당에 앉아 노선투쟁이나 하고, 비례대표 문제로 자리 받아먹으려고 싸우는 사람은 당 안에 없다"며 "내용을 보니 선거에 관한 기사가 아니라, 그냥 이상한 기사"라고 비판했다.
한겨레, '코리아연방공화국' 둘러싼 당내 정파 갈등 보도
문제가 된 기사에서 <한겨레>는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둘러싼 당내 정파 간 입장차를 소개한 뒤 "민주노동당 자주파(NL)와 평등파(PD)의 해묵은 갈등이 다시 표면화하고 있다"며 "그 배경엔 대선 국면에서 민노당의 '존재감'이 희미해져가는 데 따른 위기감이 깔려 있다"고 보도했다.
또 기사는 최근 조승수 진보정치연구소장이 인터넷 신문 <레디앙>에 기고한 글과 김형탁 대변인 사퇴 건을 언급하며 "평등파 쪽이 문제제기를 하는 배경엔, 자주파들이 '코리아연방공화국'에만 매달린 채 '민생 쟁점'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불신이 깔려 있다"고 지적한 뒤, 익명의 평등파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자주파는 민주노동당의 미래보다, 민주노동당이라는 무대를 이용해 북한 체제를 인정하자는 자신들의 주장을 펴는 걸 더 중요시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이어 "자주파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며 "당은 '코리아연방공화국'뿐만 아니라, '서민 친구 경제' 등 많은 민생공약을 내놨다. 민생과 통일 문제는 다같이 국민을 잘살게 하자는 것으로, 대립되는 범주가 아니다"는 이용대 정책위의장의 발언을 실어 자주파 쪽의 반박도 소개했다.
김종구 편집국장, "사실과 다른 부분 얘기해 달라" 그러나..
민주노동당 측 지적에 대해 김종구 편집국장은 이날 면담 자리에서 "조승수 진보정치연구소 소장도 혹시 함께 왔냐"고 물은 뒤 "조승수 소장이 <레디앙>에 기고를 안 했냐, 최고위원회에서 결론을 안 내렸냐"고 확인을 요청했다. 이어 그는 "기사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으면 얘기해 달라"고 방문한 당 지도부에 요청했다.
그는 이어 "기사가 뭔가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이런 말 한 적이 없다', '말한 내용과 다르다'고 문제제기를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말을 이어가려 했다.
그러나 당 관계자들과 김 편집국장 간 면담은 더 이상 이뤄질 수 없었다.
김 편집국장이 계속 해서 해당 기사와 관련한 자신의 의견을 설명하려 하자 동석한 이영희 정치위원장이 "짧게 좀 하자. 우리가 강의 들으러 온 줄 아냐"고 목소리를 높였고, 이상현 홍보위원장도 "우리도 얘기를 하러 왔다"고 말을 가로막았다.
김 편집국장과 당 관계자들 사이에 몇 차례 고성이 오간 후 김 편집국장은 불쾌한 듯 "나 참 이상한 사람들이네..."라며 그대로 자리를 떴다.
이에 최규엽 선대본부장 등은 "어디다 대고 '사람들'이라고 하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최 선대본부장은 "직접 김 편집국장이 와서 사과하지 않으면 못 나간다"고 했으나, 김 편집국장은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최규엽 선대본부장, "한겨레가 민주노동당 기사 안 썼으면 좋겠다"
대신 김이택 편집부국장이 이들과의 면담을 이어갔고, 최 선대본부장은 해당 기사와 관련해 "코리아연방공화국은 이미 선본회의에서 끝난 얘기이고, 당내에서 이제 논쟁도 안하고 있다"며 "그런데 기사는 마치 당 활동가들이 선거 활동은 안하고, 정당명부나 코리아연방공화국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쓰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민주노동당 모든 당원들이 달려들어 민생문제를 실천하고 있다"며 "자리싸움 같은 것은 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최 선대본부장은 "차라리 (한겨레 보다) 조중동이 낫다. (한겨레는) 기사를 썼다하면 우리 '갈구는' 얘기 밖에 안 한다"며 "솔직한 심정은 한겨레가 민주노동당 기사 안 썼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형탁 전 대변인, "비판에 원한으로 대하면 어느 누가 비판하겠는가"
이 같은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한겨레> 항의방문 사실이 알려지자, 당 내부는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 민주노동당 당원게시판에는 이번 항의방문을 간 당 지도부가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한겨레>가 당에 사과를 해야한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올라왔다.
한 당원(ID '수호킹')은 "한겨레는 대선이나 무엇이 요구되는 상황이 오면 진보진영 까는 기사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당원(ID '미친곰돌이')도 "(한겨레는) 한나라와 다를 바 없는 범여권을 밀어주기에 바쁘다"며 "정치적 계산속에서 그들의 뿌리이자 정체성이었던 진보는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지도부의 항의방문을 정당화했다.
이와 달리 김형탁 전 대변인은 당게시판에 올린 '언론이여 민주노동당을 비판하라'는 글을 통해 "해당 기사는 당내에 분명히 나타나고 있는 사실을 기사화한 것"이라며 "그런데 언론의 비판적 기능을 어느 집단보다도 강하게 요구해야할 민주노동당이 바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했다"며 당 지도부를 비판했다.
그는 "참으로 비판에 겸허하지 못한 정당이다. 비판에 원한으로 대한다면 어느 누가 비판하겠는가"라며 "비판을 받지 못하는 집단은 썩기 마련이고, 비판해 줄 때가 좋을 때"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민노 <경향신문> 항의 방문도 예정.. 논란 이어질 듯
한편,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한겨레>에 이어 <경향신문> 항의방문도 예정하고 있어 이번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경향신문>은 지난 16일 '전략도 비전도 없다' 기사에서 "올 대선에서 민노당의 존재감은 거의 없다. 민노당 한 인사는 현 상황을 '비전도 전략도 감동도 없다'고 요약했다"며 "혼란의 배경에는 뿌리 깊은 정파 갈등, 지도부의 무능, 비례대표 위주의 왜곡된 의석구조 등도 자리잡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상현 홍보위원장은 '16일자 기사 때문에 <경향신문> 항의방문을 계획하고 있냐'는 질문에 "당의 대선사업에 관한 경향신문의 보도 횟수나 보도량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에 비교해도 떨어지는 등 복합적인 이유로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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