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9일부터 31일까지 2박 3일 여정으로 금강산에 다녀왔다. 240여명의 대학생들과 3인의 교수, 3인의 직원이 함께 한 대규모 관광단이었던 셈이다. 기실 관광이라 함은 몸과 마음이 풍요롭고 한가함을 전제로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대규모 인원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여정은 분명 위에 적시한 조건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생겨나는 문제는 여행이나 관광의 의미가 퇴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글에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삼가도록 한다. 그것은 내 인생 첫 번째로 밟은 북녘에 대한 사념과 감상을 혼탁하게 할 우려가 자못 크기 때문이고, 이 글에 부여된 성격과 지향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식생이나 기후, 토양이 비슷한 곳을 만나게 되면 특별히 말을 하지 않아도 어떤 친숙함이나 따뜻한 마음이 이는 것은 누구나 겪는 인지상정일 것이다. 고성의 통일전망대 부근에 있는 금강산 콘도를 거쳐 북방한계선과 비무장지대, 그리고 남방한계선을 거쳐 입북하는 심정은 다소 무거웠다. 50여년 동안 닫혀 있던 조국의 북쪽을 보고 느낀다는 것은 적지 않게 긴장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받게 되는 낯섦의 원인 제공자는 무엇보다도 제복이다, 나로서는. 지난 세기 99년 처음 방문했던 모스크바에서 마주친 수많은 제복들에서 나는 70년대 남한의 병영사회 냄새를 맡고는 몸서리친 적이 있었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지하철에서 아파트 입구와 각 층마다 맞부딪치게 되는 그 허다한 다수의 제복들이 전달하는 유형무형의 전체주의 흔적들과 유전의 현재화가 어찌나 강렬하고 자극적이던지 숨이 콱콱 막힐 지경이었다. (나는 정말이지 유니폼이 싫다! 제국주의를 지향하는 미국이 특히 9-11테러 이후 유니폼 사회로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고 한다.)
북쪽의 물품검사대와 신원확인지점을 지나자마자 여러 군관복장들이 눈에 들었는데, 대개는 깡마르고 얼굴이 검은 편이며 중키보다 다소 작은 제복들이 우리를 맞이하였다. 그들 가운데 한 사내가 3인용 벤치에 자리잡고 있길래 가까이 다가가서 인사를 나누고 가벼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방문객들 수효며 그들의 행동거지, 이곳의 관광객 수용규모 등등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마 내가 첫 번째 남한사람이었나 보다. 그에게 말을 걸었던.
화제가 조금 무거운 '주한미군' 문제로 옮겨졌다.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하는 그에게 국제정세나 남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정서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인(조선인)의 능력과 의지에 대한 그의 믿음은 대단한 것이어서 감탄할 정도였다. 어쩌면 저런 곳에서 생활했기에 세계최강 미군과 이른바 16개국 참전국과 싸워서 비겼나, 그런 생각이 얼핏 들었다.
나는 어디 새로운 곳에 가면 거기서 자라는 풀과 나무와 지천에 널려 있는 돌들과 얼굴을 스치는 바람과 햇빛 쏟아지는 태양을 우러르곤 한다. 그리하여 거기서 어떤 동질적인 것을 볼라치면 반드시 기록해두거나 기억에 남긴다. 그리고 그것들은 언젠가 짧지 않은 여행기가 되어 세상의 빛과 만나곤 한다. 금강산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아끼던 수첩을 둘째날 잃어버렸음을 고백해야 하겠다.)
'며느리밑씻개'는 이름은 괴상한 풀이지만 분홍색이 고운 꽃만큼은 참 예쁘다. 대개 7-8월 전국의 산야 어디서나 잘 자라는 풀로 봉건시대에 승했던 고부갈등의 상징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왜냐면 예쁜 꽃과는 달리 줄기에는 매우 꺼칠꺼칠한 가시가 촘촘히 박혀있는 풀이기 때문이다. 그 녀석을 금강산에서 보았을 때 속이 푸근해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많던 소나무며 전나무, 갈대와 아카시, 달맞이꽃, 강아지풀 등속을 다 젖혀두고 내 맘을 사로잡은 처연한 며느리밑씻개.
어쩌면 그것은 우리사회 내부에서도 여전히 독서되는 봉건시대 잔재가 지배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는 이북사회에 대한 측은지심일 수 있었다. 이른바 집단적이고 심리적인 외상을 극복하지 못한 채 여전히 '유격대정신'에 의지해야 하는 북한체제의 경직성 같은 것이 예전의 완악한 시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며느리밑씻개와 연결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 됐든 금강산에서 마주친 며느리밑씻개가 전달하는 친근감은 색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은 내게 견디기 어려운 무거움을 선사했다. 분단조국의 북쪽을 방문한다는 부담과 하중을 너무도 쉽게 떨쳐버리도록 인도하는 '평양 모란봉 교예단'의 눈부신 기예와 연기. 거기서 딱 두 차례만 한반도기가 펼쳐졌다. 그리고는 1시간 반 정도 지속되는 교예와 우스개의 교차는 그곳이 금강산 아니어도 무방하다는 느낌을 주었던 터다. 새벽녘까지 계속된 학생들의 소란스런 술자리는 그들이 해마다 소모적으로 되풀이하는 수많은 모꼬지들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장소만 옮겨온 듯한 여행일정이 가져온 밋밋함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민족의 분단현실과 그것에 대한 사회-역사-정치적인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실인식에 접근하도록 차분하게 배려하는 현대아산 측의 의식적인 노력은 거의 없었다. 북측도 통일이나 민족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은 하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연변에서 일하러 그곳에 온 조선족 운전수와 나눈 대화에서 연변 조선족의 흔들리는 운명과 현재가 자꾸만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다. 급속히 해체되고 있는 조선족의 삶과 가정. 자본유입으로 인하여 황폐화되는 현지소식은 듣는 이의 마음을 처연하고 무겁게만 하는 것이었다. 남한의 황금만능 사유와 행태가 파괴해버린 연변 조선족의 전래적인 삶의 양상이라니.
금강산 관광은 새로 기획되어야 한다. 만일 앞으로 시작될 개성과 백두산 관광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경제제일주의'가 야기할 파멸적인 결과는 재언을 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덧붙이거니와 돈이나 재화는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으며, 관계가 배제된 채 화폐가 교환됨은 영혼과 정신의 손상을 필연적으로 가져오기 쉽기 때문이다. 사업의 출발이자 종착점은 인간이며 민족이고 역사임을 잊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며느리밑씻개가 과거를 추억하면서 현재를 규정하듯, 오늘 우리의 행보는 반드시 미래와 제휴하고 있는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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