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혹시 스티브 맥퀸이란 미국 영화배우를 아시는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대탈주 Great Escape>나 영원한 탈출을 꿈꾸는 죄수로 등장하는 <빠삐용 Papillon>에서 그는 농담처럼 혹은 맹수처럼 보이는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그런 영화가 생각나지 않는다면 고층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를 소재로 만들어진 <타워링 Towering>은 어떤가. 내 기억이 맞다면 그는 나이 50에 병사하였을 것이다.
그는 무명배우 시절에 트럭 운전사 노릇을 했다고 전해진다. 화물을 가득 싣고 미국 전역을 누비는 트럭 운전사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배우로 전신하는데 성공한 스티브 맥퀸. 그런데 트럭 운전사란 직업에 대하여 생각해 보셨는지. 어젯밤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대형트럭 안에 흐릿한 조명등을 밝히고 홀로 앉아 있는 트럭 운전사를 잠깐 바라보게 되었다. 거기서 읽히는 고독이라니.
창밖에는 스산한 가을밤이 펼치고 밤바람 서늘한데, 흐릿한 불빛 아래 그의 느릿한 움직임이 얼마나 처연하게 내 가슴을 파고 들었는지. 그의 외로운 영혼과 육신이 직선으로 나를 찔러오는 것이었다. 언제 새벽이 올지 모르는 시각에 높다란 운전석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마을과 거리의 등불을 홀로 바라보며 온밤을 지새울 것처럼 보였던 그의 옆모습은 얼마나 쓸쓸하였던가.
세상에 환생이 있다면 나는 트럭 운전사가 되리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통일된 한반도를 지나 압록강을 넘어 만주와 러시아 평원을 거쳐 동유럽과 서유럽을 경유하여 런던 거쳐 글래스고우까지 가보리라는 열망이 원인이었다. 분단된 조국의 반쪽에 익숙해진 우리의 정서와 사유의 좁음을 탈피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 그 바탕에 깔려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폼생폼사' 하려는 자의식도 한 몫 단단히 거들었을 터이지만.
그런데 어젯밤 그 운전사는 나의 그런 희망과 꿈을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홀로의 시간과 공간을 얼마나 당당하고 의연하게 대면할 수 있겠는가의 문제에 느닷없이 봉착하게 된 셈이니. 그는 나에게 커다란 깨우침을 제공해준 것이다. 아마 나에게는 그런 용기와 자신감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깨달음처럼 선연하게 다가와던 것이다. 그의 완전에 가까운 절대고독을 과연 내가 견딜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올시다'일 터. 사람이 애초부터 느끼는 사회적 관계의 필연성은 그만 두더라도 감상적인 인간이 홀로 시-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함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저 때 되어 지상과 영원히 작별하는 날까지는 이런저런 소중한 인연들을 만들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면서 깊은 상념과 생각에 잠기는 편이 절대고독이나 상대고독에 빠져드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는 작업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얼마 전,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과속에 과속을 거듭하면서 서울로 치달아올라가면서 차 안에서 절감하는 '혼자'임에 대한 생각은 그다지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서울에는 기다리는 어머니와 형제들 있음에 부지런 떨었지만, 그 이외의 관계에 대한 열망은 아마도 쉽사리 내 곁을 떠나갈 것 같지는 않다. 살아간다는 일은 종당에 서로 어울리는 것이고, 서로 부대끼는 데에 본령이 있음을 날마다 깨달아가는 일상이 요즘 내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 것이니.
<빠삐용>에서 스티브 맥퀸이 그렇게도 탈출을 꿈꾸었던 배경에는 거창하게 말하면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있다고 하겠으되, 또 다른 점에서는 삶의 고독으로부터 죽음과 대면할 때까지 탈출하고자 하는 열망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어느 땐가 모든 것에 익숙해질 수 있는 그런 시간대가 올지도 모르겠으되, 어쨌거나 산다는 일의 배후에는 언제나 관계와 인연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는 생각에 새삼 트럭 운전사의 고독이 한결 더 우울하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에게 삶과 관계들의 '섞어찌개'가 서둘러 완성되기를 조용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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