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님아, 순애야, 은숙아”...그 공단의 사람들아

[뚜벅뚜벅](2) 20만 노동자가 일하는 시화, 안산공단

6일 월요일 아침 7시. 민주노총 인천본부 1층 강당은 온풍기 때문에 춥진 않았지만, 몹시 건조했다. 희망버스 때부터 무료로 보내주신 한의사 선생님의 한방 감기약이 없었다면 감기가 줄을 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아직 심하게 몸살을 앓는 참가자는 없다.

아침을 먹고 오이도 역으로 버스로 이동했다. 세종호텔 교섭이 안 풀리면 하루 더 서울로 올라와 투쟁해야 한다는 다급함 때문에 일정을 당겼다. 9시40분에 도착한 오이도 역에는 하루 참가를 위해 나온 시흥과 안산지역 노동자들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3M 여성 노동자들은 해고자도 아닌데 오늘 월차를 내고 왔단다. 오는 3월 개학을 기다리는 예비 대학생도 이번 주 내내 걷겠다고 찾아왔다.

2월 6일(8일차) 희망 뚜벅이

곧바로 행진을 시작했다. 정왕사거리를 지나 시화공단으로 들어갔다. 성보잉크, 영풍전자 등 수없이 많은 중소사업장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지역은 한국 최대의 공단으로 20만 명의 노동자가 밥벌이를 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1개 공장에 평균 7명 가량의 노동자가 일할 만큼 지극히 영세하다.

말라비틀어진 시화천을 따라 오전 내내 걸었다. 새떼를 몰아내고 갯벌을 죽이고 들어선 공단이 이젠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마저 몰아내는 죽음의 땅이 되어간다. 어디 시화천 뿐이랴. 시인 박영근은 <점례 이야기>에서 ‘둑 건너 안양천 비린 물냄새’라며 구로공단의 오염을 은유했다. 박영근 시인은 찬바람에 폐수도 억새도 까맣게 얼어붙은 안양천 강바닥을 바라보며 “정님아, 순애야, 은숙아, 사람들아”하며 구로공단에서 착취 받고 사라져간 노동자들을 불렀다. 30년 전 시인이 외쳤던 공단과 지금의 공단은 많이 다르지 않았다.

공단 안에 잘 조성된 공원의 이름은 희망공원이었다. 30분 뒤에 만난 두 번째 공원 이름은 소망공원이었다. ‘희망’이고 ‘소망’이면 뭐하냐. 모처럼 풀린 겨울 봄날 공원엔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진열장에 예쁘게 전시된 이미테이션처럼.

군자천을 끼고 들어선 좁은 길에 금속노조 인지컨트롤스지회가 있었다. 그 넓은 시화공단을 통틀어 딱 2개 있는 민주노총 사업장 중 하나다. 때마침 낮 12시30분 점심시간이다. 점심 먹고 쉬고 있던 지회 사무장이 조합원 10여명과 함께 나와 뚜벅이를 반겼다. 이 지회도 얼마 전 사측의 공격적인 직장폐쇄를 당한 바 있다.

  인지컨트롤스지회 사무장이 뚜벅이들 앞에서 구호를 외쳤다

다시 20여 분을 더 걸어 정리해고 분쇄 투쟁 1,000일을 눈앞에 둔 파카한일유압에 도착했다. 약속한 오후 1시 정각이다. 미국계 사용주는 2년 전 무더기 해고에 어용노조를 만들어 놓고 온갖 탄압을 자행한다. 어용노조와 노조 사무실을 같이 쓰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그 어용노조는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1심 판결을 뒤집고, 사측 손을 들어준 2심 결정을 환영하는 플래카드를 공장 문 앞에 큼직하게 붙여 놨다. 참 기가 막힌다. 동료들 목을 자른 결정을 환영하다니.

점심을 먹고 시그네틱스까지 이동했다. 10년 동안 2번이나 정리해고 당한 늙은 여성조합원들은 투쟁에 이골이 났다. 1차 투쟁 때 한강철교 위에 올라가는 극한투쟁을 하고도 20여명의 해고자를 남긴 채 어렵사리 복직했는데 회사는 지난해 이름마저 유앤씨로 바꾸고, 다시 금속노조 조합원 모두를 해고했다. 10년의 세월 동안 여성노동자들은 대부분 50대가 됐다.

  10여명의 시그네틱스 조합원들이 공장 앞에서 율동을 선보였다

시그네틱스 앞 집호를 마치고 공단을 빠져나와 안산시민들로 붐비는 안산중앙역까지 나왔다. 저녁 7시 희망웅변대회와 문화제를 이어갔다. 오늘 숙소는 민주노총 안산지부다. 내일은 아침 6시 기상해 해고노동자의 출근투쟁을 지원하며 공장 앞 선전전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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