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차가 진짜 튼튼하다며 자부심을 많이 가졌어요”
“남편이랑 결혼하기 전에 1년 반 동안 연애를 했는데, 나중에 다이어리를 보니 만난 날이 칠십 며칠 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렇게 열심히 일을 했어요. 연말, 주말에도 일하고. 명절 때도 일을 했으니까요.”
7월 26일 아침 쌍용자동차 정문 앞. 쌍용차지부 조합원의 아내 정숙님과 조합원의 약혼자인 영민님과 나란히 앉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가대위 천막에 앉아있는데, 따끈하고 맛있는 커피 한 잔을 타주신 고마운 분들이다. 정숙님과 영민님은 띠 동갑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마치 친 자매처럼 다정해보인다. 나란히 앉아 부채질을 하는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괜찮다고 하는데, 내게도 계속 부채질을 해준다.
“남편이 한번은 그러는 거예요. 한 고객이 다 찌그러진 차를 갖고 왔대요. 수리비가 많이 나오니 새로 사시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했대요. 그랬더니 그 고객이 ‘차가 이렇게 찌그러졌는데도 그 안에 타고 있던 우리 4식구가 한 명도 안 다쳤습니다. 우리의 생명의 은인인데, 돈이 많이 들더라도 꼭 고쳐주십시오.’라고 얘기를 했대요. 남편이 ‘우리 차가 진짜 튼튼하다’며 자부심을 많이 가졌어요. 그렇게 말해주는 고객이 고마워서 차도 더 잘 고쳐주려 하고. 결혼하고 나서도 토요일 출근은 꼭 하고, 아침에 출근하면 보통 밤 10시 넘어서까지 일하고 했거든요. 그래서 남편은 더더욱 이렇게 된 걸 이해를 못해요.”
“저 안에는 정말 억울한 분이 많아요”
십여 년 간 정비 일을 하다가 최근에 고객센터로 근무지를 옮긴 정숙님의 남편은 쌍용자동차에 다닌 15년 동안 고과점수를 90점 이하로 받은 적이 없고, AS 기술도 손가락에 들 정도로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라 한다.
“저 안에는 정말 억울한 분이 많아요. 정말 튼튼한 차를 만든다는 긍지를 갖고 일을 했는데, 그렇게 되셨으니... 사람 목숨을 우습게 아는 사람들이 무슨 차를 만들겠어요.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는 차를 만들어야 하는데, 생명을 우습게 아는 사람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이 차를 제대로 만들겠어요?”
“이번 연도에 월급이 안 나왔잖아요. 그래서 1주일 일하고, 1주일 쉴 때는 남자친구가 새벽 4시에 막노동을 다녔어요. 그것도 비오면 못나가죠. 저는 힘드니까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라고 했어요. 그래도 남자친구는 쌍용차를 다니고 싶다는 거예요. 그렇게 자랑스러워 했어요. 차가 곧 생명이라고. 쌍용 차가 튼튼하다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정문을 응시하던 영민님이 이야기한다.
“아들 살리려고 그렇게 하신 건데...”
“남자친구의 아버지도 쌍용자동차를 30년을 근무하시다가 이번에 희망퇴직을 하셨어요.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 그런 선택을 하신 건데, 아들은 해고가 된 거죠. 아버님이 많이 답답해하고, 속상해 하세요. 아들 살리려고 그렇게 하신 건데...”
비단 아들뿐이겠는가. 자신이 희생하면 자식 같은 젊은 사람들이 계속 일 할 수 있을 거란 믿음에서 희망퇴직을 선택했을 것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 쌍용자동차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열심히 만들고 고쳤던 사람들, 함께 일했던 동료를 정말 소중히 생각하고 배려했던 사람들. 그런 소중한 사람들이 정작 본인들은 가스도 물도, 음식물도 끊기고, 언제 공권력과 사측의 폭력적 침탈이 있을지 모르는 사지에 몰려있다. 안타깝고, 속상할 뿐이다.
“정말 싫은 게 사람을 갈라놓은 거예요”
“6월 27일 날, 처음으로 왔어요. 그날 가대위 옷도 안 입고 저 뒤에 있다가 남문에 가서 싸우는 걸 봤어요. 그날, 사측이 하는 거 보고 완전히 뒤집힌 거예요. 그때까지는 남편한테 전화해서 나오라고 했거든요. 근데 그날 싸우는 거며 회사 앞에서 사람들을 연행하는 걸 보고 달라진 거죠. 회사 앞에서 남편한테 전화해서 “나오지 마. 힘내!”라고 했죠.“
정숙님은 이 회사가 정말 싫은 게 “사람을 갈라놓은 거”라고 했다.
“이번에 돌아가신 그 분도 그렇잖아요. 그 아파트가 산자랑 죽은 자들이 다 있는 데거든요. 이 일 있기 전엔 다 언니 동생 하며 지냈던 사인데, 이렇게 됐으니 얼마나 힘들어요. 회사 측 사람들한테 계속 압력은 들어오고. 저는 사촌오빠도 이 회사에 다녀요. 근데 그 오빠는 ‘산자’가 되고, 남편은 ‘죽은자’가 된 거에요. 오빠랑 연락 안 해요. 오빠도 오빠 입장이 있으니까. 본인도 이 회사 다니고 싶지 않다 하더라고요. 27일 날 여기 왔더니 오빠가 정문 안에 있는 거예요. 그 뒤로 전화 안 해요. ‘산자’와 ‘죽은자’ 이거 정말 끔찍한 거예요.”
“니들이 사람이니”
정숙님, 영민님과 아침을 먹고 와서 껌 하나씩을 나누어 씹으며 이야기를 나눈지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얼굴이 파랗게 질려 천막 안으로 뛰어 들어오던 정숙님이 갑자기 소리를 쳤다.
“남편이 다쳤대. 봉합수술 받아야 한대. 119 올 거야.”
정숙님은 거의 실신할 지경이었다.
“괜찮을 거야. 별일 아닐 거야.”
정숙님이 운다. 정숙님을 위로하던 영민님도 울고, 도장공장 안에 동생이 있는 한 분도 통곡을 한다.
“니들이 사람이니. 뭘 봐.”
잠시 후, 119 구급차가 왔지만, 사측은 “큰 병원으로 가야되기 때문에...”라는 핑계로 들여보내지 않았다. 잠시 후, ‘메디웰병원’이라는 곳의 구급차가 왔다.
“그 병원 안가. 서울로 갈 거야. 약에 뭘 탈지 알고 거길 가.”
가대위 한 분의 말에 의하면 그 병원에 아이가 다쳐서 갔는데, 진료비를 안냈다고 치료를 안 해주었단다.
“애가 무슨 돈이 있다고... 회사처럼 돈만 아는 병원이라고.”
결국 사측 관리자가 메디웰병원 구급차에 올라타고, 공장 안에 들어가 환자를 태워갖고 나왔다. 정숙님과 남편은 그렇게 구급차 안에서 한 달 만에 상봉을 하고,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떠났다. 구급차가 떠난 후, 눈물 흘리며 안절부절 하던 영민님도 병원에 간다고 택시를 탄다. 구급차에 실려 가는 조합원은 몸의 고통과 함께 동료들을 떠나는 마음이 많이 아팠을 것이다.
오늘의 눈물을 술 한 잔 마시며 안주삼아 얘기할 날 언제쯤 올까?
사측의 신곡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가 울려 퍼진다. 바보처럼 사는 것은 쌍용자동차와 거기에 빌붙어 자기 혼자 살기 위해 ‘함께 살겠다’는 도장공장 안에 있는 노동자들을 괴롭히고, 호시탐탐 폭력 진압할 기회만 노리는 비해고자들이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은 교과서에만 나오는 말이 아니다. 쌍용자동차와 경찰, 정부는 지금 당장 도장공장 안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생존을 위한 물과 음식물을 공급하고, 의료진을 들여보내라. 그리고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에 즉각 나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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